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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장작 위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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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그저 무력하게 아래에서 산제물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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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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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떨어지는 절망 속에서 부모, 형, 동생, 이웃, 사촌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레온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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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몽의 끝은 늘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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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세상을, 악신의 사제들을 반으로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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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레온의 목표는 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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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멸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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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걸 위해 짧은 평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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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가 내려졌다. 성배를 찾아라. 계시를 받드는 자가 다음 대의 팔라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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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레온은 검 한 자루를 들고 교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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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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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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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정신이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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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보였다. 타닥. 모닥불이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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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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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정신 속에서 레온은 시야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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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남자의 얼굴이 불빛에 일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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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남자는, 그래. 임시로 팀을 꾸렸던 용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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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메릭. 꽤 유쾌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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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너 몸이 잘 안 움직이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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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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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움직이나 보네. 곤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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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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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바닥에 누워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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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명색의 예비 성기사인 자신이 술을 마실 리가.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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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기억을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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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의뢰를 마치고 귀환하던 도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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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고, 도시까진 아직 거리가 있었기에 야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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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릭이 술을 건넸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스튜를 퍼 입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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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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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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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릭의 입꼬리가 기분 나쁘게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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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없으면 영 별로란 말이지. 적당히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약이 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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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을 잃은 레온이 입을 다물자, 옆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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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정신병자 새끼라니까. 멀끔한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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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성기사를 건드리는 놈은 처음이다. 이거 걸리면 피곤해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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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지긴. 딱 봐도 견습에 순례자잖아. 그리고 진짜 성기사면 어쩔 거야. 누가 죽였는지 알 방법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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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맞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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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반사적으로 허리에 손을 올렸지만, 약에 쩐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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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다가온 메릭이 레온을 빤히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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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고개를 들고 메릭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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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오히려 자극이 된 걸까. 메릭이 허리띠를 풀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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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반반한 얼굴값을 하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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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릭의 입술을 비집고 흥분이 새어 나온다. 바람이 분다. 레온은 손가락 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메릭을 노려봤다. 지금 광경이 익숙한지 주변의 쓰레기들이 시끄럽게 내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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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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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륵. 한결같이 쓰레기라니까. 촤륵. 어때 재밌는데. 스륵. 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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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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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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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속에서 들릴 리 없는 맑고 경쾌한 소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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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메릭이 엉거주춤하게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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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레온도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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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린 곳. 그곳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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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불꽃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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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불꽃이 떠다니는 게 아니다. 어두워서 순간 착각했지만, 저건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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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의 주인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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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성기사님이 위기 상황인 것 같네요.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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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웬 여자가 갑자기 튀어나온 상황이었지만, 모두 경박하게 웃거나 성희롱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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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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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숲속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저만큼 태연한 여자는, 열에 아홉 한 부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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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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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릭이 손을 뒤로 옮겨 동료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몰래 돌아 기습하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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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눈치챈 레온이 소리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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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불의 주인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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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드릴 테니 성기사님도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따로 알아보니 완전 회복이라는 게 저 같은 사람은 선뜻 받기 어려운 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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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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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보라고 레온이 필사적으로 소리치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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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고요? 이럼 거래 성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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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길게 늘어지며 허공을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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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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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녹은 용병들이 죄다 땅을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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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금슬금 포위망을 형성하던 용병도, 언제 뒤로 돌아갔는지 모를 은밀한 용병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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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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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용 마도구 덕에 간신히 마법을 막은 메릭이 바지를 벗은 채로 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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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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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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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며 일어나 던진 레온의 단검이, 메릭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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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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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몰아쉬던 레온은 목젖을 자극해 그대로 속에 든 걸 죄다 게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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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으로 입을 헹구고, 위장에 물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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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몽롱한 정신이 적당히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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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뽑아 든 레온은 용병들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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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정확히 다리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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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 리는 없으니 노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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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살생을 꺼리는 사람일 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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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는 건 등불의 주인은 용병들을 전원 포박해 도시로 호송할 생각이라는 건데, 이미 반 불구가 된 상태였기에 어렵지는 않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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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살생을 즐기지 않았기에 이런 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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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등불의 주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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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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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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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의 말을 끊은 등불의 주인이 용병들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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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랑. 등불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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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등불의 주인이 노래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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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마법을 소유했다.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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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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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공유할 생각이 있다.