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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이드 그레이프턴은 꽤 큰 마을이었다.
규모로 치면 내 고향(가짜)의 5배 정도? 대략 도시와 마을 중간. 그 어딘가에 위치한 곳이라 생각하면 편했다.
나는 종업원에게 목욕물을 부탁하고 등불 안 불꽃을 응시했다.
잠깐 기다리자 곧 종업원이 내게 다가왔다.
“준비됐습니다.”
“포도주도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나는 여관의 뒤뜰로 향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출입이 통제된 곳이라 순서대로 한 명씩만 들어올 수 있었다.
커다란 목욕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 나는 옷을 벗고 등불을 옆에 내려놓은 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깊은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후아.
이게 천국이지.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오세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이래서 종업원으로 여자를 쓰는 거였다. 종업원이 여자면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이런 상황에서 출입이 가능했으니까.
종업원은 나무판 위에 포도주를 올려 물 위에 띄우고 뒤뜰을 빠져나갔다.
나는 포도주를 잔에 따랐다.
목욕하면서 술이라니. 눈까지 왔으면 완벽했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9월이라. 눈이 오려면 멀었다.
목욕 중에 알콜을 마시면 혈액 순환이 빠르게 돼 급속도로 취한다. 몸에 안 좋으니 착한 사람은 따라 하면 안 됐다.
참고로 나는 착한 사람이지만 몸이 튼튼해서 괜찮다.
포도주의 향기를 코로 즐기다가, 천천히 마셨다.
으으음. 이 절묘한 떫은맛.
나는 포도주를 전부 들이켜고 중얼거렸다.
“포도주는 그냥 그렇네요.”
벌꿀주가 신의 경지에 달해 이 세계의 술을 종류별로 먹어보는 중인데, 그 어떤 술도 벌꿀주의 아성을 넘보지 못했다.
물론 맛은 있었지만, 평범한 포도주였다. 내가 와인을 딱히 안 좋아하는 거랑 별개로 특출나지 않았다.
현대에서도 맛보지 못한 특별한 벌꿀주랑 차이가 너무 났다.
왜 이렇게 벌꿀주만 유독 특출난 걸까. 그게 신기해 나는 포도주를 찰랑이며 관찰하다가, 마저 마셨다.
신기한 건 신기한 거고 마실 건 마셔야지.
목욕을 마친 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여관 홀로 나갔다.
자리에 앉은 나는 손을 들고 외쳤다.
“벌꿀주 2잔이요!”
“아까 목욕 중에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습니까?”
미리 자리에 앉아 있던 레온이 살짝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들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못 마셨잖아요. 벌꿀주 욕구는 반드시 해소해야 돼요. 크리스는요?”
크리스는 축제 기간 우리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보름간 친해져 바로 헤어지기 아쉽다, 라는 게 크리스의 의견이었다.
내 물음에 레온은 우유를 마시며 설명했다.
“사람들을 만나러 간 것 같습니다.”
하긴. 크리스는 행상인이니까. 가져온 포도주를 제대로 팔려면 마을의 동태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메케한 연기를 천장에 흘려보낸 나는 테이블 위에 등불을 올려놨다.
화륵. 등불 안 불꽃에 입이 생긴다.
그걸 확인한 레온이 우유 잔을 내려놓았다.
“볼수록 신기한 마법입니다.”
“마법은 원래 신기해요.”
이 마법은 순수 원소 마법과 응용 원소 마법 중 후자로, 주변으로 퍼지는 소리를 삼키는 마법이었다.
나는 화염 원소에서 ‘공평’의 특징을 발견했다.
그다음 그 부분을 파고들어 규칙과 제약의 원리를 손에 넣고 3위계에 올랐는데, 그래서 이 소리를 없애는 마법이 공평의 화염으로 발동한 마법이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공평과 엮어서 발동한 마법은 맞았지만, 마법을 이루는 근간은 따로 있었다.
화염은 모든 걸 집어삼킨다.
나무든, 돌이든, 동물이든, 약초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추억이든, 모든 걸 가리지 않고 난폭하게.
타고난 포식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새로 발견한 화염 원소의 특징, ‘포식’이었다. 반년 전쯤 불꽃을 노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원소를 이해하며 새로운 특징을 발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켈튼의 경우 10개가 넘는 특징을 발견했는데, 이렇게 깨닫는 특징의 수가 늘어나는 걸 원소의 이해도가 넓어진다고 표현했다.
이해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쓸 수 있는 마법이 늘어났다. 그러니 넓어진다고 하는 거다.
반대로 한 가지 특징을 파고들어 여러 원리를 깨닫는 걸 원소의 이해도가 깊어진다고 했는데, 둘 중 위계의 상승과 연관 있는 건 깊어지는 거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법사는 한 가지 특징을 깊게 파고드는 경향이 많았다.
벽에 막혀 헤맬 때나 다른 특징을 겸사겸사 파고드는 거지, 보통은 한 가지 특징만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파이프 담배의 내용물을 교체하며 물었다.
“어디부터 조사할 건가요?”
“원래는 포도밭을 조사할 생각이었습니다.”
“풍작이 계속 이어질 만한 땅이 맞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몇 년째 흉작이었고요?”
풍요로운 땅이 아니었다는 시점에서 레온의 계획은 초장부터 막혀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레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꺼냈다.
