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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황자, 이사크 에테르노는 후처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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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법률상 후처의 아들에게도 계승권이 존재했다. 오히려 본처의 아들과 큰 차이가 없었고, 때문에 이사크는 존중받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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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권이 존재하는 황자란 언젠가 황제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니까. 존중받는 삶을 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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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꿈이 컸다. 하고 싶은 게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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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살아가는 남자라면, 특히 초대 황제의 일화를 접한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그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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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초대 황제처럼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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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이사크는 초대 황제의 피를 정당하게 이었다. 무려 계승권 2위로 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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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굉장히 큰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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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이 망상으로만 끝나는가, 현실성을 갖추는가의 차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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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게 남방의 야만족은 늘 골칫거리였다. 시도 때도 없이 국경을 넘어와 약탈을 시도하는 야만족이 제국은 상당히 거슬렸고, 이사크는 그 점을 정확히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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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남방에 가 군대를 직접 지휘하고, 때때로 선봉에 서 야만족을 박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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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이사크는 제국 남부군의 강력한 지지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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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야전에서 구르며 얻은 값진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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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야만족의 나라를 반으로 쪼개고, 앞으로 수십 년간 야만족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 이사크는 백마에 올라탄 채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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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환호성이 거리를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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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 행진은 이걸로 두 번째였지만,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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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환호성을 계속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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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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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 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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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릭도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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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수도에 남겨놨던 가신의 도움을 받아 배정받은 별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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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방에 들어간 이사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고는, 이내 방에 쌓인 물건을 하나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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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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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星金)으로 만든 잔입니다. 위성배라는 별명으로도 부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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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개나 소나 성배라는 이름을 가져다 쓰는구나. 특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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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물을 담아 마시면 종일 몸이 따뜻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에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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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쓸데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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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위성배를 대충 던져서 물건 더미에 쌓으려다, 살포시 테이블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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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의 용도를 떠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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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다시던 이사크는 물건들을 훑어보다가, 한 곳에 시선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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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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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星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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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이라고?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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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보고 혹시나 하긴 했지만 정말 성은이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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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나직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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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크기의 성은이 존재하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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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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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 구했네. 어떻게 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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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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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훔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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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로데릭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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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릭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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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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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훔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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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길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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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길드?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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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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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릭 너도 알지? 아무리 나라도 연금술 길드 같은 곳을 계속 건드리면 정치적 부담이 상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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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조심히 준비한 꼬리를 썼습니다. 증거가 전혀 남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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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그래. 어차피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까. 조금 과격해도 수를 쓰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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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지금 쓸 게 아니면 꼬리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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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테이블을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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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황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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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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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단 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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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신랄한 평가를 내리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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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1 황자, 오르핀 입장에서는 이사크의 평가가 억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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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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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모든 일은 상대적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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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과 수재 어딘가에 있는 오르핀은 이사크에 비하면 확실히 무능한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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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황위를 이어받다니. 제국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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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 님이라면 제국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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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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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제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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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초대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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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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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초대 황제처럼은 힘들어도, 그 언저리는 따라갈 자신이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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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은 원하는 대로 안 되기에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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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선택이 없다면 그 모든 건 한낱 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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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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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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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방에 쌓인 선물을 들고 황제를 만나기 위해 별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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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궁은 황궁의 중앙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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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궁을 가로지른 이사크는 알현실을 지나, 집무실을 넘어, 한 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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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숨을 들이쉰 이사크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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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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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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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장의 말에 이사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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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넓은 방 안엔 거대한 침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 누운 한 남자가 이사크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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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은 어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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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왜 제국인지 야만인들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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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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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목소리에 이사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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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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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천천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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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우신 지 며칠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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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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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러눕는 일이 많아지셨는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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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괜찮고 말고,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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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을 하는 황제에게 사람들이 달라붙어 약을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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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물을 식도로 넘긴 황제는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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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리 잔뜩 가져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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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하는 물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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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 로데릭이 모아온 물건을 방에 차곡차곡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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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유독 눈에 띄는 거대한 광석을 직접 들고 황제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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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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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성은이라고? 직접 손에 넣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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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이 크기면 일반 성은의 몇 배나 되는 힘을 간직했겠죠. 가공할 것도 없이 이걸 침대로 쓰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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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역시 내 아들이야. 시종장! 당장 저걸 내 침대로 만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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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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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명령 한 마디에 분주하게 새로운 침대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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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 준비한 지 모를 화려한 장식과 나무 틀이 구석에 쌓이는 가운데, 문득 이사크는 이 모든 일이 촌극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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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이사크가 바라는 게 뭔지 안다. 뭘 바라고 이렇게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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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황제가 알고 있다는 걸 안다. 저 음흉한 아버지가 모를 리 없다는 걸 세상 누구보다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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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속을 전부 까놓고, 서로의 바람을 전부 까놓고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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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사크와 황제는 마치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어긋난 상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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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이사크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다. 설사 지금 가져온 성은이 황제를 치료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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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황태자는 1황자일 거고, 이사크는 계승권 2위의 황자에 불과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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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너무나 불쾌해, 이사크는 빠르게 인사하고 침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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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누가 둘째로 태어나래? 조금 더 노력해서 한 5개월 먼저 태어났으면 네가 제1 계승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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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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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을 구르며 배운 욕설을 뱉은 이사크는 허리춤에 찬 검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들기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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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고 소드는 다 좋은데 가끔 사람의 속을 박박 긁어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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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덕분에 머리가 좀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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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모든 게 결정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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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사크의 성과가 높아질수록 황제도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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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야만족을 반으로 쪼개버린 성과가 수도를 울렸을 때는, 황제가 진지하게 황태자를 바꿀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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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황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으나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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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한 1년, 아니. 반년만 지나도 이사크는 황제의 마음을 바꿀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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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딱 반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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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 황제의 마음을 바꾸면, 이사크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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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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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폐하께서 신들의 정원으로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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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이사크는 남부 사령관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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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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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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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아버지는 멀쩡히 나와 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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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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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사령관은 진중한 태도로 이사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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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남부 사령관과 눈을 마주쳤다가, 각오를 다진 눈빛에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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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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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개선 행진을 하기 위해 수도에 입성한 순간에 황제 폐하께서 세상을 떠나다니. 단순히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공교롭군요. 저는 이게 하늘의 뜻이라고 봅니다. 일을 벌이려면 지금이 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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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사령관의 선언에 이사크는 ‘그건 미친 짓이야’라든가, ‘내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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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조용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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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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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의 아랫사람이 하는 일은, 결국 이사크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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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만큼 단단한 신뢰 관계로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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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사령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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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장악하고 수도 근처에 포위망을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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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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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황위 계승자들도 잡아들이는 중입니다. 명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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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폐하 피습…은 너무 과하고, 독살 의혹 조사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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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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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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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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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내 앞에 잡아 와. 특히 황태자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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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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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건 직접 손에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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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버지가 해준 말을 되새기며 이사크는 별궁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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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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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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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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