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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마법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유명한 건 역시 귀족가에 몸을 의탁하는 것이다.
귀족가에 소속돼 연구비를 타 먹으면 세상에 그거보다 편한 일도 없다.
라고 켈튼이 말했었다.
나는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저게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솔직히 귀족의 명령을 받는 상황이 그리 편할 거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귀족가에 고용되는 건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4위계는 돼야 했다.
즉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두 번째 방법으로는 제국에 소속되는 게 있었다.
근데 제국 소속이어도 업무 자체는 귀족가에 소속되는 것과 비슷했다. 단지 명령을 내리는 주체가 귀족에서 황실로 바뀔 뿐이다.
그렇기에 이것도 4위계는 돼야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세 번째 선택지로 마탑도 있었으나, 마탑은 순수한 학문 집단의 경향이 강했기에 돈을 벌고 싶다면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따라서 3위계 돈 귀신 마법사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용병입니까.”
“용병이에요.”
용병. 한 5위계 마법사가 평생을 바쳤던 직업을 나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용병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다양한 사람이 술주정을 부리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용병은 고아와 밑바닥 인생의 희망과도 같은 직업이었다.
그들의 본거지인 용병 길드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후우. 연기를 길게 뱉은 나는 데스크로 걸음을 옮겼다.
“용병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요.”
“잠깐만요.”
안내원이 바쁘게 무언가를 준비한다. 서류라도 꺼내는 모양이었다.
용병은 총 6단계의 등급으로 구별됐다.
5급부터 1급. 그 위에 특급까지 6단계로.
서류를 데스크 위에 꺼낸 안내원이 내게 물었다.
“특기를 설명해 주세요.”
“마법사예요. 3위계고요.”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의외로 용병 길드에선 범죄자를 최대한 거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끝없이 용병 평균을 낮추는 사건이 터져서 그렇지.
신용이 한계선을 넘어 박살 나면 그 누구도 의뢰를 맡기지 않았기에 불가피한 조치였다.
나는 슬쩍 로브를 걷어 얼굴을 보여줬다.
안내원은 살짝 움찔하고는 서류에 무언가를 적으며 입을 열었다.
“성함과 고향을 말씀해 주세요.”
“루이나예요. 고향은 웨스트 쉐이드 그레이프턴이고요.”
고향은 일부러 다르게 말했다. 켈튼이 말해준 용병 조언 중 하나였다.
켈튼은 아예 이름도 가명을 쓰라고 했었지만, 거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가명은 정신 사납잖아.
탁. 펜을 내려놓은 안내원이 서류를 정리한다.
“루이나 님. 확인이 끝났습니다. 등록비는 은화 10개인데 괜찮으신가요?”
“네.”
“잠시 기다려주세요.”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안내원은 내게 둥근 메달을 줬다.
메달엔 내가 용병 등록을 한 날짜와 장소, 그리고 이름과 고향이 적혀 있었다.
재질은 구리. 5등급이라는 뜻이었다.
3위계 마법사치고 매우 낮은 등급이었으나, 처음 용병 등록을 하면 누구나 5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등급이라는 것 자체가 ‘뒤통수 맞아도 길드가 책임 못 지는 놈들’과 ‘길드가 보증하는 인재’를 구별하기 위해 만든 거였으니까.
아무에게나 높은 등급을 줬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등급 변별력이 박살 나기 마련이었다. 의뢰인을 최대한 유치하는 게 목적인 용병 길드 입장에선 절대 피해야 됐다.
“루이나 님. 이쪽입니다.”
여비를 벌기 위해 진작 용병 등록을 했던 레온은 능숙하게 의뢰판 앞에 섰다.
이 의뢰판을 일종의 광고판으로, 길드가 직접 의뢰를 연결해 주는 것보다 몇 단계는 가벼운 방식이었다.
의뢰자는 수수료를 내고 이곳에 광고를 게시할 수 있었는데, 이러면 아무래도 길드가 책임지고 구해온 용병들보다 질이 떨어지는 녀석들과 만날 확률이 올라갔다.
애초에 용병들은 평균적으로 질이 떨어지긴 했지만.
새삼 그런 용병들 사이에서 수십 년을 버틴 켈튼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네. 숭배합니다.
문맹률이 높은 세계였기에 의뢰판엔 글자와 그림이 섞인 종이가 잔뜩 붙어있었다.
레온은 그중 짐마차가 그려진 의뢰서를 가리켰다.
“이건 어떻습니까? 저희에게 딱 맞는 의뢰 같은데요.”
레온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글자를 읽을 줄 아셨나요?”
“…교단에서 오래 수행했으니까요. 여러 지식을 익혔습니다.”
“사실 그럴 거 같긴 했어요.”
나는 고개를 들어 의뢰서를 읽었다.
마법사의 제자인 만큼 나도 글자는 알았다.
[웨스트 쉐이드 그레이프턴까지 함께할 호위 인원을 구함]
[보수:은화 50개]
[출발 시간:9월 3일 동문 앞 정오]
[식사 제공]
장기 호위 임무치고 꽤 쌌지만, 식사 제공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도착지도 마침 우리가 갈 예정이었던 웨스트 쉐이드 그레이프턴이었고, 출발 시간 또한 오늘 정오라 바로 떠나는 게 가능했다.
“이거로 하죠.”
