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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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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이프 담배를 물며 말을 꺼냈다.

“혹시 동료들을 전부 살려주는 게 거래 조건에 들어갈까요? 만약 그래도 불이익은 없으니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아니! 그럴 리가!”

“월슨 이 개자식이―.”

화륵. 붉은 선이 세상을 긋는다.

머리가 불타 죽은 용병들의 시체 사이에서 나는 연기를 뱉었다.

“거래 조건도 안 들어보고 포기를 선택하시네요.”

“…내가 가진 마법이 그렇게 가치가 높지 않아서.”

“월슨 님은 계산이 굉장히 빠르신 분이셨군요?”

탁. 나는 파이프 담배를 털어 끄고는 월슨에게 물었다.

“보유하신 마법은 ‘연단’이겠죠?”

.

내면을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기사들의 핵심 마법이었다.

사실 마법이라기엔 이질적인 면이 있지만, 엄밀히 초대 황제가 직접 만든 전통성 있고 역사가 깊은 마법이었다.

내 말에 월슨이 다급히 대답했다.

“맞아. 연단 마법이야. 이걸 내가 가르쳐 주면 되는 거지? 나 같은 놈도 일주일 만에 익혔어. 마법사님처럼 똑똑한 사람은 내가 옆에 따라다니면 3일 만에 배울―.”

“제 스승님은 용병 업계에서 수십 년을 굴렀어요. 월슨 님의 대대선배랍니다.”

이런 올라갈 자신이 없어 한탕으로 남들 털어먹기나 하는, 밑바닥 용병도 운이 좋으면 배우는 게 연단 마법이다.

그런 마법을 켈튼이 모를 리 없었고, 따라서 당연히 나도 연단 마법을 배웠다.

“실험 결과 저는 연단 마법을 못 익히는 부류더라고요? 스승님에게 기사 적성이 없으니 한눈팔지 말고 원소 이해도나 열심히 올리라고 한 소리 들었어요.”

월슨이 내게 연단 마법을 가르쳐줘도 의미 없었다. 나는 연단 마법을 못 익혔으니까.

애초에 연단 마법 자체를 이미 알고 있기도 했다.

“……아.”

월슨의 눈에 절망이 깃든다. 자신이 보유한 마법이 내게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서인데, 그랬으면 내가 월슨을 살려뒀겠는가.

이런 기본적인 판단도 못 하는 걸 보니 공포에 사로잡혀 지능이 돌고래 수준으로 내려간 모양이었다.

지능이라는 게 원래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는 거라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나는 왼손을 앞으로 내밀며 속삭였다.

“월슨 님. 거래예요.”

끼익. 내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마치 누군가 세상을 오려 붙이기라도 한 듯,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고유 마법 .

한 사람의 소망이 깃든 마법이었다.

나는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제가 원하는 건 월슨 님의 연단 마법을 영구적으로 양도받는 거예요. 만일 이 거래를 수락하면 월슨 님은 앞으로 평생 연단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돼요.”

“이런 마법,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월슨이 대답한다. 동시에.

둥. 천칭의 접시에 무언가가 올라갔다.

그것은, 조그마한 단검이었다.

천칭이 월슨 쪽으로 기운다. 무게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월슨에게 말했다.

“요구 조건을 말하세요.”

“날 살려줘. 그거면 충분해.”

“얼마든지 가능해요.”

천칭이 재차 기운다. 이번엔 내 쪽이었다.

직후 균형이 맞지 않던 천칭이 평형을 이룬다.

대가는 동등하다. 이러면.

“거래 성립이에요.”

뎅―!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랑 월슨에게만 들리는 종소리였다.

천칭이 하얀 불꽃으로 변하고, 하얀 불꽃으로 변한 천칭이 우리 둘에게 날아와 박힌다.

즉시 나는 레온에게 외쳤다.

“레온 님! 단검이요!”

“여기 있습니다.”

