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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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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룻밤

다음 날, 에인은 마침내 완성된 완드를 받아들었다.

“재질은 수정목이라는 나무의 목재다. 광물처럼 단단한데도 가벼워서, 이만한 크기로도 휘두르기 좋을 거야.”

마탑주는 간략하게 완드에 사용된 재료나 탑재된 기능등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대부분은 에인의 요망대로였다.

“진혁악마님, 이거 봐. 한 쌍.”

에인은 완드에 새겨진 자신의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같은 문장을 새긴 게 그렇게 좋을까.

그 밖에는 뭐, 확실히 잘 만들어진 완드다. 내구도나 마력 전도율을 제외하면 내 미스릴 완드를 웃도는 성능이 나오겠지.

걱정거리던 심연의 파편이 내던 불길한 마력은 크게 사그라져 얌전하게 변했고……확실히 비싼 돈을 들인 값을 한다.

“주의사항이나 그런 건?”

“여기에 끼워 뒀다.”

“이건 뭔데, 마법서?”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두꺼운 책 몇 권을 건넸다. 이거, 에인이 공부할 때 쓰던 마법서 같은데.

“어차피 저 꼬마는 이미 다 익혔을거고, 어디에든 유용하게 써라. 마법을 배우고 싶댔지?”

허 참,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다. 일전에 지나가듯 말한 것뿐이었는데, 마법을 배우고 싶다던 걸 기억하고 있던 모양.

첫인상은 서로 처참했지만, 그동안 꾸준히 얼굴을 보면서 지내보니 나름대로 괜찮은 녀석이었던 것 같다.

커뮤니티에서 들어본 마법사 평균 인성에 비교하며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훌륭하다고 해도 되려나.

“어어……고맙다, 잘 쓸게.”

나는 마법서와 완드의 설명서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 간략하게 챙긴 나머지 짐을 확인했다.

야영 세트는 이제 필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챙기고, 에인의 여벌옷은 넉넉하게 가져가고.

“선생님, 잘 있어. 나중에 또 올게.”

정말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마법도시 게헨나를 떠났다.

목적지는 셰올 시, 게헨나 다음으로 많은 마탑이 모여 있는 도시이자 적색 마탑이 자리하고 있는 곳.

뭐,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만- 혈사교의 본거지가 있던 숲을 헤치고 나갈 때처럼 험한 길을 가는 건 아니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거라, 그냥 잘 닦인 도로를 따라 느긋하게 하루쯤 걸을 뿐.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짐이나 여벌옷 따위도 혹시 몰라서 챙긴 것에 불과하다-

“어이! 가진 거 다 내놓고 꺼져!”

-라고 생각했는데, 길을 떠난 지 십 분 만에 무기를 든 도적 떼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음, 내가 중세 판타지 세계관을 너무 얕본 건가. 백주대낮의 도로에 이런 패거리가 당당하게 나타날 줄이야.

그래봤자 똑같은 대사밖에 말할 줄 모르는 저급 NPC에, 머리 위에 떠있는 콘솔도 병아리 같은 노란색.

후딱 정리하고 지나갈 생각으로 손을 풀며 앞으로 나섰는데, 내 뒤에 있던 에인이 등을 콕콕 찔렀다.

“진혁악마님, 나 이거 해볼래.”

아무래도 요 꼬마가 완드의 성능을 실험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

에인의 완드에 담긴 여러 기능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마력을 생산하고 충전하는 능력이다.

이는 어마어마한 마법적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보유한 마력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에인의 결점을 완벽하게 메꾸어 준다.

다만, 내가 구해온 심연의 파편과 최상급 마법석을 아낌없이 갈아 넣었음에도 그 최대 충전량 자체는 대단치 못하다.

그러나 에인은 단순히 마법의 습득과 시전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마력의 효율적인 활용에도 무척 능했다.

“그아아아악!”

에인이 완드를 몇 번 휘두르자, 무장한 도적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팽이처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약하다고는 해도 나름 18층에 걸맞은 강함을 지닌 도적들인데, 맥없이 구역질하다 기절해버린다.

도적들의 몸무게를 합하면 수백 킬로그램은 될 텐데, 그걸 저렇게 엄청난 속도로 돌려버리다니.

단순한 염동 마법처럼 보이지만, 에인의 곁에 떠올라 있는 마법진은 세 개.

여러 가지의 마법을 겹치고 겹쳐, 매우 적은 소모값으로 이같은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당탕!

기절한 도적들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에인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나 잘했지.”

참고로 저 브이는 내가 알려준 제스처다. 대충 승리를 의미하는 동작이라고 말해 줬었지.

하는 짓은 마냥 귀엽지만, 가진 재능은 여전히 경악스럽다.

