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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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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마법사가 된 지 이제 고작 2달 차의 햇병아리였다.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고, 애초에 마법 실력 자체가 미천했다.

때문에 노아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산적과 마주쳐도, 용병과 마주쳐도, 악신의 사제들과 마주쳐도, 노아는 그저 뒤에서 지켜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뇌속성이라는 희귀한 원소 적성을 타고난 덕에 1위계임에도 나름의 전투 능력을 갖췄으나, 결국 그것만으론 도움이 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고작 그걸로 도움이 되기엔, 일행의 전투력이 너무 강력했으니 말이다.

팔라딘 후보로 수년간 검을 갈고 닦은 정의를 믿는 성기사, 레온.

연금술 길드 수도 지부장의 수제자, 뮤란.

대마법사 아델리안 크로프트의 제자, 제리.

그리고 노아의 스승이자 끝없이 마법을 수집하는 루이나까지.

특히 이중 루이나가 제일 이질적이었다.

3위계이면서 일행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했으니까.

노아는 강해지고 싶었다.

적어도 스승인 루이나에게 도움이 될 만큼은 강해지고 싶었다.

이건 스승에게 보은을 하고 싶거나, 보호받는 상황이 싫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노아는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것도, 강해지기엔 마법사 경력이 너무 짧다는 것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언제까지나 약한 상태였다간 별로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노아는 먼 과거를 떠올리다가, 이내 슬쩍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1층. 눈먼 액체]

탑에 들어오자마자 떠오른 글자였다.

눈먼 액체. 그게 뭔지는 정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검은색 슬라임이 꾸물대며 몸을 출렁인다.

제자리에 가만히 박힌 슬라임에 노아는 스승이 했단 말을 되새겼다.

‘마법사라면 무릇 모든 사물을 관찰할 줄 알아야 돼요.

‘제가 이 말을 하면 열에 아홉은 그저 사물을 쳐다봐요. 사물의 생김새를 살펴요. 사물이 어떤 형태인지 상상해요.

‘관찰은 그런 게 아니에요.

‘관찰이란, 그렇네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바로 관찰이에요.

노아는 땅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슬라임의 근처에 던졌다.

돌이 바닥을 구르며 소음이 퍼졌지만, 여전히 슬라임은 가만히 있었다.

앞에 섰음에도 가만히 있는 것에서 눈이 퇴화한 건 눈치챘지만, 실험 결과 아무래도 귀도 퇴화한 모양이었다.

노아는 고민했다.

본질. 슬라임의 본질.

나아가 이 탑의 본질을.

대마법사 아델리안 크로프트는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해 탑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과연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한 탑은 어떤 구조여야 할까?

마법사에게 필요한 역량이란 무엇일까?

……마력을 감지하는 슬라임인가.

마력을 숨기는 건 노아의 특기였다. 노아가 뇌속성 원소에서 발견한 ‘시련’의 특징은 일시적으로 마력을 약하게 만들었으니까.

노아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꼬았다.

그러자 곧 뇌전의 뭉치가 탄생했다.

거의 정전기 수준으로 약해진, 둥그런 모양으로 엮인 뇌전의 뭉치를 노아는 슬라임에게 던졌다.

갑작스러운 마력 반응에 슬라임이 몸을 부풀리며 반응했지만, 그것보다 뇌전의 뭉치가 날아가 슬라임에게 닿는 게 더 빨랐다.

파지직! 약화가 풀리며 뇌전이 사방으로 퍼진다.

슬라임을 꿰뚫은 뇌전이 강렬하게 터지고, 노아는 이어서 준비한 뇌전의 뭉치를 재차 던졌다.

어두운 동굴 안을 뇌전이 밝힌다.

번쩍이는 빛을 시야에 담으며 노아는 슬라임을 확인했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슬라임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가만히 꿈틀거렸다.

마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효과가 없어?

뇌전의 뭉치를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슬라임에 노아는 당황했다.

말했듯 노아는 햇병아리 마법사라.

마법이 하나만 막혀도 모든 수단이 사라지는 상태가 됐다.

어떻게 해야지?

막막한 상황에 노아가 머리를 굴린 순간이었다.

돌연 슬라임의 몸이 응축됐다가, 튀어 나가듯 앞으로 쏘아졌다.

노아는 땅을 구르며 슬라임을 피했다. 콰앙! 동굴의 벽에 슬라임이 박히며 충격이 퍼지고, 슬라임이 재차 몸을 응축했다.

그리고 앞으로 쏘아졌다.

허나 이번엔 노아가 서 있는 방향이 아닌 텅 빈 벽을 목표로 날아갔다.

감각이 퇴화해 노아의 위치를 정확히 찾지 못하는 것이다.

슬라임이 동굴 벽 이곳저곳을 부수며 통통 튄다.

노아는 침을 삼키며 슬라임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 당장은 슬라임이 동굴 곳곳을 누비느라 공격에 당할 위험이 적었지만, 그것도 곧이었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사방을 훑고 다니면 언젠가 노아를 향해 슬라임이 날아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럴 경우 피하면 그만이었으나, 결국 이건 시간문제였다.

근본적으로 슬라임을 쓰러트리지 않는 이상 무한한 시도 끝에 슬라임이 노아를 박살 낼 수밖에 없었다.

방법. 방법을 찾아야 됐다.

몸을 숙여 슬라임의 박치기를 피하며 노아는 머리를 굴렸다.

슬라임에게 뇌전의 뭉치가 효과가 없던 이유가 뭘까?

둘 중 하나였다.

뇌속성에 면역이 있거나, 아니면 슬라임의 방어력을 뚫기에 마법이 너무 약했거나.

전자의 경우 다른 속성의 공격을 하면 그만이었지만, 노아는 뇌속성 외의 속성을 보유하지 않았다. 쓰지 못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마법사를 육성하는 탑.

