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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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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리를 앞에 두고 실험했다.

“굉륜(轟輪)을 써보세요.”

“네.”

우웅―! 모터음이 들리고, 나는 제리의 굉륜을 포식의 불꽃으로 잡아먹었다.

포식의 불꽃 안에서 제리의 굉륜이 조각조각 해체된다. 소화하기 좋게, 먹기 좋게.

이대로 가만히 두면 마력으로 변해 포식의 불꽃을 키울 거였으니, 그 전에 나는 조각을 가져와 다시 조립했다.

직후 등불 안에 굉륜이 발동했다.

이런 건가.

“어떻습니까.”

“실패예요.”

“역시 마법을 잡아먹는 것만으론 그 마법을 손에 넣지 못하는군요.”

나는 이제 포식의 불꽃으로 잡아먹은 마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다.

단, 1회만.

하나를 잡아먹었으면 한 번만 재현 가능했지, 하나 잡아먹은 걸 바탕으로 여러 번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디까지나 나는 마법의 구조를 ‘해체’한 후 다시 조립하는 거였으니까.

그 구조를 ‘분석’해 습득하는 게 아니라.

비유하자면 작동 원리를 모르고 스마트폰을 쓰는 현대인이 된 느낌이었는데, 이것도 어마어마한 거였지만 솔직히 내가 원한 거랑은 거리가 멀어서. 아쉬웠다.

“루이나 님. 욕심도 많아.”

“저는 원래 욕심쟁이예요.”

그래도 덕분에 알았다. 나는 마법을 쓰는 것만으론 욕구 충족이 안 됐다.

마법을 ‘손에 넣고’, ‘직접 써야’ 욕구가 해소됐다.

새삼 천칭이 없었으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궁금해졌다.

진짜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예측이 안 되네?

하여간 이것으로 나는 포식의 특징에서 소화와 해체의 원리를 발견했다. 이제 포식도 3위계인 것이다.

2위계였던 포식이 아니라 3위계였던 공평의 이해도가 깊어졌으면 아예 위계 자체가 4위계로 올라갔을 텐데, 살짝 아쉬웠다.

나는 실험을 마치고 공방을 벗어났다.

악신의 사제들과 전투를 벌인 현장은 매우 처참했다.

집은 거의 무너졌고, 마당에는 크레이터가 생겼으며, 군데군데 그을린 자국이 남아 전쟁 후를 연상케 했다.

나는 강제로 야외가 된 집에서 흔들의자를 즐기는 엘레라에게 다가갔다.

“만족하셨나요.”

“그럭저럭.”

엘레라가 정확히 무슨 미래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엘레라가 원하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건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저 근심 걱정이 사라진 표정이 모든 걸 알려줬다.

“미리 말해줬으면 안 되나요?”

“설명했듯 미래는 가변적이라서. 좋은 미래를 봤는데 굳이 입 밖으로 꺼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느냐?”

“그건 맞는 말이네요.”

그래도 이제 모두 다 지났으니까.

엘레라는 정답을, 공개해 주세요!

“왜 저여야 했나요.”

“미래라는 건 말이다. 결국 정해져 있다.”

“조금 전엔 바뀐다면서요.”

“말을 잘못했구나.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미래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거다.”

미래란 건 선택의 연속 끝에 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얼핏 미래는 무한해 보였지만, 결국 사람인 이상 선택지의 숫자는 정해져 있고, 미래의 숫자도 정해져 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듯했다.

“정해진 미래 중 엘레라에게 가장 나은 게 지금이라는 건가요?”

“그렇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엘레라는 고위 마법사다.

비전투 마법으로 분류되는 예지가 고유 마법이라 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유 마법이 왜 고유 마법이겠는가. 미래를 본다는 건 그것 자체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선 악신의 교단쯤은 교단 전체가 달라붙는 게 아니면 쉽게 따돌릴 텐데, 왜 굳이 자리를 지키고 가만히 있었을까.

짐작 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의상 한 번 물었다.

