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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마법사가 된 지 이제 고작 2달 차의 햇병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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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고, 애초에 마법 실력 자체가 미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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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노아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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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과 마주쳐도, 용병과 마주쳐도, 악신의 사제들과 마주쳐도, 노아는 그저 뒤에서 지켜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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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뇌속성이라는 희귀한 원소 적성을 타고난 덕에 1위계임에도 나름의 전투 능력을 갖췄으나, 결국 그것만으론 도움이 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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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걸로 도움이 되기엔, 일행의 전투력이 너무 강력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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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 후보로 수년간 검을 갈고 닦은 정의를 믿는 성기사, 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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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길드 수도 지부장의 수제자, 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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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아델리안 크로프트의 제자,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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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아의 스승이자 끝없이 마법을 수집하는 루이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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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중 루이나가 제일 이질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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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계이면서 일행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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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강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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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스승인 루이나에게 도움이 될 만큼은 강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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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스승에게 보은을 하고 싶거나, 보호받는 상황이 싫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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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것도, 강해지기엔 마법사 경력이 너무 짧다는 것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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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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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약한 상태였다간 별로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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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먼 과거를 떠올리다가, 이내 슬쩍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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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눈먼 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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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 들어오자마자 떠오른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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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액체. 그게 뭔지는 정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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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슬라임이 꾸물대며 몸을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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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가만히 박힌 슬라임에 노아는 스승이 했단 말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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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라면 무릇 모든 사물을 관찰할 줄 알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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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말을 하면 열에 아홉은 그저 사물을 쳐다봐요. 사물의 생김새를 살펴요. 사물이 어떤 형태인지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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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은 그런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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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이란,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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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바로 관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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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땅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슬라임의 근처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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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바닥을 구르며 소음이 퍼졌지만, 여전히 슬라임은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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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섰음에도 가만히 있는 것에서 눈이 퇴화한 건 눈치챘지만, 실험 결과 아무래도 귀도 퇴화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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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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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슬라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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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이 탑의 본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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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아델리안 크로프트는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해 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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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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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한 탑은 어떤 구조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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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에게 필요한 역량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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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감지하는 슬라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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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을 숨기는 건 노아의 특기였다. 노아가 뇌속성 원소에서 발견한 ‘시련’의 특징은 일시적으로 마력을 약하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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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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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곧 뇌전의 뭉치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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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정전기 수준으로 약해진, 둥그런 모양으로 엮인 뇌전의 뭉치를 노아는 슬라임에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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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마력 반응에 슬라임이 몸을 부풀리며 반응했지만, 그것보다 뇌전의 뭉치가 날아가 슬라임에게 닿는 게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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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직! 약화가 풀리며 뇌전이 사방으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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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을 꿰뚫은 뇌전이 강렬하게 터지고, 노아는 이어서 준비한 뇌전의 뭉치를 재차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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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동굴 안을 뇌전이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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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이는 빛을 시야에 담으며 노아는 슬라임을 확인했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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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가만히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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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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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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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의 뭉치를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슬라임에 노아는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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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듯 노아는 햇병아리 마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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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하나만 막혀도 모든 수단이 사라지는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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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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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상황에 노아가 머리를 굴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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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슬라임의 몸이 응축됐다가, 튀어 나가듯 앞으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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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땅을 구르며 슬라임을 피했다. 콰앙! 동굴의 벽에 슬라임이 박히며 충격이 퍼지고, 슬라임이 재차 몸을 응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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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으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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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번엔 노아가 서 있는 방향이 아닌 텅 빈 벽을 목표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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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퇴화해 노아의 위치를 정확히 찾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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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이 동굴 벽 이곳저곳을 부수며 통통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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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침을 삼키며 슬라임에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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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슬라임이 동굴 곳곳을 누비느라 공격에 당할 위험이 적었지만, 그것도 곧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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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빠른 속도로 사방을 훑고 다니면 언젠가 노아를 향해 슬라임이 날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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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럴 경우 피하면 그만이었으나, 결국 이건 시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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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슬라임을 쓰러트리지 않는 이상 무한한 시도 끝에 슬라임이 노아를 박살 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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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 방법을 찾아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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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숙여 슬라임의 박치기를 피하며 노아는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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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에게 뇌전의 뭉치가 효과가 없던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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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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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속성에 면역이 있거나, 아니면 슬라임의 방어력을 뚫기에 마법이 너무 약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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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경우 다른 속성의 공격을 하면 그만이었지만, 노아는 뇌속성 외의 속성을 보유하지 않았다. 