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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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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남자는 다리를 꼰 상태로 나를 응시했다.

허락 없이 합석한 만큼이나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는데, 나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잔향에 입맛을 다셨다.

딱 봐도, 고위 마법사였다.

저런 실력자가 마력 갈무리를 못 할 리 없으니 이건 일부러 흘리는 거였다. 대화가 쉬워지도록 말이다.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고유 마법을 줄 수 있다니.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이다.”

백발의 남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식으로.

나는 마법을 거래한다는 걸 숨긴 적이 없었다. 거기에 워낙 소문도 많이 퍼졌다. 따라서 저 남자가 마법 거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그리 이상하진 않았지만….

뭔가 수상했다.

마법사에게 고유 마법은 모든 것이었다. 죽기 직전이라 마지막 도박을 하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 어떤 마법사도 차라리 죽이라며 고유 마법을 포기하지 않을 거였다.

그런데 저 백발의 남자는 고유 마법을 순순히 주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주는 조건도 ‘부탁을 조금 들어주면’이라고?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불량 의뢰인 거 같은데, 실제로는 어떨까.

“못 믿는 눈치군.”

“믿기에는 제가 정보가 너무 없어서요.”

“내가 누군지 모르나?”

“통성명을 안 했는데 어떻게 아나요.”

“네가 마법사라면 지아블 파트르나라는 이름을 모르진 않을 터.”

누군가 했더니 백탑주였구나.

마탑. 그것은 한가지 목표에 이끌린 수많은 마법사들의 모임이었다.

인류의 상아탑이자 지식의 정점인 황금 마탑은 ‘별의 운명을 튼다’라는 목표를.

아델리안의 아이들이 마탑주를 맡은 청탑은 ‘인류에게 이로운 마법을 개발한다’라는 목표를.

은근슬쩍 나랑 자꾸 엮이는 적탑은 ‘마법의 끝을 본다’라는 목표를 가졌는데, 그래서 백탑은 어떤 곳이냐.

간단했다.

‘세계의 비밀을 파헤친다.

정말, 딱 마법사들이 좋아할 법한 목표였다.

상황 파악을 끝낸 나는 천천히 질문했다.

“제게 백탑주님의 고유 마법을 양도하겠다는 건가요?”

“그럴 리가. 어차피 주더라도 네가 감당 못 할 텐데?”

“그건 해봐야 알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것처럼 내가 7위계 고유 마법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봐야 알았다.

그러니 확인하게 한 번 줘보세요.

맛만 볼게요.

“그럼 고유 마법을 주겠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요. 다른 사람의 고유 마법이라도 주겠다는 건가요?”

“정확히 이해했군.”

나는 지아블의 인간관계를 몰랐다.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대략 알았지만,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관리하는지, 무슨 사람들과 연관됐는지, 누구와 인연을 맺었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타인의 고유 마법을 주겠다니, 무슨 삶을 살았길래 그런 게 가능한지 감도 안 잡혔다.

협박이라도 했나? 아니면 큰 은혜를 베풀었나?

어쩌면 죽기 직전의 고위 마법사가 휘하에 있을지도 몰랐다.

죽기 직전이고 지아블에게 충성하는 인간이라면, 확실히 고유 마법을 넘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아블의 정체는 의심하지 않았다. 7위계 마법사가 한가하게 백탑주를 사칭하고 다니지는 않을 거였으니까.

다만 지아블의 진위는 의심됐다.

그래서.

왜 나랑 이런 거래를 하려는 걸까.

상념을 끝낸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저에게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 건가요?”

“조사를 해줬으면 하네.”

“구체적으로 무엇을요?”

내 말에 지아블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은 왜 가리키지.

신이라도 조사해 달라는 건가?

이해가 안 돼 고개를 갸웃거리자, 지아블이 나직이 말을 꺼냈다.

“꼭 하늘에 신만 있으란 법은 없지.”

“우주도 있긴 해요.”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하네. 대침공의 원흉을 파헤치는 것.”

초대 황제가 신화의 시대를 끝낸 뒤로도 인류에겐 여러 차례 위기가 발생했다.

대침공도 그중 하나였다.

진짜 성배가 완전히 소모됐을 정도의 위기인 만큼 아직도 사람들은 대침공의 후유증에서 못 벗어났는데, 이 대침공의 원흉이 누구냐.

그건 바로―.

“마왕을 조사하는 거라면, 고유 마법을 대가로 지불하기엔 충분하지 않나?”

마의 왕이자 마족의 정점.

마왕.

확실히.

이건, 고유 마법쯤은 지불하지 않으면 들어주기 싫은 부탁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은 초대 황제의 외신 퇴출쇼였다.

신화의 시대를 끝내고 필멸자의 시대를 연 초대 황제 덕에 지금의 인류가 존재하는 거니까. 당연히 초대 황제의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것도 현재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이 아니라,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졌다.

그건 여느 때와 똑같은 날이었다.

농부가 농사를 짓고, 사냥꾼이 숲을 쏘다니고, 마법사가 비마법사를 불태우고, 기사는 피를 흘리는, 그런 평범한 날.

그리고 알겠지만 사건은, 딱 이럴 때 발생하곤 했다.

