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 계승된 것
나한테 사람을 심문하는 기술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본인이 뭐든 말하고 싶어하는 모습이었기에, 설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 때문에, 전하가 이상해져 버린 거야……!”
이야기의 시작은 당연히 나를 향한 원망이었다. 이 부분은 대충 듣고 흘려넘겼다.
“원래 전하께선 평화를 사랑하는 온화한 분이셨다. 타고난 성정부터 싸움과 분쟁에는 맞지 않으셨지.”
“걔가? 선전포고를 했는데?”
“네놈은 전하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 거다! 원래는 그런 분이 아니셨어!”
아차, 내 욕은 잘 넘겼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바로 딴죽을 걸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 딴죽에 제대로 긁힌 메르세데스는 그 왕자놈이 얼마나 온화하고 상냥한지 떠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거의 다 흘려듣긴 했지만, 대충 들어도 엄청나게 콩깍지가 씐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용맹한 타입이 취향인 엘레노어가 비실비실하고 유약하다고 매번 까 댔으니까.
“하지만 왕위에 오르고 난 뒤부터, 전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눈빛부터 완전히 달라지셨어.”
“총명하게 빛나던 눈이 빛을 잃고, 선대 왕을 연상시키는 메마른 감정만을 말했다.”
“과거의 당신께선 매일같이, 어떻게 해서든 이 지긋지긋한 분쟁을 끝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까 간추리자면, 왕위를 계승하자마자 사람이 확 달라졌다 이건데.
“전하께선 내가 네놈과의 결투에서 패배한 것이 전쟁의 시발점이었다며, 내게 추방령을 내리셨다.”
이건 예상대로다. 결투 건으로 트집을 잡혀서 내쫓긴 것.
“나는 어떻게든 전하를 되돌리려 애를 썼지만, 검밖에 다룰 줄 모르는 내겐……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왕이 되니까 본색을 드러낸 거 아니야? 너는 거슬리니까 팽당한 거고.”
“전하께선 그런 분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인간족은 정말 머리까지 글러 먹었군!”
이게 누구보고 머리 타령이야, 머리가 정상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전하께선 이미……내게 결투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단 말이다.”
메르세데스는 제 잘린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더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패배는 신경 쓰지 말라며, 잘린 귀도 고칠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푸른빛 두 눈이 그립다는 듯 과거를 떠올렸다.
“백 년이 지날 때까지 고칠 방법을 못 찾으면, 책임져 주겠다고……하셨는데.”
메르세데스의 목소리가 쥐꼬리만 하게 작아졌다. 얼굴에는 조금 붉은빛이 감돌았다.
얼씨구, 지랄을 하세요.
둘이서 아주 천 년의 순애 서사를 만들고 계셨구먼, 커뮤니티 썰풀이 탭에다가 올리면 반응 좋겠어.
그래도 이제 대충 이해는 되네, 왜 그렇게 나를 원망했는지도 알 것 같다.
아마 메르세데스도 그게 진짜로 내 탓이라 믿는 건 아닐 거다. 일종의 현실도피였겠지.
한 가지 대상을 정해놓고 그것에 몰두하는 것으로, 감정을 덮어버리려 한 것이다.
무슨 마음인지 안다.
모를 리가 없지.
하지만 이런 도피는 진짜 문제를 직시하기 어렵게 만든다. 왕자가 변한 원인은 뻔하다.
왕위를 계승한 것.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퀘스트 알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
[에픽 : 다크엘프의 서 - 여왕의 명]
설명 : 백 년간의 전쟁 속에서 다크엘프는 점점 열세에 몰렸습니다.
배움도 성장도 빠른 인간족의 왕국은 백 년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간을 좋아하는 다크엘프들이 왕국군과의 싸움에서 망설임을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오만하고 건방진 하이엘프들도 호전적으로 덤벼 오고 있으니, 다크엘프들에겐 쉴 시간이 없습니다.
전쟁을 지휘하며,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여왕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당신은 단독 행동을 통해 이 전쟁의 배후에 대한 미심쩍은 정보를 습득하였습니다.
이를 잘 파고들어 보면, 여왕의 어깨에 지워진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고 : 해당 퀘스트의 난이도는 매우 높습니다, 25인 이상의 파티로 진행하시기를 권장합니다.)
[퀘스트 목표]
-
비밀을 파헤치기.
-
흑막을 밝혀내기.
-
전쟁을 종결시키기.
**
나는 엘레노어를 찾아가 메르세데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쓸데 없는 군더더기를 빼면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확실히 이상하군, 선전포고보다도 놈이 자신의 제1기사를 추방해 버렸다는 게 무척 이상해.”
좋으나 싫으나 왕자와 메르세데스를 오래 알고 지낸 엘레노어가 이렇게 말할 정도다.
