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2-novel-agent/content/references/novelpia/327879/103.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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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흡….”
 
“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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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이 정해지자, 방 안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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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 그녀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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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는 블루베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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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하게 선언했다.
 
그 순간 시온이 갑자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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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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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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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의 복장은 각자 선택한 직업에 맞춰 바뀌어 있었다.
 
시온은 우아하고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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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원은 각자에게 어울리는 예쁜 옷들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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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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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 새끼줄이 걸린 베이지색 상의, 낡은 고무장화, 그리고 허리에는 삽이 꽂혀 있다.
 
누가 봐도 스탠다드한 중세 농부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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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잘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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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한 마디 툭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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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씨앗이랑 같이 땅에 묻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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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삽을 들고 그녀를 겨누며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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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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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이제, 주사위를 굴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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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그램 보드 위에는 몇십 칸 남짓의 루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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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는 지역마다 다르고 각자마다 가는 길이 달랐다.
 
하시온은 도시, 강아린은 왕궁, 윤채하는 마탑, 유하나는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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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천여울만 어디 변방 시골 마을에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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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왜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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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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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이 중얼거렸다.
 
시작부터 빈부격차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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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뮬레이션이지만 모든 전개는 보드 위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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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를 굴려 칸을 이동하고, 이벤트를 만나고, 각자의 삶을 만들어간다.
 
누군가가 끝에 도달하면 그 즉시 게임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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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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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물었다.
 
가장 먼저 직업을 뽑았던 그녀가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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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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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구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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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공작가의 막내영애가 손을 뻗어, 테이블 중앙의 홀로그램 주사위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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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천천히 멈췄고, 숫자 6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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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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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거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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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기뻐했지만 강아린은 쿨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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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주사위는 정 12면체.
 
딱 반타작이었다.
 
주사위에 반응하듯, 시온의 캐릭터 말이 보드 위에서 휙휙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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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이 멈춘 곳은 푸른색 칸.
 
이벤트 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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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 파티의 첫 데뷔입니다. 주사위에서 높은 수치가 나올수록 성공적인 데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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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이 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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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온은 묘하게 긴장된 얼굴로 다시 주사위를 쥐었다.
 
살짝 눈을 감고 조심스레 굴린 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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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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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안내 문구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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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데뷔, 사교계의 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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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방 안 전체가 반짝이는 황금빛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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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한순간에 장대한 무도회장으로 바뀌었고, 시온의 발아래에 중앙 계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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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올 때마다, 화면 속 군중들이 숨을 죽였다.
 
황실 대신관부터 대공가 장남들까지, 모두가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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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그날 이후 사교계 전역에 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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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온의 이벤트 홀로그램이 서서히 멈추자, 방 안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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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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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원이 경악했다.
 
상상 이상이었다. 퀄리티도, 몰입감도. 게임이라기보다 현실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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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만 시뮬레이션이고 직접 움직이는 것은 결국 본인이다.
 
몸을 흐름에 맡기고, 배역을 연기하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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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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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주사위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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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 – 왕국 기사]
 
[황녀를 위기에 구했습니다! 황제의 신임이 올라갑니다.]
 
비명을 지르며 매달린 황녀를 향해, 검은 망토를 두른 기사 하나가 돌진한다.
 
강아린은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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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속에서 황녀를 안고 굴러 떨어진다.
 
군중은 침묵, 황녀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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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 내에서 당신의 입지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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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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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린은 모른 척하려 했지만, 입꼬리는 꽤 높이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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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 –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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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의 금지된 서적을 도둑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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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뭘 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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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하는 도서관을 뛰어넘어, 마탑의 심장부로 향했다.
 
경비 골렘의 시야를 피해 몸을 낮춘 그녀.
 
손에는 무거운 고서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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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악의 근원, 크툴루의 존재에게 한발짝 다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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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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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입으로는 투덜대면서도, 내내 고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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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울 – 하급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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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비자금을 훔치던 목사를 적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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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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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수녀복을 입은 천여울은 고해성사실을 지나쳤다.
 
