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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산(劍山)은 하나의 세계라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하나의 세계가 맞았다. 검에 미쳤던, 인류의 2인자가 간절히 바랐던 세상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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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검산을 지배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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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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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산이 정신 나가게 넓은 것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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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공간, 거기에 꽂힌 수많은 검, 자신에게 맞는 검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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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걸 전부 지배하라는 건 솔직히 제국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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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검산의 주인은 지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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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관리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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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님용으로 내온 월병을 아그작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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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바삭하며 부드럽고, 속은 달콤하면서 진했다. 그 고급스러운 맛에 나는 만족하며 용정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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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과를 즐겼을 뿐인데도 벌써 대접받는 느낌이 난다. 과연 검산을 관리하는 검림이다. 구비된 다과부터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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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지개를 켜며 방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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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마당이 펼쳐졌다.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이 조화를 이루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 가운데 오래된 석등이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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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갈길을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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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가 왜 중세랜드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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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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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중세랜드에는 동양풍의 세상도 존재한다. 새드 중세랜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새드 중세랜드 추종자가 지금의 풍경을 보면 거품을 물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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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쩌겠는가. 해피 중세랜드가 원래 이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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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모두 해피 중세랜드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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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당히 산책하다가, 손님용 별관에서 나와 검림의 본관에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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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림의 본관은 굉장히 컸다. 사람도 많았다. 모두가 가벼운 복장을 하고 검을 패용한 채 바쁘게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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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습을 빤히 응시하다가, 사람들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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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유는 없었고, 그냥 심심해 미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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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된 건 순전히 천검 실버즈라가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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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들은 전부 이상하다. 그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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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 집단의 수장이면 나름 멀쩡할 줄 알았는데, 설마 배신을 당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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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검림에 도착하고 나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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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님이요? 그분을 언제 만날 수 있는지는 저희도 모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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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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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마음 내키는 대로 사시는 분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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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할 방법도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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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가능했으면 천검님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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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 실버즈라는 일종의 랜덤 인카운터 몬스터였다. 포○몬으로 치면 환상의 포○몬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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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때문에 실버즈라에게 편지를 주기 위해선 그냥 검림에 맡기는 게 가장 편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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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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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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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전해주는 게 예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나도 천검님한테 들어야 될 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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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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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덕분에 헤이즈는 강제로 검림 본관에 머물게 됐는데, 그런 헤이즈에 나는 잠깐 고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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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길어질 거 같으니 헤이즈를 버리고 대충 초대 황제의 검이나 찾다가 마법학교로 돌아가려던 건데,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헤이즈는 바로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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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산의 정보를 누가 제일 잘 알겠냐. 지금부터 천검님의 행방을 검림의 사람들에게 묻고 다닐 건데, 겸사겸사 초대 황제 폐하의 검 소문도 모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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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늘 헤이즈 님만 믿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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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검림 별관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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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심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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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법 연습을 하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이놈의 검림은 마법사 배려가 없어서. 마법 연습을 할 공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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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연무장, 저기도 연무장, 온 세상이 연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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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검과 검이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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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련을 하는 검사들을 느긋하게 관람했다. 챙겨온 월병을 먹은 건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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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신체 강화 단계에 도달했는지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속도로 빠름에 도달하는 검과 모든 건 부드러운 흐름 안에서 제어된다고 믿는 검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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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정답은 없다. 모든 주장은 자신의 안에서 옳았기에 주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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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승자가 없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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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장이 맞붙으면, 반드시 승리하는 쪽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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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검술은 이렇게도 표현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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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갈고 닦아온 정답을 세상에 증명하는 행위,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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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속도만으로 쾌의 궁극에 닿으려는 검사의 검이 가볍게 움직인다. 무게는 속도에 방해가 될 뿐이니까. 검사의 손놀림이 가볍다. 발놀림이 가볍다. 몸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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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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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이 만든 흐름을 쾌속의 검이 꿰뚫으려 했으나, 미세한 차이로 붙들린다. 어지러운 흐름 속에 갇힌 검이 다급히 빠져나오려고 수를 쓴다. 그리고 다급할수록 느려지는 게 쾌검의 재밌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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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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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쾌검이랑은 안 맞는 거 같네요. 