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89 lines
12 KiB
Markdown
389 lines
12 KiB
Markdown
|
||
나는 제리를 앞에 두고 실험했다.
|
||
|
||
“굉륜(轟輪)을 써보세요.”
|
||
|
||
“네.”
|
||
|
||
우웅―! 모터음이 들리고, 나는 제리의 굉륜을 포식의 불꽃으로 잡아먹었다.
|
||
|
||
포식의 불꽃 안에서 제리의 굉륜이 조각조각 해체된다. 소화하기 좋게, 먹기 좋게.
|
||
|
||
이대로 가만히 두면 마력으로 변해 포식의 불꽃을 키울 거였으니, 그 전에 나는 조각을 가져와 다시 조립했다.
|
||
|
||
직후 등불 안에 굉륜이 발동했다.
|
||
|
||
이런 건가.
|
||
|
||
“어떻습니까.”
|
||
|
||
“실패예요.”
|
||
|
||
“역시 마법을 잡아먹는 것만으론 그 마법을 손에 넣지 못하는군요.”
|
||
|
||
나는 이제 포식의 불꽃으로 잡아먹은 마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
|
||
|
||
단, 1회만.
|
||
|
||
하나를 잡아먹었으면 한 번만 재현 가능했지, 하나 잡아먹은 걸 바탕으로 여러 번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
||
|
||
어디까지나 나는 마법의 구조를 ‘해체’한 후 다시 조립하는 거였으니까.
|
||
|
||
그 구조를 ‘분석’해 습득하는 게 아니라.
|
||
|
||
비유하자면 작동 원리를 모르고 스마트폰을 쓰는 현대인이 된 느낌이었는데, 이것도 어마어마한 거였지만 솔직히 내가 원한 거랑은 거리가 멀어서. 아쉬웠다.
|
||
|
||
“루이나 님. 욕심도 많아.”
|
||
|
||
“저는 원래 욕심쟁이예요.”
|
||
|
||
그래도 덕분에 알았다. 나는 마법을 쓰는 것만으론 욕구 충족이 안 됐다.
|
||
|
||
마법을 ‘손에 넣고’, ‘직접 써야’ 욕구가 해소됐다.
|
||
|
||
새삼 천칭이 없었으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궁금해졌다.
|
||
|
||
진짜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
||
|
||
예측이 안 되네?
|
||
|
||
하여간 이것으로 나는 포식의 특징에서 소화와 해체의 원리를 발견했다. 이제 포식도 3위계인 것이다.
|
||
|
||
2위계였던 포식이 아니라 3위계였던 공평의 이해도가 깊어졌으면 아예 위계 자체가 4위계로 올라갔을 텐데, 살짝 아쉬웠다.
|
||
|
||
나는 실험을 마치고 공방을 벗어났다.
|
||
|
||
악신의 사제들과 전투를 벌인 현장은 매우 처참했다.
|
||
|
||
집은 거의 무너졌고, 마당에는 크레이터가 생겼으며, 군데군데 그을린 자국이 남아 전쟁 후를 연상케 했다.
|
||
|
||
나는 강제로 야외가 된 집에서 흔들의자를 즐기는 엘레라에게 다가갔다.
|
||
|
||
“만족하셨나요.”
|
||
|
||
“그럭저럭.”
|
||
|
||
엘레라가 정확히 무슨 미래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엘레라가 원하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건 알 수 있었다.
|
||
|
||
어떻게 아냐고?
|
||
|
||
저 근심 걱정이 사라진 표정이 모든 걸 알려줬다.
|
||
|
||
“미리 말해줬으면 안 되나요?”
|
||
|
||
“설명했듯 미래는 가변적이라서. 좋은 미래를 봤는데 굳이 입 밖으로 꺼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느냐?”
|
||
|
||
“그건 맞는 말이네요.”
|
||
|
||
그래도 이제 모두 다 지났으니까.
|
||
|
||
엘레라는 정답을, 공개해 주세요!
|
||
|
||
“왜 저여야 했나요.”