성력 1325년 6월 12일.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민주적인 절차로 지도자를 뽑던 한 국가가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말았다.

소문이 느린 해피 중세랜드였지만, 그럼에도 멸망의 날 모두가 깨달았다. 대체 누가 이 세계를 망가트리려 하는지, 누가 자신들의 적인지.

그날. 잿더미로 하늘이 뒤덮인 날.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에게 인류의 적은 폐허가 된 왕국 꼭대기에서 포효를 내질렀다.

그게, 마왕과 인류의 첫대면이었다.

마왕은 인류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오직 파괴만을 원했다. 애초에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드높은 격에 착각할 수 있지만, 녀석은 굳이 따지면 본능에 충실한 짐승에 가까웠다.

인류를 멸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는다.

오직 그 목적을 위해 마왕은 반년 만에 인류의 거점 절반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이 말에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니, 대마법사 아델리안, 몽장(夢匠) 그레이스, 천검(千劍) 실버즈라, 현자 락토르, 잠룡 천백은 뭘 했길래 세상이 그대로 박살이 나?’라고.

그에 대한 답은 심플했다.

우선 현자 락토르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직접 만나서 알지 않나.

방금 나열한 사람 중 아델리안을 제외하면 인류의 위기가 발생해도 나설 초월자가 없다는걸.

그리고.

설사 그들이 나섰어도, 못 막았을 가능성이 컸다.

왜냐하면.

수명의 한계가 사라진 초월자들의 세대교체가 발생한 건, 마왕이 앞선 초월자들을 전부 찢어 죽였던 덕이 컸으니까.

반신들이 승천의 자격을 박탈당해 땅에 떨어졌다. 왕국은 불탔으며, 제국은 인류 최후의 방어선이 됐다.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빛을 잃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인류가 절벽 끝에 몰렸을 때 피어오른 희망의 불씨.

그 다섯 명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용사 파티’라고.

“즉 역대 지성체들은 뛰어난 소수에게 구원을 외주주며, 근근이 살아왔다는 뜻이에요.”

“루이나 님이 나한테 돈 벌어오라고 시키는 것처럼?”

“제가 언제 시켰나요. 크리스 님이 멋대로 저를 팔아먹은 거잖아요.”

나는 뻔뻔하게 헛소리를 하는 크리스를 제지했다.

이런 건 즉시 바로잡지 않으면 곤란해졌다. 저런 헛소리를 방치하면, 이 금화의 정기를 빨아먹는 서큐버스가 어느새 슬금슬금 날 다 털어먹기 위해 달려들 테니 말이다.

“루이나 님. 내가 아무리 돈을 좋아해도 동료를 털어먹지는 않아.”

“그러니까요. 저도 마법을 아무리 좋아해도, 동료의 마법은 절대 안 뺏어요.”

크리스가 나를 빤히 응시한다. 나도 크리스를 빤히 응시했다.

크리스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크리스가 말했다.

“루이나 님 유머 감각이 뛰어나네. 간만에 크게 웃었어.”

“거울 치료를 해줬어요. 어때요?”

“근데 나는 진짜 동료의 돈을 안 털어먹는데?”

“근데 저도 진짜 동료의 마법을 안 털어먹어요.”

[기잔치다. 기잔치.]

크리스와의 대화를 마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소금 냄새가 코를 찌른다. 특유의 묵직한 공기가 피부를 때리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못 참고 중얼거렸다.

“바다다.”

“루이나 님. 왜 소심히 말해. 당당히 외쳐.”

“쉽지 않아요.”

해피 중세랜드에서 ‘바다다’를 외치는 건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느낌이라서. 하기 어려웠다.

대륙 최남단. 바다와 맞닿은 네트라 왕국에 도착한 나는 가까운 여관에 들어갔다.

해안 마을에 도착했을 때 뭐부터 해야 되는지는 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여기 생선구이와 벌꿀주를 주세요.”

“루이나 님도 참 한결같아.”

“크리스 님도 마음껏 주문하세요. 제가 살게요.”

“그 말, 야영지가 아니라 마을에서 듣는 거 처음이야.”

이번에야말로 마음껏 음식을 주문한 크리스는 금세 나온 벌꿀주를 홀짝이며 내게 질문했다.

“그래서 루이나 님. 다른 사람은 놔두고 왜 나만 데려왔어?”

현재 내 일행은 둘밖에 없었다.

적영과 크리스. 이렇게 둘.

이런 소규모 인원이 된 건 마왕의 흔적 조사라는 귀찮은 일에 남들을 데려오기가 살짝 미안해서였는데, 실제로 내 얘기를 들은 레온과 제리는 바쁘다며 마법학교에 남았다.

물론 크리스도 바쁘다며 거절하려 했지만, 크리스만은 억지로 데려왔다.

왜냐하면.

“크리스 님은 마왕 추적에 도움이 되잖아요.”

“내가? 왜?”

“서큐버스는 유명한 마왕의 하수인이잖아요.”

내 말에 납득을 한 걸까. 크리스는 얌전히 벌꿀주를 마시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루이나 님 요즘 힘든 걸까.”

하여간.

나는 턱을 괴며 창문 밖을 봤다.

마왕이라.

좋아.

빨리 조사를 마치고, 고유 마법이나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