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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섬을 마법사들의 비밀기지라 했지만, 굳이 따지면 천공의 섬은 마법사들의 거점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있긴 한데, 주축은 아니라고 해야 되나.
근데 이게 당연했다. 마법사들에게는 마법 도시 아르기넬이 있으니까. 그런 녀석들이 천공의 섬까지 욕심내면 벌받았다.
하여간 그래서 천공섬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참 애매했다.
8위계 연금술사 톨트피어가 만든 섬이니 막연히 연금술사가 주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연금술사들은 천공의 섬을 자랑스러워했으나, 정작 직접 사는 건 안 좋아했다.
연금술 재료를 구하기 불편한 게 원인이었는데, 때문에 천공의 섬은 굉장히 의외의 인물이 차지하고 말았다.
바로, 상인들이.
“거기 예쁜 아가씨! 이거 좀 보고가!”
노점상의 호객 행위에 나는 멈춰 서서 몸을 돌렸다. 노점상은 자판에 이것저것 늘어놓은 상태였는데, 다가가자 노점상이 웃으며 물건을 추천했다.
“천공섬에만 존재하는 구름 머리핀이라네. 어떤가? 예쁘지 않나?”
“그래요? 저는 또 연금 마법으로 바람 원소와 물 원소를 일정 비율로 섞은 후, 그걸 ‘고정’한 줄 알았는데요.”
“…….”
“하나 주세요.”
여행지에선 원래 효율을 챙기는 게 아니었다. 거기에 연금 마법으로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값을 치른다는 느낌으로 구매했다.
나는 구름 머리핀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옆에서 나를 따라다니던 적영의 머리에 꽂아줬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네요.”
“아니. 루이나 님 그거 여자였어?!”
“깜짝이에요.”
그리고 옆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크리스에 눈을 깜빡였다.
크리스는 적영을 가리키며 입을 떡 벌렸는데, 그런 크리스에 내가 오히려 더 놀랐다.
“크리스 님. 무슨 소리예요. 적영은 당연히 여자잖아요.”
“저 무개성 목각 인형에서 어떻게 여자를 떠올려. 기껏해야 무성이라고 생각하지.”
“행동이 여자잖아요.”
적영이 여태까지 보여준 모습이 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니. 같이 지낸 적영이 섭섭해할 행동이었다.
허나 내 말에 크리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더 이상해. 어느 부분이 여자라는 거야? 또 루이나 님이 억지 쓰는 거 아니야?”
“저는 살면서 억지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요.”
점점 나에 대한 이상한 프레임이 늘어나는 기분이면 착각일까. 나는 올바르고 공평하고 선한 행동만 반복하는데, 이런 내 선의를 주변은 몰라줬다.
이게 다크 히어로의 숙명인가.
이런이런.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나.
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애가 호기심이 많잖아요.”
“처음 보는 것마다 건드리고 다니긴 했지. 마법학교 학생들도 자꾸 깜짝 놀라게 하고.”
“남자였으면 거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사고를 쳤어요.”
“진짜 그럴듯한데?”
어디 한 번 떠들어보라는 식으로 잔뜩 팔짱을 끼고 있던 크리스의 팔짱이 부서졌다. 내 말에 납득을 한 것이다.
이제야 좀 얘기가 통하겠구만.
짧게 생각하던 크리스는 곧 검지를 들며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게? 조각상 모델이 매일 데리고 다니는 수행비서 마법이 남성형이면, 수익이 떨어지겠네?”
아니네. 얘기가 안 통하네.
크리스 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점점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거 같아서 두려워졌다.
크리스가 적영을 빤히 쳐다봤다. 적영을 이리저리 훑던 크리스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루이나 님은 적영이 여성형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이런 무성의한 목각 인형에 가둬둔 거야?”
“무성의하다뇨. 이래 봬도 일반 나무 병사랑 차이점을 줬는데요.”
“차이만 주면 어떻게 해. 예쁘게 해줘야지.”
“굳이요?”
뭐, 해주려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방금 말한 대로 굳이였다.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다르다. 누구에겐 좋은 일도 누구에겐 관심도 없는 일이었다.
마치 내가 검술에 관심이 없지만, 레온은 아닌 것처럼.
적영도 똑같았다.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 적영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적영은 역사상 최연소 대마법사(예정)인 내 사역마다. 마법 외의 것? 관심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내가 만약 적영의 외관을 예쁘게 만들어주겠다고 나섰으면, 적영은 화를 내며 한마디 했을 거다.
[주인님. 나 바꿔줘.]
라고 말이다.
…….
……?
크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루이나 님. 그거 슬슬 재미없어.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야.”
“크리스 님.”
“응?”
“방금은 제가 아닌데요?”
[주인님. 나 지금 몸 마음에 안 들어. 바꿔줘.]
크리스와 나는 동시에 적영을 바라봤다. 그러자 적영이 말을 이었다.
[이 성의 없는 목각 인형은 너무 하잖아.]
“적영이 사람 말을 한다!”
“꺄아아아아악!”
