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57 lines
12 KiB
Markdown
257 lines
12 KiB
Markdown
|
||
유쾌하고 밝은 남자.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실버즈라의 성격이었다.
|
||
|
||
실제로 실버즈라를 만나본 사람들은, 가볍지만 그러나 단단한 그의 내면에 감탄하며 집에 돌아가곤 했다.
|
||
|
||
그게 틀리진 않았다. 실제로 실버즈라는 한평생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
||
|
||
단지.
|
||
|
||
그게 실버즈라의 진정한 성격은 아니었을 뿐이다.
|
||
|
||
밝고 유쾌한 성격은 어디까지나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의 성격이다.
|
||
|
||
지금도 내면에 틀어박혀 검을 수련하는, 주인격의 성격이 아니라.
|
||
|
||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은 성격이라는 이유로 실버즈라의 삶 대부분을 대행하게 된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은, 오만의 사도의 검을 막으며 생각했다.
|
||
|
||
정말, 귀찮아 죽겠다고.
|
||
|
||
진득한 악신의 신성력이 주변을 물들인다. 모든 생명체가 오만의 발걸음 아래에 짓눌렸다. 숨이 막히는 듯, 주변의 구경꾼들이 죄다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
||
|
||
여기서 웃긴 건 그거다. 오만의 사도가 딱히 본격적으로 힘을 낸 게 아니라는 것이다.
|
||
|
||
실버즈라의 주인격은 검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부인격을 만들었다.
|
||
|
||
완성된 이치를 다양하게 손에 넣으면 자연히 위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한 판단하에 시작된 부인격 양성 작업은 수십 년간 이어졌는데, 따라서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도 한가지 이치를 완성했다.
|
||
|
||
만물은 부드러움 아래에 포용 된다, 라는 이치를 말이다.
|
||
|
||
실버즈라의 검이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하나의 원 안에 만물이 담긴다. 오만의 신성력도 예외는 아니었다.
|
||
|
||
악신의 신성력을 모조리 원 안에 가둔 실버즈라는, 곧 원을 깨트렸다.
|
||
|
||
포용은 어디까지나 주도적인 개념이었다. 자신이 원하기에 포용한다. 원하기에 안고 간다.
|
||
|
||
즉 바꾸어 말하면, 원하지 않는 걸 포용하지 않는 것도 가능했다.
|
||
|
||
원 안에서 순수한 물리력으로 변화한 오만의 신성력이 천둥처럼 쏘아진다. 파지지직! 자신의 것이었던 오만의 신성력과 정면으로 충돌한 오만의 사도는, 이내 앞으로 손을 뻗었다.
|
||
|
||
그 후 물리력으로 바뀐 오만의 신성력을 붙들어, 자신의 것으로 되돌렸다.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작게 혀를 찼다. 역시나 상성이 좋지 않았다.
|
||
|
||
신의 힘을 빌려 쓰는 사제들은 능력에 대한 지배력이 남달라서. 아무리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용을 쓰며 신성력을 이리저리 뒤틀어도, 저렇게 원래대로 되돌리곤 했다.
|
||
|
||
여기선 차라리 다른 놈이 나서는 게 좋을 텐데….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어디에 있는지 감도 안 잡히는 주인격과, 그런 주인격이 데려간 수많은 또 다른 인격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
||
|
||
그리고 검을 들었다.
|
||
|
||
어차피 도움을 받지 못 한다면 스스로 해야 된다.
|
||
|
||
그것이, 주인격보다 몇백 배는 많은 일을 겪은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이 깨달은 일종의 진리였다.
|
||
|
||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천검.”
|
||
|
||
오만의 사도는 기껍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
||
|
||
실버즈라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집중을 했다.
|
||
|
||
아무리 상성상 실버즈라가 사제에게 불리해도, 격의 차이라는 게 있었다.
|
||
|
||
7위계의 끝에 도달한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과 7위계 중간 언저리쯤 되는 실력을 갖춘 오만의 사도는 100번 싸우면 100번 다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이 이길 만큼 차이가 컸다.
|
||
|
||
다만.
|
||
|
||
악신의 사제들이 무서운 건 본신의 실력이 아니라.
|
||
|
||
놈들이 이렇게 대놓고 행동을 했을 때는, 반드시 그에 맞는 준비를 끝낸 후였다.
|
||
|
||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
||
|
||
오만의 사도가 손을 위로 뻗었다.
