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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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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청색 마탑
마을을 떠나 향하는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청색 마탑.
정확하게는, 청색 마탑을 포함해 몇 개의 마탑이 밀집되어 있는 마법도시 게헨나다.
여러 마법사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마법학회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며, 18층의 배경인 왕국의 제2수도라고도 불리는 곳.
적색 마탑이 위치하고 있는 ‘셰올’ 과 함께 가장 많은 마탑이 모여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참고로 19층으로 넘어갈 수 있는 미궁 지역도 이 도시 근처에 존재한다. 에인이 있는 한 들어가 볼 수는 없겠지만.
“거기 가면 엄마가 있을까?”
“모르지.”
“빨리 엄마 보고 싶다.”
꼬마 에인은 내 손을 꼭 잡은 채 엄마를 보고 싶다며 재잘거렸다. 마법을 만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에인은 항상 이렇다.
재잘거리는 말의 절반은 ‘엄마’와 관련된 것, 나머지 절반은 마법이나 내가 들려준 동화에 관한 것.
그 ‘엄마’ 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수록, 나도 에인의 작은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있잖아 진혁악마님, 엄마 만나기 전에 이거 마법 할 수 있을까?”
어린아이다운 주어가 생략된 어법, 에인이 말하는 ‘이거 마법’이란 전에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것을 말하는 걸 테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마법’ 이라고 말했던 복잡한 마법식, 나는 아직도 그 마법의 실체를 모른다.
애초에 마법진의 전체 모습도 보지 못했고, 전체를 본다 한들 마법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아볼 방법도 없을 거다.
“모르……열심히 하면 되겠지.”
대충 모른다고 대답하려다가, 나도 모르게 말을 고쳤다. 어린아이에게 이런 말투는 좋지 않지.
“나, 이거 마법도 하고 싶고……현자님도 되고 싶고……엄마도 보고 싶어……”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에인은 무척 욕심이 많다. 무엇하나 포기할 생각을 안 한다.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고 싶다고 말하고, 빨리 엄마를 만나고 싶다고도 말하고, 현자가 되고 싶다고도 말한다.
하여간에 대체 악마를 뭐라고 생각하는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나는 악마도 아니지만.
“엄마를 만나면, 그다음에는 뭘 할 건데?”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에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엄마’, 그다음 순위는 무엇일까 해서.
“엄마한테 마법 보여줄 거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마법. 엄마도 좋아할 거야.”
“그러면, 그다음에는?”
“엄마한테도 맛있는 거 먹여줄 거야. 그리고 같이 동화 얘기도 할 거야.”
에인은 이어서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에인이 원하는 것들은 모두 나와 함께 한 것들이었다.
자기 딴에는 즐거웠던 것들을 엄마와 공유하고 싶어하는 거겠지, 그 마음은 나도 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난다.
방구석에 처박혀 개백수 생활을 이어나가던 시절에도,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효도라는 말을 떠올렸었다.
매일같이 아픈 곳이 늘어가는 엄마가 편히 지내기를 바랐다.
찬밥에 김치나 마른반찬 따위로 끼니를 때우던 엄마가 맛있는 것만 먹기를 바랐다.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다고 말하는 엄마를 비행기에 태워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무엇하나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채 마냥 초대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상이나 마찬가지인 ‘인생 역전 찬스’ 따위를 바라면서-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
그에 비하면, 여기 이 꼬맹이는 얼마나 기특한지.
“그리고, 그다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에인이, 문득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혁악마님이랑 더 멀리멀리 가보고 싶어.”
작게 재잘거리는 목소리에는 순수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소망만큼은 이뤄줄 수 없다. 이 18층에서 계속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꼬마가 반드시 엄마를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다짐할 계기 정도는 되었다.
이제 나는 내 감정을 정확히 안다. 떠오른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쭈, 이 꼬맹이가 누굴 택시인 줄 알아.”
“택시가 뭐야?”
“그런 게 있어, 이 쪼끄만 것아.”
부끄러움을 감추며 거칠게 쓰다듬은 에인의 회색빛 머리카락은,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
마법도시 게헨나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산 속이랑 다르게 길도 잘 닦여 있는 만큼, 에인의 느릿한 걸음에 발을 맞춰 주어도 도착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우여곡절이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다. 길을 지나던 도중 노상강도 패거리 같은 게 나타나곤 했으니까.
“형님! 형님! 제발 살려주십쇼! 목숨만 살려주시면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일개 강도 패거리 따위가 내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뭐, 노상강도치고는 꽤 센 편이긴 했다.
싹 다 죽여버려도 괜찮았겠지만, 꼬맹이가 보는 앞에서 살인을 하는 건 나도 좀 망설여졌다.
“그래, 딱 목숨만 살려 주마.”
“응, 목숨만 살려줄게.”
