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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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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의 서브 퀘스트는 대부분 전투와 관련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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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하이엘프, 왕국군의 삼대 세력이 직간접적으로 충돌하는 현장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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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정찰대에 합류함과 동시에, 정석적인 퀘스트 내용대로 이곳저곳에서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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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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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척한 쇠구슬이 사족보행형 골렘의 머리를 박살 내고, 그 안에 숨어있던 마법사의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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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족 보행형 골렘은 왕국군의 특수 병기 중 하나로, 내부에 술사가 탑승해 조종하는 특이한 골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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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조종이라는 특징으로 이런저런 정보 수집에 이용되고 있다는데, 어마어마하게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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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너는 누구냐! 왜 우리를 공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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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족 마법사는 오른손에 파이어볼을 만들어내며, 나를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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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저놈이 보기에는 무척 당혹스러운 상황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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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진영을 정찰할 목적으로 들어왔는데, 웬 인간한테 공격받은 상황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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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안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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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어깨에 찬 견장을 가리켰다. 견장에는 다크엘프 정찰대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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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문양을 알아보더니 경악했다. 인간이 다크엘프의 편에 붙은 게 놀라운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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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인간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남의 땅에 병기를 끌고 들어왔으면 당연히 공격받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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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맙소사, 다크엘프 쪽에 붙다니. 네놈, 더러운 용병 나부랭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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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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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행동을 벌일 생각은 없었지만, 네놈 같은 인류의 배신자를 놔둘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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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법사 눈에는 내가 돈에 눈이 멀어서 이종족의 편을 드는 용병 같은 걸로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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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금 시점에서는 크게 다를 것도 없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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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가 소환한 파이어볼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느껴지는 마력의 양은, 음, 별 거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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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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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팔을 휘둘러 파이어볼을 쳐냈다. 역시 이놈도 그냥 잡몹 수준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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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동안 내가 만났던 NPC들이 유독 강했던 거니까. 애초에 왕국군 NPC들은 다 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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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네놈 정말 인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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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서 미스릴 완드를 꺼내, 마법사의 머리통을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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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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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나름의 방어를 펼쳤지만, 미스릴 완드는 그걸 무시하고 놈을 기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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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한 마법사는 대충 버려두고, 사족보행 골렘을 으깬 다음 핵을 뽑아 정찰대에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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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이게 인간족의 새 병기란 말이지……정말 고맙다, 또 한 건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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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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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냥 가는 거냐? 너무 그러지 말고, 가끔은 같이 식사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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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 정찰대원의 권유를 무시하고, 나는 오늘도 내 숙소로 혼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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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세력간의 무력충돌은 점점 잦아지고, 세력의 중심이 되는 NPC들도 점점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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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약을 먹고도 병세를 완전히 떨치지 못한 여왕을 대신하고 있는 엘레노어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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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요즘 너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 아닌가? 도움을 주는 건 고맙지만, 조금 쉬엄쉬엄 하지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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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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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구나. 역시 그대도 나랑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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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엘레노어가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쳐낼 일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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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는 무슨, 됐으니까 네 일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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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내 태도 변화를 느끼고 있는 듯했지만, 당장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 더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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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병세가 길었던 육신의 수명이 슬슬 다해가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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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다면, 엘레노어는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전쟁에 가까워질수록 더 바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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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아주 잘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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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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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빽빽한 퀘스트창을 띄우고, 오늘도 싸우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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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진도를 빼기 시작하니, 퀘스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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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NPC나 히든 보스쯤 되지 않으면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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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는 퀘스트 보상이 계속해서 쌓였고, 경험치를 얻으며 레벨과 스펙도 조금씩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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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을 클리어하고 얻은 [질주] 스킬이나 [약점 간파] 스킬의 레벨도 꽤 성장했고, 전반적인 전투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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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마력의 운용 쪽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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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강화를 자력으로 깨우치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불안하게 요동치는 마력을 뜻대로 다루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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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마다 펜던트를 사용해 마력강화를 발동하고, 그 감각을 몸에 익히려고 노력한 지도 벌써 몇 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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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들이나 사용하는 최상급 스킬을 8층에서 익히려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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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는 슬슬 대충 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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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하며 마력을 움직이다 보면, 혈관이나 신경계와는 다른 모종의 통로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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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의 자칭 정통파 메이지들의 말에 따르면, 이건 모든 생물이 갖고 있는 마력의 회로라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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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던트를 통해 마력강화를 발동하면, 이 회로를 통해 마력이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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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흘러들어온 마력은 그대로 다시 방출되는데, 그렇게 방출된 마력은 곧 내 신체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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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강화를 발동할 때의 ‘쿠르릉’ 하는 천둥소리와, 마력강화가 제공하는 방호력의 원천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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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를 통해 방출된 마력이 공기를 떨리게 하고, 몸을 두껍게 감싸며 갑옷처럼 기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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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오는 마력은 펜던트에 충전된 마력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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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력으로 마력강화를 하는 방법은 지극히 단순하다. 이 회로를 통해 마력을 순환시키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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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로처럼 복잡한 경로를 마력이 올바르게 통과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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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력은 항상 진정되지 않은 상태로 격하게 움직이고, 제대로 통제되지도 않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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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근육이나 신체의 특정 부위에 마력을 쏟아붓는 거라면 어렵지도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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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염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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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자체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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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 의지와 마음에 반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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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와 마음이 모순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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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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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는 오늘 자로 거의 모두 클리어했다. 이제 다크엘프의 서 2장도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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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엘레노어가 다시 깡통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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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서브 퀘스트를 완료하고, 진영 퀘스트 2장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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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건 보상 수령뿐이다. 나는 8층 보스전을 준비하며 숙소에서 혼자 커뮤니티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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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층의 보스는 8층 초반에 보았던 나무 골렘의 강화판으로, 핵이 따로 없는 특수한 골렘 타입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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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 공략 방식은 화염 속성 마법을 사용한 원거리 포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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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위주로 파티를 꾸린다면 10인 이하의 파티로 공략할 수 있을 만큼 상성을 많이 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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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 수 있는 속성 공격은 [라이트닝 차지]의 전기 속성 하나 뿐이기에, 별로 참고할 만한 내용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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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패턴도 나무뿌리를 이용한 속박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단순하니, 쉽게 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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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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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창을 닫고 나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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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특유의 기척으로 엘레노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문은 노크 직후 곧바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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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직 안 자고 있을 줄 알았다.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내길 잘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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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내 떨떠름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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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그대가 찾아왔는데, 좀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질 못해서 무척 아쉬웠던 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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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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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대에서 전해달라는 것도 전해줄 겸 해서, 잠시 이야기하러 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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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의 손에는 한 쌍의 장갑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진영 퀘스트 2장의 최종 보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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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받는 순간 이곳의 NPC들은 다시 깡통이 된다. 생각보다 이르지만,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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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요즘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아 보여. 아직도 이유를 말해주기는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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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련의 탑에 관한 이야기, NPC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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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재촉하는 건 아니다. 그냥……그대가 많이 괴로워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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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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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보여,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고민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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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쓰게 웃었다. 그리곤 이내 자신이 방해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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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하기 힘들다고 해서 계속 참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벽에다 대고서라도 이야기해보면 조금 편해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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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퀘스트 보상인 장갑을 내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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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받자마자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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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시에, 엘레노어에게서 느껴지던 강렬한 기척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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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좋은 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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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엘레노어의 표정에서 생동감이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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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평범한 NPC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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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다 대고서라도 이야기해보면 편해질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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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니들 때문이잖아, 이 개 같은 깡통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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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엘레노어에게 생각나는 대로 말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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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편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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