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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궁. 땅이 흔들린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등불을 앞으로 내밀었다.
포도밭이 들썩이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거북이를 닮은 커다란 4족 보행의 괴물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진짜 거북이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북이라기엔 녀석의 등에 달린 게 너무 이질적이었으니까.
8개의 촉수가 제각각 다른 생명체인 것처럼 중구난방으로 움직인다.
그 끔찍한 모습에 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포도에 미친 거북이 촉수 괴물이다!”
8개의 촉수가 대지를 내려찍는다.
직후 8개의 붉은 선이 촉수를 요격한다.
끼에에엑! 촉수가 비명을 지른다. 잘못 말한 게 아니다. 실제로 촉수에 입이 생기더니 거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본체는 촉수구나.
새로운 정보를 입력한 나는 재차 마법을 준비했다.
등불 안 불꽃에 입과 이빨이 생긴다. 상당히 날카롭고 단단한 불꽃이었다.
불꽃이 거세게 불타오른다. 그걸 신호로 나는 등불을 크게 휘둘렀다.
동시에 등불에서 튀어 나간 불꽃이 덩치를 키운다.
거의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로 변한 불꽃이 입을 쩍 벌리고 촉수를 물어뜯었다.
포식은 모든 걸 먹어 치운다.
촉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촉수 하나를 잃어버린 괴물이 발작하듯 남은 촉수로 사방을 후려친다. 나는 거리를 벌리며 똑같이 등불을 휘둘렀다.
콰직. 또다시 촉수가 불꽃에 먹혀 사라진다.
그러나 괴물은 발광하는 대신 조용히 나를 응시하다가, 촉수로 포도나무를 찔러 무언가를 꺼내 왔다.
덜 익은 포도, 잎사귀에 가려져 있던 포도,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열린 포도를 전부 따 온 괴물은 촉수의 입을 쩍 벌려 그 모든 걸 단번에 삼켰다.
그리고 불꽃에 사라진 촉수가 꿈틀거리며 초고속으로 재생됐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주위를 둘러봤다.
거대한 포도밭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에 미처 수확하지 못한 포도가 몇 개나 남아 있을까. 계산이 잘 안됐다.
나는 작게 혀를 찼다.
포도를 먹어 상처를 회복하는 괴물과 싸우기에는 장소가 매우 좋지 않았다.
녀석을 다른 곳으로 옮길 방법을 몇 개 떠올렸으나, 하나같이 쉽지 않았다. 본인의 장점을 안다면 설사 유인하더라도 따라오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도주해서 사람을 불러와?
하지만 그랬다가 저 괴물이 땅으로 숨으면 찾기 어려워지지 않나?
라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을 때였다.
“루이나 님!”
돌연 뒤에서 어리숙한 견습 성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법을 준비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제게 오는 촉수만 막으세요.”
“알겠습니다.”
레온은 검을 뽑아 들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상대해야 될 적이 늘어난 게 거슬렸는지 괴물은 포효를 내지르며 촉수를 휘둘렀다.
레온은 그런 촉수를 차분히 지켜보다가, 검을 움직였다.
서걱. 촉수가 땅에 떨어진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8개의 촉수를 정확히 요격한 검술에 속으로 감탄했다.
레온은 본인을 ‘검 실력이 뛰어난 편’이라고 소개했었지만, 그건 완전히 잘못된 설명이었다.
저게 어딜 봐서 뛰어난 편이야.
검의 천재면 모를까.
8개의 촉수를 재생한 괴물이 포도나무를 뒤져 포도를 따 먹는 와중, 나는 천천히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사에게 시간과 거리를 주면 안 된다.’ 용병 업계에 내려오는 금 같은 말이었다.
추가로 ‘마법사와는 싸우지도 적대하지도 말고, 만약 적대하게 됐다면 도주해라’라는 말도 있지만, 이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하여간.
이 말의 핵심은 그거였다.
마법사에게 시간은 곧 자원이라는 것이다.
마법사는 정신을 집중할수록, 시간을 들일수록 마법의 위력이 올라간다.
물론 모든 마법사가 그러진 않았다.
한계도 뚜렷했다.
1위계 마법사가 평생 정신을 집중한다고 대마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닌 거다.
다만.
그런 일반적인 경우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균일한 마력이 마법을 정교하게 쌓아 올린다. 안정성이 높고 튼튼한 기틀이 세워진다.
세워진 기틀 안을 반복된 규칙이 채운다. ‘등불 안에 마법을 발동하면 효율이 좋아진다.’ 안정성이 강화된다.
그리고 제약이 방점을 찍는다.
‘반드시’ 등불 안에 마법을 발동한다.
그 제약이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걸 하나의 마법으로 승화시켰다.
응축된 불꽃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등불 안에서 일렁였다.
나는 부드럽게 등불을 앞으로 내밀며, 불꽃을 해방했다.
번쩍. 등불에서 시작된 붉은 빛줄기가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힌다.
초가을의 살짝 싸늘했던 대기가 달아오르고, 나는 미지근한 바람을 얼굴로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몸이 반쯤 녹아내린 괴물이 비틀거리며 땅을 짚고 일어서는 게 보였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거 같은 모습에 레온의 몸이 살짝 이완된다.
이어서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해치웠다!”
그새 약초를 먹었는지 굵어진 목소리에 나는 혀를 찼다.
그 마법은 함부로 쓰면 안 되는데, 비마법사는 잘 모르나.
