-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차는 조용히 달렸다.
시트가 부드러워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길 뻔했다.
“도착했습니다.”
운전석 쪽에서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고개를 들었다.
“윤채하 영웅님의 댁입니다.”
밖을 보니 단독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도심지 근처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윤채하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일어나.”
정확히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쿨….”
깰 생각을 안 한다.
몸의 전력을 완전히 꺼버린 듯 아무리 흔들어도 미동조차 없다.
절대 안 일어날 것 같은데….
“부축을 도와드릴까요?”
기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내가 하는 게 더 낫겠다. 남이 건드리는 것도 좀 그렇고.
나는 윤채하를 천천히 등에 업었다. 무게는 가볍다.
그러나 문제는 기묘할 정도로 부드러운 따뜻함이 등을 타고 스며든다.
나는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 띵동.
화면이 켜지기도 전에, 마당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채하야?!”
슬리퍼를 다급히 끌며 마당을 가로질러 누군가 뛰어나왔다.
그녀였다. 윤채하의 어머니.
예전, 아니 어제. 한 번 뵌 적이 있다.
좋은 방향성은 아니었지만.
“어머… 안녕하세요?”
그녀는 내 등에 업힌 윤채하를 보는 순간, 표정이 서서히 달라졌다.
어딘가 묘하게 납득하는 사람의 표정이다.
“시련 직후라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중간에 잠든 상태에서….”
나는 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최대한, 최대한 침착한 톤으로.
“…… 들어오세요. 일단 아이부터 눕혀야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방까지 안내받으며, 윤채하를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그녀는 내내 눈을 뜨지 않았다.
볼을 살짝 만져보니 열감이 조금 있다.
긴장과 마력 소모가 한꺼번에 온 듯했다.
“마력 탈진인 것 같습니다. 일어나면 보양식 같은 걸 챙겨주시는 게 좋을 것 같…?”
이불을 덮어주고 주의사항을 말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어머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뉴스, 봤어요.”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미소를 짓는다.
“자고 가실 거죠?”
“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둘 다 너무 고생 많았어요. 채하 방에서 푹 쉬고 가요.”
“아뇨, 아뇨. 저도 집은 있습니다.”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뭔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는듯해서 덧붙였다.
“그리고 저번에 그 일은 정말 사고였습니다. 불가람 님이 갑자기 방 안으로 보내셔서, 저도 많이 당황했던….”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갸웃하더니, 이내 살짝 웃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애매한 표정.
“그런가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말문이 막혔다. 변명할수록, 더 구차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자고 있는 윤채하를 바라봤다.
뉴스를 봤다고 하니, 윤채하의 발언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알아서 해라.'
일어나면 알아서 잘 수습하리라 믿는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현관까지 조용히 걸어 나와 배웅을 해줬다.
정적과 함께 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문고리에 손을 얹고 내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해인 씨. 아니… 해인 학생.”
나는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부드럽다.
“우리 딸, 잘 부탁해요?”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 예.”
결국 쥐어 짜내서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불가람도 내 아이라 언급하기도 했고,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는 맞으니까.
그녀는 그제야 만족한 듯, 싱긋 웃고 부드럽게 문을 닫았다.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피로감이, 몸 전체를 짓누르듯 내려앉았다.
정해인의 공략 성공 다음날 새벽.
정확히는 오전 4시 30분.
해가 떠오르지 않은, 도심의 건물들의 불은 아직도 꺼져 있다.
그러나 단 한 층만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이 있었다.
그곳은 영광 본사 건물, 최고층.
강아린의 집무실이었다.
긴급 소집이 내려진 건 자정.
정기 소집 예정일보다 다소 이른 날짜였다.
장소는 익숙했고, 연락 방식도 모두가 알던 루트다.
가장 프라이빗하고,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장소.
거절하거나 불참하는 사람은 없었다. 꽤나 중요한 사안이었으니까.
기본적으로, 그녀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변수다.
알고 있는 흐름에 변칙적인 요소가 끼어드는 것.
그 변수들에 의해 미세한 균열이 커지기 전에 모여 현황을 공유하고, 필요한 정리를 해 두는 회의.
앞길을 막으면 과감히 쳐내고, 그렇지 않다면 철저히 감시하며 관리한다.
그녀들은 이 회의를 어전 회의라 불렀다.
그리고 그 변수 중에서도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신적인 존재들.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으며, 인과를 초월해버린 존재들의 행동.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 하나는… 역설적으로, 정해인의 행동이었다.
