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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정해인을 조심스럽게 끌어올려 그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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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팔로는 허리를, 다른 손으로는 그의 손끝을 조심히 받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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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감도는 블루베리 담금주의 향, 그 아래에 섞인 그의 체취가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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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때문인지, 아니면 그 때문인지 심장은 점점 더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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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방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대부분의 방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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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돌아, 마침내 침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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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된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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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올라간 베개는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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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무릎을 굽혀 그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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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들어 이마를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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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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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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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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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올라오는 취기를 굳이 몰아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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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또한 처음이었기에…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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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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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끌리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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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빠져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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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체취가 코를 자극해 머리를 어지럽히고 눈앞이 빙빙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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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틈새로 살짝 드러난 목덜미와 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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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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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이 그의 단추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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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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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풀어지는 단추 사이로, 단단한 가슴 근육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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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잠시 그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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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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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하마터면 손을 데일뻔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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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중얼거리며,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몸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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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숨이, 내 숨소리보다 가까워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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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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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낮은 여성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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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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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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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그 즉시 취기를 전부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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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단추를 여미고 머리칼을 정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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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을 가다듬은 그녀는 고요하게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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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수녀복 위에 외투를 걸친 채, 문가에 멈춰선 그녀의 얼굴은 놀람과 경계가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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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그녀가 돌아오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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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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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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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눈빛이 뒤로 잠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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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침대 위에 풀어진 채로 누운 정해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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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앞섶이 풀어져 있을 것이고, 그 위에 유하나의 손길이 닿았던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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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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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그 시선을 받아내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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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마두스로 새로 부임 온 영주입니다. 남편분이 식사를 대접해주시겠다 해서… 말씀도 없이 댁에 찾아뵙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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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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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땀을 뻘뻘 흘리시길래 더워 보이셔서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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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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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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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빠르게 반응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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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밝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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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이 폐를 끼쳤네요… 아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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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리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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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마디에 경계가 풀린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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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은 오히려, 침대 위의 정해인을 향해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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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그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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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태도에 아내로서 자기 남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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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로의 유대감이 어떤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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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조심스럽게 방을 나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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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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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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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작게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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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들고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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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영주님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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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자수 장식이 박힌 손수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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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가 직접 꺼내어 액자 위에 덮어두었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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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며 생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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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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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하나는, 그 눈빛에 미묘한 기류가 섞여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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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는 환하게 웃고 있는데, 어딘가 싸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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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풀린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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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말없이 묻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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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수건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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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그걸 알아차리면서도, 태연하게 손수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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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미소로 되받아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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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제 것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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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속엔 또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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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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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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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도 똑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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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대화와 짧은 시선 교환 속에서, 서로가 할 말을 전부 끝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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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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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신음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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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오랜만의 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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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가 따라주는 술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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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탓에 자제력마저 잃고 과하게 마셔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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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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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떻게 헤어졌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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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순간, 곁이 텅 비어 있음을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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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안 들어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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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순간 불안함이 엄습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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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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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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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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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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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천여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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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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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정작 천여울의 얼굴엔 평소의 따뜻한 미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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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등 뒤로, 은은하고 고소한 해장국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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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여울은 식사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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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흘기며 침묵 속에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가볍게 얼굴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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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볼에 입맞춤이라도 할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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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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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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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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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놀랐지만, 그 놀람을 수습하기도 전에 천여울의 손이 그의 뒷머리를 꽉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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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얽히고, 혀가 무자비하게 그를 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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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건넬만한 부드러운 입맞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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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만의 흔적을 새기겠다는 듯, 강렬하고 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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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정도로 탐한 뒤에도 그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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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천천히 입술을 뗄 때, 그녀의 입술과 혀끝에서 투명한 실이 요염하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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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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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짧게 혀를 내밀어 실을 핥듯 닦으며, 조용히, 그러나 요염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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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과 귓불이 새빨갛게 물든 채, 숨을 몰아쉬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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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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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두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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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은 몸을 돌려 방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열며 뒤돌아 한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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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못한 거,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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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조용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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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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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의 얼굴도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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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엔 여전히 그녀의 달콤하고 위험한 향기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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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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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침인데도, 몸과 마음은 벌써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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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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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 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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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쿵쾅거리고 뺨은 한없이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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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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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여기 있는 여섯 중, 그 누구보다 맨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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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심장박동은 위험할 정도로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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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이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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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중얼거렸지만,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만큼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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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익은 과실처럼 붉어진 볼, 완벽히 고정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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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볼은 푹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고, 눈동자는 그 광경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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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자극적이고 위험한 막장 드라마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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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무의식적으로 한 손을 들어 가슴 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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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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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낯설고도 야릇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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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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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주사위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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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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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몇 턴, 몇 턴이면 게임을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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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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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를 쥔 손이 벌벌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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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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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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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윤채하는 힘없이 손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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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가볍게 바닥 위로 떨어져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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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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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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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은 더욱 흘러, 유하나는 변방 마을의 영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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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을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이 지역의 유력자인 정해인이 그녀의 곁에서 적극적으로 보조해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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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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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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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가 정해인의 집을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방문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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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녀간 날이면 아내와의 밤이 새벽까지 길게 이어졌다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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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마찬가지로 문제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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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건 오직 마차 한 대가 마을 어귀로 들어온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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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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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굽 소리가 조용한 농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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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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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의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짙은 남색 머리칼의 여성이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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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여성 기사가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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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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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생각도 없이,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마을을 활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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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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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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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잠시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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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블루베리 전량을 사 간 그 귀족 아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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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신분을 숨길 필요도 없는 듯, 한껏 당당하게, 화사한 미소를 띤 채로 정해인을 향해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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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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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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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농장 한가운데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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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다가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정해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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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때 주신 블루베리, 진짜 최고였어요! 효과도 정말 대단했고… 아버지도 직접 드시고 감탄하셨다니까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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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의 손끝이 정해인의 손을 꽉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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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치맛자락이 흩날리고,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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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검은 머리칼의 기사도 헐레벌떡 뒤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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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천천히…?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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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쉬며 말을 잇던 기사, 강아린의 시선이 정해인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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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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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그녀의 동공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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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조금 벌어지고, 본능적으로 뺨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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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영애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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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영지로 와서, 농사지으세요! 블루베리뿐만 아니라, 뭐든 마음껏 하실 수 있게 준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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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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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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