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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0 KiB

웬 남자 하나가 날 찾아온 건, 막 강의를 마치고 테리에게 벌꿀주를 받았을 무렵이었다.

전형적인 마법사 행색을 한 남자의 이름은 파틀러였는데, 한쪽 눈에 안대를 한 것이 그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파틀러는 테리가 대접한 홍차를 거절하고는 내 앞에 앉았다.

파틀러의 갈색 눈동자가 음울하게 빛난다. 저 음침한 눈빛마저 전형적인 마법사였다.

사실 마법사라는 게 워낙 정신병자들밖에 없어서. 오히려 저 정도면 양반이었다.

나? 나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피어난 한 줄기의 빛이지.

만일 누군가 정상인의 기준을 궁금해한다면, 멀리 갈 거 없이 나를 예시로 들면 됐다.

내가 바로 정상인의 스테레오타입이었으니까.

하여간.

나는 파틀러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파틀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루이나 엘피니엘 남작님 맞습니까?”

“맞는데, 무슨 일인가요.”

“의뢰입니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의뢰?

나는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내가 마법학교의 강사가 된 건 이런 상황을 원해서긴 했지만, 아직 나는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

적어도 1년은 활동해야 이런 개인 의뢰가 들어올 줄 알았는데 벌써 사람이 찾아오다니. 신기했다.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챈 걸까. 파틀러가 보충 설명을 했다.

“아무래도 루이나 남작님이 톨트피어의 미궁 탐사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성배도 교국에게 돌려주지 않았습니까?”

“자세히 아시네요.”

“출판하신 책을 읽었습니다.”

뭔가 했더니 크리스가 범인이었다.

가 꽤 잘 팔리고 있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의뢰를 물어올 줄이야.

상으로 크리스에게 추가 투자금을 더 줘야겠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켈튼의 유품인 오래된 파이프 담배로, 최근 보수 작업을 끝낸 덕에 마치 새것처럼 반짝였다.

후우. 천장에 연기를 흘린 나는 파틀러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뢰를 하고 싶으신 거죠?”

“제가 알기로 엘피니엘 남작님은 조사가 특기일 겁니다.”

내가 조사가 특기라고?

내가?

나는 모든 마법 체계가 공격만을 위해 완성돼서, 위계가 두 단계 낮은 마법사가 정신 공격을 해도 꼼짝없이 당하는데?

물론 지금이야 덕에 많은 게 보충됐지만, 별개로 지금의 나도 딱히 탐색 마법은 보유하지 않았다.

따라서 파틀러는 크나큰 착각을 한 거였으나.

“물론이에요.”

나는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가 자주 짓는 미소였다.

근데 맞잖아. 8위계 연금술사의 미궁을 돌파하고, 성배를 되찾아온 사람이 조사에 특화된 게 아니면 뭐야.

고로 나는 딱히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꼭 조사 관련 마법이 있어야 조사 특화 마법사인가.

조사를 잘해야 조사 특화 마법사지.

내 시원한 대답에 안심한 파틀러가 말을 이었다.

“제가 원하는 건 하나입니다. 한 마을의 조사를 부탁합니다.”

“마을의 조사요.”

“프레체 왕국 구석에 위치한 화전민의 마을인데, 이곳에서 제 제자가 실종됐습니다.”

“흐음.”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실종사건 조사 의뢰를 나에게 맡긴다라.

일련의 대화를 나누고 깨달았다.

정말 의외였지만, 세간에 퍼진 내 이미지는 굉장히 좋은 모양이었다.

실종사건 조사 의뢰 같은 건 보통 신뢰도가 높은 상대에게 부탁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웬 음해 세력이 강탈의 마녀니 뭐니 떠들고 다녀서 이미지가 바닥에 박혔을 줄 알았는데, 신기하네.

이유는…역시 성배인가?

기껏 손에 넣은 성배를 무상으로 교국에 반납한 게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를 얻은 듯했다.

내 입장에선 교국에 성배를 돌려주는 게 레온도 그렇고 켈튼과의 약속도 그렇고 여러모로 합리적이었지만, 이런 속 사정을 사람들이 알 리 없으니까.

신뢰성은 얻기 힘든 자본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신뢰를 쌓기 위해 양보를 하는 게 아니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으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신뢰를 쌓는 거다.

“돈은 됐어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지만, 나는 금화 천재 크리스와 함께 일하는 중 아닌가.

어차피 돈이야 곧 넘치도록 벌 텐데, 이런 상황에서까지 돈을 챙기는 건 효율이 안 좋았다.

내 말에 파틀러가 고개를 저었다.

“무상으로 의뢰를 맡길 수는 없죠. 의뢰비는 정당히 지급하겠―.”

“대신 다른 걸 받겠어요. 저는 각종 이상 현상에 관심이 많은데, 관련 문제로 스트리스 학파 내에서 누군가 사람을 찾으면 그때는 제 이름을 알려주세요. 자신 있거든요.”