쓰지 못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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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는 마법사를 육성하는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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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방법을 교육이라고 내놓지는 않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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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소거법으로 슬라임이 뇌속성 면역을 보유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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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디까지나 노아의 마법이 너무 약한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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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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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으로 노아의 머릿속에 루이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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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거인을 소환하고, 압축한 불꽃을 분출해 모든 적을 쓸어버리는 루이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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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마력을 모아 마법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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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를 압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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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이 손위에 옹기종기 엮이고, 일점으로 응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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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허무하게 분해되며 마력째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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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그 참담한 광경에 노아는 실망하기보다 우선 몸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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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까지 마력이 있던 곳에 슬라임이 낙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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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하는 돌덩어리를 피하며 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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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가 쉽게 해 착각하기 쉽지만, 원소를 압축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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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가 쉽게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균형’의 특징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마법사가 그걸 따라 하려면 적어도 4위계는 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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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 밑의 원소 제어력으로는 유의미하게 원소를 압축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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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원소의 압축 말고 다른 마법을 떠올렸지만, 하나 같이 지금의 노아로는 재현 불가능한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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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하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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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를 올려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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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를 도구로, 세계를 이해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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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루이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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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수 없어요. 마법이라는 건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이거든요.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뭐가 있는지는 본인만 아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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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달간 루이나는 굉장히 많은 걸 노아에게 주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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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론은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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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안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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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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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는 마법사의 삶이 반영돼요. 노아 님이 번개에서 시련의 특징을 발견한 것도 삶이 반영된 결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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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눈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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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뇌전에서 시련의 특징을 발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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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에게 삶이란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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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가족이 악신의 사제들에게 불타 죽었을 때부터 고정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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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통스러웠고, 삶이 괴로웠으며, 삶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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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시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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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운명이 인간에게 내리는 시험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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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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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시련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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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럽다면, 괴롭다면, 힘들다면, 시련 말고 고난이나 체벌이어도 상관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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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아는 번개가 하늘이 내리는 시험 같다고 느끼며 시련의 특징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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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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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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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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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답은 얼마 전 루이나가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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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이해도가 깊어지는 법이라. 저라면 시련 후에 오는 보상에 집중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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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만 존재한다면 그건 단순 체벌이잖아요. 극복했을 때 보상이 주어지니 시련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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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노아는 삶이 고통스러웠고, 괴로웠고,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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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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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절망하기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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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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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시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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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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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하지 못하는 고통은 시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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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라고 불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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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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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이 조용히 노아의 앞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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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화한 뇌전을 꼬아 뇌전 뭉치를 만든 노아는, 그걸 그대로 슬라임을 향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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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 뭉치가 슬라임에 닿기 직전, 약화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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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그 위력이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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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화했던 시간에 비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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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노아는 마법의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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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뢰(正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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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스승이 지어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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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시련’을 ‘극복’한 마법에게 딱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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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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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읽으며 노아는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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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식 교육이 효과가 좋긴 하구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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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는 탑을 오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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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가 만든 탑이라 해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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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층이든 처음 한 번만 탐색전을 벌이고 그다음은 탄탄대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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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마법적 역량을 시험받기는커녕 하품만 나오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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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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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군대 하나를 쓸어버린 세피아는 빠르게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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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 협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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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떠오른 글자에 세피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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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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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행동했던 여태까지와는 다른 양상에 세피아는 주변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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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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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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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생각에 세피아가 긴장을 푼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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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처에는 무슨 볼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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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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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상황에 세피아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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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들린 곳. 거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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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청년이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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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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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암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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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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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라기엔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군. 목적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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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는 대신 세피아는 원소의 무기를 허공에 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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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 탑의 목적은 적을 쓰러트리는 것. 대화를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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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는 원소의 무기를 전력으로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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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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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작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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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거칠게 하는 친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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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1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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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룡첨아(暗龍尖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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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청년의 손에 잡힌 검이 모든 원소의 무기를 격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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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려한 검술에 세피아가 넋을 놓자, 청년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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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발리온 드라고밀이다만, 보아하니 통성명을 할 성격은 아닌 거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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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먼 미래에 제국제일검이 될, 현 제국제일검의 과거는 기세를 올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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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나를 즐겁게 해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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