|
||
|
||
“미래라는 건 말이다. 결국 정해져 있다.”
|
||
|
||
“조금 전엔 바뀐다면서요.”
|
||
|
||
“말을 잘못했구나.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미래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거다.”
|
||
|
||
미래란 건 선택의 연속 끝에 도달하는 것이다.
|
||
|
||
따라서 얼핏 미래는 무한해 보였지만, 결국 사람인 이상 선택지의 숫자는 정해져 있고, 미래의 숫자도 정해져 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듯했다.
|
||
|
||
“정해진 미래 중 엘레라에게 가장 나은 게 지금이라는 건가요?”
|
||
|
||
“그렇지.”
|
||
|
||
“잘 이해가 안 되네요.”
|
||
|
||
엘레라는 고위 마법사다.
|
||
|
||
비전투 마법으로 분류되는 예지가 고유 마법이라 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유 마법이 왜 고유 마법이겠는가. 미래를 본다는 건 그것 자체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
||
|
||
마음먹기에 따라선 악신의 교단쯤은 교단 전체가 달라붙는 게 아니면 쉽게 따돌릴 텐데, 왜 굳이 자리를 지키고 가만히 있었을까.
|
||
|
||
짐작 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한 번 물었다.
|
||
|
||
엘레라는 마녀 모자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
||
|
||
“너도 알 텐데.”
|
||
|
||
“육아는 힘든 법이네요.”
|
||
|
||
“사람은 자신이 벌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니까.”
|
||
|
||
“뱉은 말에도 책임을 져야 되고요.”
|
||
|
||
이건 설명하면 그거다.
|
||
|
||
엘레라가 본 미래 중, 노아에게 가장 나은 미래가 지금이었다는 것이다.
|
||
|
||
나한테 노아를 맡기는 게 가장 나은 미래라.
|
||
|
||
아리송했지만, 어쩌겠는가.
|
||
|
||
예지 마법사가 하는 일이 원래 다 이런 걸.
|
||
|
||
“노아 님이 불쌍한 아이라고 계속 주입한 게 이래서였군요.”
|
||
|
||
“노아를 잘 부탁하마.”
|
||
|
||
“본인 의견은 안 물어보나요?”
|
||
|
||
노아는 엘레라랑 같이 가고 싶을 수 있는 거 아닌가?
|
||
|
||
엘레라가 어떤 미래를 봤든 그 미래를 판단한 건 엘레라 본인이었다.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선택한 미래가 노아 본인이 판단한 좋은 미래와 달라도 이상하진 않았다.
|
||
|
||
허나 엘레라는 피식 웃었다.
|
||
|
||
“어린애가 뭘 안다고.”
|
||
|
||
“너무해요.”
|
||
|
||
“그리고 노아도 이해한다. 걔는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내 고유 마법이 뭔지 알기도 하고.”
|
||
|
||
“엘레라 님의 고유 마법이 뭔데요?”
|
||
|
||
“내 고유 마법 말이냐?”
|
||
|
||
엘레라는 오른쪽 눈을 초승달로 바꾸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
||
|
||
“인연이다.”
|
||
|
||
고유 마법 .
|
||
|
||
이름만 들어도 대충 무슨 능력인지 짐작이 됐다.
|
||
|
||
“노아 님이 만나는 사람 중 가장 나은 사람이 저라는 건가요.”
|
||
|
||
“당장은.”
|
||
|
||
“엘레라 님보다요?”
|
||
|
||
“그래.”
|
||
|
||
“그 부분이 주관적이라는 건데, 이렇게 해요. 노아 님에게 선택권을 맡기고, 무슨 선택을 하든 노아 님의 선택을 따르는 거예요.”
|
||
|
||
“쯧쯧.”
|
||
|
||
엘레라가 혀를 찬다.
|
||
|
||
갑자기 왜 저러지?
|
||
|
||
무시하고 나는 노아를 데려와 상황을 설명했다.
|
||
|
||
노아는 한참 설명을 듣고는 말문을 열었다.