마음속에 신중함이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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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검에 신중함이 꼭 독은 아니지. 신중한 성격이라면, 확실할 때 달리면 그만이다. 저 녀석의 문제는 신중한 게 아니라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어중간함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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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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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모를 남자는 풀잎을 입에 문 채 연무장을 둘러봤는데, 곧 그는 풀잎을 퉤 뱉고는 월병을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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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 월병은 내가 챙겨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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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져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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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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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뭐든지 쓰기 나름이라지만, 사람에게 맞는 옷은 정해져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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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사람도 맞는 분야가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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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의 함정이다. 모든 걸 잘한다는 것에 현혹되면, 결국 궁극에 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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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내 말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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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에 닿으려면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되는 법이야. 하나만 따로 챙기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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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기둥은 올바르게 세워야죠. 걸어야 할 길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궁극에 어떻게 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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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상황이 다르다. 모든 사람은 공평한 환경을 받을 수는 없어. 저 녀석이 저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면 어쩌지? 반드시 쾌검을 익혀야만 했던 환경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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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정해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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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상을 했다. 만약 내가 상대와 똑같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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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검에 재능이 없는 걸 알지만, 쾌검을 제외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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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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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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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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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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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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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쉽지. 뼈를 깎는다, 피나는 노력을 한다, 영혼을 바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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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방금 제 말을 듣고도 이해를 못 하셨나요? 당연히 쾌검이 옳다고 영혼이 인정하는 훈련을 한다는 거잖아요. 신속의 영역에서 날아오는 검에 매일 몸이 꿰뚫리면 뇌가 알아서 바뀔 거예요. ‘아, 이 세상의 신은 오직 속도구나.’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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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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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나를 유심히 훑어본다. 그는 무언가를 찾는 중이었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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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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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자국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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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찾는 중인 거야 이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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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예요. 저는 매우 정상적인 마법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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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법사. 너는 마법사지 않나? 마법사인 너보다 검사인 내가 검에 대해 더 잘 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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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하게 여기서 메신저를 공격한다고요. 마법은 모든 것의 상위예요. 즉 마법사는 검사도 겸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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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을 뽑았다. 검에 푸른색 마법이 검에 덧씌워지고, 나는 강하게 주문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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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춰라, 청야(靑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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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연단 마법에 이름을 붙여주는 놈은 처음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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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세상에 실망한 점 중 하나에요. 사람들이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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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은 김에 나는 검을 휘둘렀다. 레온에게 착실히 배워온 기본기를 비롯해 파이론류를 하나둘씩 선보였는데, 내 모든 검무를 관찰한 남자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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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좋지만, 검의 재능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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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재능 있는 분야가 더 드물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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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몸뚱아리는 얼굴 재능 빼고는 존재하질 않아서. 마법이고 연금술이고 검술이고 전부 스승에게 ‘재능 없음’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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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법은 무려 4위계라서요. 나름 괜찮아요. 그나마 재능 있는 분야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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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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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높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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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 나이에 4위계면 높은 수준을 넘었지.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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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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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자는 눈을 번뜩이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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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검의 길이 더 잘 어울린다. 마법을 택한 건 실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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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상상도 못 한 말이네요. 방금 저보고 검의 재능이 없다고 한 사람은 혹시 다른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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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너는 검에 재능이 없다. 아예 없지. 네 스승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재능이 없는 네게 딱 맞는 검술을 추천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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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검에 재능이 없다면서요. 그런데 4위계에 도달한 마법보다 검이 저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게 말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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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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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말을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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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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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궁극에 닿을 재능이라면, 여태까지 내가 살면서 봐온 그 누구보다 네가 높다. 어떠냐? 원한다면 제자로 받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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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구신데 그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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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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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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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멀리서 소리치며 달려온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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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 이 사람이 천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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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남자는, 천검 실버즈라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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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검의 외부 활동용 인격이다. 이름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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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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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뭐 하는 녀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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