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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정통성은 초대 황제에게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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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의 시대를 끝내고 필멸자의 시대를 열어버린 초대 황제는 인류의 구원자다. 누구나 초대 황제의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고, 그에 따라 당연히 황실에 막대한 권위가 부여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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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간이 너무 지나 과거의 영광은 빛이 바랬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빛이 바랜 영광조차 하늘 끝에 닿은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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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귀족이란 이런 황실을 등에 업고 설치는 일종의 기생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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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를 도와 나라를 건국했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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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귀족의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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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을 도왔다. 이걸 명확히 인지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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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하는 여정을 도운 게 아니라, 그저 제국 건설을 도운 것이니까. 그 둘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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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간이 지나며 제국 건립 공신이라는 명분은 옅어지고, 온갖 이유로 귀족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는데, 나는 이런 귀족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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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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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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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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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령관에게 받은 증서를 읽다가, 이내 인장 반지를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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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엔 나무와 불꽃이 얽힌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디자인만 봐도 나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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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엘피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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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 새로운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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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피니엘 남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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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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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작위는 계승위였다. 이럼 내 후계자도 귀족인데, 이렇게 대대로 유지되는 작위는 어지간해선 뿌리지 않았다. 보통 줘도 단승위를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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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위를 뿌릴 경우 귀족이 너무 많아지는 사태가 생겨서였으나, 황제를 구한 업적은 그런 부작용 정도는 가볍게 씹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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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도 받았다. 크기는 딱 남작령 평균 수준이었는데, 생산력이 특출나지는 않아서 크게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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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영지니 적당히 관리만 해도 꾸준히 돈이 생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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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 영지는 황제가 임명한 대리인이 관리 중이었다. 언제든 해고하고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라는 전령관의 조언이 있었지만, 그냥 알아서 하라고 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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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같은 걸 신경 쓰기엔 내가 할 게 워낙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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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남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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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그녀의 눈은 멍하니 풀렸는데, 어딘가 위험한 표정이라 나는 제리의 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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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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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위협을 느끼고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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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간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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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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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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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리로 크리스를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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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버둥대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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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우리는 서로 한날 한시에 거지가 되기로 약속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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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언제 그랬나요. 정신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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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귀족의 권한으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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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은 신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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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평민들이 오해하는 게, 확실히 귀족은 특권층이지만 신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됐고, 남을 부자로 만드는 수준의 권력은 상위 귀족이 아니면 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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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영지를 보유한 남작 정도면 전용 상인으로 임명함으로써 나름 이권을 챙겨주는 게 가능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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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고 보니 귀족 이거 진짜 말도 안 되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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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귀족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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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 인장과 증서를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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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가진 능력 중 하나. 아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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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마법 는 라는 특수한 공간을 다루는 마법이라고 짧게 설명이 됐는데, 이 의 특수 능력은 꽤 많아서. 굉장히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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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세계를 다룰 수 있는 마법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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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원래 주인인 바이스가 평행세계와 관련된 여러 수작을 부린 건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이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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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는 바이스가 저지른 수많은 일에 조미료 역할을 했을 뿐이다. 메인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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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미로 덕에 이제 짐을 안 들고 다녀도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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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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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이 그리 크지는 않아요. 미로의 구역 중 아공간으로 할당된 공간이 적어서요. 크리스 님의 상품은 짐마차로 옮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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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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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낑낑대며 짐마차를 정리했다. 나는 나무 병사로 크리스를 도와주다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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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이 마주친 레온이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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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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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할 일이 전부 끝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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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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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단정한, 허나 동시에 화려한 새하얀 의복을 입고 있었는데, 저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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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팔라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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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실력적으로는 많이 부족해 낙하산이나 다름없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성배를 가져온 것도 실력이니까. 정당히 얻어낸 지위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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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레온과 눈을 마주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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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할 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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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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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거치곤 너무 간절히 쳐다보는데요. 뚫어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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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간절히 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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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볼을 톡톡 두들기다가, 심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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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님. 판결을 내려주세요. 방금 레온 님이 저를 평범하게 봤는지, 뚫어져라 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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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씨가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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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불공정해요! 재판관을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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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따를 거면 저를 왜 선임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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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는 한숨을 쉬고는 짐마차에 가 앉았다. 출발 준비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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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뮤란도 짐마차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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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크리스가 짐마차에 올라타고,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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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이만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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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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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적당히 마시세요. 거기서 더 키가 크면 2m가 돼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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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성장기는 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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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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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쾌하게 짐마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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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병사가 고삐를 쥐고, 나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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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마법학교 라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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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마차가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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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등 뒤에서, 레온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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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또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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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그걸 속삭이듯 말하면 아무도 못 듣잖아요! 