그 순간, 제단 뒤의 숨겨진 금고를 열어젖히며 사라진 금화를 발견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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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신이 당신을 보고 감탄합니다.]
 
[당신은 이제 중급 사제로써 이 교회를 운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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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런 거 못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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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당황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신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의외로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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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나 –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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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 발록을 잡아냅니다. 용사로서의 당신의 앞날은 길이길이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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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전장의 한가운데, 유하나가 대검을 앞세워 거대한 화염의 괴수와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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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검이 괴수의 심장을 꿰뚫습니다.]
 
[왕국의 아이들이 당신의 이름을 동요로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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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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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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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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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삶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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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게임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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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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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성공 가도를 달리는 가운데, 이제 마지막 남은 건, 농부의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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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 기대가 안 된다.
 
출신이 출신이어야 결과가 좋은 거지, 농부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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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시골 마을 출신.
 
아무래도 메인 스토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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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사위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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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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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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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등장하는 가장 높은 숫자.
 
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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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라도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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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기대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11인 유하나가 발록을 잡았으니, 12인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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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건국 이래 최고의 맛이 나는 블루베리 품종을 발견했습니다!]
 
[입에 넣는 순간 퍼지는 맛은 천상 그 자체! 병충해, 가뭄, 홍수에도 끄떡없는 초월적인 농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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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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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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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내 주위로 갑자기 거대한 나무가 솟구쳤다.
 
그리고 그 위에 탐스러운 보랏빛 열매들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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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의 효능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됩니다.]
 
[정력과 피부 미용에 좋다는 소문이 돌며, 내로라하는 귀족들조차 이 열매를 얻기 위해 당신의 농장 앞에서 줄을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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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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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슬슬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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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바라봤다.
 
웃음을 참으며 내게서 시선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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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기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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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게임은 몇 턴 더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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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성공 가도를 달린다.
 
나도 변방 마을의 대 농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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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거겠지?
 
좋은 거라고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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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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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나도 블루베리가 예뻐 보인다.
 
미친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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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들이 3번의 턴이 끝나자, 여신이 다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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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삶이 무르익었습니다. 본격적인 인생 이벤트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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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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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음성이 끝나자마자, 홀로그램 보드 위로 반짝이는 아이콘들이 떠올랐다.
 
하트, 돈뭉치, 박수.
 
각각 연애, 부, 명예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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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하트 아이콘이 시온 쪽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그러나 도달 직전, 아이콘은 이내 박수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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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같은 지역에 위치한 플레이어끼리만 인생 이벤트: 연애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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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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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역이라면….
 
나하고 천여울 뿐이다. 전부 다른 직업을 부여받았기에 다른 지역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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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증명하듯 눈앞의 하트 아이콘은 살짝 흔들리다가, 정확히 내 위치에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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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과 기부를 위해 마을의 교회로 블루베리를 기부하러 간 당신은, 그곳에서 만난 수녀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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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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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루베리 한 박스를 양팔로 안고, 낡은 나무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푸른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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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의 중심에서, 하얀 수녀복을 입은 천여울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청명한 눈동자가 내 쪽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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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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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수줍은 듯 웃으며 블루베리 상자를 받아서 들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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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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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예쁘지.
 
나는 얼굴을 보고 그대로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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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블루베리 한 알을 집어 소매로 조심히 닦았다.
 
하나는 내 입에, 하나는 자신의 입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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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맛있네요… 다음에도, 꼭 다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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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다음 주에도 수확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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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밖에는 설명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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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안내 메시지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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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당신에게 진심을 느꼈습니다.]
 
[천여울은 교단의 상급 사제 승격 제안을 거절하고, 당신과 함께 변방 마을에서 교회를 운영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두 사람은 이변 없이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부부 인연 루트에 진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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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이 조용해졌다.
 
다들 말을 잃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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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천여울은 내 손을 꼬옥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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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입꼬리는 약간 올라가, 귓불은 조용히 빨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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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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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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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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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때리는 폭력적인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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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더 이상 게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