개미 눈곱만 한 마력만을 사용해서,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적 다수를 아무렇지 않게 제압하다니.

이 꼬마가 마력량까지 많았으면, 정말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는 현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되었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분명히 됐을 거다.

“잘했어, 대단한데?”

나는 꼬마 에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문득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근데 꼬마야, 전에 보여줬던 그 마법은 이제 쓸 수 있는 거야?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는 그 마법?”

에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질문은 마탑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몇 번 건넨 적이 있다.

에인의 마법적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해, 이미 단순한 기교 면에서는 마탑주를 옛적에 뛰어넘은 수준이다.

하지만 에인이 마법을 배우고 싶어했던 가장 큰 이유, ‘엄마가 좋아하는 마법’은 아직도 구현하지 못하는 상태.

정황상, 마탑주가 오랜 기간 연구하고 있는 마법이라는 건 확실한데.

대체 무슨 마법이길래, 마탑주를 능가하는 재능을 보유한 에인에게조차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엄마 마법 너무 어려워……마법진이랑 다 외웠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에인은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마법으로 내 앞에 펼쳐 보였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크기의 종이에 빼곡하게 가득 그려진 마법진, 전체의 형태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프렉탈 구조로 이루어진 다양한 도형이 복잡하게 얽힌 형태. 마법식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나도 이제 마법에 문외한까지는 아니기에, 대충은 알 수 있다. 이 마법진이 얼마나 굉장한 물건인지.

“꼬마야, 이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는 알고 있어? 너희 엄마는 이 마법을 왜 좋아할까?”

“몰라. 진혁악마님은 알아?”

“아니, 나도 몰라서 물어본 거야. 보통 마법이 아닌 건 확실한데.”

굉장한 마법진이라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모르겠다. 이 마법이 무엇을 위한 마법인지.

화염 속성에 전문일 터인 적색 마탑의 마탑주가, 왜 이런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건지도.

[화면 캡쳐]

적색 마탑주를 만나보면 직접 물어보자고 생각하며, 나는 마법진을 캡처해 저장해 두었다.

**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셰올 시에 도착했다.

사실 이보다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에인이 건강해지고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숲 속을 주파하던 때처럼 느릿한 속도로 이동했으면 반나절 정도는 더 걸렸을 테지.

“진혁악마님, 나 이제 엄마 볼 수 있어? 보러 가는 거야?”

“날이 어둡잖아, 하룻밤만 자고.”

“응, 나 오늘은 일찍 잘게. 빨리 내일 됐으면 좋겠다.”

나는 일단 가까운 숙소를 잡았다. 이런 밤에는 마탑의 문도 닫혀 있을 테니까.

물론 조금 억지를 부리면 바로 찾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곧 에픽 퀘스트가 끝난다. 그러면 꼬마 에인은 엄마 곁으로 돌아가고, 곧 자의식을 잃고 깡통이 되어버리겠지.

그 자체는 애저녁에 각오한 일이지만, 그래도 하루 정도는 느긋하게 뭉그적거리고 싶었다.

“진혁악마님, 나 잠이 안 와.”

에인은 평소와 다르게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그런 소리를 하며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콩닥콩닥해서 시끄러워, 어떡해?”

에인은 자신의 가슴께를 콩콩 두들기며 그렇게 말했다. 엄마를 다시 만나는 게 너무 기대되는 모양이다.

자기 딴에는 심각한 고민이랍시고 저렇게 말하는 거겠지만, 마냥 귀엽기만 하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나 봐?”

“응,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래? 엄마는 어떤 분이신데?”

에인은 이불 속에서 몸을 마구 꼼지락거리며 재잘재잘 엄마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예뻐, 그리고 착해, 진혁악마님 만큼 착해.”

여전히 표현력이 떨어지는 꼬맹이다. 나만큼 착하다니, 그거 보통은 칭찬이 못 되는데 말이야.

나는 한동안 에인의 두서없는 재잘거림을 들었지만, 결국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에인은 정말 엄마를 세상 전부처럼 여긴다.

아이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다. 누가 뭐래도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기준이고, 우주고, 전부다.

혈사교에게 끌려와 괴로운 시간을 겪었을 텐데도, 이 아이는 자신이 입은 상처와 괴로움을 말한 적이 없었다.

에인의 작은 입은 항상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재회의 소망만을 재잘거렸다. 내가 무엇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나는 에인의 가지런한 회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이 아이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날이 밝자마자 적색 마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의 마법사에게 간략하게만 사정을 설명하고, 마탑주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마탑주님께선 모르는 얼굴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혹시 무슨 관계신지……?”

젠장할, 어쩐지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