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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산(劍山)은 넓다. 너무 넓은 나머지 검산이 정말 인간이 만든 세계가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인간이 만든 세계가 아닌 건 맞았다. 왜냐하면 이런 걸 만들 수 있는데 인간일 리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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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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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의 세계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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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햇빛을 가린다. 거기에 맺힌 검열매가 탐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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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피곤할 때 꾼 꿈 같다. 초대 황제의 라이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세계를 만든 걸까. 검에게 둘러싸인 삶을 살고 싶었나? 어쩌면 유일한 친구가 검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동료 없이 혼자 세상을 떠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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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기묘한 효과음에 나는 고개를 정면에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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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허공에 둥둥 뜬 채 나를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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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검산의 재밌는 점을 하나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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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야생의 검과 마주치고 싸울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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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붉은색이 섞인 검이 나를 똑바로 노린다.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검의 성지다. 그에 맞는 대접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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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검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다만 비정상적인 궤적이 아니었다. 마치 사람이 휘두르는 것처럼, 오직 사람이 펼칠 수 있는 궤도로 나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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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쾌검인가. 이놈의 검사들은 대부분 빠름을 최고로 여겨서. 일단 선택지가 주어지면 쾌검을 고르는 경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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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쟤는 사람이 아니라 검이지만, 저 검술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념이 모여서 발생한 거라. 결국 사람의 영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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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검도 종류가 여럿이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익힌 검술도 쾌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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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 쾌검은 빠름으로 먼저 도착하는 검술이었고, 내 쾌검은 낭비를 지워 먼저 도착하는 검술이었다. 종류가 아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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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볍게 검을 빙글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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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벽돌로 쌓인 합리 속에, 모든 걸 벗어던진 빛이 갇힌다. 파이론류의 제작자가 생각한 최적의 방어 논리가 쾌검을 가볍게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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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가볍기에 두텁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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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하듯, 신속에 도달한 붉은 검이 논리의 벽 중 가장 약한 곳을 꿰뚫는다. 채애앵! 거센 충돌음이 울려 퍼지고, 붉은 검이 내 어깨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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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붉은 검이 움찔거렸다. 분명 정확히 맞췄건만, 마치 단단한 바위라도 찌른 것처럼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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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게 속삭이며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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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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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그랑! 나한테 두들겨맞은 붉은 검이 땅에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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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붉은 검을 주워 들며 이마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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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에게 왜 뜨거운 심장을 가졌다고 하는지 알겠네요. 서로의 검이 닿는 거리에서 한 끗 싸움을 하는 건, 굉장히 짜릿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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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가 짜릿하게 망가진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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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누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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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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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은 기본적으로 필살기예요. 근본 자체가 죽이지 못하면 죽는, 알지 못하면 당하는 구조죠. 즉 제 필살 검술을 못 알아본 시점에서 상대에겐 이길 자격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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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게 필살 검술이라고? 혹시 검술이 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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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루이나류 오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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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류 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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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모든 공격 흡수하고 흠씬 두들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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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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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웃음을 터트리는 헤이즈에게 나는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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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즈라 님의 주인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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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산책하러 나간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냐. 그리고 천검님의…하여간 외부 인격인가 뭔가 하는 분이 주인격이 나올 상황이 되면 내 얘기를 전해준다고 해서. 그럼 잠깐은 기다려 준다나 봐. 그래서 반드시 옆에 착 달라붙어 있을 필요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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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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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거랑 네가 나를 따라다니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이 살짝 올라왔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산책하고 싶은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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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압한 붉은 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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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검날. 아름다운 문양. 팅―. 손가락으로 검면을 튕기자 맑은소리가 퍼졌다. 명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이라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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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산엔 이런 검들이 굴러다녔다. 그리고 그게 수많은 검사들이 검산에 몰려오는 이유였다. 공짜로 검을 얻을 수 있으니 밑바닥 검사들에겐 이만한 곳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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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만큼 포획 난이도가 상당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는가. 이거면 감지덕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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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 얻은 붉은 검을 허리춤에 찼다. 항상 쓰던 검에겐 미안하지만, 급하게 구한 애치고는 오래 썼다. 내가 검사가 아니어서 여태까지 계속 쓴 거지, 검사였으면 진작 바꾸지 않았을까. 내가 등불을 바로 성은으로 바꾼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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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써왔던, 이제는 쓸 일이 없는 검을 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헤이즈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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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검술은 언제 배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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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안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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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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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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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즈의 평가가 궁금해 질문하자, 헤이즈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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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해서 놀라긴 했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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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국의 팔라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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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엄청난 스승을 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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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국의 팔라딘은 흔히 6위계에서 7위계 사이로 평가됐다. 팔라딘 안에서도 실력 차이가 천차만별이었지만, 그래도 최소치가 6위계인 만큼 일단 팔라딘이라고 하면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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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특이 케이스라 6위계급이 아니긴 한데, 레온이 팔라딘인 건 맞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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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안 했다. 