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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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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모순의 본심
필드 보스를 쓰러트린 후, 감각 강화 스킬의 레벨이 한 번 더 상승했다.
그리고 [감각 증폭]이라는 새로운 액티브 스킬도 습득했다. 스킬의 성능은 단순하게 오감을 더 강화하는 것.
감각 증폭을 켜면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주변을 감지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순간 나는 말 그대로 생체 레이더가 된다.
그냥 민감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소리의 반사로 위치를 파악하는 반향정위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위기를 깨부수며 이룩한 성장은 언제나 짜릿하다. 나는 만족하며 다크엘프의 마을로 되돌아왔다.
마을에는 밤을 지새운 듯 보이는 엘레노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 피냄새가 나는구나.”
그러고보니 다크엘프는 후각이 예민하다 했지. 장비를 갈아입긴 했지만, 피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나.
밤중에 갑자기 장비를 챙기고 외출하더니, 피 냄새를 묻히고 돌아온 상황.
무슨 일이 있었냐고 캐물을 법도 한데, 엘레노어는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대는 내 취향이란 말이지……보면 볼수록 탐나서 원, 종족이 다르다는 사실이 너무 아깝구나.”
음, 뭔가 심오한 말을 하려나 했는데 아니었네. 야성미가 넘치는 연하인지 뭔지가 취향이라고 했었지.
아무래도 엘레노어는 내가 피 냄새를 묻히고 돌아온 게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대도 밤을 새운 거지? 잠은 안 자도 되나? 식사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딱히.”
“인간족은 좀 자주 먹는 편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그대와 식사를 함께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겠지. 다크엘프는 종족 전체가 식사 주기가 뜸한 편이고, 나도 항상 화이트롤로 끼니를 때우고 있으니까.
물론 다크엘프들은 나랑 눈만 마주쳐도 간식을 먹이려고 들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도 필드 보스를 잡은 직후에 화이트롤을 먹어서 따로 뭘 먹을 필요는 없고, 수면도 딱히 필요하지 않다.
“식욕이 없거든.”
나는 대충 대답했다.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식욕이고 수면욕이고 하는 건 옅어진 지 오래니까.
아니, 저절로 옅어졌다기보다는 스스로 잘라낸 것에 가깝겠다.
1층에 처박혀 있던 시절에도, 꼴에 입이라고 매일같이 맛있는 음식만 골라서 처먹었으니까.
일차원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키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그때의 정신상태로 이 7층에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다크엘프들에게 빌붙어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받아먹고, 밤에는 엘레노어랑 뒹굴지 않았을까.
그러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역겨움이 치민다. 짐승만도 못한 꼴이겠지.
가슴에 깊이 박아넣은 의무와 책임감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고 있는 거다.
“그런가, 그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닌데.”
엘레노어는 안됐다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식욕을 잃어가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
엘레노어와는 잠깐의 대화 끝에 헤어졌다. 서로 한가한 신세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정찰대의 건물로 이동했고, 정찰대원 다크엘프들의 관심을 흘려넘기며 리즈멜을 찾았다.
리즈멜과 만나자마자 다시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단한 몸풀기를 마치고, 어제 하던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리즈멜은 어제보다 훈련의 난이도를 낮춰서 천천히 진행하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서걱!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시각에 의존하지 않고 휘두른 검이 가볍게 인형을 베어냈다.
“뭐야, 오늘은 컨디션이 무척 좋은 모양이네? 푹 쉬다 왔구나?”
특별히 더 훈련한 것도 아니지만, 어제와는 사뭇 다른 결과에, 리즈멜은 무척 놀란 눈치였다.
뭐, 반은 맞다.
쉬다 온 건 아니지만 컨디션이 좋기는 하니까.
그리고 훈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시험이 급격히 진도를 나갈 마다, 리즈멜의 표정은 점점 나빠져 갔다.
처음에는 마냥 기뻐하며 칭찬도 하고, 너무 우쭐해하지 말라며 틱틱거리기도 했지만.
내가 인형 다섯을 동시에 여유롭게 쓰러트리고, 어제 보여줬던 동작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시작할 때쯤.
“……”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리즈멜은 입을 꾹 다물고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성장을 아낌없이 내보였다.
눈을 감고 여유롭게 인형을 무찌르며, 감각의 확장을 완벽히 다루고 있음을 증명했다.
“어떻게 된 거야?”
리즈멜이 돌연 험악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가 알려준 거잖아. 틀린 부분 있어?”
리즈멜은 고개를 저으며, 전혀 아니라고 대답했다.
“너……어젯밤에 뭐 했어?”
리즈멜의 눈동자에 다시 깊은 걱정이 담겼다.