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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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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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양도할 의향이 있다. 이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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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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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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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선이 여섯 갈래로 갈라져 지상에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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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야영지는 침묵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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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충격적이고 매혹적인 모습에 레온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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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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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반사적으로 그 이미지를 밖으로 뱉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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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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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의 주인이 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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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가 펄럭이며 얼굴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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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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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얼굴을 보고 마녀라니. 레온 님도 어지간히 성격이 직설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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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의미로 한 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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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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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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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성기사와 용병의 댄스파티를 구경하던 나는, 데뷔탕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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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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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가 앞의 통행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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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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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러자 병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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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에 얼굴을 가려? 뭐 하는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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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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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다급히 병사를 말렸지만, 그것보다 내가 로브를 살짝 벗는 게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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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 작게 혀를 찼다. 못 볼걸 본 사람의 표정이었는데, 나는 로브를 다시 쓰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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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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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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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을 넘자 번화가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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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인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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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은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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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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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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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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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레온 님도 제 얼굴을 보고 마녀라고 했었죠. 이런 취급을 받다니. 눈물이 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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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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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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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문 근처에서 어슬렁대던 아이 하나를 붙잡아 동화를 건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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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동화를 옷에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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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모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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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요. 음식이 맛있고 침대가 깨끗한 곳으로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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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여관을 찾는 건 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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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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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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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우리를 한 여관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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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어 여관의 팻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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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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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친부모와 살았던 고향(진)과 켈튼과 살았던 고향(위)에도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여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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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중세랜드에 프랜차이즈가 있을 리 없으니 이 모든 건 우연이었는데, 새삼 사람들의 작명 센스가 거기서 거기라는 걸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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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적당한 인원의 사람이 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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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차지도 않고 텅텅 비지도 않았다. 안내해 준 아이가 내 요구를 정확히 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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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탕 칠 각오로 안내를 부탁한 건데, 처음부터 당첨인 걸 보니 오늘은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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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은 나는 손을 들며 음식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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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주 두 잔! 그리고 흰 빵과 치즈를 4인분씩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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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는 술을 안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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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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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혼자 북 치고 난리 난 레온을 뒤로한 채 나는 미리 나온 벌꿀주를 꿀꺽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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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고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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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벌꿀주는 딱히 달지도 않고 오히려 독했는데, 이건 이미지 속 벌꿀주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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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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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해피 중세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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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벌꿀주 2잔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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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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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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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나눴던 얘기를 정리하는 게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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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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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복잡한 얘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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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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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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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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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얼굴이랑 몸 보셨잖아요? 이걸 치료하고 싶은데, 세상에. 전신 화상 치료는 사실상 팔다리를 자라게 하는 것보다 어렵다잖아요. 말년에 5위계가 된 마법사의 평생 저금을 다 써야 해 깜짝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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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를 자라게 하는 것과 방식은 똑같지만, 치료해야 되는 부위가 많아져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얼굴에만 한정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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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 돼요. 약속에 어긋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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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 잘라 거절하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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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그런 고위 성법은 아무에게나 안 써준다면서요? 듣기로는 뒷배가 없는 사람은 헌금을 해도 그냥 꿀꺽하고 입 닦는다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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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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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피해자가 있는데 관계자가 변호해 봤자 설득력이 떨어져요. 하여간 그런 먹튀를 당하면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위험한 짓은 안 하기로 약속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성기사님을 찾았어요. 추천을 해주든, 권한을 사용하든 해서 전신 완전 치료를 받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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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정확한 요구사항이었으나, 내 말에 레온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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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지만, 효과가 없을 겁니다. 저는 고작 견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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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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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권한도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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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허수아비였네요? 진한 사랑을 즐기게 놔둘 걸 그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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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팔라딘이 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기약도 없는 일을 약속하는 건 사기꾼이죠. 정말 죄송하지만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게 빠를 듯합니다. 별개로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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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이 될 수는 있나요? 마비약 하나 해독 못 하는 성기사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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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 자체는 교단의 임무만 해결하면 즉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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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긁었더니 바로 숨겨둔 비밀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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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것보다는 내가 은인이라 조금 유하게 답변해 준 듯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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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임무만 해결하면 팔라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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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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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나는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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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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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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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좋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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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임무 제가 도와드릴게요. 대신 약속 꼭 지키셔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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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당분간 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이었는데, 그 김에 견습 성기사 하나쯤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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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답이 없으면 버리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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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싹수가 보이면 갈아타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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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손해를 보지 않는 프로의 한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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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스승에게 잘 배운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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