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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계승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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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사람을 심문하는 기술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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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메르세데스 본인이 뭐든 말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기에, 설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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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 때문에, 전하가 이상해져 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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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은 당연히 나를 향한 원망이었다. 이 부분은 대충 듣고 흘려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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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전하께선 평화를 사랑하는 온화한 분이셨다. 타고난 성정부터 싸움과 분쟁에는 맞지 않으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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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선전포고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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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은 전하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 거다! 원래는 그런 분이 아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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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내 욕은 잘 넘겼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바로 딴죽을 걸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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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딴죽에 제대로 긁힌 메르세데스는 그 왕자놈이 얼마나 온화하고 상냥한지 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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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거의 다 흘려듣긴 했지만, 대충 들어도 엄청나게 콩깍지가 씐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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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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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한 타입이 취향인 엘레노어가 비실비실하고 유약하다고 매번 까 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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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왕위에 오르고 난 뒤부터, 전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눈빛부터 완전히 달라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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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하게 빛나던 눈이 빛을 잃고, 선대 왕을 연상시키는 메마른 감정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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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당신께선 매일같이, 어떻게 해서든 이 지긋지긋한 분쟁을 끝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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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간추리자면, 왕위를 계승하자마자 사람이 확 달라졌다 이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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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선 내가 네놈과의 결투에서 패배한 것이 전쟁의 시발점이었다며, 내게 추방령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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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상대로다. 결투 건으로 트집을 잡혀서 내쫓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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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든 전하를 되돌리려 애를 썼지만, 검밖에 다룰 줄 모르는 내겐……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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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왕이 되니까 본색을 드러낸 거 아니야? 너는 거슬리니까 팽당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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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선 그런 분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인간족은 정말 머리까지 글러 먹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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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누구보고 머리 타령이야, 머리가 정상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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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선 이미……내게 결투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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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는 제 잘린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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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패배는 신경 쓰지 말라며, 잘린 귀도 고칠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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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 두 눈이 그립다는 듯 과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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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이 지날 때까지 고칠 방법을 못 찾으면, 책임져 주겠다고……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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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의 목소리가 쥐꼬리만 하게 작아졌다. 얼굴에는 조금 붉은빛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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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지랄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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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아주 천 년의 순애 서사를 만들고 계셨구먼, 커뮤니티 썰풀이 탭에다가 올리면 반응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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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제 대충 이해는 되네, 왜 그렇게 나를 원망했는지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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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메르세데스도 그게 진짜로 내 탓이라 믿는 건 아닐 거다. 일종의 현실도피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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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대상을 정해놓고 그것에 몰두하는 것으로, 감정을 덮어버리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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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마음인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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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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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도피는 진짜 문제를 직시하기 어렵게 만든다. 왕자가 변한 원인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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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를 계승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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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론을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퀘스트 알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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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 다크엘프의 서 - 여왕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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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백 년간의 전쟁 속에서 다크엘프는 점점 열세에 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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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도 성장도 빠른 인간족의 왕국은 백 년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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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을 좋아하는 다크엘프들이 왕국군과의 싸움에서 망설임을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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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오만하고 건방진 하이엘프들도 호전적으로 덤벼 오고 있으니, 다크엘프들에겐 쉴 시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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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지휘하며,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여왕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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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단독 행동을 통해 이 전쟁의 배후에 대한 미심쩍은 정보를 습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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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잘 파고들어 보면, 여왕의 어깨에 지워진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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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 해당 퀘스트의 난이도는 매우 높습니다, 25인 이상의 파티로 진행하시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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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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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밀을 파헤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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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흑막을 밝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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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쟁을 종결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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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레노어를 찾아가 메르세데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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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없는 군더더기를 빼면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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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상하군, 선전포고보다도 놈이 자신의 제1기사를 추방해 버렸다는 게 무척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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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나 싫으나 왕자와 메르세데스를 오래 알고 지낸 엘레노어가 이렇게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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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대여,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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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이미 채비를 마친 나를 향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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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야. 