거짓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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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아니고요, 잠깐 검술을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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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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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검술을 어떻게 익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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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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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즈가 턱을 쓰다듬었다. 뭔가 경쟁심을 세우는 듯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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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검술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이런 나를 육성한 레온의 실력에 흥미가 생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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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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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잘했어야 됐는데, 너무 잘해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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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천재는 곤란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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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검술 실력에 반하셨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마법 외길이라서요. 검사의 영역을 침범할 생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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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이해 못 했구나. 생각보다 잘한다는 건, 자기 발에 걸려서 넘어질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서 놀랐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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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하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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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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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짱을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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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검을 획득한 건 좋았지만, 이게 내가 검산에 온 목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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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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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의 검은 어디에 가야 찾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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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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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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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림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모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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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도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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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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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 발견된 건 사실인가 봐. 그래서 검림의 검주들도 헐레벌떡 귀환 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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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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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잖아. 너만 해도 찾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겠냐? 검산이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니 관리를 위해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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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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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를 끝내고 필멸자의 시대를 연 초대 황제는 모든 생명체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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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가 아니라 진짜 온 세상의 왕족과 황족이 자기가 초대 황제의 혈통이라고 난리를 쳤다. 엘프? 드워프? 수인? 얘네라고 안 달랐다. 우둔한 현자를 제외하면 초대 황제의 파티원이 전부 여자라는 건 매우 유명한 사실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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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타인종의 경우 초대 황제의 혈통보다는 위대한 여정을 함께한 파티원의 후손이라는 걸 강조하는 경향이 컸지만, 어쨌건 초대 황제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구원자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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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초대 황제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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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기만 하면 인생 역전도 꿈이 아니었다. 톨트피어의 던전도 초대 황제의 검 앞에선 범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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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달려드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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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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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으면 국물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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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산이 정신없는 건 잘 알았어요.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요. 대체 어떤 식으로 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 발견됐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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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 뭔지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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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불사를 준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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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초대 황제 폐하의 검에 엮인 일화 중 하나에 불과하고, 가장 대표적인 건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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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큼. 목을 가다듬은 헤이즈는 이내 차분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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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 폐하의 검은 연단 마법의 궁극에 도달한 초대 황제 폐하가 ‘연단’한 검이야. 초대 황제 폐하의 이상향이 그대로 구현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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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 폐하의 이상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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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 폐하는 무얼 하며 살았는지는, 너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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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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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황제는 모든 삶을 신을 죽이기 위해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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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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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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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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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런 초대 황제가 연단한 검은 그런 삶을 닮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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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살의 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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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초대 황제의 검은 그런 이유로 다음의 능력이 부여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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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필중. 격을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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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절단. 권능을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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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고정. 법칙을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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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찾는 불로불사는 세 번째 능력일 가능성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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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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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데, 검산은 일종의 로즈릭 님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세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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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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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검산 어딘가에 진짜 세계랑 이어지는 구멍이 나 있다더라고. 굉장히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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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권능을 무시하고 베어버린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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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짓을 한 범인으로 사람들은 초대 황제의 검을 꼽은 거지. 솔직히 말고는 없잖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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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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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보를 들은 나는 볼을 톡톡 두들겼다. 생각을 정리한 건데, 잠시 후 나는 손을 내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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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구멍이 난 곳에 가봐요. 거기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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