|
||
|
||
“스승님을 따라갈래.”
|
||
|
||
“이럴 수가요.”
|
||
|
||
“내가 말하지 않았나. 노아는 이해한다고.”
|
||
|
||
그러고 보면 엘레라는 노아도 ‘이해할 것이다’라 하지 않았다. ‘이해한다’고 단정했지.
|
||
|
||
여기까지 읽은 거야?
|
||
|
||
덕분에 예지 마법사에게 하면 안 되는 마지막 하나까지 알게 됐다.
|
||
|
||
예지 마법사와 예측 싸움을 하지 마라.
|
||
|
||
예지 능력 무서워.
|
||
|
||
아무튼 이것으로 모든 게 결정됐다.
|
||
|
||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
||
|
||
나는 엘레라의 앞에 섰다.
|
||
|
||
“엘레라 님.”
|
||
|
||
“그래. 약속을 지켜야지. 성배는―.”
|
||
|
||
“마법 주세요.”
|
||
|
||
“내가 너 진짜 그럴 줄 알았다.”
|
||
|
||
엘레라는 한숨을 쉬었다.
|
||
|
||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
||
|
||
“저번에 제가 마법을 달라고 했을 때 입을 다문 건 이런 미래를 읽어서였군요? 사실상 노아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귀찮은 일을 해결해 달라고 저를 고용한 거니, 미안한 감정을 느껴서요.”
|
||
|
||
“그래. 가져가라.”
|
||
|
||
“신난다.”
|
||
|
||
엘레라는 내게 마법을 넘겼다. 물론 예지 마법을 넘긴 건 아니고, 본인의 마법 중 적당한 걸 넘겼다.
|
||
|
||
나는 암석을 뭉쳐 일종의 암석 포탄을 만들고 만족했다.
|
||
|
||
이걸로 나는 불, 물, 바람, 대지의 마법을 전부 소유하게 됐다.
|
||
|
||
소망을 이루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첫발을 뗀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
||
|
||
“이제 다른 대가를 치를 차례네요.”
|
||
|
||
“성배 말이지.”
|
||
|
||
“성배는 어딨나요?”
|
||
|
||
“솔직히 나는 성배의 위치를 모른다.”
|
||
|
||
“크리스 님! 당장 밧줄을 가져오세요!”
|
||
|
||
이 사기꾼.
|
||
|
||
내가 그럴 줄 알았다.
|
||
|
||
내 반응에 엘레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
|
||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라. 확실히 나는 성배의 위치를 모르지만, 네게 성배의 위치를 알려줄 ‘사람’을 어떻게 해야 만나는지는 안다.”
|
||
|
||
“더럽게 빙빙 돌아가는 마법이네요.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 안 했나요.”
|
||
|
||
“처음부터 나는 성배의 위치를 알도록 도와준다고 했다만?”
|
||
|
||
“그런 식으로 빙 돌려 말했었다고요.”
|
||
|
||
……생각해 보면 진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
||
|
||
“예지 마법사는 정말 상대하기 피곤하네요.”
|
||
|
||
“예지 마법사에게 친구가 없는 이유다. 외워두도록.”
|
||
|
||
“하나 배웠어요.”
|
||
|
||
그래서.
|
||
|
||
“누가 제게 성배의 위치를 알려주나요?”
|
||
|
||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
||
|
||
현 황제? 이 사람은 딱히 성배의 위치를 알 거 같지 않았고, 교황? 얘가 알았으면 성기사를 시켜 성배를 찾게 하지 않았겠지.
|
||
|
||
악신의 사제? 마찬가지다.
|
||
|
||
음. 머리를 굴리다 포기한 나는 엘레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
||
|
||
그러자 엘레라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
||
|
||
“너도 아는 사람이다.”
|
||
|
||
“저도 아는 사람이라고요?”
|
||
|
||
“그래.”
|
||
|
||
“이름이 뭔가요.”
|
||
|
||
내 말에 엘레라는 먼 하늘을 잠깐 봤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
||
|
||
그리고 입술을 움직였다.
