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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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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는 정해인을 조심스럽게 끌어올려 그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한쪽 팔로는 허리를, 다른 손으로는 그의 손끝을 조심히 받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은은하게 감도는 블루베리 담금주의 향, 그 아래에 섞인 그의 체취가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

알코올 때문인지, 아니면 그 때문인지 심장은 점점 더 빨라졌다.

조심스럽게 방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대부분의 방은 비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 마침내 침실 문을 열었다.

정돈된 실내.

…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올라간 베개는 두 개.

유하나는 무릎을 굽혀 그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눕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들어 이마를 닦아냈다.

“… 하아.”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취한 상태였다.

유하나는 올라오는 취기를 굳이 몰아내지 않았다.

그녀 또한 처음이었기에…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끌리게 되었고.

자꾸 빠져들어 버렸다.

그의 체취가 코를 자극해 머리를 어지럽히고 눈앞이 빙빙 돈다.

셔츠 틈새로 살짝 드러난 목덜미와 쇄골.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의 손끝이 그의 단추에 닿았다.

하나. 둘.

가볍게 풀어지는 단추 사이로, 단단한 가슴 근육이 드러난다.

그녀는 잠시 그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 뜨거워.

그녀는 하마터면 손을 데일뻔했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몸을 더듬는다.

이 남자의 숨이, 내 숨소리보다 가까워지는 순간.

  •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낮은 여성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누구…세요…?”

정해인의 아내였다.

유하나는 그 즉시 취기를 전부 몰아냈다.

조용히 단추를 여미고 머리칼을 정돈했다.

표정을 가다듬은 그녀는 고요하게 몸을 돌렸다.

하얀 수녀복 위에 외투를 걸친 채, 문가에 멈춰선 그녀의 얼굴은 놀람과 경계가 뒤섞여 있었다.

유하나는, 그녀가 돌아오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유하나는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아내의 눈빛이 뒤로 잠깐 스쳤다.

그곳엔 침대 위에 풀어진 채로 누운 정해인이 있다.

셔츠 앞섶이 풀어져 있을 것이고, 그 위에 유하나의 손길이 닿았던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천여울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유하나는 그 시선을 받아내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마두스로 새로 부임 온 영주입니다. 남편분이 식사를 대접해주시겠다 해서… 말씀도 없이 댁에 찾아뵙게 됐네요.”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또, 땀을 뻘뻘 흘리시길래 더워 보이셔서 잠시….”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 네…!”

천여울이 빠르게 반응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예상보다 밝은 얼굴이었다.

“제 남편이 폐를 끼쳤네요… 아이참….”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리며 웃는다.

단 한마디에 경계가 풀린 듯 했다.

그녀의 눈은 오히려, 침대 위의 정해인을 향해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따뜻하게.

유하나는 그걸 보았다.

그 태도에 아내로서 자기 남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또 서로의 유대감이 어떤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유하나는 조심스럽게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아 맞다….”

천여울이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작게 손뼉을 쳤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들고 다가온다.

“이거 영주님 거 같아서요.”

하얀 자수 장식이 박힌 손수건이었다.

유하나가 직접 꺼내어 액자 위에 덮어두었던 그것.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며 생긋 웃는다.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유하나는, 그 눈빛에 미묘한 기류가 섞여 있음을 느꼈다.

눈동자는 환하게 웃고 있는데, 어딘가 싸한 기분이 든다.

경계가 풀린 것이 아니었다.

마치 말없이 묻는 듯했다.

‘네 손수건 왜 여기 있어?

유하나는 그걸 알아차리면서도, 태연하게 손수건을 받았다.

똑같은 미소로 되받아치며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제 것 맞아요….”

그 말속엔 또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너도 알잖아?

“역시 그렇군요….”

천여울도 똑같이 웃었다.

하지만 그 대화와 짧은 시선 교환 속에서, 서로가 할 말을 전부 끝낸 셈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정해인은 신음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정말이지 오랜만의 과음이었다.

영주가 따라주는 술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 탓에 자제력마저 잃고 과하게 마셔버린 듯했다.

“아… 머리야.”

어제 어떻게 헤어졌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그 순간, 곁이 텅 비어 있음을 알아챘다.

‘아직도 안 들어온 거야?

정해인은 순간 불안함이 엄습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때,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 끼익.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

아내, 천여울이었다.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정작 천여울의 얼굴엔 평소의 따뜻한 미소가 없었다.

그녀의 등 뒤로, 은은하고 고소한 해장국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하지만 천여울은 식사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눈을 흘기며 침묵 속에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가볍게 얼굴을 기울였다.

