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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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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산(劍山)은 넓다. 너무 넓은 나머지 검산이 정말 인간이 만든 세계가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인간이 만든 세계가 아닌 건 맞았다. 왜냐하면 이런 걸 만들 수 있는데 인간일 리 없지 않나.
하여간.
나는 검의 세계를 거닐었다.
검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햇빛을 가린다. 거기에 맺힌 검열매가 탐스럽게….
다시 봐도 피곤할 때 꾼 꿈 같다. 초대 황제의 라이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세계를 만든 걸까. 검에게 둘러싸인 삶을 살고 싶었나? 어쩌면 유일한 친구가 검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동료 없이 혼자 세상을 떠돌았지.
스릉. 기묘한 효과음에 나는 고개를 정면에 고정했다.
검이 허공에 둥둥 뜬 채 나를 겨눴다.
여기서 검산의 재밌는 점을 하나 밝히겠다.
여기선, 야생의 검과 마주치고 싸울 수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이 섞인 검이 나를 똑바로 노린다.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검의 성지다. 그에 맞는 대접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붉은 검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다만 비정상적인 궤적이 아니었다. 마치 사람이 휘두르는 것처럼, 오직 사람이 펼칠 수 있는 궤도로 나를 노렸다.
또 쾌검인가. 이놈의 검사들은 대부분 빠름을 최고로 여겨서. 일단 선택지가 주어지면 쾌검을 고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쟤는 사람이 아니라 검이지만, 저 검술은 수많은 사람들의 의념이 모여서 발생한 거라. 결국 사람의 영향이었다.
쾌검도 종류가 여럿이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익힌 검술도 쾌검이었다.
다만 저 쾌검은 빠름으로 먼저 도착하는 검술이었고, 내 쾌검은 낭비를 지워 먼저 도착하는 검술이었다. 종류가 아예 달랐다.
나는 가볍게 검을 빙글 돌렸다.
이성의 벽돌로 쌓인 합리 속에, 모든 걸 벗어던진 빛이 갇힌다. 파이론류의 제작자가 생각한 최적의 방어 논리가 쾌검을 가볍게 제압한다.
허나 가볍기에 두텁진 않았다.
가속하듯, 신속에 도달한 붉은 검이 논리의 벽 중 가장 약한 곳을 꿰뚫는다. 채애앵! 거센 충돌음이 울려 퍼지고, 붉은 검이 내 어깨를 꿰뚫었다.
그리고 붉은 검이 움찔거렸다. 분명 정확히 맞췄건만, 마치 단단한 바위라도 찌른 것처럼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해서였다.
나는 작게 속삭이며 검을 휘둘렀다.
“방심하셨군요.”
쨍그랑! 나한테 두들겨맞은 붉은 검이 땅에 떨어진다.
나는 붉은 검을 주워 들며 이마를 닦았다.
“검사들에게 왜 뜨거운 심장을 가졌다고 하는지 알겠네요. 서로의 검이 닿는 거리에서 한 끗 싸움을 하는 건, 굉장히 짜릿하군요.”
“네 머리가 짜릿하게 망가진 거겠지.”
뒤에서 누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검술은 기본적으로 필살기예요. 근본 자체가 죽이지 못하면 죽는, 알지 못하면 당하는 구조죠. 즉 제 필살 검술을 못 알아본 시점에서 상대에겐 이길 자격이 없어요.”
“방금 그게 필살 검술이라고? 혹시 검술이 뭔지 몰라?”
“이게, 루이나류 오의예요.”
루이나류 오의.
으로 모든 공격 흡수하고 흠씬 두들기기.
“지랄을 한다.”
헛웃음을 터트리는 헤이즈에게 나는 질문했다.
“실버즈라 님의 주인격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 아니었나요?”
“잠깐 산책하러 나간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냐. 그리고 천검님의…하여간 외부 인격인가 뭔가 하는 분이 주인격이 나올 상황이 되면 내 얘기를 전해준다고 해서. 그럼 잠깐은 기다려 준다나 봐. 그래서 반드시 옆에 착 달라붙어 있을 필요가 없어.”
“그런가요.”
근데 그거랑 네가 나를 따라다니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는 의문이 살짝 올라왔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산책하고 싶은가 보지.
나는 제압한 붉은 검을 살폈다.
날카로운 검날. 아름다운 문양. 팅―. 손가락으로 검면을 튕기자 맑은소리가 퍼졌다. 명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이라는 증거였다.
검산엔 이런 검들이 굴러다녔다. 그리고 그게 수많은 검사들이 검산에 몰려오는 이유였다. 공짜로 검을 얻을 수 있으니 밑바닥 검사들에겐 이만한 곳도 없었다.
뭐, 그만큼 포획 난이도가 상당했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는가. 이거면 감지덕지였다.
나는 새로 얻은 붉은 검을 허리춤에 찼다. 항상 쓰던 검에겐 미안하지만, 급하게 구한 애치고는 오래 썼다. 내가 검사가 아니어서 여태까지 계속 쓴 거지, 검사였으면 진작 바꾸지 않았을까. 내가 등불을 바로 성은으로 바꾼 것처럼.
나는 항상 써왔던, 이제는 쓸 일이 없는 검을 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헤이즈가 물었다.
