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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는 교단이 여태 긁어모은 생명력의 정수들을 한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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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불사조의 깃털, 달의 정수, 대지의 심장, 세계수의 과일 등등이 음울한 불빛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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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모으기 위해 오만의 사제들에게도 협력 요청을 했었는데, 이제 그 성과를 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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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심호흡한 바이스는 이내 손을 들고 생명력의 정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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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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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신성력이 생명력의 정수들을 감싸고, 하나로 뭉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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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키 높이로 쌓였던 생명력의 정수가 거대한 그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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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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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릇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담고 싶었다는 뜻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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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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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과는 다른 곳에 거하는, 거대한 누군가와 바이스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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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힘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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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신의 7개의 모습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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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원하는 만큼 그릇에 담아낸 바이스는 조심스럽게 성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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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배는 가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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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에,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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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8위계 대마법사가 기적을 일으키며 만든 마도구인 만큼 가짜 성배의 성능도 뛰어났지만, 반신은 결국 반신. 진짜 신이 빚어낸 진짜 성배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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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짜 성배를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선 수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야 그릇만 훌륭하고 안은 텅 비었으니까. 일단 내용물을 채워야 써먹든 말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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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가짜 성배를 원하는 대로 쓰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했으나, 거기서 바이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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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많은 노력이 필요하면 그 노력을 다른 방향으로 쓰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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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가짜 성배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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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적. 가짜 성배가 갈라진다. 마치 만화경에 비친 것처럼 가짜 성배가 여러 개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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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없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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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에 비치는 세상은 참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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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상에선 지금과 똑같이 바이스가 제단에 가짜 성배를 올렸고, 어떤 세상에선 언젠가 죽여버렸던 탐욕의 사제가 제단에 가짜 성배를 올렸으며, 어떤 세상에선 처음 보는 여자가 제단에 가짜 성배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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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선택에 의해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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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을 했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고, 그건 세상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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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 의해 분기되는 수많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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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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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바이스는 그 평행 세계를 탐색하는 성법을 발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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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단에 가짜 성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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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바이스는 계속 지켜봤다. 아직 원하는 게 등장하지 않은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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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가 원하는 세계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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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선택이 반복되며, 무슨 기적이 반복되며 도달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라면 반드시 존재할 평행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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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진짜’ 성배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평행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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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성배를 써먹기 위해 노력하느니, 차라리 그 노력으로 진짜 성배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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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이스가 이번 계획을 수립하고, 그걸 이룰 방법론을 짜내다 도달한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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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성배가 존재하는 평행 세계를 발견하면 그다음은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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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세상 만물은 탐욕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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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세계의 물건 또한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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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탐색을 위해서 바이스가 모은 생명의 정수는 굉장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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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그렇게 모은 생명의 정수로 가짜 성배에 힘을 채워 넣는 방법도 있었지만, 바이스는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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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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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자신의 신이 깃들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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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물건을 준비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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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다. 곧 이 땅에 탐욕의 화신체가 강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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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떤 무슨 의미인지는 직접 겪어본 자들이 제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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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는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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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멀리서 폭발음이 들린다. 누군가 습격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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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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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중얼거린 바이스는 몸을 원상태로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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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벌써 수십 개로 갈라진 만화경을 지켜보며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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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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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부디, 이 흥을 깨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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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사제들이 자리 잡은 버려진 성채는 버려졌다는 말과 다르게 매우 두터운 성벽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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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이유가 성능적 이유가 아니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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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가 버려진 건 어디까지나 산속에 자리 잡은 탓에 통행이 어려운 것과, 세월이 흐르며 이런 위치에 있는 성채가 필요 없어진 게 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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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만큼 방어력은 극강했는데, 이런 성채를 정상적으로 공략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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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래라면 수작을 부리거나 말려 죽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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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레온에겐 그럴 시간 자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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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여기선 정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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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궁. 거대한 암석창이 허공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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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란이 돈을 처발라 준비한 마법진에서 소환된 암석창이 목표를 조준하고, 그대로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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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악! 성문이 산산조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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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성문을 넘어 레온은 성채 안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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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이 쏟아진다. 성채를 가득 채운 악신의 사제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물을 재현해 날리고, 그 앞에서 레온은 차분히 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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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휘두른 검에 닿은 모든 성법이 본래의 궤적을 벗어난다. 