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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이프 담배를 물며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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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동료들을 전부 살려주는 게 거래 조건에 들어갈까요? 만약 그래도 불이익은 없으니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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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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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슨 이 개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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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륵. 붉은 선이 세상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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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불타 죽은 용병들의 시체 사이에서 나는 연기를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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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조건도 안 들어보고 포기를 선택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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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마법이 그렇게 가치가 높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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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슨 님은 계산이 굉장히 빠르신 분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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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나는 파이프 담배를 털어 끄고는 월슨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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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하신 마법은 ‘연단’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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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기사들의 핵심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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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법이라기엔 이질적인 면이 있지만, 엄밀히 초대 황제가 직접 만든 전통성 있고 역사가 깊은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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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월슨이 다급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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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연단 마법이야. 이걸 내가 가르쳐 주면 되는 거지? 나 같은 놈도 일주일 만에 익혔어. 마법사님처럼 똑똑한 사람은 내가 옆에 따라다니면 3일 만에 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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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스승님은 용병 업계에서 수십 년을 굴렀어요. 월슨 님의 대대선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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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올라갈 자신이 없어 한탕으로 남들 털어먹기나 하는, 밑바닥 용병도 운이 좋으면 배우는 게 연단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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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법을 켈튼이 모를 리 없었고, 따라서 당연히 나도 연단 마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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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결과 저는 연단 마법을 못 익히는 부류더라고요? 스승님에게 기사 적성이 없으니 한눈팔지 말고 원소 이해도나 열심히 올리라고 한 소리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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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슨이 내게 연단 마법을 가르쳐줘도 의미 없었다. 나는 연단 마법을 못 익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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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연단 마법 자체를 이미 알고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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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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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슨의 눈에 절망이 깃든다. 자신이 보유한 마법이 내게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인데, 그랬으면 내가 월슨을 살려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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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본적인 판단도 못 하는 걸 보니 공포에 사로잡혀 지능이 돌고래 수준으로 내려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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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라는 게 원래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라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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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왼손을 앞으로 내밀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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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슨 님. 거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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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내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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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누군가 세상을 오려 붙이기라도 한 듯,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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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마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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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소망이 깃든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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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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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하는 건 월슨 님의 연단 마법을 영구적으로 양도받는 거예요. 만일 이 거래를 수락하면 월슨 님은 앞으로 평생 연단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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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법, 얼마든지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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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슨이 대답한다.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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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천칭의 접시에 무언가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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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조그마한 단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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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이 월슨 쪽으로 기운다. 무게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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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슨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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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 조건을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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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살려줘.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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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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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이 재차 기운다. 이번엔 내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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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 균형이 맞지 않던 천칭이 평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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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는 동등하다. 이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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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성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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뎅―!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랑 월슨에게만 들리는 종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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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이 하얀 불꽃으로 변하고, 하얀 불꽃으로 변한 천칭이 우리 둘에게 날아와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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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나는 레온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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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 단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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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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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온이 건넨 단검을 붙잡고 내 안에 새로 새겨진 마법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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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 소모되고, 단검에 마법이 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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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비유하자면 단검에 겉옷을 입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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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의 단검에 푸른색 단검이 일렁이며 덧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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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른색으로 바뀐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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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에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리치가 짧았고, 연단 마법의 특징 중 하나인 신체 강화엔 도달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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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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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나는 멍하니 단검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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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마법이 손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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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을 역소환하며 단검을 레온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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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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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대로 풀어줄 겁니까? 저희를 죽이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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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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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면 그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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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거래 내용은 어디까지나 살려주는 거였으니까요. 잡아다 감옥에 가둬도 거짓말은 아니죠. 하지만 그런 말장난은 공평하지 않아요. 월슨 님이 진정 원했던 대로 완벽한 자유를 약속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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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싫어도 그래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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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은 그런 제약 아래 발동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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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이 월슨 님을 죽이거나 잡아다 가두는 건 자유지만, 저는 그럼 레온 님을 전력으로 막을 수밖에 없어요. 그것만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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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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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순순히 물러났다. 혼란스러운 표정인 게, 조금 전 일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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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슨은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떠났다. 죽이니 잡아다 감옥에 가두니 하는 살벌한 말이 오가서 겁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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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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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크리스가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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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행상인 일을 하며 볼꼴 못 볼 꼴 다 본 걸까. 