흐름이 바뀌며, 그가 새롭게 내리는 선택 또한 변수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정해인의 선택을 받고, 동시에 신적인 존재에게까지 선택받은 대상.
윤채하.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큰 변수였다.
불가람의 선택을 받아서, 공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둘 모두 사이좋게 시련을 통과한다?
이미 그녀들의 예상을 한 참 웃도는 행보다.
상당히 피곤한 변수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전, 윤채하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괜찮다는 판정을 내렸다.
따라서 천여울이 지금 의논하고 싶은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천여울은 최대한 웃는 낯으로 기사를 여성들에게 기사를 내밀었다.
[들어갈 때는 혼자, 나올 때는 둘? 묘한 기류… 내부에서 로맨스 있었나]
라고 적힌 기사 제목.
딱 봐도 클릭을 유도한 제목으로 쓴 선정적인 가십거리다.
하지만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기자는 특유의 자극적인 워딩으로, ‘뜨거운 시험장 안에서 둘만의 교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읽는 이를 그렇게 생각하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천여울은 습관적으로 기사의 댓글을 확인했다.
[choi0126: 선남선녀네요~ 너무 잘 어울려요!!]
“아, 진짜.”
벌써부터 속을 벅벅 긁는 댓글들이 올라온다.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자, 댓글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내릴 수록, 다른 댓글은 더욱더 노골적이고 선정적이었다.
[youth89: 둘이 했을까요?]
ㄴ bosd41: 성인이 뜨거운 곳에서 둘이 붙어 있으면 당연한 거 아님?
ㄴ bosd41: 할 거 다 했을 듯
ㄴ youth89: ㅇㅈ 솔직히 예쁘긴 함 ㅋㅋ
ㄴ dudnf123: 저기요, 너무 억측 아닌가요?
ㄴ bosd41: ㅋ 님 아다죠?
“하… 씨.”
천여울은 워치를 탁,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반박할 수는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녀는 결국 새로운 댓글을 작성했다.
[dudnf123: 이 영웅님 성녀랑 사귀는 거 아니었나요?]
ㄴ bosd41: 이 사람 여기서도 헛소리하네 ㅋ 성녀 용사랑 커플링 있는 거 모르심?
ㄴ dudnf123 : 클린봇이 부적절한 표현을 감지한 댓글입니다.
ㄴ dudnf123: 클린봇이 부적절한 표현을 감지한 댓글입니다.
ㄴ bosd41: ?
“아오 짜증 나!!”
그때였다.
그녀의 시선이 회의 테이블 너머, 구석을 향해 멈췄다.
씩씩거리던 천여울의 눈길에 누군가가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초조해하는 가운데, 혼자서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고 있던 여성.
유하나였다.
천여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기요, 혹시 별생각 없으세요?”
“응?”
유하나는 잔잔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천여울을 바라봤다.
진짜로, 뭔가 편안해 보인다.
“음… 글쎄….”
그녀는 커피잔을 들어 입술에 댔다.
그 와중에 시선은 또 피한다.
저번에도 그랬다. 유하나는 태연하게 여행 기회를 양보했다.
그녀는 결코 정해인과의 여행을 양보할 인간이 못 된다. 뺏을 수 있었으면 뺏었지.
평소라면 이럴 리가 없었을 텐데.
“…….”
천여울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유하나를 바라봤다.
'이 찝찝함은 뭐지···.'
아니, 어쨌든 그런 건 지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얘, 기억은 찾은 거야?”
천여울은 시선을 돌려 하시온에게 물었다.
“그렇지는 않아. 사념의 형태인 것 같아.”
하시온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아예 기억을 깨달은 것이라면 접선하면 될 일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음…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지?”
하시온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이대로 지켜봐야 할 듯?”
말끝을 흐리며 덧붙인다.
“진짜…?”
천여울은 절망했다.
최악이다.
점점 도둑고양이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데, 그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다.
변수가 계속 불어나는 중인데, 제지를 못 한다.
막을 수도 없다.
이대로라면, 마당까지 넘어와 생선을 물고 달아나는 걸 지켜만 보게 생겼다.
천여울은 답답한 마음에 다시 기사에 실린 윤채하의 사진을 바라봤다.
여러 장이 찍혀 있었지만, 시선은 모두 은근히 정해인 쪽을 향하고 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지만, 생선을 물고 튀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뭐 못해…? 정말로…?”
“응….”
천여울은 허공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