내가 직접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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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이엘프의 영역에 침입해, 직접 왕자 놈의 면상을 보고 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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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된 퀘스트 목표와 설명은 이게 이 길었던 진영 퀘스트의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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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가장 단순하고 빠른 방법으로 퀘스트를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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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위험하다, 아무리 그대라도 혼자서 놈들의 진영에 쳐들어가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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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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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보이던 걱정하는 표정과는 좀 다르다. 뭔가 짜증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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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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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엘레노어가 말한 것처럼 혼자서 쳐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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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랑 같이 가기로 했어, 자기도 그 왕자 놈 일 때문에 답답했던 모양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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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설득도 필요하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는 아직도 왕자놈을 되돌릴 방법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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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족 따위와 힘을 합치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전하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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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가 알려준 루트를 따라 잠입하면 전투는 거의 치르지 않고 왕자놈의 면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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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랑 메르세데스가 작정하고 힘을 합치면 정면돌파도 가망이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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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본다고 뭐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대충 잡아놓고 칼로 쑤시면 비밀인지 뭔지도 다 불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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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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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답지 않게 자신없는 모습으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어느 때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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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면, 계속 그랬다. 바라는 대로 계속 함께 자 줬건만, 엘레노어의 눈에 담긴 별빛은 점점 흐려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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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잘 자는 것 같은데도 항상 피곤해 보였고, 예전과 같은 자유분방함과 당당함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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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이 그 최고조다.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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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그대를 어떻게 말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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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혼자 혼란스러워하다가,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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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가지 않겠다’ 고 말할 뻔했을 정도로- 처연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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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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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신경 쓰지 말자. 아무리 사람처럼 보여도, 저건 결국 영혼 없는 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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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를 신경쓰느라 이렇게 중요한 퀘스트를 내팽개친다니, 말도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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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멈추지 않기로 다짐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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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에게 장비를 돌려주고, 펜던트를 충전한 뒤 곧바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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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조금 걱정했지만, 메르세데스의 머리 위에는 제대로 우호를 의미하는 녹색 콘솔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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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게 아군으로 합류했다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정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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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그동안 많이 바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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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에서의 대결 이후로 처음으로 와보는 대수림 안쪽은 역시 전쟁으로 완전히 갈아엎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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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엘프가 그렇게 중히 여긴다던 자연은 죄다 깎여 나갔고, 널찍한 길이며 감시탑 같은 것이 요란하게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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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직접 지시를 내려 바꾼 것이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과나무도 가차 없이 베어 버리시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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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가 구겨진 표정으로 또 추억담을 이야기했다. 관심 없는 이야기라 그냥 흘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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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니 이야기가 아무렇게나 흘러, 이제는 전쟁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족 왕국군을 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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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에 대한 존중은 조금도 없이, 탐욕에 빠져 영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은……실로 미개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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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멀리서 저벅거리는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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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메르세데스도 감각이 아주 예민한 편이기에, 곧 발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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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욕하는 거 듣고 왔나 보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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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엘프 진영을 노리는 왕국군 병단이 이곳까지 침입해 있었다. 그것도 아마 상당한 정예 병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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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마침 잘 됐군. 어차피 네놈도 엘레노어의 편에서 싸우고 있겠지? 여기서 적을 줄여두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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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냐, 잠입한다며. 여기서 애먼 놈들이랑 싸워서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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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력을 뭐로 보는 거지, 평범한 인간족 병사 따위는 소리도 내지 않고 베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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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뒤로 어지간히 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 7층에서 보던 거랑 성격이 완전 딴판이 되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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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운운하면서 뒷짐 지고 싸우다가 쳐발린 어떤 년이 갑자기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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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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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좀 차려라, 너희 전하 생각은 안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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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메르세데스는 뽑았던 검을 조용히 집어넣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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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대로 왕국군 병사들을 내버려두고, 하이엘프의 왕성을 향한 잠입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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