여러분! 레온 님이 저희랑 언젠가 또 만나고 싶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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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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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신나게 손을 흔드는 걸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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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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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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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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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빛은 정말 따사로웠지만, 그런 햇빛이 와닿지 않는 레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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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손가락으로 나무 거인 조각상을 툭툭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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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선물로 주고 간 물건이었는데, 레온은 나무 거인의 어깨 위를 유심히 살피다가 손가락으로 나무 거인을 쓰러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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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쓰러지는 나무 거인에 레온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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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는 이렇지 않은데, 고증이 잘못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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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오늘 아침의 일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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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를 하고 교국을 떠나는 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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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사람을 들었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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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의 머릿속에 루이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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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을 닮은 은빛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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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이 담긴 연초록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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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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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건 사실 예전부터 알았다. 화상을 입었을 때도 그녀의 눈동자는 선명히 빛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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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럼에도 그녀의 원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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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사람의 외관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런 걸 신경 쓰기에 그는 정의라는 두 글자를 너무 커다랗게 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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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별개로 레온은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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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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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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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루이나는 레온을 뒤흔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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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장난스럽게 웃던 루이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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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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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적절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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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과 루이나는 나름 오래 지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때는 저 말을 써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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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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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먼 산으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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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레온은 팔라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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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은 교국의 핵심 전력. 많은 임무를 받았고, 그건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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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레온에게도 팔라딘만이 할 수 있는 임무가 내려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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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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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팔라딘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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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자신을 구해줬던 팔라딘처럼, 팔라딘이 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레온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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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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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팔라딘이 되고 나니, 팔라딘이라는 직위가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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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팔라딘이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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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성기사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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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도, 루이나를 따라서 다시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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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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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레온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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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추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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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수석 추기경은 손짓으로 제지한 후 인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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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말게. 나는 그저 말을 전하러 왔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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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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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임무가 결정됐다네. 당장 떠나야 하는 임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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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그 두 글자에 레온은 마음을 굳세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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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임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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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교단을 쫓는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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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다른 악을 멸하는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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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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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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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마법학교, 라피엘에 가줘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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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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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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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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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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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들은 게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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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에 정말 가라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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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알지 않나? 교국에선 매번 마법학교에 유학생을 보내는걸. 자네는 그곳에 머물며 교국의 사제들을 현지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줬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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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역할을 자신에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레온이었지만, 빠르게 이유를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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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팔라딘이라기엔 여러모로 부족했다. 정식 팔라딘은 맞았지만, 실력은 어디까지나 상위 성기사쯤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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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레온은 굉장히 애매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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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임무를 맡긴다? 팔라딘인데? 그냥 죽게 두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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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임무를 맡긴다? 팔라딘인데? 인력 낭비를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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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것저것 따져보면 레온에겐 팔라딘만 할 수 있지만 안전한 임무를 맡기는 게 최선이었고, 그런 임무는 보통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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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성향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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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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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정치적인 이점을 얻기 위해서, 마법학교에 배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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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생각하면 수석 추기경은 온화한 표정을 지은 게 아니었다. 미안한 감정을 숨기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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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팔라딘이 된 성기사에게 마법학교에 처박혀 있으라는 임무를 내린 거다. 100이면 100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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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레온도 화를 냈을 거다. 자신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라고 항의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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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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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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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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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레온은 순순히 수석 추기경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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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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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네 글자에 레온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돌연 다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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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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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럼 영원히 헤어질 것처럼 말해놓고 바로 다시 만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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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인사는 하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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