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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현 상황을 정리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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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가람한테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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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쫓겨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만약 완전히 퇴출당했다면, 시스템에 알림이 떴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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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난 불가람에게서 쫓겨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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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내가 기르는 아이가 누군가 했더니, 윤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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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윤채하의 방으로 텔레포트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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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앞에서 태평하게 자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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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어머님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연신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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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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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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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하야~ 아직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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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윤채하의 부모님과 마주치는 건 안 된다. 상황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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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장 윤채하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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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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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 윤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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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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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얼굴이 천천히 찡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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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깨어날 기미가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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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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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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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조금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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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부스스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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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뜬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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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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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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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간,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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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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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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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히 웃었다. 잠에 취해 멍한 얼굴의 표정이 자못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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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채하의 반응은 예상보다 싱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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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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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천천히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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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녀는 망설임도 없이 내 팔을 덥석 잡아 침대 위로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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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순간 중심을 잃고 나는 침대 위에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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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에 스며든 강한 라벤더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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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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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하게 중얼거리며 팔을 내 목에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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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팔이 내 목을 끌어안은 채, 가슴팍까지 몸을 바짝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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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다리가 슬쩍 내 허벅지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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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읍…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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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박은 채 연신 숨을 들이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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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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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하야 문 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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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착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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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앞까지 도착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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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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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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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해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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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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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광경을 본 여성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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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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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복 차림으로 윤채하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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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내 품에 파묻혀 허리를 다리로 감싼 후 연신 숨을 들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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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품 사이로 뜬 오른쪽 눈만 어머니와 정확히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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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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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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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느릿하게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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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눈이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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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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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어머님은 문을 닫고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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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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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윤채하가 내 품에서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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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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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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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침대 위에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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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어떡하지? 근데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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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나 좀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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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을 돌린 채 창문으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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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에게는 대충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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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람이, 널 선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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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뛸 듯 기뻐하다가, 또 현재 상황이 생각난 듯 안절부절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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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입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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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옷을 다 입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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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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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놀러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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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색 점퍼에 하얀색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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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에 들어갈 복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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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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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이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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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이끌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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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할 멘트는 대충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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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밖으로 나온 우리를 반기는 건 채하의 부모님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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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탁자 위에는 하얀색 메모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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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하야! 엄마 아빠는 일이 생겨서 급히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올 것 같아!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남자친구랑 알아서 챙겨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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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피임은 꼭 하자. 농담 아니야. 아빠가 더 강조하래. 엄마도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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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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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의 기회도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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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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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얼굴이 빨개진 채 메모를 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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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은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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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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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채하를 끌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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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공방으로는 어떻게 돌아가나 했더니, 내 팔에는 붉은색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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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피부에 그을린 듯한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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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그 문신을 더듬자, 희미하게 따뜻한 열기와 함께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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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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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신에 마나를 불어 넣으면, 공방으로 다시 갈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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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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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잡고, 마나 불어 넣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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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뚝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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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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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조심스럽게 내 팔을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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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손끝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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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마나가 흘러들어오자, 문신이 은은하게 붉은빛을 내며 열기를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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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공간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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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하얗게 번지더니 모든 소리와 감각이 빠르게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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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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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은 이미 지옥과도 같은 뜨거운 공간 한가운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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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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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가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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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빠르게 품에서 마그마 부스터를 꺼내, 윤채하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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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마 부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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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열을 흡수해 방어막으로 치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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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용으로 가져왔던 것인데, 이걸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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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조심스럽게 작은 스위치를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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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꾹 눌러. 좀 나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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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단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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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터의 작동 버튼은 누르는 즉시 주변의 열을 흡수해 보호막으로 치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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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호흡도, 거동도 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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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채하는 스위치를 손가락 끝으로 이리저리 굴려 보더니 냄새를 킁킁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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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갑자기.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입에 쏙 넣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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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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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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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스위치가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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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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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티팩트를 사탕처럼 굴려 가며 맛을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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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쫍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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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두 번, 혀끝으로 천천히 굴리면서 입 안 가득 퍼지는 기묘한 금속의 맛을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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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가,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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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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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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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스위치의 껍데기만 남은 조각을 바닥에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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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시에, 주변의 열기가 파도처럼 끌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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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오러가 주변의 열을 집어삼키듯 흡수한다. 붉은빛이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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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열기가 소용돌이처럼 그녀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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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열기는 순식간에 차단되고 윤채하를 감싸는 붉은색 반투명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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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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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끝을 혓바닥을 살짝 내밀어 핥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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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남아 있는 단맛을 음미하듯 윤채하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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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네가 나한테 준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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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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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기행을 지켜보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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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기의 탐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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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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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펼쳤던 그 기행의 정체는 윤채하가 최근에 각성한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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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탐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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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잔재를 흡수해 각성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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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마그마 부스터의 본질을 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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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탐구자의 능력은 단순히 흡수에 그치지 않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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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의 힘과 원리를 해체하고, 완전히 재해석해 본인의 고유한 방식으로 소화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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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뱉어진 스위치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철 쪼가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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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 안에선 이상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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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가능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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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까지 먹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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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윤채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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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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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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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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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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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내 카테나치오와 팔랑크스를 전부 카피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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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고, 아마 웬만한 아티팩트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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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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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엄청난 권능을 각성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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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처음 보는 방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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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잔재가 워낙 강력해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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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까지의 거리는 꽤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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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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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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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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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중얼거렸다. 혼자서 헤맬 때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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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길도, 싸움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과정이 눈에 띄게 수월해졌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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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가람이 ‘연대’를 그토록 강조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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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정해인과 윤채하의 전투 궁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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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십 년을 함께 지내온 하시온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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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온과의 호흡이 긴 세월의 신뢰와 배려 위에 쌓였다면, 윤채하와의 호흡은 전혀 다른 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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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정해인의 행동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배우고, 이해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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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면 갈수록, 둘의 방향성은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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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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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그걸 받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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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배려 없이 이기적으로 움직이며 서로를 탐하지만, 자연스레 궁합이 맞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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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점점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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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저절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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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밌는 공간을 소개시켜준 정해인에게 문득 고마움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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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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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정해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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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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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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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마주친 정해인의 얼굴과 풍경 너머로 아주 잠깐, 낯선 장면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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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깊은 어딘가에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 지옥처럼 무너져 내리던 거대한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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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탑 가운데, 홀로 서 있던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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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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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의 시선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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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본 얼굴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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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주 오래전 잊고 있던 누군가가 그림자처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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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이질감. 기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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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금세 그 이상한 감각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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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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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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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한참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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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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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일순간 꿈을 꾸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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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가슴 어딘가가 알 수 없이, 미세하게 저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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