나는 레온이 건넨 단검을 붙잡고 내 안에 새로 새겨진 마법을 발동했다

마력이 소모되고, 단검에 마법이 씌워진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단검에 겉옷을 입히는 느낌이었다.

레온의 단검에 푸른색 단검이 일렁이며 덧씌워진다.

나는 푸른색으로 바뀐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단검에만 사용할 수 있다 보니 리치가 짧았고, 연단 마법의 특징 중 하나인 신체 강화엔 도달도 못 했다.

“마법….”

허나 나는 멍하니 단검을 쓰다듬었다.

새로운 마법이 손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마법을 역소환하며 단검을 레온에게 건넸다.

“이만 가죠.”

“저대로 풀어줄 겁니까? 저희를 죽이려 했는데?”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자고요?”

“저라면 그랬을 겁니다.”

“확실히 거래 내용은 어디까지나 살려주는 거였으니까요. 잡아다 감옥에 가둬도 거짓말은 아니죠. 하지만 그런 말장난은 공평하지 않아요. 월슨 님이 진정 원했던 대로 완벽한 자유를 약속할 거예요.”

그러기 싫어도 그래야 됐다.

천칭은 그런 제약 아래 발동되고 있으니까.

“레온 님이 월슨 님을 죽이거나 잡아다 가두는 건 자유지만, 저는 그럼 레온 님을 전력으로 막을 수밖에 없어요. 그것만 알아두세요.”

“…알겠습니다.”

레온은 순순히 물러났다. 혼란스러운 표정인 게, 조금 전 일을 머릿속에서 되새기는 듯했다.

월슨은 우리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떠났다. 죽이니 잡아다 감옥에 가두니 하는 살벌한 말이 오가서 겁먹은 것이다.

“이야.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크리스가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나름 행상인 일을 하며 볼꼴 못 볼 꼴 다 본 걸까. 사람이 여럿 죽은 와중에도 태연했다.

“루이나 님을 고용한 건 제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아니었으면 전 재산을 쏟아부어 시도한 도박이 시원하게 망할 뻔했습니다.”

“뭘 파시려는 건가요?”

행상인은 각 지역에 존재하는 가격 격차를 이용해 돈을 버는 직업이었다.

때문에 행상인의 도박은 특정 상품을 잔뜩 구매해 파는 것일 텐데, 어떤 상품을 구매한 건지 궁금해졌다.

“궁금하십니까?”

“네.”

“이리로 오시죠.”

크리스는 나를 짐마차로 데리고 간 후, 적재함을 가리던 천을 걷었다.

적재함 안에는 나무로 만든 통이 가득했다.

배럴이었다.

배럴은 맥주 등의 액체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용기로, 약한 바닐라향이 코를 찌르는 걸로 봐선 오크통이었다.

크리스가 웃으며 물었다.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십니까?”

“포도주인가요?”

“맞습니다.”

포도주라니. 나는 우리의 목적지를 떠올리곤 레온을 흘긋 봤다.

레온은 조심스럽게 크리스에게 질문했다.

“왜 포도주입니까? 쉐이드 그레이프턴은 포도로 유명한 곳이고, 심지어 곧 포도 축제라 포도가 썩어날 텐데요.”

“그게 말입니다.”

크리스가 손짓을 한다. 몸을 낮추라는 거였다.

원하는 대로 몸을 앞으로 숙이자 크리스가 속삭였다.

“요 몇 년 쉐이드 그레이프턴의 포도 농사가 흉작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몇 년이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몇 년이나 흉작인데 소문이 안 난단 말입니까? 포도 축제도 크게 하는 곳인데?”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 님의 말이 맞습니다. 일반적인 흉작이라면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죠.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최상급 포도’에 한정한 흉작이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축제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소문이 안 나는 것도 이해가 되는 군요.”

“뭐, 결국 새어나가서 저 같은 행상인 나부랭이의 귀에도 소식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포도주와 무슨 상관입니까?”