“너 검술은 언제 배웠냐.”
“몇 달 안 됐어요.”
“그래?”
“어떤가요.”
헤이즈의 평가가 궁금해 질문하자, 헤이즈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생각보다 잘해서 놀라긴 했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교국의 팔라딘이요.”
“……그건 좀 엄청난 스승을 뒀는데.”
교국의 팔라딘은 흔히 6위계에서 7위계 사이로 평가됐다. 팔라딘 안에서도 실력 차이가 천차만별이었지만, 그래도 최소치가 6위계인 만큼 일단 팔라딘이라고 하면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강했다.
레온은 특이 케이스라 6위계급이 아니긴 한데, 레온이 팔라딘인 건 맞으니까.
거짓말은 안 했다. 거짓말은.
“스승은 아니고요, 잠깐 검술을 배웠어요.”
“남자지?”
“여자가 검술을 어떻게 익혀요.”
“팔라딘이라….”
헤이즈가 턱을 쓰다듬었다. 뭔가 경쟁심을 세우는 듯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내 검술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이런 나를 육성한 레온의 실력에 흥미가 생긴 건가?
이런이런.
적당히 잘했어야 됐는데, 너무 잘해버렸나.
이래서 천재는 곤란하다니까.
“제 검술 실력에 반하셨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마법 외길이라서요. 검사의 영역을 침범할 생각은 없어요.”
“내 말을 이해 못 했구나. 생각보다 잘한다는 건, 자기 발에 걸려서 넘어질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어서 놀랐다는 뜻이야.”
“부끄러워하시기는.”
“돌겠네.”
나는 팔짱을 끼었다.
새로운 검을 획득한 건 좋았지만, 이게 내가 검산에 온 목적은 아니었다.
그래서.
초대 황제의 검은 어디에 가야 찾을 수 있는 걸까.
“헤이즈 님?”
“오냐.”
“검림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모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빨리도 물어본다.”
헤이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 발견된 건 사실인가 봐. 그래서 검림의 검주들도 헐레벌떡 귀환 중이고.”
“왜요?”
“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잖아. 너만 해도 찾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겠냐? 검산이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니 관리를 위해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는 거지.”
이해됐다.
신화의 시대를 끝내고 필멸자의 시대를 연 초대 황제는 모든 생명체의 아버지였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온 세상의 왕족과 황족이 자기가 초대 황제의 혈통이라고 난리를 쳤다. 엘프? 드워프? 수인? 얘네라고 안 달랐다. 우둔한 현자를 제외하면 초대 황제의 파티원이 전부 여자라는 건 매우 유명한 사실이라서.
물론 타인종의 경우 초대 황제의 혈통보다는 위대한 여정을 함께한 파티원의 후손이라는 걸 강조하는 경향이 컸지만, 어쨌건 초대 황제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구원자였는데.
그런 초대 황제의 검?
얻기만 하면 인생 역전도 꿈이 아니었다. 톨트피어의 던전도 초대 황제의 검 앞에선 범부였다.
모든 사람이 달려드는 게 당연했다.
“서둘러야겠네요.”
“늦으면 국물도 없지.”
“검산이 정신없는 건 잘 알았어요.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요. 대체 어떤 식으로 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 발견됐다는 거죠?”
“너 초대 황제 폐하의 검이 뭔지는 알아?”
“불로불사를 준다면서요.”
“그건 초대 황제 폐하의 검에 엮인 일화 중 하나에 불과하고, 가장 대표적인 건 이래.”
큼큼. 목을 가다듬은 헤이즈는 이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초대 황제 폐하의 검은 연단 마법의 궁극에 도달한 초대 황제 폐하가 ‘연단’한 검이야. 초대 황제 폐하의 이상향이 그대로 구현된 거지.”
“초대 황제 폐하의 이상향이라면―.”
“초대 황제 폐하는 무얼 하며 살았는지는, 너도 알잖아?”
그걸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초대 황제는 모든 삶을 신을 죽이기 위해서 살았다.
신을 멸하기 위해서.
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신화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
따라서 그런 초대 황제가 연단한 검은 그런 삶을 닮을 수밖에 없었다.
“신살의 검인가요?”
“맞아. 초대 황제의 검은 그런 이유로 다음의 능력이 부여됐어.”
첫 번째. 필중. 격을 무시한다.
두 번째. 절단. 권능을 무시한다.
세 번째. 고정. 법칙을 무시한다.
“네가 찾는 불로불사는 세 번째 능력일 가능성이 커.”
“재밌네요.”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데, 검산은 일종의 로즈릭 님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세상이잖아?”
“네.”
“근데 검산 어딘가에 진짜 세계랑 이어지는 구멍이 나 있다더라고. 굉장히 크게.”
“누군가 권능을 무시하고 베어버린 것처럼요?”
“그런 짓을 한 범인으로 사람들은 초대 황제의 검을 꼽은 거지. 솔직히 말고는 없잖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게.”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모든 정보를 들은 나는 볼을 톡톡 두들겼다. 생각을 정리한 건데, 잠시 후 나는 손을 내리며 말했다.
“우선 구멍이 난 곳에 가봐요. 거기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