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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 사라지고 벌써 1000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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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나라가 몇 개나 망하고 다시 생겨도 안 이상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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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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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참 전에 사라진 마왕을 왜 지금 찾고 있냐고 묻는다면,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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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용사의 희생으로 인류는 마왕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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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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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그런 얘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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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 아직 살아있는 게 아닌가’라는 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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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저 말이 나왔던 건 단순히 공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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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처럼 군림하던 초월자들을 전부 찢어 죽인 마왕이었다. 초월자들이 뭉치고 난 뒤로는 마왕도 쉽게 반신들을 처리하지 못했지만, 결국 마왕은 모든 초월자를 없애버린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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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왕이 죽었다? 사람들이 믿지 못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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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러한 소문은 용사 파티원이 ‘마왕은 죽었다’고 확정을 내줘 사그라들었는데, 언젠가부터였다.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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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이 거짓말이고, 사실은 마왕이 살아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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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동기는 충분했다. 만약 마왕이 죽지 않았는데 이걸 사실대로 말한다? 바로 대규모 자살 파티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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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파티원의 입장에서, 그리고 인류의 지도자 입장에서 무조건 숨겨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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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동기만으로 범인을 추측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동기만으로 범인을 잡는다면 여름날의 인간은 모두 살인죄로 감옥에 집어넣어야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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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이 세계 사람들이라고 모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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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람들이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명확한 근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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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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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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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왕의 흔적이, 종종, 대놓고, 세상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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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왕과의 최종 결전이 벌어졌던 곳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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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까지 펼쳐진 바다에 파도가 친다. 굉장히 평온했다. 도저히 과거 이곳에서 승천자 둘이 사투를 벌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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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거기까지만 보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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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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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연이 열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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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가 열렸으니까 비슷하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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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의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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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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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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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짓을 하면 자연에 저런 흔적이 남는지 감도 안 잡혔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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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자라는 건 검림을 세운 로즈릭 클라클도 그렇고, 하나같이 세계를 뒤트는 놈들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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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강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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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닉스에게 바다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갈 걸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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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가 끝없이 하강한다. 거의 내핵에 도착하는 게 목적인 듯 쉬지 않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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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천 미터를 하강한 나는 기어코 바다의 바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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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여기 기분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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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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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바다를 갈랐던 모세의 기분이 이럴까. 내면을 드러낸 바다라는 건,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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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오―. 깊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근처에 해양 몬스터라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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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들과 싸워봤자 귀찮기만 하고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시간을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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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빨리 바닥을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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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를 머금은 바닥 군데군데에는 해양 생물과 해양 몬스터의 사체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바다에 구멍이 뚫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놈들이 종종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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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말고 다른 특이점이 뭐가 있냐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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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쓰레기를 버리고 갔네요. 여기 혹시 관광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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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어 루이나 님? 여기 유명하잖아. 고위 마법사가 운영하는 상회에서 아예 코스별로 준비돼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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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였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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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마왕의 마지막 행적지까지 왔건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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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성과를 얻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아예 꽝이니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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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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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주는 내게 마왕의 조사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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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굉장히 높게 사는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마왕 조사라는 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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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정체가 마계에서 넘어온 승천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즉 백탑주가 요구하는 건 마왕의 정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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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백탑주가 마왕의 생존 여부를 원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근본적으로는 저걸 원하는 게 맞았으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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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마왕이 생존했다는 증거를 찾으면 좋지. 그러면 베스트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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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러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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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 살아있다는 걸 밝히려면 하나밖에 없었다. 마왕의 생존을 직접 확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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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승천자인 마왕의 생존을 확인하는 순간 이미 목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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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뢰? 고유 마법을 수십 개 퍼줘도 안 받았다. 