|
||
|
||
번쩍. 검은색 빛기둥이 꽂힌다.
|
||
|
||
성법은 비유하자면 재현이었다. 자신들이 믿는 신의 소유물을 신성력으로 ‘재현’하는 것. 그게 성법이었다.
|
||
|
||
때문에 믿는 신이 누구냐에 따라 성법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는데, 이 재현의 수준이, 믿음이 한층 더 높아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
|
||
|
||
자신들의 신이 보유한 소유물을 ‘대여’할 수 있게 됐다.
|
||
|
||
물론 진품은 아니다. 진품 대여는 성녀나 성자쯤이 아니면 불가능한 기적이었으나.
|
||
|
||
이 가품 대여도 단계라는 게 있었다.
|
||
|
||
사제의 믿음은 점점 깊어진다. 수준도 점점 올라간다. 점점 더, 신과 가까워진다.
|
||
|
||
그렇게 사제가 신과 가까워지다 못 해 사도의 자리까지 손에 넣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
||
|
||
이런 일이 벌어졌다.
|
||
|
||
오직 믿음으로만 가득 찬 몸에, 믿음을 재료 삼아 무언가가 깃든다.
|
||
|
||
그것은 태초에 존재했던 14개 중 하나였다.
|
||
|
||
그것은 세상을 창조한 창세신의 그림자였다.
|
||
|
||
그것은.
|
||
|
||
모든 걸 발아래 두는, 오만의 현신이었다.
|
||
|
||
강신.
|
||
|
||
자신이 믿는 신을, 자신의 몸 안에 불러들이는 기술.
|
||
|
||
성공적으로 강신을 마친 오만의 사도는, 천천히 손을 들며 외쳤다.
|
||
|
||
“고작 반쪽짜리가, 진정한 신을 이길 수 있겠나! 천검!”
|
||
|
||
직후.
|
||
|
||
그를 중심으로, 세계가 일렁였다.
|
||
|
||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오만의 사도를 중심으로 파동이 친다. 그에 사람들이 당황하지만, 파동은 사람들을 훑고 지나갔을 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
|
||
|
||
그게 너무나 이상해 사람들이 눈을 깜빡인 순간이었다.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
||
|
||
검이 원을 그린다. 조그마한 원 안에 무수한 원이, 무수한 원 안에 또 무수한 원이 생긴다.
|
||
|
||
변환을 한 번만 거쳤을 때 안 먹혔다면, 여러 번 변환하면 그만이었다.
|
||
|
||
효율이 별로일지언정, 원본의 흔적조차 남지 않게 바꿔버리면 아무리 오만의 사도여도 답이 없었다.
|
||
|
||
그렇게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오만의 사도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
||
|
||
그리고 자신의 목이 베이는 감각에, 황급히 검을 거두었다.
|
||
|
||
“대처가 빠르군.”
|
||
|
||
촤악! 오만의 사도가 초대 황제의 검을 휘둘렀다.
|
||
|
||
오만의 신성력에 물든 별빛이 허공을 가르고, 멀찍이 뒤로 물러난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얕게 베인 어깨에 미간을 찌푸렸다.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
||
|
||
분명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오만의 사도의 목에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반대로 자신의 목이 베이기 직전까지 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괴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
||
|
||
이건 공간의 왜곡 같은 게 아니었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휘두른 검의 궤도는 뒤틀린 적이 없었다. 똑바로 오만의 사도의 목을 베었다.
|
||
|
||
그렇다면 대체 왜 지금의 현상이 발생했을까.
|
||
|
||
답은 간단했다.
|
||
|
||
오만의 사도의 목을 벤다는 행위의 결괏값이, 역으로 목을 베려 한 사람의 목을 벤다는 결괏값으로 바뀌었다.
|
||
|
||
그게 방금 일어난 현상의 진실이었다.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어깨의 상처를 내버려둔 채 검을 들었다.
|
||
|
||
법칙의 재설정. 이게 최고위 사제가 7위계로 평가받는 이유였다.
|
||
|
||
‘만물은 자신의 아래기에, 자신을 공격한 것만으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
|
||
|
||
정말, 오만의 신 다운 법칙이었다.
|
||
|
||
굉장히 까다로웠다. 까다롭다 못 해 막막한 벽 같았으나.
|
||
|
||
결국, 못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
||
|
||
실버즈라의 검에 마법이 덧씌워진다.