사람이 여럿 죽은 와중에도 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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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을 고용한 건 제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아니었으면 전 재산을 쏟아부어 시도한 도박이 시원하게 망할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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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파시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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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인은 각 지역에 존재하는 가격 격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직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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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행상인의 도박은 특정 상품을 잔뜩 구매해 파는 것일 텐데, 어떤 상품을 구매한 건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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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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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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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로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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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나를 짐마차로 데리고 간 후, 적재함을 가리던 천을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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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함 안에는 나무로 만든 통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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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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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은 맥주 등의 액체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용기로, 약한 바닐라향이 코를 찌르는 걸로 봐선 오크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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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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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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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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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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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라니. 나는 우리의 목적지를 떠올리곤 레온을 흘긋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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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조심스럽게 크리스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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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포도주입니까? 쉐이드 그레이프턴은 포도로 유명한 곳이고, 심지어 곧 포도 축제라 포도가 썩어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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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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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손짓을 한다. 몸을 낮추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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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몸을 앞으로 숙이자 크리스가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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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쉐이드 그레이프턴의 포도 농사가 흉작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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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나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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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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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나 흉작인데 소문이 안 난단 말입니까? 포도 축제도 크게 하는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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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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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님의 말이 맞습니다. 일반적인 흉작이라면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죠.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최상급 포도’에 한정한 흉작이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축제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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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소문이 안 나는 것도 이해가 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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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결국 새어나가서 저 같은 행상인 나부랭이의 귀에도 소식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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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게 포도주와 무슨 상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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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레온의 의문대로였다. 최상급 포도가 흉작이라 고급 포도주 생산이 몇 년간 중단된 건 알겠지만, 그것과 쉐이드 그레이프턴에서 고급 포도주를 잔뜩 구매하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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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까지나 판매자지 구매자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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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크리스가 손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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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 크리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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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본론입니다만, 곧 쉐이드 그레이프턴에서 최상급 포도주가 잔뜩 필요할 거라는 게 제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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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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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부터는 영업비밀…이지만,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입장이니까요. 살짝만 풀어드리자면 높으신 분이 축제를 즐기러 몰래 이동 중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접용 고급 포도주가 잔뜩 필요할 텐데, 요 몇 년 양질의 포도가 흉작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비축분이 적을 테니 고급 포도주를 팔면 냉큼 구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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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 정보가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 타당한 예상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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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확실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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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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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이라는 게 그런 이유인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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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도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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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몰래’ 이동 중이라니. 잘도 이런 정보로 전 재산을 걸고 모험을 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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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분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만약 찾아와도 높으신 분을 비롯한 수행원들이 포도주를 즐기지 않는다면, 설사 즐기더라도 영지에 비축 포도주가 많다면 크리스는 오크통을 껴안고 호수에 뛰어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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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만 한다면 안 그래도 비싼 고급 포도주를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지만, 그만큼 성공 확률이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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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분의 행적이 외부에 새어나갈 확률과, 그 소문이 일개 행상인의 귀에 들어갈 확률을 계산하면 더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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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공 확률이 높다고 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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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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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봬도 나름 경험을 쌓은 행상인이어서요. 아니었으면 이만큼의 물량을 준비 못 했을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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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영애가 재미로 혼자 행상인을 할 리는 없으니 저 포도주를 준비한 자본은 오롯이 크리스가 혼자 번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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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병아리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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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는 오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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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신뢰도 자체는 높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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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슬슬 출발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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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게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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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재함의 여유 공간에 올라탔다.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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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짐마차가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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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팔짱을 끼고 깊이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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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가 묻혀 있다고 생각했던 쉐이드 그레이프턴이 몇 년째 흉작이라니 머리가 복잡해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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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그러고 있던 레온은 이내 팔짱을 풀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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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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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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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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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는 게 아니라 거래예요. 그나저나 그런 걸 고민하고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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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가 아니라 내가 월슨과 한 거래를 되새기는 중이었다니. 이 녀석 팔라딘이 될 생각이 진짜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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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도 안 되세요? 포도가 흉작이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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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처음부터 정답을 맞힐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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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침착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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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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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괜찮다면 나야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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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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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불을 들고 그 안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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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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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뭐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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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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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라기엔 몸이 뒤틀렸는데,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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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다. 불꽃을 삼키고 싶은 욕구를 참는 중이라 몸에 변화가 생긴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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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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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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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쉐이드 그레이프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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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마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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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후. 나는 멀찍이 보이는 마을 울타리를 보며 뒤틀렸던 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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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포도주 맛 좀 보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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