그래서 죽이는 대신, 적당히 사지를 분질러 놓고 가진 물건을 모두 빼앗았던 일이 두어 번 정도.
돌이켜 보면 어린애에게 삥 뜯기를 가르친 셈이라, 이래도 됐던 건가 싶은데……거친 세상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삥 뜯는 대상도 일반인이 아니라 노상강도고, 강도에게서 강도질하는 건 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런 일을 거치며 도착한 마법도시 게헨나.
게헨나는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에서 반세기 정도 더 전진한 느낌으로 발전해 있는 도시였다.
커뮤니티에서 보던 풍경과는 살짝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다른 층의 차이에 비하면 아직 얌전한 수준이다.
나는 게헨나에 입성하자마자 마탑의 밀집 구역을 찾았고, 꼬마 에인을 데리고 다니며 각 탑의 문장을 보여주었다.
혹시 이 중에서 눈이 익는 것이 있느냐고, 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온 대답은 시원찮았다.
“몰라.”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물어보겠니. 기억력도 좋은 애라서 조금은 기대했는데 말이지.
“이게 무슨 그림인데? 이거 있으면 다 마법사인 거야? 우리 엄마도 이런 거 있을까?”
“마탑 소속의 마법사라면 다 하나씩 있다나봐. 네 엄마도 마탑 소속이었으면 아마 있었을 텐데.”
“그러면, 그러면 진혁악마님도 마법사라서 이거 있는 거야?”
에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견장에 붙어 있는 마크를 손으로 가리켰다.
둥근 고리가 휘감겨 있는 다크엘프 정찰대의 징표다. 나는 대충 비슷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뭘 형상화한 마크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소중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그림이라고.
“그렇구나, 나도 나중에 그거 갖고 싶다. 이건 소원 아니야.”
아무튼, 이렇게 되면 정말 마탑 하나하나에 다 방문해서 사람을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
마탑은 학자들을 위한 연구실 비슷한 곳인 만큼, 일반적으로는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다.
다만, 일부 마탑은 연구비 확보 목적으로 금전을 받고 내부를 공개하기도 한다.
신규 마법사의 등록을 위한 창구 등 몇몇 시설은 기본적으로 개방되어 있기도 하고.
사실 이건 모두 방금 알게 된 사실이다. 원래는 무력을 행사해서 뚫고 가야 하나 싶었거든.
“혈사교에게 납치되었던 아이라고요? 세상에, 용케 거기서 살아 나왔군요?”
커뮤니티에서 듣던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마법사들도 말이 통하는 족속들이었다.
가장 큰 청색 마탑을 찾아가서 사연을 조금 이야기하니까, 안타깝다면서 도와주겠다고 먼저 나서 주었다.
마법사는 수정구를 이용해 에인의 얼굴을 기록한 뒤, 각 마탑에 전송해 연락을 돌렸다.
“대형 마탑에는 모두 연락해뒀어요, 아이 이름이 에인이라고 했죠?”
“예.”
“빨리 어머니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가엽기도 하지.”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쉬고 있으라며, 우리에게 차와 다과를 내주었다.
나름대로 비장한 결심을 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되면 생각보다 싱겁게 일이 끝날지도 모르겠다.
뭐, 요 꼬맹이에겐 잘 된 일이지만……그리고 나한테도 딱히 나쁠 건 없는 일이지. 그냥 좀 허무할 뿐.
에인은 언제나처럼 ‘옴뇸뇸’ 하는 의성어를 내며 과자를 갉아 먹었다.
그 때였다.
-움찔.
묘한 마력의 기척이 나를 둘러싸더니,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묘하게 익숙한 감각이다.
검령이 내 몸 상태를 살필 때와 매우 비슷한 감각- 그리고 엘레노어의 기억에서도 느껴본 적 있는 감각.
타인이 내 몸을 마력으로 훑어볼 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감각이다. 어떤 새끼지?
“방금 어떤 새끼야, 튀어나와라.”
인벤토리에서 검과 방패를 꺼내며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이렇게 대놓고 원격에서 타인의 몸을 마력으로 훑는 건,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동.
물론 나도 지금까지 몇 번이고 한 행동이지만, 이렇게 티를 내면서 훑는다는 건 시비를 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는 곧바로 마력을 최대한 뽑아내 주변에 퍼트렸다. 마탑 안에서 감지되는 생명반응은 거의 백에 이른다.
이게 전부 다 마법사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감지가 끊어졌다.
젠장, 이게 뭐지. 마력감지를 차단하는 마법이 따로 있는 건가.
“재밌는 기척이 느껴져서 잠시 구경하러 내려와 봤는데, 웬 괴물이 있네?”
그 때, 마탑의 구석 계단에서 푸른 옷을 입은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 내려왔다.
“자, 말한 대로 튀어나와 줬는데……그러는 너는 뭐 하는 새끼신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싸가지없는 NPC는 하이엘프 이후로 처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