크리스가 비명을 지른다. 나도 예상 밖의 상황에 화들짝 놀랐다.
적영 얘 말도 할 수 있었어?
[주인님이 자꾸 나인 척 말해서, 화나서 익혔어.]
“저런.”
나는 진심을 담아 적영을 토닥여줬다.
역시 모든 성장은 분노가 동반돼야 했다. 이것 봐라. 원동력이 확실하니 빨리 성장하지 않나.
“즉 이 모든 건 제 설계라는 거죠.”
“루이나 님.”
“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적영 몸이나 만들어주자.”
“네.”
우리는 여관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 들어간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겨 질문했다.
“크리스 님. 근데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야 돼서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게 제일 중요한데 무슨 소리야.”
크리스는 출발하기 전 맡긴 짐을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에서 이것저것 꺼내 여관방에 쌓자, 크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신중한 표정으로 그중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나는 크리스가 테이블 위에 올린 물건을 확인했다.
테이블 위에는 은발 녹안의 여자 조각상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말했다.
“제 조각상은 왜 꺼냈나요.”
“기다려 봐.”
크리스는 신중히 장고에 들어갔다. 깊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오에 들어간 승려처럼. 어딘가 현기마저 느껴지는 눈빛을 뿌리던 크리스는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내 조각상 옆에 놨다.
그건 적발적안의 여자 조각상이었다.
크리스는 내 조각상과 적발적안의 여자 조각상을 번갈아 관찰하다가, 깊은 탄식을 뱉었다.
그다음 천천히 입술을 뗐다.
“루이나 님이랑 얼굴합이 맞으려면, 어지간한 디자인이 아니면 힘들겠는데?”
“크리스 님.”
“응?”
“대체 뭘 하고 계신 건가요.”
언젠가 크리스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 서큐버스는 어릴 적 굶어 죽을 뻔했던 경험을 겪었고, 그래서 금화에 집착하는 거라고 말이다.
그게 큰 착각이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크리스는 얘는 가면 갈수록 이상해지네. 누구 탓이야 이거.
내 반응에 크리스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루이나 님. 당연히 우리 사업의 다음 먹거리를 찾는 거지. 이걸 몰라?”
“크리스 님의 배를 채우려는 거겠죠.”
“적발적안은 살짝 안 맞네. 음. 녹발녹안으로 갈까?”
“알아서 하세요.”
한참 고민하던 크리스는 곧 결론을 내렸다.
“클래식하게 금발청안으로 가자. 이게 맞아.”
크리스는 금발청안의 조각상을 내 얼굴 옆에 가져다 대며 이리저리 흔들었다. 크리스의 눈이 금화로 바뀐 것처럼 느껴진다면 과잉 반응일까? 아닐지도.
“루이나 님. 부탁해.”
“일단 알겠어요.”
예전이라면 으로 평범한 나무 소환수만 만들 수 있었겠지만, 외신의 추종자와 싸우며 성장한 덕에 이제 나는 진짜 생명체 같은 소환수를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진짜 생명체를 만들려면 굉장히 강력한 심상이 필요했지만, 외형만 만드는 거라면 그런 게 없어도 당장 가능했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크리스가 건네준 조각상대로 소환수를 제작했다.
얇게 모인 나무줄기가 하늘하늘 흩날린다. 그 밑에 위치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자리 잡고, 이어서 색이 생긴다.
금색이 머리카락을, 흰색이 피부를 물들이고, 청색의 눈동자가 번쩍 뜬다.
크리스가 기립 박수를 쳤다.
“이거야. 이거야말로 내가 꿈꾸던 루이나 사업의 미래야.”
“적영도 직접 확인해 보세요.”
내 말에 적영은 나무 몸체에 들어가 빙의하더니,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확인했다.
나는 적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나요?”
[좋은 거 같아.]
“다행이네요.”
[그런데 주인님. 나는 딱히 여성형이 아니야. 마법에 성별이 어딨어.]
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크리스 님. 아무래도 크리스 님의 말이 맞았던 거 같아요. 적영에게 성별은 없었어요. 무성이에요.”
“무슨 말이야 루이나 님. 루이나 님이 틀릴 리가 없잖아. 적영은 여성형이야.”
“근데 방금 적영이 직접 아니라고―.”
“루이나 님!”
크리스는 책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무서워요.
“적영은 무조건 여자야. 그게 적영에게 좋은 일이야.”
“크리스 님의 수입에 좋은 거겠죠. 어차피 아무래도 좋은 일이니까요. 성별은 이대로 고정하죠.”
“역시 루이나 님이 최고야.”
희희낙락하며 각종 미소녀 조각상을 정리하는 크리스를 뒤로한 채, 나는 적영에게 다가갔다.
새로 얻은 몸이 마음에 드는 듯 이리저리 살피던 적영은, 내 시선에 구름 머리핀을 머리카락에 꽂다 말고 말했다.
[주인님. 이거 줘?]
“필요 없어요.”
적당히 대꾸한 나는 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적당히 즐겼으니, 슬슬 논문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