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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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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밝은 남자.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실버즈라의 성격이었다.

실제로 실버즈라를 만나본 사람들은, 가볍지만 그러나 단단한 그의 내면에 감탄하며 집에 돌아가곤 했다.

그게 틀리진 않았다. 실제로 실버즈라는 한평생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단지.

그게 실버즈라의 진정한 성격은 아니었을 뿐이다.

밝고 유쾌한 성격은 어디까지나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의 성격이다.

지금도 내면에 틀어박혀 검을 수련하는, 주인격의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은 성격이라는 이유로 실버즈라의 삶 대부분을 대행하게 된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은, 오만의 사도의 검을 막으며 생각했다.

정말, 귀찮아 죽겠다고.

진득한 악신의 신성력이 주변을 물들인다. 모든 생명체가 오만의 발걸음 아래에 짓눌렸다. 숨이 막히는 듯, 주변의 구경꾼들이 죄다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여기서 웃긴 건 그거다. 오만의 사도가 딱히 본격적으로 힘을 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실버즈라의 주인격은 검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부인격을 만들었다.

완성된 이치를 다양하게 손에 넣으면 자연히 위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한 판단하에 시작된 부인격 양성 작업은 수십 년간 이어졌는데, 따라서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도 한가지 이치를 완성했다.

만물은 부드러움 아래에 포용 된다, 라는 이치를 말이다.

실버즈라의 검이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하나의 원 안에 만물이 담긴다. 오만의 신성력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신의 신성력을 모조리 원 안에 가둔 실버즈라는, 곧 원을 깨트렸다.

포용은 어디까지나 주도적인 개념이었다. 자신이 원하기에 포용한다. 원하기에 안고 간다.

즉 바꾸어 말하면, 원하지 않는 걸 포용하지 않는 것도 가능했다.

원 안에서 순수한 물리력으로 변화한 오만의 신성력이 천둥처럼 쏘아진다. 파지지직! 자신의 것이었던 오만의 신성력과 정면으로 충돌한 오만의 사도는, 이내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 후 물리력으로 바뀐 오만의 신성력을 붙들어, 자신의 것으로 되돌렸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작게 혀를 찼다. 역시나 상성이 좋지 않았다.

신의 힘을 빌려 쓰는 사제들은 능력에 대한 지배력이 남달라서. 아무리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용을 쓰며 신성력을 이리저리 뒤틀어도, 저렇게 원래대로 되돌리곤 했다.

여기선 차라리 다른 놈이 나서는 게 좋을 텐데….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어디에 있는지 감도 안 잡히는 주인격과, 그런 주인격이 데려간 수많은 또 다른 인격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검을 들었다.

어차피 도움을 받지 못 한다면 스스로 해야 된다.

그것이, 주인격보다 몇백 배는 많은 일을 겪은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이 깨달은 일종의 진리였다.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천검.”

오만의 사도는 기껍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실버즈라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집중을 했다.

아무리 상성상 실버즈라가 사제에게 불리해도, 격의 차이라는 게 있었다.

7위계의 끝에 도달한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과 7위계 중간 언저리쯤 되는 실력을 갖춘 오만의 사도는 100번 싸우면 100번 다 실버즈라의 외부 활동용 인격이 이길 만큼 차이가 컸다.

다만.

악신의 사제들이 무서운 건 본신의 실력이 아니라.

놈들이 이렇게 대놓고 행동을 했을 때는, 반드시 그에 맞는 준비를 끝낸 후였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오만의 사도가 손을 위로 뻗었다.

번쩍. 검은색 빛기둥이 꽂힌다.

성법은 비유하자면 재현이었다. 자신들이 믿는 신의 소유물을 신성력으로 ‘재현’하는 것. 그게 성법이었다.

때문에 믿는 신이 누구냐에 따라 성법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는데, 이 재현의 수준이, 믿음이 한층 더 높아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

자신들의 신이 보유한 소유물을 ‘대여’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진품은 아니다. 진품 대여는 성녀나 성자쯤이 아니면 불가능한 기적이었으나.

이 가품 대여도 단계라는 게 있었다.

사제의 믿음은 점점 깊어진다. 수준도 점점 올라간다. 점점 더, 신과 가까워진다.

그렇게 사제가 신과 가까워지다 못 해 사도의 자리까지 손에 넣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득 찬 몸에, 믿음을 재료 삼아 무언가가 깃든다.

그것은 태초에 존재했던 14개 중 하나였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한 창세신의 그림자였다.

그것은.

모든 걸 발아래 두는, 오만의 현신이었다.

강신.

자신이 믿는 신을, 자신의 몸 안에 불러들이는 기술.

성공적으로 강신을 마친 오만의 사도는, 천천히 손을 들며 외쳤다.

“고작 반쪽짜리가, 진정한 신을 이길 수 있겠나! 천검!”

직후.

그를 중심으로, 세계가 일렁였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오만의 사도를 중심으로 파동이 친다. 그에 사람들이 당황하지만, 파동은 사람들을 훑고 지나갔을 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다.

그게 너무나 이상해 사람들이 눈을 깜빡인 순간이었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검이 원을 그린다. 조그마한 원 안에 무수한 원이, 무수한 원 안에 또 무수한 원이 생긴다.