|
||
|
||
“네게 성배의 위치를 알려줄 사람은 말이다.”
|
||
|
||
“네.”
|
||
|
||
“아델리안 크로프트다.”
|
||
|
||
*
|
||
|
||
하르겐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반파된 집 앞에 멈춰 섰다.
|
||
|
||
하르겐은 전대 황제를 모시던 전령관이었는데, 현 황제가 황위에 오른 이후에도 그 역할을 역임해 지금도 황제의 말을 전하는 임무를 맡곤 했다.
|
||
|
||
무너진 집을 미심쩍게 쳐다보던 하르겐은 이내 마을 사람들의 말을 되새겼다.
|
||
|
||
‘갑자기 나무 거인이 솟구치더니 막 폭발음이 들렸다니까.’
|
||
|
||
‘저기가 어디냐고? 지혜의 마녀님이 사는 집이지.’
|
||
|
||
나무 거인. 이번 작위 수여 대상인 루이나의 대표 마법 중 하나였다.
|
||
|
||
제대로 찾아온 걸 확신하며 하르겐은 조심스럽게 집 안에 목소리를 흘렸다.
|
||
|
||
“계십니까?”
|
||
|
||
“무슨 일인가.”
|
||
|
||
대답은 앞이 아니라 뒤에서 돌아왔다.
|
||
|
||
몸을 돌리자 마녀 모자를 쓴 늙은 여인이 시야에 잡혔다.
|
||
|
||
영락없는 마녀의 모습에 하르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
|
||
하르겐이 물었다.
|
||
|
||
“지혜의 마녀, 엘레라님이십니까?”
|
||
|
||
“그렇다만.”
|
||
|
||
“최근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
||
|
||
“그건 눈이 달렸으면 아는 부분이지. 왜 왔나.”
|
||
|
||
“루이나 님을 찾아왔습니다. 현재 루이나 님에겐 계승 남작위와 영지 및 각종 포상금이 내려진 상태인데, 이걸 전해드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
||
|
||
“그 미친년은 과거에 대체 뭘 하면서 돌아다닌 거냐?”
|
||
|
||
“말을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
||
|
||
적당히 쏘아붙인 하르겐은 곧 중요 용건을 전했다.
|
||
|
||
“그래서 루이나 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잠깐 외출하셨습니까?”
|
||
|
||
“그 사건이 벌어진 게 대체 언제인데 이제야 오나. 졸다가 왔나? 당연히 진작 떠났지.”
|
||
|
||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온 겁니다.”
|
||
|
||
아쉬움에 하르겐은 탄식을 뱉었다.
|
||
|
||
설마 이미 떠났다니.
|
||
|
||
정말 바쁘게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
||
|
||
“혹시 루이나 님이 어디 가셨는지 아십니까?”
|
||
|
||
“알기야 알지. 걔의 다음 목적지를 알려준 게 나니까.”
|
||
|
||
“정말입니까?”
|
||
|
||
하르겐의 얼굴에 재차 화색이 돌았다.
|
||
|
||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니.
|
||
|
||
이러면 임무를 완수한 거나 다름없었다.
|
||
|
||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
||
|
||
“그거야 쉽지.”
|
||
|
||
적당히 대꾸한 엘레라는 이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
||
|
||
하르겐은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
||
|
||
해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
||
|
||
동쪽?
|
||
|
||
동쪽의 어느 도시로 갔다는 거지?
|
||
|
||
“…….”
|
||
|
||
“…….”
|
||
|
||
“왜 나를 물끄러미 보나?”
|
||
|
||
“혹시 끝입니까?”
|
||
|
||
“그럼 끝이지. 왜 다시 알려줘?”
|
||
|
||
“달랑 동쪽을 알려주고 끝이라는 겁니까?”
|
||
|
||
“애초에 나도 동쪽으로 가라고만 알려줬거든. 그러니 이 이상은 말 못 해주지.”
|
||
|
||
새어 나오는 한숨을 억누르며 하르겐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
||
|
||
전령관, 그냥 때려치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