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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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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의지와 마음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정신을 집중한다.
호흡은 항상 규칙적으로, 정해진 횟수만큼 끊어서 시행한다.
저절로 떠오르는 잡념은 모두 떨쳐버리고, 오롯이 몸 안의 마력을 느끼는 것에만 신경을 쏟는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린다. 의지대로 조종할 수 없는 근육의 떨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지나고 또 지나도, 마력인지 지랄인지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그게 대체 뭔데.
“시발.”
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의 명상은 할 때마다 괜히 스트레스만 쌓인다.
엘레노어에게 마력 감응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 째, 나는 그동안 최선을 다해 명상을 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마력 감응을 깨우치기는커녕, 매일매일 스트레스만 적립하고 있는 상태.
태생적으로 마력 친화성을 타고나는 엘프의 수련법은 내게 맞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냥 명상이라는 짓거리 자체가 나한테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가만히 앉아서 집중력을 끌어올린다는 부분부터가 문제다.
대체 뭘 어떡해야 꼼짝도 안 하고 정신만 집중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뭐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엘레노어는 체내에 흐르는 마력에 집중해 보라고 하는데, 느끼지도 못하는 것에 어떻게 집중하냐고.
그리고, 애당초 나는 집중이라는 행위에 많이 약하다.
방구석에서 커뮤니티 유머글이랑 숏폼만 딸깍거리던 개백수가, 집중이라는 걸 얼마나 해 봤겠나.
내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피가 저절로 끓어오르는 전투 상황 속뿐이다.
신체를 혹사해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 한, 끊임없이 잡념이 떠오르고 만다.
이거 진짜 폭포 수련이라도 해야 하나?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을 쉼 없이 처맞다 보면 잡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관련 내성이 오를지도 모르고.
아니면 폭포가 아니라 불을 피워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명상하는 건 어떨까?
화염 내성도 올릴 수 있을거고, 극한의 고통으로 잡념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 화염 내성이 이미 너무 높아서, 평범한 불꽃에는 백날 지져져도 멀쩡하다는 점인데.
7층은 숲이 배경이라 화염속성 몬스터는 안 나오는데, 다크엘프 중에서 화염 마법을 쓸 수 있는 녀석이 있으려나?
마법의 불길 속에 있다 보면, 마력이 뭔지도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생각난 김에 바로 실행으로 옮기자, 일단 속성 마법을 쓸 수 있는 녀석부터 찾아보자.
그렇게 몇 시간 뒤.
다크엘프는 대부분 그림자 마법을 사용하는지라, 속성 마법 사용자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어머, 네가 그 소문의 인간족 손님이구나? 화염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를 찾는다고?”
그래도 없지는 않았다. 간신히 화염 마법을 다룰 줄 안다는 정찰대원 한 명을 찾았다.
“어, 가능한 강하고 오래가는 걸로 불 좀 피워줬으면 해서.”
정찰대원은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나는 곧바로 만들어진 불꽃의 벽 안으로 들어갔다.
“얘,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리고 5초 만에 끌려나왔다.
**
내가 불에 들어가 명상을 하려 했다는 소식은 엘레노어에게도 금방 전해졌다.
“그런 방법으로 마력을 느껴보려 한 건, 온 세상을 통틀어서 그대 한 명 뿐일 거야. 황당하구나.”
나는 엘레노어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그럴 리가, 한 명도 없을 거다.”
엘레노어는 내 말을 딱 잘라 끊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 단호한 태도다.
“그런 방법을 쓴다고 해서 딱히 마력을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대는 참 막무가내구나.”
막무가내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감각 강화를 포함해, 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기술을 습득해 왔으니까.
“그런데 그대가 명상에 그렇게 약할 줄은 몰랐어, 집중력이 부족한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그러냐, 난 그럴 것 같았는데.”
“그대는 자기평가가 아주 낮구나, 그대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 보면 누구나 똑같이 생각할 텐데.”
높게 평가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런 건 강해지는 일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방해지.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대에게 집중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아마,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마음?”
“일전에, 그대가 싸우는 모습이 무척 위태롭게 보인다고 한 적이 있었지?”