“알겠습니다.”
용병 길드를 떠난 우리는 가볍게 여행 준비를 마쳤다.
보존 식량, 옷, 담요, 물 등등을 배낭에 넣자 금방 정오에 가까워졌다.
나는 레온과 함께 동쪽 성문으로 향했다.
동쪽 성문엔 유동 인구가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짐마차를 옆에 낀 사람도 많았다.
“클램프 남작령까지의 호위 의뢰를 지원하실 분은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황도까지 호위 의뢰를―!”
“교국까지―!”
그렇게 다양한 사람이 소리치는 와중이었다.
나는 문득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옆에 꽤 큰 짐마차를 낀 남자였는데,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혹시 웨스트 쉐이드 그레이프턴까지의 호위 의뢰를 지원하십니까?”
“용케 알아보셨네요.”
신기했다. 의뢰판은 의뢰주가 용병을 모집하는 곳을 알려줄 뿐이고, 계약은 전부 모집하는 곳에서 즉석으로 하는 거라 사전에 누가 찾아올지 알 방법이 없을 텐데 말이다.
내 의문에 의뢰주는 고백하듯 속삭였다.
“사실 용병 길드 내에서 누가 제 의뢰서에 관심을 가지나 계속 지켜봤습니다.”
제대로 소름이 돋는 사람이었다.
그럼 의뢰판을 이용한 의미가 없잖아.
“그럴 바에는 그냥 발품을 파는 게 낫지 않나요?”
“그러면 이상한 사람을 거를 수 없으니까요.”
거르는 용도였구나.
우리가 이상해 보였으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갔을 거구나.
“보아하니 레온 님은 이상해 보였지만, 제 덕에 상쇄됐군요?”
“제 이름은 크리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루이나예요.”
“레온입니다.”
나는 크리스와 악수를 했다.
그리고 조금 전 눈치챈 사실을 입 밖으로 꺼냈다.
“여자의 몸으로 행상인이라니. 어지간히 목표가 크신가 봐요?”
“…….”
“왜요?”
“혹시 티가 많이 납니까?”
크리스의 반응에 오히려 놀랐다.
변장한 거였어 이게?
크리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머리도 짧게 자르고, 목소리도 일부러 약초를 먹어 바꾸는 중인데 이래도 티가 난단 말입니까?”
“루이나 님이 이상한 겁니다. 저는 눈치 못 챘습니다.”
크리스의 말에 대답한 건 레온이었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다니. 굉장히 억울했다.
나는 왜 내가 이런 판단을 했는지 조곤조곤 설명했다.
“목을 안 가려서 그냥 남자처럼 입는 취향인 줄 알았잖아요. 목젖을 보면 바로 티가 나는데, 남장여자가 목을 안 가리면 어떻게 해요.”
“보통은 사람의 목젖에 집중을 안 합니다.”
“얼굴도 단순 예쁜 남자라기엔 여성적이고요.”
장담하는데 레온을 덮치려 했던 남자는 크리스를 보고 미동도 안 할 거였다.
“…무슨 생각하는지 대충 예상이 되는군요.”
“오해예요.”
“아무튼, 대부분은 목소리와 복장을 보고 남자라 생각할 겁니다.”
내가 다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눈 뜨고 코만 3번 베인 견습 성기사에게 보편성을 배우는 건 못 참겠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레온 님이 세상을 잘 알았으면 순진하게 지갑을―.”
“확실히 여러분을 제외하면 여태 눈치챈 사람이 없긴 했습니다.”
“진짜 제가 이상한 거라고요.”
크리스의 지원에 나는 잠시 물러났다.
지금은 비록 작전상 후퇴를 하겠지만, 다음번엔 꼭 진실을 밝히고 말겠다.
나는 차분히 말을 꺼냈다.
“계약할 생각이 있다면 착수금을 받을게요.”
“두 분 다 용병 등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5등급이에요.”
“저도 5등급입니다.”
“알겠습니다.”
우리의 말에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은화 10개를 건넸다.
착수금은 의뢰비의 1/5. 용병 업계의 불문율이었다.
은화를 받아 동전 주머니에 넣은 나는 짐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제국 기사가 지키는 제도를 제외한 모든 길은 제각각의 위험을 품고 있다.
몬스터, 강도, 약탈자, 용병이 들끓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강도, 약탈자, 용병이 보통 동일인이라는 건데, 이들은 늘 용병 평균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살, 살려.”
“지금부터 성실히 대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강도였는지, 약탈자였는지, 용병이었는지 알 수 없는 남자들이 내 말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등불을 흔들며 세 가지 질문을 했다.
“자신이 마법을 소유했거나, 마법을 공유할 생각이 있거나, 마법을 양도할 의향이 있으신 분?”
“…….”
“없군요.”
유감이었다.
나는 등불을 열고 불꽃을 키웠다.
동시에.
“잠깐! 마법! 마법 있어! 제발 멈춰!”
누군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마법의 발동을 멈추며 소리친 남자를 봤다.
남자는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었다.
“예, 예전에 은퇴한 견습 기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어. 그래서 마법 자체는 나도 배웠어. 이걸 줄게. 무슨 수로 주는지 모르겠지만, 줄 테니까. 진짜 줄 테니까. 제, 제발 살려줘.”
나는 등불을 닫았다.
그리고 웃었다.
드디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