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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열 받는 건 역시 의견은 안 내면서 반대만 하는 인간과 강제로 살아야 되는 거지만, 그와 비슷하게 열 받는 것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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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시험 방식을 자꾸 바꾸는 주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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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예로 매년 바뀌는 교육과정에 신음을 흘리는 수험생이 있었는데, 지금도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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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뀌어버린 기준에 참가자들이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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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부동의 현자냐. 하루마다 기준이 갈대처럼 바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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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체스? 갑자기 이런 건 왜 하라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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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분노했다고 주최자를 들이박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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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교훈 한가지. 사람들의 불만이 많다면 그건 힘이 부족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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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현자를 봐라. 멋대로 시험 문제를 바꾸는데 아무도 항의를 못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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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충분한 힘을 갖춘다면, 마법을 얻기 더 쉬워진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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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놓고 빼앗겠다는 선언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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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죠. 조금 더 공평히 거래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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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기장에 모인 면면들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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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계 마법사인 섬뢰와 6위계 마법사 챠리부터 시작해 최소 5위계의 강자들이 모였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자신 있게 아르카나 체스 기물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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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아르카나 체스는 마법사가 좋아할 법한 보드게임이니까. 전부 자신이 있을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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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오만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믿었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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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들이기에 세상을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해 기어코 법칙을 뒤트는 것이기도 했는데, 아르카나 체스는 머리를 쓰는 게임이니까. 머리를 쓰는 게임에서 자신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마법사는 세상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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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충 빈자리에 앉았다. 정해진 자리가 없기도 했고, 자리는 체스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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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였다. 누군가 내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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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남자였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게 어딘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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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타까움을 담아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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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급하신가요? 아직 시작 안 했으니 갔다 오시는 게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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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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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으르렁댔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듯했는데,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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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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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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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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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체스를 하는 게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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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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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만나신 적 있나요? 제 기억엔 없는 걸 보면 착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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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며칠 전에 하늘로 날린 사람의 얼굴은 외워야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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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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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했더니 나무 거인에게 붙잡혀 하늘로 날아갔던 마법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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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 최후의 10명 안에 들었네. 실력이 제법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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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었어요. 당신이 반드시 저를 만나러 돌아올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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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 뭔지는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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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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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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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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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른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반드시 나를 이기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는데, 딱 그때 타이밍 좋게 요정족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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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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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족은 우리를 훑어보고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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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승자가 나올 때까지 알아서 승자를 가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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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끝으로 요정족은 적당한 곳에 앉았다. 사람들도 체스를 시작했다. 리자른이 앞으로 몸을 숙이며 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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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적은 하나다. 네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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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하늘 구경을 했다고 원한이 깊게 쌓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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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체스? 차라리 잘 됐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술이니 뭐니 하는 애매한 것보다, 이런 확실한 게 백배 낫지.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살면서 아르카나 체스에서 져본 적이 한 번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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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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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멍하니 체스판을 내려다보는 리자른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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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념적인 하루네요. 처음 겪는 경험을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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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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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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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자실한 리자른을 놔두고 나는 다음 상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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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의 처참한 결과를 목격해서 그런가. 참가자들이 움찔 떨며 내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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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당장 나를 피하면 방법이 생긴다고 믿는 거 같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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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자리에 앉아 다리를 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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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파이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천장에 연기를 흘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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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요. 모두 덤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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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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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르는 굉장히 오래 산 요정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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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0년 전. 마왕이 세상을 박살 낼 때도 락토르는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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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때는 반신이라 불릴 만큼의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별개로 락토르는 기나긴 삶을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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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라고 해야 될까. 예상대로라고 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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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현자 락토르는 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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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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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안내해 준 요정족은 짧게 말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이후의 일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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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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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르륵. 원소들이 웃는다. 정령들이 뛰노는 정원은 굉장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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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정령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가지고 논다. 장난기 넘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는데, 아쉽게도 이 세계의 정령은 생명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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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정령은 자연 발생하지도 않았고 살아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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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유하자면 AI가 그나마 비슷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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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에 자아를 불어넣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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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 세계의 정령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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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헤이즈도 정령술에서 영감을 받아 적영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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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헤이즈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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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런 정령들은 총 두 가지 경로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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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정령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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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세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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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곳의 정령들은 세계수가 만든 정령들일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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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현자는, 딱히 마법을 익히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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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걷자 곧 나무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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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안으로 들어가자 텅 빈 실내가 나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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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중세랜드에서 벌써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다니. 과연 현자다.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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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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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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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의 등장에 나는 나무줄기로 의자를 만들며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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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대접을 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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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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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만들어준 의자에 앉는 상대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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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머리카락과 잿빛 눈동자가 인상 깊은 남자였다. 그 어딘가 고독해 보이는 색에 나는 상대의 삶을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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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깨닫고, 모든 걸 깨달았기에 홀로 살아온 요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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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현자 락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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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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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르는 무감정하게 나를 응시했다. 다만 초점이 어긋났다. 내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을 보는 듯한 눈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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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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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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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마법을 익히는 건 즐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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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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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에게 감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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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늘 하고 있는데, 별개로 그 의미심장한 말투는 뭔가요.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아는 현자의 말이라 그냥 넘기기 힘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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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튼은 대단한 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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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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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정족. 묘하게 어딘가 엇나간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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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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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녀석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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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르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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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돌을 원해서 왔겠지? 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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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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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현자는 현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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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할지 정확히 알아채고 회피기동을 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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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입 하는 게 어떤가요. 열심히 준비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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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술이 뭔지 다시 배우는 것이 좋겠군. 맛있는 술을 가져오랬지, 누가 불꽃쇼를 하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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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락토르 님이 좋아하는 게 이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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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돌 제작법이다. 받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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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르가 손가락을 튕겼다. 직후 내 머릿속에 지식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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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잡한 현자의 돌 제작법을 헤아리다가, 재료의 목록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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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의 깃털, 하늘의 눈동자, 별의 씨앗, 세계수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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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같이 얻기 까다로운 것만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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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현자의 돌을 하나밖에 못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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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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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료를 구하는 게 가장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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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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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하트 파편이라니, 이럴 거면 차라리 원본 드래곤 하트를 얻는 게 낫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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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보다 파편을 얻는 게 훨씬 쉽지. 거기에 원본을 얻는다 해도 그걸 인간이 사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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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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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락토르를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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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락토르가 주는 건 제작법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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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법과 얻기 어려운 재료까지 하나 준다고 해 사람들이 몰린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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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은근한 시선에 락토르는 이번엔 반대쪽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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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채지 않아도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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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래곤 하트 파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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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계수에 열매가 맺힌다. 가져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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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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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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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있게 ‘가장 얻기 어려운 재료는 내가 주겠다’라는 식으로 말해 드래곤 하트 파편이라도 주는 줄 알았더니, 세계수의 열매가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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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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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한 번 맺히는 열매다. 이런 걸 쉽게 구할 수 있을 거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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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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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납득한 나는 적당히 물러났다. 세계수의 열매도 충분히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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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어제부터 떠올랐던 의문을 억누르는 데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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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부터 떠올랐던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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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에게 현자의 돌을 주려는 이유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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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현자의 돌 제작법을 준다는 둥, 아르카나 체스 우승자를 가리라는 둥, 명백히 누구 한 명을 노리고 조건을 거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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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락토르는 자신의 무릎에 앉는 정령을 쓰다듬다가,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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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꿈을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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