변환을 한 번만 거쳤을 때 안 먹혔다면, 여러 번 변환하면 그만이었다.

효율이 별로일지언정, 원본의 흔적조차 남지 않게 바꿔버리면 아무리 오만의 사도여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오만의 사도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자신의 목이 베이는 감각에, 황급히 검을 거두었다.

“대처가 빠르군.”

촤악! 오만의 사도가 초대 황제의 검을 휘둘렀다.

오만의 신성력에 물든 별빛이 허공을 가르고, 멀찍이 뒤로 물러난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얕게 베인 어깨에 미간을 찌푸렸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분명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오만의 사도의 목에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반대로 자신의 목이 베이기 직전까지 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괴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건 공간의 왜곡 같은 게 아니었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휘두른 검의 궤도는 뒤틀린 적이 없었다. 똑바로 오만의 사도의 목을 베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지금의 현상이 발생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오만의 사도의 목을 벤다는 행위의 결괏값이, 역으로 목을 베려 한 사람의 목을 벤다는 결괏값으로 바뀌었다.

그게 방금 일어난 현상의 진실이었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어깨의 상처를 내버려둔 채 검을 들었다.

법칙의 재설정. 이게 최고위 사제가 7위계로 평가받는 이유였다.

‘만물은 자신의 아래기에, 자신을 공격한 것만으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

정말, 오만의 신 다운 법칙이었다.

굉장히 까다로웠다. 까다롭다 못 해 막막한 벽 같았으나.

결국, 못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실버즈라의 검에 마법이 덧씌워진다.

그것은 마법이되, 마법이 아니었다.

내면을 두들겨 무기를 만드는 마법이 격철을 튕기며 기어를 올렸다.

1단계 신체 강화.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신체가 초인의 영역에 접어든다.

2단계 해방.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온몸에 이상향이 씌워진다. 장갑이, 옷이, 망토가, 신발이 새롭게 태어난다. 완전 해방. 2단계에 도달한 검사가 완숙했을 때 도달하는 경지였다.

허나 이것도 다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면에서 완성된 이상향은 어디까지나 자신만 동의하는 논리다. 세상과 맞지 않는 닫힌 논리.

그러나 3단계에 도달한 검사는, 이 자신만의 논리를 세상에 강요하는 게 가능해졌다.

한 검사가 평생을 갈고닦아온, 자기중심적이고 아집에 가까운 닫힌 논리가 세상을 침식한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잡은 검에 변화가 생긴다.

검이 빛을 잃는다. 대신 변한다. 모든 걸 비춘다.

만화경이 된 검은 모든 걸 포용해 비추는 거울이었다. 이제 이 검은 무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내면’과 연결된 문이었다.

문을 통해,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세계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밟은 땅이 거울로 변한다. 현실이 거울로 변한다. 하늘을 담은 대지를 밟으며,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자신이 도달한, 완성된 검의 이치를 세상에 선보였다.

아그작.

그리고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멈춰 섰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거기엔.

웬 남자가, 거울의 세계를 잡아먹고 있었다.

거울의 세계를 먹어 치운 남자가 웃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실버즈라의 부인격이 무언가를 할 겨를도 없이, 오만의 사도가 던진 단검이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어깨를 꿰뚫었다.

검은색투성이의, 보기만 해도 불길한 단검이 실버즈라의 부인격을 끌어 내린다. 실버즈라의 부인격의 격을 강제로 자신과 똑같이 맞춘다.

언젠가 당해본 적 있는 감각에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소리를 질렀다.

“질투의 신인가!”

오만의 사도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려면, 우선 그 세상이 떠받드는 반쪽짜리부터 치워야 되지 않겠나?”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의지를 세워 질투의 권능에 저항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곧게 제련된 내면의 세계를 웬 남자에게 먹힌 후부터 그랬다.

확실했다. 저건 폭식 쪽의 인물이었다.

이래서 악신의 교단이 위험한 거였다.

그들이 도달한 경지는 비록 정통 검사와 마법사에 비해 처질지라도, 이런 허를 찌르는 전략을 사용했으니까.

실버즈라의 부인격은 안간힘을 쓰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

이럴 때 주인격이 깨어난다면.

아니.

하다못해 누군가 도와주기라도 한다면―.

“헤이즈 님. 쟤는 해볼 만 하겠는데요?”

“딱 우리급이긴 하네.”

불꽃이 허공을 달린다.

불꽃의 길 위에서 검사 하나가 검을 뽑았다.

녹색 갑옷, 녹색 망토, 녹색 장갑, 녹색 투구, 녹색 신발, 총 5개의 이상향이 현실에 해방된다.

완전 해방에 도달한 검사, 헤이즈가 폭식의 사제로 추측되는 남자를 베고, 동시에 등장한 나무 거인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땅이 움푹 팬다.

나무 거인의 위에서, 등불을 든 마법사가 말했다.

“실버즈라 님. 당장 주인격을 깨우세요.”

이어서.

붉은 선이 36개로 나뉘어, 세계를 집어삼킨 남자를 폭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