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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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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 사라지고 벌써 1000년이 지났다.
1000년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나라가 몇 개나 망하고 다시 생겨도 안 이상한 시간.
하여간.
그래서 한참 전에 사라진 마왕을 왜 지금 찾고 있냐고 묻는다면, 간단했다.
과거 용사의 희생으로 인류는 마왕을 물리쳤다.
파란 하늘을 되찾았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그런 얘기가 돌았다.
‘마왕이 아직 살아있는 게 아닌가’라는 얘기가.
처음 저 말이 나왔던 건 단순히 공포 때문이었다.
신처럼 군림하던 초월자들을 전부 찢어 죽인 마왕이었다. 초월자들이 뭉치고 난 뒤로는 마왕도 쉽게 반신들을 처리하지 못했지만, 결국 마왕은 모든 초월자를 없애버린 데 성공했다.
그런 마왕이 죽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러한 소문은 용사 파티원이 ‘마왕은 죽었다’고 확정을 내줘 사그라들었는데, 언젠가부터였다.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 건.
‘저 말이 거짓말이고, 사실은 마왕이 살아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선 동기는 충분했다. 만약 마왕이 죽지 않았는데 이걸 사실대로 말한다? 바로 대규모 자살 파티가 벌어졌다.
용사 파티원의 입장에서, 그리고 인류의 지도자 입장에서 무조건 숨겨야 되는 것이다.
물론 동기만으로 범인을 추측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동기만으로 범인을 잡는다면 여름날의 인간은 모두 살인죄로 감옥에 집어넣어야 될 테니까.
이걸 이 세계 사람들이라고 모르진 않았다.
따라서 사람들이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
무슨 근거냐고?
간단했다.
그냥 마왕의 흔적이, 종종, 대놓고, 세상을 어지럽혔다.
나는 마왕과의 최종 결전이 벌어졌던 곳을 살폈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바다에 파도가 친다. 굉장히 평온했다. 도저히 과거 이곳에서 승천자 둘이 사투를 벌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만 보면 그랬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심연이 열렸네요.”
“심해가 열렸으니까 비슷하긴 해.”
나는 바다의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바다 한가운데.
그곳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자연에 저런 흔적이 남는지 감도 안 잡혔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승천자라는 건 검림을 세운 로즈릭 클라클도 그렇고, 하나같이 세계를 뒤트는 놈들이라는 걸 말이다.
“하강할게요.”
나는 피닉스에게 바다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갈 걸 명령했다.
피닉스가 끝없이 하강한다. 거의 내핵에 도착하는 게 목적인 듯 쉬지 않고 계속.
그렇게 수천 미터를 하강한 나는 기어코 바다의 바닥에 도착했다.
“루이나 님. 여기 기분 나빠.”
“저도요.”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바다를 갈랐던 모세의 기분이 이럴까. 내면을 드러낸 바다라는 건,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우오오오―. 깊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근처에 해양 몬스터라도 있나 보다.
저놈들과 싸워봤자 귀찮기만 하고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시간을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뜻이다.
나는 재빨리 바닥을 조사했다.
습기를 머금은 바닥 군데군데에는 해양 생물과 해양 몬스터의 사체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바다에 구멍이 뚫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놈들이 종종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거 말고 다른 특이점이 뭐가 있냐면, 음.
“누가 쓰레기를 버리고 갔네요. 여기 혹시 관광지인가요?”
“몰랐어 루이나 님? 여기 유명하잖아. 고위 마법사가 운영하는 상회에서 아예 코스별로 준비돼 있을걸?”
“진짜였다고요.”
기껏 마왕의 마지막 행적지까지 왔건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벌써 성과를 얻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아예 꽝이니 섭섭했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백탑주는 내게 마왕의 조사를 부탁했다.
성배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굉장히 높게 사는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마왕 조사라는 게 무엇인가.
마왕의 정체가 마계에서 넘어온 승천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즉 백탑주가 요구하는 건 마왕의 정체가 아니었다.
그러면 백탑주가 마왕의 생존 여부를 원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근본적으로는 저걸 원하는 게 맞았으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아니었다.
뭐, 마왕이 생존했다는 증거를 찾으면 좋지. 그러면 베스트긴 했다.
허나 그러기 쉽지 않았다.
마왕이 살아있다는 걸 밝히려면 하나밖에 없었다. 마왕의 생존을 직접 확인하는 것.
근데 승천자인 마왕의 생존을 확인하는 순간 이미 목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의뢰? 고유 마법을 수십 개 퍼줘도 안 받았다. 일단 살아야 내 목표를 이루든 말든 했으니까.
백탑주도 그걸 잘 알았기에 양심껏 고유 마법 하나치의 의뢰를 내게 맡겼다.
조금 전 사람들이 마왕의 생존을 의심하는 게 마왕의 흔적이 종종 세상을 어지럽혀서라고 하지 않았나?
백탑주가 조사를 요구한 건 이쪽이었다.