평소처럼 볼에 입맞춤이라도 할 듯이.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 쪽.

입술이었다.

순간 놀랐지만, 그 놀람을 수습하기도 전에 천여울의 손이 그의 뒷머리를 꽉 붙잡았다.

입술이 얽히고, 혀가 무자비하게 그를 탐한다.

아침에 건넬만한 부드러운 입맞춤이 아니었다.

마치 자신만의 흔적을 새기겠다는 듯, 강렬하고 집요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탐한 뒤에도 그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천여울이 천천히 입술을 뗄 때, 그녀의 입술과 혀끝에서 투명한 실이 요염하게 늘어졌다.

“베에….”

그녀는 짧게 혀를 내밀어 실을 핥듯 닦으며, 조용히, 그러나 요염하게 웃었다.

볼과 귓불이 새빨갛게 물든 채, 숨을 몰아쉬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저녁에… 두고 봐요.”

천여울은 몸을 돌려 방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열며 뒤돌아 한마디 덧붙였다.

“어제 못한 거,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놨으니까.”

문이 조용히 닫혔다.

“무슨….”

정해인의 얼굴도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방 안엔 여전히 그녀의 달콤하고 위험한 향기가 남아 있었다.

“…….”

아직 아침인데도, 몸과 마음은 벌써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윤채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 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뺨은 한없이 달아올랐다.

이 모든 것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막말로 여기 있는 여섯 중, 그 누구보다 맨정신이다.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심장박동은 위험할 정도로 빨라졌다.

“아냐… 이건… 안 돼….”

작게 중얼거렸지만,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만큼 가늘게 떨렸다.

푹 익은 과실처럼 붉어진 볼, 완벽히 고정된 시선.

이미 볼은 푹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고, 눈동자는 그 광경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자극적이고 위험한 막장 드라마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었다.

윤채하는 무의식적으로 한 손을 들어 가슴 위에 올렸다.

쿵쿵.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낯설고도 야릇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번졌다.

“안 되지… 안돼.”

그녀는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주사위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 게임을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 몇 턴, 몇 턴이면 게임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주사위를 쥔 손이 벌벌 떨린다.

“…….”

  • 툭.

결국 윤채하는 힘없이 손을 내려놓았다.

주사위는 가볍게 바닥 위로 떨어져 굴러갔다.

“조금만 더….”

그녀는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뜨고 있었다.

@

그렇게 시간은 더욱 흘러, 유하나는 변방 마을의 영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그녀가 마을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이 지역의 유력자인 정해인이 그녀의 곁에서 적극적으로 보조해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겉보기엔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유하나가 정해인의 집을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방문했고.

그녀가 다녀간 날이면 아내와의 밤이 새벽까지 길게 이어졌다는 것 정도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문제없는 하루였다.

달라진 건 오직 마차 한 대가 마을 어귀로 들어온 것뿐.

  • 덜컹덜컹.

말굽 소리가 조용한 농가에 울려 퍼졌다.

“아가씨! 조심하세요!”

마차의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짙은 남색 머리칼의 여성이 뛰쳐나왔다.

뒤이어,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여성 기사가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내렸다.

“괜찮아!”

숨길 생각도 없이,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마을을 활보한다.

“어…?”

기억난다.

정해인은 잠시 멈춰 섰다.

저번에 블루베리 전량을 사 간 그 귀족 아가씨였다.

이번에는 신분을 숨길 필요도 없는 듯, 한껏 당당하게, 화사한 미소를 띤 채로 정해인을 향해 뛰어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농부님!”

명랑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농장 한가운데에 울려 퍼진다.

그녀가 다가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정해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 그때 주신 블루베리, 진짜 최고였어요! 효과도 정말 대단했고… 아버지도 직접 드시고 감탄하셨다니까요! 그래서…”

영애의 손끝이 정해인의 손을 꽉 움켜쥔다.

바람결에 치맛자락이 흩날리고,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그때, 검은 머리칼의 기사도 헐레벌떡 뒤따라왔다.

“아가씨, 천천히…? 헉….”

숨을 몰아쉬며 말을 잇던 기사, 강아린의 시선이 정해인과 마주쳤다.

짧은 정적.

순간, 그녀의 동공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입술이 조금 벌어지고, 본능적으로 뺨이 붉어진다.

그때, 영애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저희 영지로 와서, 농사지으세요! 블루베리뿐만 아니라, 뭐든 마음껏 하실 수 있게 준비해드릴게요!”

정해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상당히 충격적인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