“…제가 스트리스 학파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손가락이요.”

스트리스 학파는 독특한 계승 마법을 보유한 걸로 유명했는데, 이 계승 마법의 특징 중 하나가 손가락이 변색이 되는 거였다.

뭐, 지금의 파틀러는 장갑을 끼고 있지만, 무의식중에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고 눈치챘다.

“알겠습니다.”

파틀러는 흔쾌히 수락했다. 무작정 소문을 퍼트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고민 중이면 슬쩍 내 이름을 흘려달라는 부탁이다. 파틀러 입장에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좋아.

아마 파틀러는 스트리스 학파에서 꽤 높은 위치일 거였다. 제자를 키운다는 건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고,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높은 위치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런 파틀러가 직접 나를 추천한다면, 결국 그 소문은 금방 스트리스 학파 내에 퍼질 거였다.

스트리스 학파에 퍼진 소문은 곧 근처로 확산할 것이고.

즉 나는 앉은 자리에서 자기 홍보를 완벽하게 마친 꼴이 됐다.

당분간 찾아오는 의뢰인에겐 돈 말고 이런 부탁을 할 예정이었다.

충분히 내 소문이 퍼질 때까지 말이다.

한 10명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이 세계의 이상 현상은 반드시 마법과 연관됐으므로, 이렇게 토대를 마련해 놓으면 자연히 마법이 굴러들어 올 거였다.

벌써 기대되네.

나는 군침이 도는 걸 느끼며, 파틀러에게 말했다.

“결과가 나오자마자 편지로 연락할게요.”

“부탁드립니다.”

촉수 괴물에게 세뇌당했던 벤트를 제압하며 나는 많은 걸 얻었다.

분노의 검도 얻고, 고유 마법도 새로 얻고, 웬 기생 생명체도 얻었는데, 그때 내가 얻은 성과 중 가장 극적으로 내 삶을 바꾼 건 역시 이거였다.

끼에에엑! 나는 피닉스에서 내려서며 일행에게 설명했다.

“지금부터는 걸어갈 거예요.”

“루이나 님. 피닉스 이거 굉장히 편하다.”

나는 피닉스에게 잘 숨어 있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일행을 훑었다.

크리스, 레온, 그리고 제리.

한가한 크리스와 사실상 백수인 레온이 나를 따라온 건 이해해도, 강의로 바쁜 제리가 나를 따라온 건 신기할 거였다.

어려울 것도 없이 그 해답은 피닉스에 있었다.

이제 나는 피닉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가능했다.

걸어서 몇 주일이 소요되는 거리를 몇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는 거다.

덕분에 제리도 시간을 내서 나를 따라왔다. 어차피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이니 이런 환경에서라면 얼마든 밖을 나돌아도 상관이 없었다.

“실종사건 때문에 왔다는 걸 명심하세요. 저희는 평범한 여행객인 것처럼 마을에 들어갈 거예요.”

“루이나 님. 우리는 평범한 여행객이라기엔 너무 눈에 띄지 않아?”

“그러니 행동거지라도 평범히 해야죠.”

화전민의 마을은 기본적으로 폐쇄적이었다.

화전민은 농토가 없어 자신만의 땅을 얻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국가에 소속되지 않았고, 세금도 내지 않았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화전민은 범죄자였다.

물론 국가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세금 징수가 어렵고, 화전민이 일종의 사회적 약자라 진짜 심판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법적으로 범죄자라는 건 화전민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진실이었다.

국가가 아량으로 넘어가 준다는 건,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정당히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의미였으므로.

그렇기에 화전민은 외부인에게 배타적이었다. 껄끄러운 게 존재하는 사람은 외부인도 껄끄럽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나는 목속성 원소를 응용해 즉석에서 짐마차를 만들었다.

우리의 컨셉은 여행 중 습격을 받아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말도 잃고 길도 잃어서 막막한 사람들이었다.

“루이나 님. 그런 거치고 짐마차고 우리고 너무 깨끗하지 않아?”

“위장할까요.”

우리는 적당히 고생한 것처럼 위장하고, 짐마차에 에서 꺼낸 위장용 상품을 몇 개 실었다.

나는 말 대신 직접 짐마차를 끌고 오늘의 목적지로 이동했다.

잔해의 냄새가 난다. 무언가가 타고 난 자리를 지키는, 텁텁한 재의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잿빛 내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전문 목수가 만든 집이 아닌, 비전문가가 생존을 위해 얼기설기 엮은 통나무집이 군데군데 보였다.

만들다 보니 점점 실력이 올랐는지 통나무집은 입구에 가까울수록 찌그러졌고, 입구에서 멀수록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췄는데, 나는 그런 마을을 쭉 훑어보다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시선이 꽂힌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던 수많은 사람이 자리에 멈춰서서 일제히 우리를 바라봤다.

그 외부인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시선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예상은 했지만, 쉽지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