일단 살아야 내 목표를 이루든 말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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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주도 그걸 잘 알았기에 양심껏 고유 마법 하나치의 의뢰를 내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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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사람들이 마왕의 생존을 의심하는 게 마왕의 흔적이 종종 세상을 어지럽혀서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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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주가 조사를 요구한 건 이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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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자의 의지는 죽어서도 세상을 뒤트는 건지, 아니면 살아있기에 세상을 뒤트는 건지는 몰라도, 어쨌건 마왕의 권능이 확실한 이상 현상들, 사람들이 부르길 마왕의 흔적들은 종종 세상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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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이 뜨는 밤에 자려고 누웠더니 그림이 살아 움직여 집주인의 목을 졸라버렸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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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에 질려서 버렸더니 복수를 하러 돌아온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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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해피 중세랜드에 맞지 않는 괴기 현상들은 전부 마왕의 영향이었는데, 다행히 괴기 현상이 매번 발생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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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단위로 괴기 현상이 발생하는 주기가 찾아왔고, 백탑주가 의뢰를 맡긴 걸 봐선 슬슬 괴기 현상 주기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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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루이나 님은 괴담을 해결하고 다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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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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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탑주가 원하는 걸 결국 마왕의 생존 여부였다. 그러나 괴담? 1000개를 해결해도 괴담은 괴담이었다. 마왕과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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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마왕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괴담보다는 다른 쪽에 집중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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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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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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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님이 활약할 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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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서큐버스가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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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기 현상 주기 때는 괴담만 등장하는 게 아니었다. 마족도 마계에서 넘어와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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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마족을 찾는 데 집중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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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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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마족은 정신 생명체였는데, 인간에게 빙의하는 녀석들을 찾는 법? 빙의된 걸로 추정되는 인간을 때려죽이는 것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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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중세랜드의 마녀사냥은 이런 이유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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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마족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매주기 때마다 많아 봐야 수십 명? 이 정도가 현계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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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여태 인류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고작 수십 명의 마족에게 당하기엔 인류의 저력이 너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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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덕분에 나는 곤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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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이 적다는 건 찾기가 힘들다는 거였고, 그건 마족을 찾아내서 데려오라는 백탑주의 의뢰를 수행하기 힘들다는 의미가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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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마지막 행적지에 관심이 생긴 마족들이 혹여나 구경이라도 하러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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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은 가끔 말도 안 되게 날로 먹으려는 경향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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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떻게 매번 익힌 것만 먹나요. 날로도 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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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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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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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은, 모든 마(魔)의 생물은 마왕의 하수인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족이 마왕과 똑같은 목적을 가지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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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살육자였다. 마왕에게 타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왕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생명체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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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순수하게 생명체를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마왕의 타협점이라고 해봤자 상대가 알아서 자살하는 정도가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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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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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는 인간을 절대 죽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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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반대였다. 마족은 이 세상에서 인간을 가장 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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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감정을 먹고 자라났다. 감정을 섭취하며 희열을 느꼈고, 감정을 먹으며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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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을 격렬하게, 추악하게, 고결하게 사는 인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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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을 찾으려면 이런 오지의 바닷가에 오면 안 돼요. 감정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격전지로 가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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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으로 비유하면 지금 나는 제육백반을 먹고 싶어 하면서 피자집에 갔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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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크리스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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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빨리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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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격전지가 대체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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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제국의 수도쯤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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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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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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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크리스가 내 손가락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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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은 이럴 때마다 이상한 짓 하는 거 알아? 나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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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언제 그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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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예시를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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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지극히 평범해요.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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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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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를 손짓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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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가온 크리스의 귓가에 방금 떠올린 계획을 속삭이자, 크리스는 얌전히 얘기를 다 들은 후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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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상한 짓 할 거 같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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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탕트. 그것은 프랑스 사교계에서 비롯된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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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적령기가 된 귀족 처녀들이 공식적으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게 데뷔탕트의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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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교계라는 곳은 굉장히 살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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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시골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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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귀족의 음흉한 돌려 말하기에 그대로 탈탈 털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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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님. 역시 그만두자. 루이나 님이 사교계에서 활동을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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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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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피를 흘리지 않는, 혓바닥 전쟁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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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출격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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