|
||
|
||
그것은 마법이되, 마법이 아니었다.
|
||
|
||
내면을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마법이 격철을 튕기며 기어를 올렸다.
|
||
|
||
1단계 신체 강화.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신체가 초인의 영역에 접어든다.
|
||
|
||
2단계 해방.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온몸에 이상향이 씌워진다. 장갑이, 옷이, 망토가, 신발이 새롭게 태어난다. 완전 해방. 2단계에 도달한 검사가 완숙했을 때 도달하는 경지였다.
|
||
|
||
허나 이것도 다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
내면에서 완성된 이상향은 어디까지나 자신만 동의하는 논리다. 세상과 맞지 않는 닫힌 논리.
|
||
|
||
그러나 3단계에 도달한 검사는, 이 자신만의 논리를 세상에 강요하는 게 가능해졌다.
|
||
|
||
한 검사가 평생을 갈고닦아온, 자기중심적이고 아집에 가까운 닫힌 논리가 세상을 침식한다.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잡은 검에 변화가 생긴다.
|
||
|
||
검이 빛을 잃는다. 대신 변한다. 모든 걸 비춘다.
|
||
|
||
만화경이 된 검은 모든 걸 포용해 비추는 거울이었다. 이제 이 검은 무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내면’과 연결된 문이었다.
|
||
|
||
문을 통해,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세계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밟은 땅이 거울로 변한다. 현실이 거울로 변한다. 하늘을 담은 대지를 밟으며,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자신이 도달한, 완성된 검의 이치를 세상에 선보였다.
|
||
|
||
아그작.
|
||
|
||
그리고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멈춰 섰다.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거기엔.
|
||
|
||
웬 남자가, 거울의 세계를 잡아먹고 있었다.
|
||
|
||
거울의 세계를 먹어 치운 남자가 웃는다.
|
||
|
||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무언가를 할 겨를도 없이, 오만의 사도가 던진 단검이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어깨를 꿰뚫었다.
|
||
|
||
검은색투성이의, 보기만 해도 불길한 단검이 실버즈라의 부인격을 끌어 내린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격을 강제로 자신과 똑같이 맞춘다.
|
||
|
||
언젠가 당해본 적 있는 감각에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소리를 질렀다.
|
||
|
||
“질투의 신인가!”
|
||
|
||
오만의 사도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
|
||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려면, 우선 그 세상이 떠받드는 반쪽짜리부터 치워야 되지 않겠나?”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의지를 세워 질투의 권능에 저항했다.
|
||
|
||
그러나 쉽지 않았다.
|
||
|
||
곧게 제련된 내면의 세계를 웬 남자에게 먹힌 후부터 그랬다.
|
||
|
||
확실했다. 저건 폭식 쪽의 인물이었다.
|
||
|
||
이래서 악신의 교단이 위험한 거였다.
|
||
|
||
그들이 도달한 경지는 비록 정통 검사와 마법사에 비해 처질지라도, 이런 허를 찌르는 전략을 사용했으니까.
|
||
|
||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안간힘을 쓰며 속으로 생각했다.
|
||
|
||
이럴 때.
|
||
|
||
이럴 때 주인격이 깨어난다면.
|
||
|
||
아니.
|
||
|
||
하다못해 누군가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
||
|
||
“헤이즈 님. 쟤는 해볼 만 하겠는데요?”
|
||
|
||
“딱 우리급이긴 하네.”
|
||
|
||
불꽃이 허공을 달린다.
|
||
|
||
불꽃의 길 위에서 검사 하나가 검을 뽑았다.
|
||
|
||
녹색 갑옷, 녹색 망토, 녹색 장갑, 녹색 투구, 녹색 신발, 총 5개의 이상향이 현실에 해방된다.
|
||
|
||
완전 해방에 도달한 검사, 헤이즈가 폭식의 사제로 추측되는 남자를 베고, 동시에 등장한 나무 거인이 주먹을 휘둘렀다.
|
||
|
||
콰아앙! 땅이 움푹 팬다.
|
||
|
||
나무 거인의 위에서, 등불을 든 마법사가 말했다.
|
||
|
||
“실버즈라 님. 당장 주인격을 깨우세요.”
|
||
|
||
이어서.
|
||
|
||
붉은 선이 36개로 나뉘어, 세계를 집어삼킨 남자를 폭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