그랬었다. 리즈멜과 크리스탈 거미를 쓰러트리고 돌아온 날이었던가.
검과 내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었지.
추상적인 말이라 그냥 흘려넘겼었던 걸로 기억한다.
애초에, 검이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한다고?
“검은 도구다. 그리고 도구는 사람의 의지를 담아 휘둘러지는 것이야.”
“그렇다면, 검과 주인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무슨 의미일 것 같나?”
“검을 휘두르는 이유와, 검을 휘두르는 순간의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야.”
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한걸음 성큼 다가와 내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대의 마음이 무엇보다 위태롭게 보인다.”
엘레노어의 말은 충격적일 정도로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말한 그대로, 내 마음이며 정신은 분명 위태로운 상태다.
나는 항상 일차원적인 욕망에 눈길을 주었고, 그런 것에 눈길을 주는 자신을 혐오해 왔다.
식욕과 수면욕과 성욕을 모두 갖고 있음에도, 그 모두를 스스로 거세해 버렸다.
죽음을 바라며 위기에 뛰어들면서도, 살아남아 이 탑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내가 이런 불안정한 심리를 자각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엘레노어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내 마음이 무척이나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그대는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어. 그건 그것대로 굉장한 의지력을 의미하지만, 나는 그걸 좋게 생각하지 않아.”
엘레노어는 내 가슴에서 손을 떼고, 이번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 언제나 내 욕망대로 행동한다. 내 의지는 언제나 마음과 같은 방향을 달리지. 혹 그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의지는 화살이요, 마음은 불꽃이라. 두 가지가 함께하면, 하늘조차 꿰뚫고 나아가는 불화살이 되지.”
“그대는 불 속에 들어가 명상을 할 게 아니라,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지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엘레노어의 눈동자는, 언젠가 봤던 것과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꿈꾸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밤하늘의 별을 닮은 빛을.
**
엘레노어의 이야기는 분명 강렬하게 다가왔지만, 그게 실질적인 힘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모순된 의지와 마음이 잡념을 만들어, 명상을 방해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정작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고민한다고 금방 답이 나올 문제도 아닌 것 같고.
역시 그냥 불에 들어가서 고통으로 잡념을 지우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가시 박힌 방석 같은 걸 구해서 앉는다거나, 진짜로 폭포 수련을 한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자, 엘레노어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그대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뭐어, 그대가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도 아니었어.”
그리고는 ‘언젠가 생각이 바뀌었을 때, 내가 한 말을 떠올려 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덧붙였다.
확실히,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좀처럼 잊지 못할 것 같긴 하다.
“자, 그럼 조언은 이쯤하고……이번에는 실질적인 해결 방법으로 넘어가 볼까?”
“해결 방법? 그런 게 있어?”
“물론이지, 나도 지난 일주일간 그대를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찾고 있었거든.”
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쭉 내민 가슴이 자꾸 눈에 걸린다.
그나저나, 그냥 명상하는 방법만 알려주고 내버려 두는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었구나.
뭔가 오늘따라 엘레노어를 여러모로 다시 보게 된다. 역시 다크엘프의 공주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서고를 조사해서 나이트 엘프의 오래된 비술을 하나 찾아냈지, 이거라면 아마 그대도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꺼냈다.
엘프 언어로 쓰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그 비술이라는 게 뭔데, 그것만 있으면 마력을 느낄 수 있는 거야?”
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편리한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감각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서로의 정신을 연결해 사념을 전달할 수 있는 비술이다. 효과는 어제 직접 시험해 봤지, 썩 괜찮더군.”
설명만 들으면 텔레파시 같은 걸로 들리는데, 그게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거지.
“내가 마력을 느끼는 감각을 그대에게 직접 전해줄 생각이다. 그러면 그대도 감을 잡을 수 있지 않겠어?”
아하, 그런 거구나. 그거라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명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마력을 아예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그 비술이라는 걸로 마력을 간접적으로 한 번 느끼고 나면, 어디에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거다.
“후후, 기대되는구나.”
어쩐지 엘레노어의 웃음이 좀 음흉하게 들리긴 하지만.
별 일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