“하지만 그대여,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엘레노어는 이미 채비를 마친 나를 향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말 그대로야. 내가 직접 봐야겠어.”
나는 하이엘프의 영역에 침입해, 직접 왕자 놈의 면상을 보고 올 생각이었다.
갱신된 퀘스트 목표와 설명은 이게 이 길었던 진영 퀘스트의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가장 단순하고 빠른 방법으로 퀘스트를 깬다.
“너무 위험하다, 아무리 그대라도 혼자서 놈들의 진영에 쳐들어가겠다니!”
엘레노어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소리쳤다.
드물게 보이던 걱정하는 표정과는 좀 다르다. 뭔가 짜증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혼자 아니야.”
하지만 나는 엘레노어가 말한 것처럼 혼자서 쳐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메르세데스랑 같이 가기로 했어, 자기도 그 왕자 놈 일 때문에 답답했던 모양이던데?”
거창한 설득도 필요하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는 아직도 왕자놈을 되돌릴 방법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인간족 따위와 힘을 합치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전하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다나?
메르세데스가 알려준 루트를 따라 잠입하면 전투는 거의 치르지 않고 왕자놈의 면상을 확인할 수 있다.
솔직히, 나랑 메르세데스가 작정하고 힘을 합치면 정면돌파도 가망이 없는 건 아니다.
얼굴을 본다고 뭐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대충 잡아놓고 칼로 쑤시면 비밀인지 뭔지도 다 불지 않겠어?
“하지만, 하지만……”
엘레노어는 답지 않게 자신없는 모습으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어느 때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가만히 보면, 계속 그랬다. 바라는 대로 계속 함께 자 줬건만, 엘레노어의 눈에 담긴 별빛은 점점 흐려지기만 했다.
분명히 잘 자는 것 같은데도 항상 피곤해 보였고, 예전과 같은 자유분방함과 당당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이 그 최고조다.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그대를 어떻게 말리겠어.”
엘레노어는 혼자 혼란스러워하다가,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가지 않겠다’ 고 말할 뻔했을 정도로- 처연한 모습이었다.
“……”
아니, 신경 쓰지 말자. 아무리 사람처럼 보여도, 저건 결국 영혼 없는 깡통.
NPC를 신경쓰느라 이렇게 중요한 퀘스트를 내팽개친다니, 말도 안 되지.
절대 멈추지 않기로 다짐했잖아.
**
메르세데스에게 장비를 돌려주고, 펜던트를 충전한 뒤 곧바로 길을 나섰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지만, 메르세데스의 머리 위에는 제대로 우호를 의미하는 녹색 콘솔이 떠 있었다.
확실하게 아군으로 합류했다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정직하니까.
“여기도 그동안 많이 바뀌었네.”
7층에서의 대결 이후로 처음으로 와보는 대수림 안쪽은 역시 전쟁으로 완전히 갈아엎어진 상태였다.
하이엘프가 그렇게 중히 여긴다던 자연은 죄다 깎여 나갔고, 널찍한 길이며 감시탑 같은 것이 요란하게 설치되어 있다.
“전하께서 직접 지시를 내려 바꾼 것이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사과나무도 가차 없이 베어 버리시더군.”
메르세데스가 구겨진 표정으로 또 추억담을 이야기했다. 관심 없는 이야기라 그냥 흘려들었다.
그렇게 두니 이야기가 아무렇게나 흘러, 이제는 전쟁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족 왕국군을 욕하고 있었다.
“세계수에 대한 존중은 조금도 없이, 탐욕에 빠져 영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은……실로 미개했지.”
그러던 중, 멀리서 저벅거리는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
나도 메르세데스도 감각이 아주 예민한 편이기에, 곧 발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네가 욕하는 거 듣고 왔나 보다, 야.”
하이엘프 진영을 노리는 왕국군 병단이 이곳까지 침입해 있었다. 그것도 아마 상당한 정예 병력이.
“흥, 마침 잘 됐군. 어차피 네놈도 엘레노어의 편에서 싸우고 있겠지? 여기서 적을 줄여두고 갈까.”
“미쳤냐, 잠입한다며. 여기서 애먼 놈들이랑 싸워서 어쩌려고?”
“내 실력을 뭐로 보는 거지, 평범한 인간족 병사 따위는 소리도 내지 않고 베어버릴 수 있다.”
추방당한 뒤로 어지간히 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 7층에서 보던 거랑 성격이 완전 딴판이 되어 있네.
“실력 운운하면서 뒷짐 지고 싸우다가 쳐발린 어떤 년이 갑자기 생각나네.”
“……”
“정신 좀 차려라, 너희 전하 생각은 안 하냐?”
단번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메르세데스는 뽑았던 검을 조용히 집어넣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우리는 그대로 왕국군 병사들을 내버려두고, 하이엘프의 왕성을 향한 잠입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