엘레라는 마녀 모자를 고쳐 쓰며 대답했다.

“너도 알 텐데.”

“육아는 힘든 법이네요.”

“사람은 자신이 벌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니까.”

“뱉은 말에도 책임을 져야 되고요.”

이건 설명하면 그거다.

엘레라가 본 미래 중, 노아에게 가장 나은 미래가 지금이었다는 것이다.

나한테 노아를 맡기는 게 가장 나은 미래라.

아리송했지만, 어쩌겠는가.

예지 마법사가 하는 일이 원래 다 이런 걸.

“노아 님이 불쌍한 아이라고 계속 주입한 게 이래서였군요.”

“노아를 잘 부탁하마.”

“본인 의견은 안 물어보나요?”

노아는 엘레라랑 같이 가고 싶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엘레라가 어떤 미래를 봤든 그 미래를 판단한 건 엘레라 본인이었다.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선택한 미래가 노아 본인이 판단한 좋은 미래와 달라도 이상하진 않았다.

허나 엘레라는 피식 웃었다.

“어린애가 뭘 안다고.”

“너무해요.”

“그리고 노아도 이해한다. 걔는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내 고유 마법이 뭔지 알기도 하고.”

“엘레라 님의 고유 마법이 뭔데요?”

“내 고유 마법 말이냐?”

엘레라는 오른쪽 눈을 초승달로 바꾸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인연이다.”

고유 마법 .

이름만 들어도 대충 무슨 능력인지 짐작이 됐다.

“노아 님이 만나는 사람 중 가장 나은 사람이 저라는 건가요.”

“당장은.”

“엘레라 님보다요?”

“그래.”

“그 부분이 주관적이라는 건데, 이렇게 해요. 노아 님에게 선택권을 맡기고, 무슨 선택을 하든 노아 님의 선택을 따르는 거예요.”

“쯧쯧.”

엘레라가 혀를 찬다.

갑자기 왜 저러지?

무시하고 나는 노아를 데려와 상황을 설명했다.

노아는 한참 설명을 듣고는 말문을 열었다.

“스승님을 따라갈래.”

“이럴 수가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 노아는 이해한다고.”

그러고 보면 엘레라는 노아도 ‘이해할 것이다’라 하지 않았다. ‘이해한다’고 단정했지.

여기까지 읽은 거야?

덕분에 예지 마법사에게 하면 안 되는 마지막 하나까지 알게 됐다.

예지 마법사와 예측 싸움을 하지 마라.

예지 능력 무서워.

아무튼 이것으로 모든 게 결정됐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나는 엘레라의 앞에 섰다.

“엘레라 님.”

“그래. 약속을 지켜야지. 성배는―.”

“마법 주세요.”

“내가 너 진짜 그럴 줄 알았다.”

엘레라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했다.

“저번에 제가 마법을 달라고 했을 때 입을 다문 건 이런 미래를 읽어서였군요? 사실상 노아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귀찮은 일을 해결해 달라고 저를 고용한 거니, 미안한 감정을 느껴서요.”

“그래. 가져가라.”

“신난다.”

엘레라는 내게 마법을 넘겼다. 물론 예지 마법을 넘긴 건 아니고, 본인의 마법 중 적당한 걸 넘겼다.

나는 암석을 뭉쳐 일종의 암석 포탄을 만들고 만족했다.

이걸로 나는 불, 물, 바람, 대지의 마법을 전부 소유하게 됐다.

소망을 이루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첫발을 뗀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이제 다른 대가를 치를 차례네요.”

“성배 말이지.”

“성배는 어딨나요?”

“솔직히 나는 성배의 위치를 모른다.”

“크리스 님! 당장 밧줄을 가져오세요!”

이 사기꾼.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내 반응에 엘레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라. 확실히 나는 성배의 위치를 모르지만, 네게 성배의 위치를 알려줄 ‘사람’을 어떻게 해야 만나는지는 안다.”

“더럽게 빙빙 돌아가는 마법이네요.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 안 했나요.”

