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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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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정통성은 초대 황제에게서 시작됐다.

외신의 시대를 끝내고 필멸자의 시대를 열어버린 초대 황제는 인류의 구원자다. 누구나 초대 황제의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고, 그에 따라 당연히 황실에 막대한 권위가 부여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간이 너무 지나 과거의 영광은 빛이 바랬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빛이 바랜 영광조차 하늘 끝에 닿은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귀족이란 이런 황실을 등에 업고 설치는 일종의 기생충이었다.

초대 황제를 도와 나라를 건국했던 사람들.

그게 귀족의 시초였다.

건국을 도왔다. 이걸 명확히 인지해야 됐다.

세계를 구하는 여정을 도운 게 아니라, 그저 제국 건설을 도운 것이니까. 그 둘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제국 건립 공신이라는 명분은 옅어지고, 온갖 이유로 귀족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는데, 나는 이런 귀족을 좋아했다.

왜냐고?

나도 이제 귀족이니까.

귀족 만세.

나는 전령관에게 받은 증서를 읽다가, 이내 인장 반지를 집었다.

반지엔 나무와 불꽃이 얽힌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디자인만 봐도 나 때문에 새로 만들어진 문양이었다.

루이나 엘피니엘.

이게 내 새로운 이름이었다.

엘피니엘 남작이라.

나쁘지 않았다.

내가 받은 작위는 계승위였다. 이럼 내 후계자도 귀족인데, 이렇게 대대로 유지되는 작위는 어지간해선 뿌리지 않았다. 보통 줘도 단승위를 주지.

계승위를 뿌릴 경우 귀족이 너무 많아지는 사태가 생겨서였으나, 황제를 구한 업적은 그런 부작용 정도는 가볍게 씹는 모양이었다.

영지도 받았다. 크기는 딱 남작령 평균 수준이었는데, 생산력이 특출나지는 않아서 크게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영지니 적당히 관리만 해도 꾸준히 돈이 생길 것이었다.

현재 내 영지는 황제가 임명한 대리인이 관리 중이었다. 언제든 해고하고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라는 전령관의 조언이 있었지만, 그냥 알아서 하라고 둘 생각이다.

영지 같은 걸 신경 쓰기엔 내가 할 게 워낙 많아서.

“루이나 남작님….”

크리스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그녀의 눈은 멍하니 풀렸는데, 어딘가 위험한 표정이라 나는 제리의 뒤로 갔다.

노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스승님이 위협을 느끼고 도망갔다.”

“도망간 게 아니에요.”

“그럼 뭐야?”

“가라 제리.”

나는 제리로 크리스를 제압했다.

크리스는 버둥대며 소리쳤다.

“루이나 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우리는 서로 한날 한시에 거지가 되기로 약속했잖아!”

“저희가 언제 그랬나요. 정신 차리세요.”

“얼른 귀족의 권한으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줘!”

“귀족은 신이 아니에요.”

간혹 평민들이 오해하는 게, 확실히 귀족은 특권층이지만 신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됐고, 남을 부자로 만드는 수준의 권력은 상위 귀족이 아니면 누리지 못했다.

뭐, 영지를 보유한 남작 정도면 전용 상인으로 임명함으로써 나름 이권을 챙겨주는 게 가능하긴 했지만.

정리하고 보니 귀족 이거 진짜 말도 안 되게 좋네.

역시 귀족이 최고야.

나는 에 인장과 증서를 집어넣었다.

가 가진 능력 중 하나. 아공간이었다.

고유 마법 는 라는 특수한 공간을 다루는 마법이라고 짧게 설명이 됐는데, 이 의 특수 능력은 꽤 많아서. 굉장히 유용했다.

평행세계를 다룰 수 있는 마법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의 원래 주인인 바이스가 평행세계와 관련된 여러 수작을 부린 건 ‘탐욕’의 세 번째 손가락이어서였다.

어디까지나 는 바이스가 저지른 수많은 일에 조미료 역할을 했을 뿐이다. 메인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미로 덕에 이제 짐을 안 들고 다녀도 되네요.”

“루이나 님. 나는?”

“용량이 그리 크지는 않아요. 미로의 구역 중 아공간으로 할당된 공간이 적어서요. 크리스 님의 상품은 짐마차로 옮기세요.”

“알겠어.”

크리스는 낑낑대며 짐마차를 정리했다. 나는 나무 병사로 크리스를 도와주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레온이 입술을 열었다.

“벌써 가십니까.”

“이제 할 일이 전부 끝났으니까요.”

“그렇긴 하죠.”

레온은 단정한, 허나 동시에 화려한 새하얀 의복을 입고 있었는데, 저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레온이 팔라딘이 됐다.

비록 실력적으로는 많이 부족해 낙하산이나 다름없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성배를 가져온 것도 실력이니까. 정당히 얻어낸 지위라 할 수 있었다.

레온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레온과 눈을 마주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할 말이 있나요?”

“없습니다.”

“없는 거치곤 너무 간절히 쳐다보는데요. 뚫어지겠어요.”

“딱히 간절히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볼을 톡톡 두들기다가, 심판을 불렀다.

“제리 님. 판결을 내려주세요. 방금 레온 님이 저를 평범하게 봤는지, 뚫어져라 봤는지.”

“레온 씨가 이겼습니다.”

“이건 불공정해요! 재판관을 바꿔주세요!”

