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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금발금안의 여자는 무표정으로 마법을 발동했다.
거대한 불의 창에 가시가 솟아난다. 가시의 끝에 바람의 구체가 뭉치고, 파직. 뇌전이 튄다.
명백히 예전보다 진화한 마법에 나는 전율을 느끼며 소리쳤다.
“멸각(滅角)이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지?”
“황금 마탑의 초대형 마법 보관소 님이었군요. 처음부터 마법을 보여주셨어야죠.”
“잠깐. 너 나를 외우는 방식이 왜 그래. 너 내 이름이 뭔지 알지?”
“멸각의 주인이잖아요.”
“세피아잖아! 왜 마법의 이름은 잘 기억하면서 사람의 이름은 못 외우는 거야?”
맞다. 세피아였지.
잠깐 깜빡했다.
근데 사람의 이름을 굳이 외워야 돼?
별로 안 중요하잖아.
“중요한 건 세피아 님의 내면이지, 그 외의 것이 아니잖아요.”
“내 마법이 중요한 거겠지.”
“마법 하나만 주세요. 많잖아요.”
“일 없어.”
황금 마탑의 계승자로 황금 마탑의 사랑을 받으며 철저하게 키워진 세피아다.
4대 원소 적성이라는 굉장히 특수한 원소 적성을 보유했기에 세피아는 수많은 마법을 주입받으며 컸는데, 때문에 세피아가 보유한 마법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중 하나만 주지. 쩨쩨하게.
“마법 주면 이름 외워드릴게요.”
“…….”
어라. 이 반응은 흔들리는 반응인데?
나는 혹시나 해 조금 더 찔러봤다.
“아예 세피아 님의 동상을 세울게요. 모든 사람이 세피아 님을 칭송하도록요.”
“너, 나 놀리는 거지?”
“그래서 여기엔 왜 오셨어요? 한가하세요?”
“한가한 건 너잖아.”
코웃음을 친 세피아는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불사조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들려서 파견됐지.”
“황금 마탑도 불사조가 탐나나요. 하긴. 불사조는 환상 속의 짐승이니까요. 황금 마탑이 탐낼 만하네요.”
“무슨 소리야. 우리를 다른 놈들과 똑같은 취급하지 마.”
미간을 찌푸린 세피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 말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똑같은 취급하지 말라니, 그럼 다른 이유로 엠버를 찾아왔다는 건가?
이해가 안 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세피아가 보충 설명을 했다.
“저 불사조. 우리 소유거든.”
“세상 모든 게 자신의 것이라니. 과연 황금 마탑이에요. 인류 지식의 정점이네요.”
“그게 아니라, 우리가 관리하던, 불사조, 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셨어야죠. 오해했잖아요.”
“하아.”
깊게 한숨을 쉰 세피아는 곧 머리를 흔들더니,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아무튼. 쟤는 우리가 전부터 관리하던 불사조인데, 모종의 이유로 잃어버렸거든? 그러다 소문이 돌길래 혹시나 해 온 거야.”
“다른 불사조일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확신하나요.”
“그야 인간형으로 변신하니까.”
세피아는 용암 자이로드롭을 타고 노는 엠버를 빤히 응시하다가, 차분히 입술을 뗐다.
“애초에 우리가 쟤를 포획해 관리한 이유가 저거거든. 인간 형태로 변할 수 있어서.”
“저 인간 형태는 불사조의 특징이 아니라 엠버 님의 특징이었나요.”
“엠버…? 이름을 지었나 보네. 뭐, 상관은 없지만. 일단 질문에 대답하자면 저게 개인의 능력인지 종족 전체의 능력인지는 몰라. 불사조는 알려진 게 적으니까. 다만 쟤는 변신할 수 있지. 그거면 된 거 아니야?”
세피아의 말에 대충 이해는 됐다.
확실히, 불사조 전체가 인간으로 변하든 아니면 엠버만 변하든 그건 황금 마탑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황금 마탑은 그거네요. 엠버와 소통을 시도해 보려던 거군요?”
“말 안 해줬는데 용케 눈치챘네.”
“뻔하잖아요.”
불사조는 신비한 존재고, 지능이 높았지만, 그게 말이 통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태초부터 긴 시간이 흘렀지만 불사조와 대화를 했다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간형으로 변하는 불사조? 이걸 발견한 마법사가 ‘소통’의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 시점에서 그 녀석은 마법사 실격이었다.
대화가 통하는 불사조는 가치가 많았다.
대화가 통한다. 그건 요구를 전할 수 있다는 말과 똑같았다.
그리고 요구를 전할 수 있다? 그건 거래가 된다는 것과 똑같았다.
즉.
대화가 통한다면, 불사조의 요구를 들어주고, 원하는 걸 얻는 환경을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는 뜻이었다.
접근은 나쁘지 않았다. 나라도 사람으로 변하는 불사조를 확보한다면 저럴 테니까.
그러나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생겼으니.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질문했다.
“효과는 어땠나요.”
“…….”
“그럴 줄 알았어요.”
황금 마탑의 ‘불사조를 구슬려서, 영생의 깃털을 무한히 얻어내자!’ 작전이 성공했다면 엠버가 저럴 리가 있나.
만일 성공했다면 엠버는 나를 만나자마자 ‘고기파이만 주지 말고 벌꿀주도 내놓으세요’라며 강짜를 부렸을 것이다.
저렇게 입을 꾹 다물고 용암 속에서 노는 게 아니라.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시점에서 황금 마탑의 계획은 시작조차 못 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엠버 님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말을 못 익히는 게 화가 나서 버린 거 아니에요?”