승천자의 의지는 죽어서도 세상을 뒤트는 건지, 아니면 살아있기에 세상을 뒤트는 건지는 몰라도, 어쨌건 마왕의 권능이 확실한 이상 현상들, 사람들이 부르길 마왕의 흔적들은 종종 세상에 등장했다.
그믐달이 뜨는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그림이 살아 움직여 집주인의 목을 졸라버렸다든가.
인형에 질려서 버렸더니 복수를 하러 돌아온다든가.
이런 해피 중세랜드에 맞지 않는 괴기 현상들은 전부 마왕의 영향이었는데, 다행히 괴기 현상이 매번 발생하는 건 아니었다.
몇십 년 단위로 괴기 현상이 발생하는 주기가 찾아왔고, 백탑주가 의뢰를 맡긴 걸 봐선 슬슬 괴기 현상 주기인 듯했다.
“그럼 루이나 님은 괴담을 해결하고 다녀야 돼?”
“그건 아니에요.”
백탑주가 원하는 걸 결국 마왕의 생존 여부였다. 그러나 괴담? 1000개를 해결해도 괴담은 괴담이었다. 마왕과 연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마왕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괴담보다는 다른 쪽에 집중해야 됐다.
“크리스 님.”
“응?”
“크리스 님이 활약할 때예요.”
“그러니까 나는 서큐버스가 아니라니까.”
이 괴기 현상 주기 때는 괴담만 등장하는 게 아니었다. 마족도 마계에서 넘어와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이 마족을 찾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마족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마족은 정신 생명체였는데, 인간에게 빙의하는 녀석들을 찾는 법? 빙의된 걸로 추정되는 인간을 때려죽이는 것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해피 중세랜드의 마녀사냥은 이런 이유로 탄생했다.
다행히 마족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매주기 때마다 많아 봐야 수십 명? 이 정도가 현계로 넘어왔다.
덕분에 여태 인류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고작 수십 명의 마족에게 당하기엔 인류의 저력이 너무 대단했다.
다만 덕분에 나는 곤란해졌다.
마족이 적다는 건 찾기가 힘들다는 거였고, 그건 마족을 찾아내서 데려오라는 백탑주의 의뢰를 수행하기 힘들다는 의미가 됐으니까.
“마왕의 마지막 행적지에 관심이 생긴 마족들이 혹여나 구경이라도 하러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네요.”
“루이나 님은 가끔 말도 안 되게 날로 먹으려는 경향이 있어.”
“사람이 어떻게 매번 익힌 것만 먹나요. 날로도 먹어야죠.”
나는 팔짱을 꼈다.
애초에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
마족은, 모든 마(魔)의 생물은 마왕의 하수인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족이 마왕과 똑같은 목적을 가지는 건 아니었다.
마왕은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살육자였다. 마왕에게 타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왕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생명체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마왕은 순수하게 생명체를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마왕의 타협점이라고 해봤자 상대가 알아서 자살하는 정도가 끝이었다.
하지만 마족?
얘네는 인간을 절대 죽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마족은 이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애호했다.
그들은 감정을 먹고 자라났다. 감정을 섭취하며 희열을 느꼈고, 감정을 먹으며 성장했다.
짧은 인생을 격렬하게, 추악하게, 고결하게 사는 인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마족을 찾으려면 이런 오지의 바닷가에 오면 안 돼요. 감정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격전지로 가야 돼요.”
음식점으로 비유하면 지금 나는 제육백반을 먹고 싶어 하면서 피자집에 갔다고 할 수 있었다.
내 말에 크리스가 웃었다.
“루이나 님. 빨리도 깨닫는다.”
“감정의 격전지가 대체 어디일까요.”
“그냥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제국의 수도쯤이면 되겠지.”
“물러요.”
나는 크리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크리스가 내 손가락을 잡았다.
“루이나 님은 이럴 때마다 이상한 짓 하는 거 알아? 나 불안해.”
“제가 언제 그랬나요.”
“정확한 예시를 들어줘?”
“이번엔 지극히 평범해요. 믿어주세요.”
“뭐길래 그래.”
나는 크리스를 손짓해 불렀다.
내게 다가온 크리스의 귓가에 방금 떠올린 계획을 속삭이자, 크리스는 얌전히 얘기를 다 들은 후 입을 열었다.
“내가 이상한 짓 할 거 같다고 했지.”
*
데뷔탕트. 그것은 프랑스 사교계에서 비롯된 단어였다.
사회 적령기가 된 귀족 처녀들이 공식적으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게 데뷔탕트의 뜻이었다.
이 사교계라는 곳은 굉장히 살벌했다.
순진한 시골 귀족?
도시 귀족의 음흉한 돌려 말하기에 그대로 탈탈 털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었다.
“루이나 님. 역시 그만두자. 루이나 님이 사교계에서 활동을 어떻게 해.”
“저만 믿으세요.”
그런 피를 흘리지 않는, 혓바닥 전쟁터에.
루이나 출격 준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