“처음부터 나는 성배의 위치를 알도록 도와준다고 했다만?”

“그런 식으로 빙 돌려 말했었다고요.”

……생각해 보면 진짜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예지 마법사는 정말 상대하기 피곤하네요.”

“예지 마법사에게 친구가 없는 이유다. 외워두도록.”

“하나 배웠어요.”

그래서.

“누가 제게 성배의 위치를 알려주나요?”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현 황제? 이 사람은 딱히 성배의 위치를 알 거 같지 않았고, 교황? 얘가 알았으면 성기사를 시켜 성배를 찾게 하지 않았겠지.

악신의 사제? 마찬가지다.

음. 머리를 굴리다 포기한 나는 엘레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엘레라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너도 아는 사람이다.”

“저도 아는 사람이라고요?”

“그래.”

“이름이 뭔가요.”

내 말에 엘레라는 먼 하늘을 잠깐 봤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입술을 움직였다.

“네게 성배의 위치를 알려줄 사람은 말이다.”

“네.”

“아델리안 크로프트다.”

하르겐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반파된 집 앞에 멈춰 섰다.

하르겐은 전대 황제를 모시던 전령관이었는데, 현 황제가 황위에 오른 이후에도 그 역할을 역임해 지금도 황제의 말을 전하는 임무를 맡곤 했다.

무너진 집을 미심쩍게 쳐다보던 하르겐은 이내 마을 사람들의 말을 되새겼다.

‘갑자기 나무 거인이 솟구치더니 막 폭발음이 들렸다니까.

‘저기가 어디냐고? 지혜의 마녀님이 사는 집이지.

나무 거인. 이번 작위 수여 대상인 루이나의 대표 마법 중 하나였다.

제대로 찾아온 걸 확신하며 하르겐은 조심스럽게 집 안에 목소리를 흘렸다.

“계십니까?”

“무슨 일인가.”

대답은 앞이 아니라 뒤에서 돌아왔다.

몸을 돌리자 마녀 모자를 쓴 늙은 여인이 시야에 잡혔다.

영락없는 마녀의 모습에 하르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르겐이 물었다.

“지혜의 마녀, 엘레라님이십니까?”

“그렇다만.”

“최근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건 눈이 달렸으면 아는 부분이지. 왜 왔나.”

“루이나 님을 찾아왔습니다. 현재 루이나 님에겐 계승 남작위와 영지 및 각종 포상금이 내려진 상태인데, 이걸 전해드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미친년은 과거에 대체 뭘 하면서 돌아다닌 거냐?”

“말을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적당히 쏘아붙인 하르겐은 곧 중요 용건을 전했다.

“그래서 루이나 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잠깐 외출하셨습니까?”

“그 사건이 벌어진 게 대체 언제인데 이제야 오나. 졸다가 왔나? 당연히 진작 떠났지.”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온 겁니다.”

아쉬움에 하르겐은 탄식을 뱉었다.

설마 이미 떠났다니.

정말 바쁘게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혹시 루이나 님이 어디 가셨는지 아십니까?”

“알기야 알지. 걔의 다음 목적지를 알려준 게 나니까.”

“정말입니까?”

하르겐의 얼굴에 재차 화색이 돌았다.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니.

이러면 임무를 완수한 거나 다름없었다.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거야 쉽지.”

적당히 대꾸한 엘레라는 이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하르겐은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해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동쪽?

동쪽의 어느 도시로 갔다는 거지?

“…….”

“…….”

“왜 나를 물끄러미 보나?”

“혹시 끝입니까?”

“그럼 끝이지. 왜 다시 알려줘?”

“달랑 동쪽을 알려주고 끝이라는 겁니까?”

“애초에 나도 동쪽으로 가라고만 알려줬거든. 그러니 이 이상은 말 못 해주지.”

새어 나오는 한숨을 억누르며 하르겐은 조용히 하늘을 바라봤다.

전령관, 그냥 때려치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