**
나는 딱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켕기는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설명했다.
“그냥 실전에서 연습 좀 하고 왔어, 별 거 아냐.”
하지만 끝맺고 보니 별로 떳떳한 말투가 아니었다. 이것도 내 부족한 말재주 탓이겠지.
“실전에서 연습하고 왔다니, 지금 장난해? 네 눈을 베면서 싸우는 게 어떻게 그냥 연습인데!”
리즈멜은 내게 바짝 달라붙어서, 추궁하듯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 무리하지 말라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너는 잘하고 있다고……그런데 왜?”
“뭐가.”
“왜 또 죽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굴기 시작한 거냐고. 그렇게까지 위험한 짓을 할 필요는 없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아.”
“그러면, 왜?”
“할 수 있으니까.”
예전에 말했던 것을 다시 한번 입 밖으로 내었다.
수정 거미 때와 똑같이,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한 거라고.
리즈멜은 그때도 이 대답을 듣고, 내게 검술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뭔가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 한시라도 빨리 강해지고 싶어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자꾸만 위험하게 실전에 머리를 들이미는 거라고. 내가 너한테 검술을 가르쳐 주기로 정한 이유도 그거였어.”
“내가 검술을 가르쳐서 너를 충분히 강하게 만들어 준다면, 위험한 짓을 감수할 일도 더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 그동안 지켜보면서 알았어, 네가 그렇게 급하지 않다는 거. 여유가 있어 보였거든.”
그리고, 리즈멜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즈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는, 그냥 강해지는 게 좋은 거잖아.”
침묵 끝에 나온 말은, 어떤 의미에서 내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이었다.
리즈멜은 내가 성장을 통해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
나는 1층을 공략하고 처음으로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행위의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그 짜릿함은 싸구려 도파민에 빠져 있던 내게 너무나 크고 새로운 자극이었고, 나는 한동안 그것을 쫓아 달렸다.
아니, 지금도 다를 것 없다. 나는 지금도 성장할 때마다 격한 쾌감에 몸부림친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노력을 즐기는 건 평범하게 좋은 일 아닌가?
당장 내가 시련의 탑을 공략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그것 아닌가, 성장의 쾌감.
“네가 위험한 방식밖에 몰라서, 그 방법으로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
리즈멜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금씩 말을 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토 달지 않고 들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잖아. 내가 가르쳐 주는 걸 따라오기만 해도 충분해. 나는 네가 만족하고 있는 줄 알았어.”
리즈멜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리즈멜과의 수련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만 조금 달랐을 뿐이다. 어느 부분이 달랐다고는 나도 말하기 힘들지만.
“내가 너무 조심하게 굴어서 싫었어? 그래서 그런 거야?”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다. 리즈멜의 걱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한 부분도 분명 있긴 했다.
하지만 꼭 그게 이유라고 할 수만은 없다. 돌이켜 보면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하나하나 따져 보자면, 내가 느끼기 시작한 초조함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나는 왜 어제만 유독 그렇게 초조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뜻밖에 빠르게 답이 나왔다.
다크엘프들 사이에서 너무 오래 지나다가는, 다시 예전처럼 한심한 놈으로 돌아가 버릴까 봐. 그거였지.
그렇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 그건 쉽다. 리즈멜이 말한 그대로다.
나는 리즈멜과 수련하며 강해지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만족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만족을 누려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욕망을 모조리 거세했다. 식사는 화이트롤만으로 제한하고, 수면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었다.
다크엘프의 환상적인 몸매에 눈길을 빼앗기면서, 엘레노어의 유혹을 모조리 거부했다.
“그러네, 네 말이 맞다.”
리즈멜은 내가 죽고 싶어서 안달 난 놈처럼 군다고 말했다. 그 말은 무척 정확했다.
할 수 있어서 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본심은 따로 있었던 거다.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나는 죽고 싶은 거였어.”
모정을 빌미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채 사람 하나를 착취하고 죽여버린 희대의 쓰레기, 서진혁.
나는 그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었던 거다.
그 새끼가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꼴을 보면 배알이 뒤틀려서, 자꾸만 죽음으로 내몰았던 거다.
하지만 죽어버리면 탑을 나가서 엄마에게 사과한다는 목표도 이룰 수 없으니까, 나는 그조차도 이룰 수 없었다.
살고 싶은 것도, 죽고 싶은 것도, 모두 나의 본심. 둘 다 나의 욕망.
그러나 내 가슴에 박아넣은 맹세는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멈춰 서지 않고 끝없이 나아간다. 이 탑의 천장을 뚫고 벗어날 때까지.
헷갈리게 해서 미안하다, 리즈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