부드러움으로 흐름을 제압한 레온은 그대로 앞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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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제리의 손에서 불꽃의 탄환이 발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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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마법 을 기반으로 생성된 마탄이 허공에 꽂히고, 즉시 공간을 ‘왜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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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장에 막힌 성법이 허공에서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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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폭발 밑에서 하이블과 함께 달리며 레온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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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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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자네는 예전부터 감각이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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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육감을 바늘처럼 콕콕 찌르는 기운의 근원을 쫓아 더욱 안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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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기사들이 앞을 막는다. 속도를 늦추지 않고 레온은 보이지 않는 속도로 검을 움직여 적들의 빈틈을 찔렀다. 목에 바람구멍이 난 악신의 기사들이 땅에 쓰러진다. 그걸 넘어서며 레온은 검에 신성력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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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구궁! 돌로 만들어진 골렘의 주먹과 레온의 검이 맞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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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분명한 마법의 산물이었으나, 레온은 당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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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사제 놈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이유야 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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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또한 자신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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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리일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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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검을 비틀며 골렘의 무게 중심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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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발천근. 그 기묘한 묘리에 따라 골렘이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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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골렘의 팔을 타고 올라가 머리에 위치한 핵을 박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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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빛나던 골렘의 눈이 검게 변하고, 레온은 정지하는 골렘을 밟고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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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떨어지는 기세 그대로 방패째로 적을 베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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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위대하신 분을 받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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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사제 중 누군가 외치자 군데군데에 검은색 빛기둥이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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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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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을 신성력으로 재현하는 걸 넘어, 성물을 대여하는 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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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레온은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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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성물을 든 악신의 사제들이 더욱 강력한 공격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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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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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하이블 또한 창세신의 성물을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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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진품은 아니고 레플리카였으나, 그것만으로 하이블의 힘이 몇 배는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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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양이 양각된 방패를 들며 하이블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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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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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블의 명령을 따라 레온을 포함한 성기사가 앞으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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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가만히 둘 리가 없는 악신의 사제들이 강력한 공격을 날렸으나, 그 모든 공격은 하이블의 방패로 쏙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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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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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찰나의 빈틈을 노리고 적의 본거지로 추측되는 내성에 돌입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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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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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도는, 불로 이루어진 거인의 주먹에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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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정령까지 사역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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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탐욕을 받드는 놈들다운 전투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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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정령이 입에서 불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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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위협적인 모습에 레온은 눈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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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정령도 정령이었지만, 그것보다 악신의 사제들이 몰려드는 게 더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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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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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면 악신의 교단 토벌은 실패로 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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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즉, 루이나를 구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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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짧게 상념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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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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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마법에 미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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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해줬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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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을 원하고, 공평을 실천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걸 원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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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들고 다니며, 신화 속 여신처럼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해 준, 이제는 레온의 가장 친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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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루이나를 구하지 못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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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이,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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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들고 있던 검을 땅에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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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텅 빈 손을 앞으로 내밀며,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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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다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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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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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소중한 걸 지킬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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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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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레온의 머릿속에 빛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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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의 창고가 열린다. 수많은 성물이 레온에게 손을 흔들고, 무엇을 고르든 정답이라 오히려 아무것도 고를 수 없는 상황에서 레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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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딱 맞는, 성물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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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을 모아 재련한 성검이 세상에 강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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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산을 증발시키는 진본에서 열화된 레플리카였으나,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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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면, 소중한 걸 지키기에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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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그은 궤적을 따라 새하얀 선이 세상을 훑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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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갈라진 타락한 정령이 비스듬히 무너진다. 그 뒤에 있던 악신의 사제들도 마찬가지다. 비스듬히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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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정면에 레온은 힘차게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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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에 들어간 레온은 막아서는 적을 가볍게 쓰러트리며 깊게, 더 깊게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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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감을 찌르는 바늘을 따라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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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그러나 뭉개버리고 싶은 얼굴을 만날 때까지 계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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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가득 메운, 수천 개로 갈라진 만화경 앞에서, 바이스가 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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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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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용케 탈출했군요. 생각보다 더 탐욕의 미로에 약하게 당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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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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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성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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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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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루이나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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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레온은, 그것 외엔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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