불가능한 방법을 교육이라고 내놓지는 않을 거였다.

따라서 소거법으로 슬라임이 뇌속성 면역을 보유한 건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노아의 마법이 너무 약한 게 문제였다.

강한 마법.

반사적으로 노아의 머릿속에 루이나가 떠올랐다.

나무 거인을 소환하고, 압축한 불꽃을 분출해 모든 적을 쓸어버리는 루이나를.

노아는 마력을 모아 마법을 발동했다.

번개를 압축한다.

뇌전이 손위에 옹기종기 엮이고, 일점으로 응축된다.

―그 후 허무하게 분해되며 마력째로 흩어졌다.

실패. 그 참담한 광경에 노아는 실망하기보다 우선 몸을 굴렸다.

조금 전까지 마력이 있던 곳에 슬라임이 낙하한다.

비산하는 돌덩어리를 피하며 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루이나가 쉽게 해 착각하기 쉽지만, 원소를 압축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루이나가 쉽게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균형’의 특징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마법사가 그걸 따라 하려면 적어도 4위계는 돼야 했다.

4위계 밑의 원소 제어력으로는 유의미하게 원소를 압축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노아는 원소의 압축 말고 다른 마법을 떠올렸지만, 하나 같이 지금의 노아로는 재현 불가능한 마법이었다.

즉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하나밖에 없었다.

위계를 올려야 됐다.

원소를 도구로, 세계를 이해해야 됐다.

언젠가 루이나가 말했다.

‘마법은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수 없어요. 마법이라는 건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이거든요.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뭐가 있는지는 본인만 아는 거고요.

지난 두 달간 루이나는 굉장히 많은 걸 노아에게 주입했다.

마법론은 그중 하나였다.

자신의 안에 있는 것.

그게 뭘까.

‘마법에는 마법사의 삶이 반영돼요. 노아 님이 번개에서 시련의 특징을 발견한 것도 삶이 반영된 결과예요.

노아는 눈을 가라앉혔다.

왜 나는, 뇌전에서 시련의 특징을 발견했을까.

노아에게 삶이란 시련이었다.

그것은 가족이 악신의 사제들에게 불타 죽었을 때부터 고정된 사실이었다.

삶이 고통스러웠고, 삶이 괴로웠으며, 삶이 힘들었다.

그러니 시련이다.

시련은 운명이 인간에게 내리는 시험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왜 하필 시련인 걸까.

고통스럽다면, 괴롭다면, 힘들다면, 시련 말고 고난이나 체벌이어도 상관없지 않나?

그러나 노아는 번개가 하늘이 내리는 시험 같다고 느끼며 시련의 특징을 깨달았다.

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왜?

왜 그럴까.

그 답은 얼마 전 루이나가 말해줬다.

‘원소의 이해도가 깊어지는 법이라. 저라면 시련 후에 오는 보상에 집중했을 거예요.

‘고통만 존재한다면 그건 단순 체벌이잖아요. 극복했을 때 보상이 주어지니 시련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요?

확실히 노아는 삶이 고통스러웠고, 괴로웠고, 힘들었다.

허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거기서 절망하기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많았다.

멈춰 설 수 없었다.

그러니 시련이다.

그러니 시험이다.

극복하지 못하는 고통은 시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절망이라고 불렀지.

파직.

뇌전이 조용히 노아의 앞에 머문다.

약화한 뇌전을 꼬아 뇌전 뭉치를 만든 노아는, 그걸 그대로 슬라임을 향해 날렸다.

뇌전 뭉치가 슬라임에 닿기 직전, 약화가 풀린다.

동시에 그 위력이 증폭됐다.

약화했던 시간에 비례해서 말이다.

슬라임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노아는 마법의 이름을 지었다.

정뢰(正雷).

언젠가 스승이 지어준 이름.

올바르게 ‘시련’을 ‘극복’한 마법에게 딱 어울렸다.

[클리어!]

글자를 읽으며 노아는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입식 교육이 효과가 좋긴 하구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세피아는 탑을 오르며 생각했다.

대마법사가 만든 탑이라 해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어느 층이든 처음 한 번만 탐색전을 벌이고 그다음은 탄탄대로였으니까.

극한의 마법적 역량을 시험받기는커녕 하품만 나오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클리어!]

홀로 군대 하나를 쓸어버린 세피아는 빠르게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10층. 협동 전투.]

허공에 떠오른 글자에 세피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협동?

혼자서 행동했던 여태까지와는 다른 양상에 세피아는 주변을 둘러봤다.

허나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건가?

라는 생각에 세피아가 긴장을 푼 그 순간이었다.

“내 거처에는 무슨 볼일인가?”

누군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세피아는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들린 곳. 거기엔.

웬 청년이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청년이 말한다.

“혹시 암살자인가?”

“…….”

“암살자라기엔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군. 목적이 뭐지?”

대답하는 대신 세피아는 원소의 무기를 허공에 정렬했다.

어차피 이 탑의 목적은 적을 쓰러트리는 것. 대화를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세피아는 원소의 무기를 전력으로 발사했다.

직후.

청년이 작게 읊조렸다.

“인사를 거칠게 하는 친구군.”

드라고밀류 양손 검술, 1식.

암룡첨아(暗龍尖牙).

어느새 청년의 손에 잡힌 검이 모든 원소의 무기를 격추한다.

그 화려한 검술에 세피아가 넋을 놓자, 청년이 웃었다.

“내 이름은 발리온 드라고밀이다만, 보아하니 통성명을 할 성격은 아닌 거 같군.”

그렇게 먼 미래에 제국제일검이 될, 현 제국제일검의 과거는 기세를 올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부디 나를 즐겁게 해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