“너 묘하게 신난 목소리다?”
“오해예요.”
“오예겠지.”
근데 그럼 왜 잃어버린 거지.
알았다.
“엠버 님에게 마법을 안 가르쳐줬군요? 엠버 님이 화나서 탈주할 만하네요.”
“너는 세상을 네 기준으로 보는구나.”
“저예요.”
“딱히 말해도 문제는 없긴 해. 습격이야.”
그건 놀라웠다.
그야 황금 마탑이지 않은가.
황금 마탑의 연구 시설을 습격해, 그 안의 내용물을 탈취하다니. 특별한 실력과 담력이 아니면 실행도 못 하는 일이었다.
뭔가 늘어놓고 나니 범인이 누군지 알 거 같기도 하고?
“악신의 교단인가요.”
“걔네 말고 이런 짓을 할 애들이 있어?”
“마왕이라던가요.”
“마왕은 죽었잖아.”
“안 죽었다던데요?”
출처는 백탑주다.
백탑주가 안 죽었다는데, 그럼 안 죽은 거겠지.
새로운 사실에 세피아는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마왕이 불사조를 왜 훔쳐. 죽인다면 모를까.”
“그건 맞아요. 흠. 외신은요?”
“외신은 갑자기 왜. 걔네 아직도 안 꺼졌어?”
“아직 얼쩡대더라고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대답 대신 에서 검을 꺼냈다.
뽀삐가 웃었다.
[이 아가씨는 누구지? 새로운 애인인가?]
“뭐야 이건.”
“외신의 첨병이요.”
[반갑네. 내 이름은 뽀삐네.]
세피아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마치 믿을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한 사람처럼.
잠시 정지했던 세피아는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정말, 저게, 외신의, 첨병이라고?”
“네. 모르셨어요? 뽀삐에게 당한 피해자를 교국으로 보내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줄 알았는데요.”
“…내가 외부 소식엔 관심을 잘 안 가져서.”
“그래요? 그런 거치고는 저에 대해 잘 아시던데요?”
“…….”
“어쨌건 놀라는 걸 보니 기껏 뽀삐 님을 꺼낸 보람이 있네요.”
안에서 호시탐탐 음흉하게 수작 부릴 기회만 노리는 뽀삐에게 쓸모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이 뽀삐놈은 내가 외법을 쓰도록 자꾸 유도하는데, 얼마 전에는 잠을 자는데 옆에 나타나서 귓가에 소곤대더라.
나는 짧게 한탄을 했다.
“뽀삐 님이 자꾸 미로를 탈출하는 복선을 깔아서 문제예요. 이러다 중요한 순간에 제 뒤통수를 치고, 화려하게 부활을 선언하겠죠.”
“그런 녀석을 왜 데리고 다녀. 미친년이야 너?”
[내 말이 그 말이다. 저 미친년의 가장 미친 점은 자기가 만만한 줄 아는 거다. 내가 정신이 아무리 나가도 저 미친년의 뒤통수를 치겠나. 위험하게.]
“조용히 하세요.”
나는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뽀삐를 속 가장 깊은 곳에 가뒀다.
너는 독방 일주일이다. 반성해.
성공적으로 뽀삐를 집어넣은 나는 상념에 잠겼다.
엠버가 악신의 교단과 얽혔다는 부분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악신의 교단 얘네는 전생에 나랑 무슨 연이라도 있었나.
왜 자꾸 엮이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세피아를 돌아봤다.
이러나저러나 황금 마탑은 불사조를 먼저 관찰하고 연구했던 집단이었다.
데이터가 나보다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피아 님. 기왕 온 거 저 좀 도와주세요. 엠버 님에게서 영생의 깃털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깃털? 음.”
세피아는 볼을 톡톡 두들기며 기억을 뒤지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미리 말해두지만 영생의 깃털을 얻는 건 우리도 실패했다?”
“못 얻었다고요? 엠버 님을 몇 년 동안 관리했는데요?”
“한 5년?”
“5년 동안 깃털 하나 못 얻었다고요.”
“그래도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야. 영생의 깃털은 단순히 불사조가 부활할 때 생기는 게 아닌 거 알아?”
당연히 몰랐기에 고개를 젓자, 세피아는 신이 나서 설명을 이었다.
“우리 연구 결과는 그거야. 불사조가 극한의 감정의 고양 상태일 때, 무한히 부활하는 불사조가 그 무한한 삶에서도 지금의 삶에 만족할 때, 그때 등장하는 게 영생의 깃털이라는 것.”
“뭔가 특이하네요 조건이.”
“요컨대. 영생의 깃털이라는 건, 자신의 삶을 만족시켜 준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납득은 됐다.
만족이라.
그럼 지금 내가 해주는 용암 놀이기구가 방향 자체는 맞는다는 건데, 뭔가 부족했다.
이것 만으로는 단물만 쏙 빨아먹히고, 영생의 깃털은 구경도 못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짝 디테일을 바꿔볼까.
만족, 만족, 만족이라….
좋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이나 님? 어디가?”
“괜찮은 생각이 나서요. 기다려 보세요.”
“불안한데.”
한 시간 후.
크리스가 싸늘한 목소리를 냈다.
“루이나 님.”
“네.”
“저게 정말 좋은 생각이 맞아?”
“괜찮지 않나요?”
나는 크리스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
엠버가 조용히 식사를 한다. 실컷 용암 수영을 했더니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내 비장의 무기가 맛있게 고기를 물어뜯는다.
끼에에에엑!
나는 호쾌하게 고기를 먹어치우는 피닉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건 역시 소개팅이지.
이게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