“그래도 양질의 포도만 안 나오는 거고 포도 수확 자체는 잘 되는 모양이니까요. 나름 조사를 해볼 생각이긴 합니다.”
“화이팅이에요.”
“루이나 님은 뭘 하실 생각입니까?”
“저요? 저는 단검을 사야죠.”
기껏 얻은 마법을 방치하는 중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진 물 한 방울도 못 마셨다.
“벌꿀주는 실컷 마시지 않았습니까.”
“이건 물이 아니라 술이에요.”
나는 종업원이 가져온 벌꿀주를 깔끔하게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녁에 봐요.”
“알겠습니다.”
여관을 나서자 바람이 로브를 펄럭였다. 머리 위에서 팻말이 흔들린다.
나는 흘긋 시선을 올려 팻말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바람이 머무는 곳]
또 너냐 바머곳.
진짜 이 세계에 프랜차이즈 없는 거 맞아?
안 되겠다. 조금 있다 돌아와서 여관 주인에게 물어봐야지.
거리엔 사람이 바글거렸다. 축제 기간이라 외부인이 워낙 많이 유입돼서 그런 듯했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른 나는 미리 알아뒀던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비바람에 그을린 회색 점판암 지붕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굴뚝에서 끊임없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때렸다.
나는 로브를 눌러쓰며 건물 안을 구경했다.
각종 무기들이 벽에 장식됐다. 날이 번뜩이는 게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실 잘 모른다. 내가 배운 건 마법이지 검 고르는 법이 아니라.
나는 조심스럽게 사람을 불렀다.
“계세요?”
땅, 땅, 땅.
규칙적으로 철을 두들기는 소리가 건물 안을 메운다.
안 들린 건가? 아니면 일하는 중이라 목소리가 안 들렸나?
“계세요?”
조금 더 크게 불렀지만, 이번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대장간 안쪽으로 들어갔다.
대장간 안쪽엔 커다란 화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화로 앞엔 남자 하나가 우뚝 섰는데, 그는 망치를 들고 조용히 모루를 노려봤다.
망치가 떨어진다. 모루 위에 올려진 붉은 쇠와 망치가 만나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장장이가 풀무를 밟자 불꽃이 그 크기를 거세게 키웠다.
나는 멍하니 불꽃을 바라봤다.
규칙적으로 풀무를 밟을 때마다 불꽃도 규칙적으로 크기를 키웠다.
그렇게 내가 일렁거리는, 매혹적인 화염을 꼼꼼하게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다.”
대장장이가 모루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안 들린 게 아니라 무시한 거였구나?
내가 말했다.
“대답이 없어서 들어왔어요.”
“밖에서 기다려라.”
대장장이가 요구한 대로 나는 대장간 매장 부분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잠시 후. 대장장이가 땀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지?”
“단검을 하나 사고 싶어서요.”
“용도는?”
“기사가 꿈이에요.”
“연단 마법 용이라.”
대장장이는 내 말에 가게에 전시된 단검 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좋을 거다.”
대장장이가 건넨 단검은 흔히 대거라고 불리는 단검으로, 전체 길이가 40cm 정도에 날 부분이 25cm, 손잡이 부분이 15cm인 무기였다.
보통 중앙에 혈도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장장이가 건넨 단검은 혈도는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단검인 만큼 확실히 기사 꿈나무에게 주기 적당했다.
“은화 50개다.”
“여기요.”
단검 하나에 보름간 호위 임무를 하며 번 돈이 날아갔지만, 괜찮았다. 이걸로 연단 마법을 발동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나는 단검을 허리춤에 착용하고 멋있게 뽑았다.
그리고 읊조렸다.
“비춰라. 청야(靑夜).”
단검에 푸른색 단검이 일렁이며 덧씌워진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대장장이도 감동적이었는지 말을 걸었다.
“내 살다 살다 연단 마법을 그렇게 발동하는 녀석은 처음 보는군.”
“제가 처음이라고요?”
그럴 리가 없었다.
만약 내가 최초라면 이 세계 사람들에게 마음이 없다는 건데, 그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나는 아직 사람들을 믿는바. 대장장이가 대장간에만 틀어박혀 못 본 거라 생각하며 단검을 단검집에 꽂았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은화 5개를 더 드릴게요.”
“다음에 장검이 필요해지면 또 찾아와라. 그때는 싸게 해주지.”
“알겠어요.”
꼭 다음엔 더 좋은 연단 마법을 얻어오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나는 대장간을 나섰다.
거리가 시끄럽다.
아직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건만, 사람들이 죄다 기분 좋게 취했다.
저걸 보니 나도 술을 마시고 싶네.
그럼 마셔야지.
가장 가까운 펍으로 들어간 나는 카운터 앞에 앉자마자 주문을 했다.
“벌꿀주 5잔이요.”
“혹시 일행이 더 있나?”
“아니요? 저 혼자예요.”
“…잠시 기다리게.”
벌꿀주가 나오는 동안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펍을 구경했다.
다양한 사람이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 와중이었다.
“기사를 용기사로 궁극 진화하겠습니다. 체크 메이트입니다.”
“이야. 도련님은 무슨 가문에서 아르카나 체스만 뒀어? 장난 아니네.”
“그럴 리가요. 그리고 저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입니다. 귀족이 아닙니다.”
“맞지. 농부의 아들.”
웬 남자들의 말소리가 귀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르카나 체스?
이건 못 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