확실히 레온의 의문대로였다. 최상급 포도가 흉작이라 고급 포도주 생산이 몇 년간 중단된 건 알겠지만, 그것과 쉐이드 그레이프턴에서 고급 포도주를 잔뜩 구매하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어디까지나 판매자지 구매자가 아닌데.

그 말에 크리스가 손가락을 들었다.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 크리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본론입니다만, 곧 쉐이드 그레이프턴에서 최상급 포도주가 잔뜩 필요할 거라는 게 제 예상입니다.”

“어째서죠?”

“거기서부터는 영업비밀…이지만, 함께 여행을 떠나는 입장이니까요. 살짝만 풀어드리자면 높으신 분이 축제를 즐기러 몰래 이동 중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접용 고급 포도주가 잔뜩 필요할 텐데, 요 몇 년 양질의 포도가 흉작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비축분이 적을 테니 고급 포도주를 팔면 냉큼 구매할 겁니다.”

만약 저 정보가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 타당한 예상이긴 했다.

다만 확실하진 않았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도박이라는 게 그런 이유인가 보네요?”

“일생일대의 도박입니다.”

반드시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몰래’ 이동 중이라니. 잘도 이런 정보로 전 재산을 걸고 모험을 하는구나 싶었다.

높으신 분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만약 찾아와도 높으신 분을 비롯한 수행원들이 포도주를 즐기지 않는다면, 설사 즐기더라도 영지에 비축 포도주가 많다면 크리스는 오크통을 껴안고 호수에 뛰어들어야 했다.

성공만 한다면 안 그래도 비싼 고급 포도주를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지만, 그만큼 성공 확률이 낮았다.

높으신 분의 행적이 외부에 새어나갈 확률과, 그 소문이 일개 행상인의 귀에 들어갈 확률을 계산하면 더 낮아졌다.

“저는 성공 확률이 높다고 보긴 합니다.”

“그래요?”

“이래 봬도 나름 경험을 쌓은 행상인이어서요. 아니었으면 이만큼의 물량을 준비 못 했을 거 아닙니까?”

귀족 영애가 재미로 혼자 행상인을 할 리는 없으니 저 포도주를 준비한 자본은 오롯이 크리스가 혼자 번 거였다.

햇병아리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크리스는 오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보의 신뢰도 자체는 높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슬슬 출발할까요?”

“그러는 게 좋아 보입니다.”

나는 적재함의 여유 공간에 올라탔다. 레온도 마찬가지였다.

달그락. 짐마차가 출발한다.

레온이 팔짱을 끼고 깊이 생각에 잠긴다.

성배가 묻혀 있다고 생각했던 쉐이드 그레이프턴이 몇 년째 흉작이라니 머리가 복잡해진 게 분명했다.

한참 그러고 있던 레온은 이내 팔짱을 풀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루이나 님.”

“네.”

“마법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빼앗는 게 아니라 거래예요. 그나저나 그런 걸 고민하고 있었나요.”

성배가 아니라 내가 월슨과 한 거래를 되새기는 중이었다니. 이 녀석 팔라딘이 될 생각이 진짜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걱정도 안 되세요? 포도가 흉작이라잖아요.”

“어차피 처음부터 정답을 맞힐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침착하네요?”

“익숙하니까요.”

본인이 괜찮다면 나야 상관없었다.

수련이나 하자.

나는 등불을 들고 그 안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했다.

…….

“루이나 님? 뭐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기엔 몸이 뒤틀렸는데, 괜찮으십니까?”

별거 아니다. 불꽃을 삼키고 싶은 욕구를 참는 중이라 몸에 변화가 생긴 것뿐이다.

으으으.

참아야 돼.

“저기가 쉐이드 그레이프턴입니다.”

“예쁜 마을이네요.”

보름 후. 나는 멀찍이 보이는 마을 울타리를 보며 뒤틀렸던 몸을 풀었다.

드디어 포도주 맛 좀 보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