“안 따를 거면 저를 왜 선임했습니까.”

제리는 한숨을 쉬고는 짐마차에 가 앉았다. 출발 준비를 하는 거다.

노아와 뮤란도 짐마차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크리스가 짐마차에 올라타고,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희 이만 가볼게요.”

“네.”

“우유 적당히 마시세요. 거기서 더 키가 크면 2m가 돼버려요.”

“이미 성장기는 지났습니다.”

“그럼 이만!”

나는 경쾌하게 짐마차에 올라탔다.

나무 병사가 고삐를 쥐고, 나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외쳤다.

“목표! 마법학교 라피엘!”

짐마차가 출발한다.

그리고 등 뒤에서, 레온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또 만나기를.”

“레온 님 그걸 속삭이듯 말하면 아무도 못 듣잖아요! 여러분! 레온 님이 저희랑 언젠가 또 만나고 싶대요!”

“레온 님! 또 만나!”

크리스가 신나게 손을 흔드는 걸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국을 떠났다.

레온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오후의 햇빛은 정말 따사로웠지만, 그런 햇빛이 와닿지 않는 레온이었다.

레온은 손가락으로 나무 거인 조각상을 툭툭 건드렸다.

크리스가 선물로 주고 간 물건이었는데, 레온은 나무 거인의 어깨 위를 유심히 살피다가 손가락으로 나무 거인을 쓰러트렸다.

너무 쉽게 쓰러지는 나무 거인에 레온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는 이렇지 않은데, 고증이 잘못됐군.

레온은 오늘 아침의 일을 회상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교국을 떠나는 루이나.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사람을 들었다 놓는다.

레온의 머릿속에 루이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별빛을 닮은 은빛 머리카락.

생명력이 담긴 연초록 눈동자.

새하얀 피부.

루이나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건 사실 예전부터 알았다. 화상을 입었을 때도 그녀의 눈동자는 선명히 빛났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그녀의 원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레온은 사람의 외관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런 걸 신경 쓰기에 그는 정의라는 두 글자를 너무 커다랗게 품었으니까.

하지만 별개로 레온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고?

루이나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루이나는 레온을 뒤흔들 수밖에 없었다.

레온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장난스럽게 웃던 루이나를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라니.

참 적절한 말이었다.

레온과 루이나는 나름 오래 지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때는 저 말을 써야 됐다.

그런 분위기였다.

레온은 먼 산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레온은 팔라딘이 됐다.

팔라딘은 교국의 핵심 전력. 많은 임무를 받았고, 그건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곧 레온에게도 팔라딘만이 할 수 있는 임무가 내려올 것이었다.

“…….”

레온은 팔라딘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자신을 구해줬던 팔라딘처럼, 팔라딘이 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레온의 꿈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정작 팔라딘이 되고 나니, 팔라딘이라는 직위가 무겁게 느껴졌다.

만약 팔라딘이 아니었다면.

일반 성기사였다면.

레온도, 루이나를 따라서 다시 여행을―.

“레온.”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레온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수석 추기경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수석 추기경은 손짓으로 제지한 후 인자하게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게. 나는 그저 말을 전하러 왔을 뿐이니.”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의 임무가 결정됐다네. 당장 떠나야 하는 임무지.”

임무. 그 두 글자에 레온은 마음을 굳세게 먹었다.

어떤 임무일까.

악신의 교단을 쫓는 임무?

아니면 다른 악을 멸하는 임무?

“레온.”

“하명하시길.”

“그대는 마법학교, 라피엘에 가줘야겠네.”

…….

……?

어라.

내가 잘못 들었나?

“잘못 들은 게 아니라네.”

“마…법학교에 정말 가라는 말입니까?”

“그렇네. 알지 않나? 교국에선 매번 마법학교에 유학생을 보내는걸. 자네는 그곳에 머물며 교국의 사제들을 현지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줬으면 좋겠군.”

왜 그 역할을 자신에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레온이었지만, 빠르게 이유를 파악했다.

레온은 팔라딘이라기엔 여러모로 부족했다. 정식 팔라딘은 맞았지만, 실력은 어디까지나 상위 성기사쯤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레온은 굉장히 애매한 존재였다.

위험한 임무를 맡긴다? 팔라딘인데? 그냥 죽게 두려고?

평범한 임무를 맡긴다? 팔라딘인데? 인력 낭비를 하려고?

즉 이것저것 따져보면 레온에겐 팔라딘만 할 수 있지만 안전한 임무를 맡기는 게 최선이었고, 그런 임무는 보통 하나였다.

정치적인 성향의 임무.

그래.

레온은 정치적인 이점을 얻기 위해서, 마법학교에 배정된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수석 추기경은 온화한 표정을 지은 게 아니었다. 미안한 감정을 숨기는 거였다.

기껏 팔라딘이 된 성기사에게 마법학교에 처박혀 있으라는 임무를 내린 거다. 100이면 100 화를 냈다.

예전의 레온도 화를 냈을 거다. 자신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라고 항의했겠지.

허나.

“알겠습니다.”

“미안하네.”

지금의 레온은 순순히 수석 추기경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마법학교.

그 네 글자에 레온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돌연 다시 내렸다.

근데.

이럼 영원히 헤어질 것처럼 말해놓고 바로 다시 만나는 거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 인사는 하지 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