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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가기 위해선 우선 자신이 가진 것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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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 획득한 원소는 총 3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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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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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선천적으로 가진 원소 적성이고, 물과 바람은 각각 물 밧줄 마법과 바람 원소를 뒤틀어 만든 적영(寂影)에서 파생된 적성이었는데, 그래서 불과 달리 물과 바람은 위계를 올리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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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자면 다리가 없는 애한테 팔로 달리는 법을 가르쳐 준 느낌이라 해야 되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에 넣은 힘이 아니라 여러모로 이질적이었고, 그만큼 성장도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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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불이 쉬운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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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에서 ‘공평’과 ‘포식’의 특징을, 물에선 ‘변화’의 특징을 발견했는데, 이중 불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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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근원이자 가장 익숙한 건 결국 불의 원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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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평에서는 규칙과 제약의 원리를, 포식에서는 소화의 원리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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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더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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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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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를 올리고 싶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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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등불 안에 불꽃을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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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형태를 갖춘다.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막대의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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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직―. 원소가 완성되다 말고 흩어진다.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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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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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형태를 갖춘다.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막대가 등불 안에 태어나고, 막대가 빙글 돈다. 한 바퀴. 그리고 흩어진다.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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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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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형태를 갖추다가 흩어진다.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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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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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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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시, 다시, “루이나 님. 식사 안 해? 안 하는구나 알았어.”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루이나 씨. 성배…에 대한 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스승님.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남의 공방에서 잘도 그러는구나.” 다시, 다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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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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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르. 불꽃이 피어오르다 말고 꺼진다. 마력이 바닥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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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드러누운 채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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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그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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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걸레를 한 번 더 쥐어짠 그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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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대체 마법을 어떻게 또 사용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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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을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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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면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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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의 가장 표면, 그곳엔 현재 맺은 관계들이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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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크리스, 뮤란, 제리, 플로라, 헤이즈, 타시아, 이사크, 오르핀, 엘레라, 노아, 여관 종업원, 여관 주인, 황도 보관서의 안내원, 고급 포도주를 준 중년 남자, 쉐이드 백작 등등. 스쳐 지나간 사람조차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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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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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깊은 관계가 된 사람들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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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뒤가 뚫리기 직전 내가 구해준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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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돈에 미친 서큐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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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란, 끈질긴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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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담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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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영생을 바라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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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즈, 마법에 한눈을 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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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시아, 체스 허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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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 내기에서 진 이름 모를 고위 귀족의 영식, 마찬가지로 체스 허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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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 반란 허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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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핀, 황제 허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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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라, 예지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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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마법 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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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밖에도 전생에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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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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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더욱 사람의 숫자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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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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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사제에게 부모가 죽어 울부짖는 어린 레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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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기 직전 땅에서 주운 동화로 빵을 사 먹는 어린 크리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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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가에 팔려 가기 직전 연금술사의 제자가 된 어린 뮤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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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에서 구걸하다가, 대마법사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된 어린 제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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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미래를 전해 들어 절망하는 어린 플로라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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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함께 검을 주고받는 어린 헤이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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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어린 이사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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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어떤 건 직접 전해 들은 거고, 어떤 건 내가 추측한 그들의 과거였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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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곳이 남아 있다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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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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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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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들의 앞에 사람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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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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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돕기 위해 신성력을 각성하는 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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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활짝 웃는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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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연금술을 가르쳐 주는 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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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는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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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직전, 내게 소원을 남기고 가는 플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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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구원해달라는 표정을 내게 짓는 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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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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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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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아원에 반품하며, 저런 애인 줄 몰랐다고 소리치는 전 양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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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웃는 또래 고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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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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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세상에 마법은 없다고 가르쳐 주는 학교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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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베이비 박스에 넣고 도망가는 부모로 추측되는 검은 인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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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사람과 만나며 성장하며, 애초에 사람과 관계되기 위해 뇌 구조 자체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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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은 인간이 망가지는 이유가 그거였다. 사회적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니 뇌가 퇴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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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들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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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영향을 준 사람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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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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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보다, 더 깊은 곳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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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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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곳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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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숫자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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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땡볕에 물기가 증발하듯, 죄다 빠르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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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은 사람은 총 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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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중 한 명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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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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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으면 돌려줘야 한단다. 그게 공평한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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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원장 수녀님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타인을 정말 ‘자식’처럼 아낀다는 게 뭔지 몸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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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나는 정말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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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수녀님의 속삭임을 들으며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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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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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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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예쁜 얼굴을 망치지 말거라. 여자가 화상이 뭐냐 대체. 화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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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아놓은 돈이 많다. 이걸 교단에 헌금하면 고위 사제가 완전 치료를 해줄 거다. 반드시 치료부터 해라.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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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대가로 바치지 말고, 신체를 소중히 여겨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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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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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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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나의 행복을 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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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부귀영화도 바라지 않고, 오직 나의 행복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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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미를 마음속 깊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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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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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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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보다 더 깊은 곳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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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더 깊은 곳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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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과 원장 수녀님조차 사라지고, 이제 세상엔 하나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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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어 마지막 남은 덩어리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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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마법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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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념의 원천은 나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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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하나 확실한 건,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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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남은 원념에 손을 집어넣었다.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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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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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안에 거센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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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장이 튀어나올 거 같은 고통을 참으며, 바닥에 드러누운 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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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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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되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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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노아가 작게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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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가 되는 걸 시키지, 안 되는 걸 시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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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야. 저 천칭 사용자를 따라 하려 하지 마라. 괜히 너만 미치고 원하는 건 얻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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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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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지 마법사가 못 하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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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 할 거면 마법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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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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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왜 거기서 ‘일 없다’가 아니라 침묵을 선택하는 거죠? 설마 머지않은 미래에 저에게 마법을 주는 예지라도 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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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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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혀를 차고 사라지는 엘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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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엘레라에게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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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마법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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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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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질렸다는 듯 감탄사를 뱉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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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나 학부모나 스승을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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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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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이 이상한 모습을 자꾸 보여줘서 그런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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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자꾸 그러면 저 굶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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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는 건 안 돼. 스튜 데워줄 테니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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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크리스다. 엄마 같은 마음을 가졌다. 중의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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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의 스튜를 기다리며 등불 안의 불꽃에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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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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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에는 규칙이 있고, 제약이 있지만, 그래서 그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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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은? 포식은 어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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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다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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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다양한 상념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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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과 포식에서 멈추지 않고 변화, 그리고 새로 얻은 바람 원소, 내가 얻은 다양한 마법, 새로 얻을 수 있는 마법, 나만의 특기 마법에까지 생각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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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머리가 터지다 못 해, 모든 생각이 하나로 융화되며 합쳐지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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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엉망진창의 광경이 영향을 준 걸까. 머릿속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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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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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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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내 손 주위로 미세한 바람의 입자들이 생겨나더니,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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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흐름이 차례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합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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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합쳐진 것과는 달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들이 엉겨 붙듯, 끈질기게 서로를 붙잡으며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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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바람이라기엔 어딘가 점성이 느껴지는 기묘한 바람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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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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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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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내놓으라고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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