아니나 다를까 비틀거리던 괴물이 입을 벌리고 거세게 분노한다.
구오오오오―!
이어서 녹아내린 몸이 꿈틀거리며 자라났다.
순식간에 몸을 재생시킨 괴물은 주변의 포도나무를 뽑아 통째로 삼켰다.
포도뿐만이 아니라 다른 걸 먹어도 되는 거구나.
새로 배웠다.
“루이나 님!”
“도주해요.”
내 최대 화력을 적중시켰음에도 죽이지 못했다.
지금 우리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레온은 검을 뽑아 든 채로 몸을 돌렸다. ‘크리스 님. 도망가셔야 됩니다’라고 말한 건 덤이었다.
나는 재차 포도나무를 뽑아 삼키는 괴물을 흘긋 살피다가, 신속히 자리를 벗어났다.
포도와 포도나무를 삼키는 게 정확히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포도나무가 있는 한 녀석을 죽이는 건….
…….
생각을 이어가다 말고 나는 자리에 멈춰 섰다.
“루이나 님?”
멀리서 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주하자던 장본인이 멈춘 거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레온에게 대답하는 대신, 괴물에게 시선을 옮겼다.
괴물이 포도나무를 삼킨다. 마치 포도나무가 고기라도 되는듯 맛있게 먹는다.
꿈틀. 아직 온전하지 않던 괴물의 몸이 그것으로 회복된다.
포도나무 섭취는 끝났는지 이번엔 포도를 따 입에 넣는 괴물을 주시하던 나는, 조용히 등불을 내려다봤다.
등불 안에서 불꽃이 일렁인다.
이 녀석은 모든 걸 불태운다.
아니. 삼킨다.
나무든, 돌이든, 동물이든, 약초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추억이든, 모든 걸 가리지 않고 난폭하게.
그렇다면 먹어 치운 모든 건 어디로 갈까.
없어지나?
만약 그러면 내가 깨달은 불꽃의 특징은 ‘소멸’이었을 것이다.
‘포식’이 아니라.
먹은 건 영양분이 된다. 몸의 구성원이 된다. 내 것이 된다.
포도를 먹어 몸을 회복하는 괴물처럼.
포식이란, 저런 걸 말했다.
완벽하게 원상 복구된 괴물이 나를 노려본다.
녀석의 촉수가 부푼다. 거의 조그마한 나무의 굵기가 된 촉수가 나를 짓누르기 위해 내려온다.
“루이나 님!”
다급히 달려든 검이, 거대한 촉수를 반으로 가른다.
쿵. 잘려 나간 촉수가 땅에 떨어지고, 몸과 이어진 촉수의 단면에서 여러 개의 촉수가 자라난다.
이제는 22개의 촉수가 나를 노린다.
매우 위험한 상황에 레온이 내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그 순간.
나는 등불을 짤랑였다.
화륵. 불꽃에 입과 이빨이 생긴다. 그대로 등불을 흔들자, 불꽃이 괴물에게 날아간다.
콰직. 불꽃이 촉수를 깨물어 먹는다.
아까와 똑같은 전개에 괴물은 아무렇지 않게 촉수를 재생하며 촉수를 휘둘렀다. 나와 레온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아무리 레온이라도 22개의 촉수를 상대하는 건 버거웠고, 나도 보유한 패가 전부 까인 상태였다.
때문에 괴물의 선택은 유효했다. 지금이라면 저 공격을 막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정말로 내가 보유한 패가 전부 까였다면, 그랬을 것이라는 거다.
촉수를 깨물어 삼킨 불꽃이 사라지지 않고 덩치를 키운다.
내가 막 깨달은 포식의 불꽃 그 두 번째 원리.
먹어 치운 걸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소화’였다.
끝을 모르고 덩치를 키우는 불꽃에 괴물이 당황한다.
뒷걸음질을 치며 몸을 재생하는데, 안타까울 뿐이었다.
네가 끝없이 재생한다면, 나는 끝없이 삼키며 타오르는 불꽃으로 모든 걸 태워주마.
아예 괴물의 몸 전체를 뒤덮은 불꽃이 이윽고 녀석을 통째로 포식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안에서, 꺼져가는 괴물의 단말마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목숨이 끊어져 가는 괴물의 앞에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루이나 님 괜찮으십니까!”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레온 님은 활약한 거에 비해 말이 엑스트라 같네요. 감사합니다.”
“진짜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언니! 괜찮아?!”
“크리스 님. 정말 죄송한데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목소리 변환 약초를 먹지 말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후우. 나는 불꽃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이걸로 마을의 포도를 훔쳐 먹던 해수 구제는 끝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는 크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내 시선에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이나 님? 무슨 일이야?”
“그 기묘한 반존대는 어디서 탄생한 말투인가요. 그나저나 크리스 님.”
“응.”
“이러면 포도주는 전부 저 괴물 뱃속에 들어갔던 건데, 어떡하실 건가요. 남은 재산이 있긴 한가요?”
“아.”
크리스가 짧은 단말마를 뱉는다. 거의 불꽃에 먹혀 사라진 괴물급 단말마였다.
그걸로 충분히 대답은 됐다.
“대체 무슨 일이야!”
멀리서 들리는 웅성대는 소리에 나는 등불을 닫으며 몸을 돌렸다.
오늘의 결론.
보석상, 아니.
크리스가 100금화 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