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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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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비취의 영약
에르웬은 처음에는 왜 그런 것을 묻느냐고 했지만, 이내 거두절미하고 아는 것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세계수는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품고 있는 나무로, 모든 엘프들의 생명의 근원이란다.”
세계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 에르웬의 어투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어린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분위기다.
“그 기원을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어머니인 대지가 낳은 첫 번째 생명의 나무가 바로 세계수였다는구나.”
“세계수가 무한에 가까운 마나와 생명력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인게지, 첫 번째 생명에게 주어진 은혜.”
“세계수는 스스로 낳은 두 엘프종에게 그 생명을 나누어 주었어. 무한에 가까운 생명을 나눠 받은 엘프는 영생종이 되었지.”
나는 어쩐지 에르웬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 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우리는 무척이나 장생하지만, 세계수와 영혼의 탯줄이 이어져 있던 그때의 엘프들은 정말로 영원히 살았단다.”
에르웬의 눈이 미묘하게 먼 곳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과거를 돌이키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영혼은 불멸하더라도, 몸은 결국 쇠하기 마련이지. 세계수는 이 한계를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했단다.”
“노쇠하여 죽음을 맞은 엘프의 혼을 다시 거두어들여, 새 육신을 낳아 그곳으로 순환시킨 것이야.”
“혼에 새겨진 의식과 기억은 새 육신으로 전달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죽음을 맞은 엘프는 다시 젊어질 뿐이었어.”
죽은 엘프의 영혼이 새 육신을 얻고 다시 태어난다, 한마디로 하면 환생이라 이건가.
“하지만 엘프가 스스로 번식하여 늘어날 수 있었던 탓일까, 언젠가부터 세계수도 힘을 잃고 시들기 시작했지.”
7층에서 봤던 세계수의 모습을 기억난다. 비쩍 말랐는데도 굉장한 힘과 존재감을 갖고 있었지.
그게 시든 상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는데, 에르웬의 말이 사실이라면 과연 그럴 만도 하다.
그 나무 하나가 이렇게 많은 엘프들의 생명을 모두 감당하고 있었다는 거니까.
“영생을 안겨주던 순환의 굴레가 망가지며, 엘프들은 더 이상 새 육신을 얻을 수 없게 되었어.”
“육신이 쇠하면 그것으로 끝, 우리의 영혼도 세계수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에 흩뿌려지게 되었지.”
“그 사실을 비통해하는 엘프들은 많았지만, 수천 년이 지나 모두 흙으로 돌아간 지 오래야.”
세계수가 시든 것은 다크엘프가 대수림을 떠나기 전의 이야기라고 했던가.
이제 그 시절의 세계수와 영생의 굴레를 기억하는 다크엘프는 여왕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에르웬도 완전히 그 세대의 인물은 아니고, 애매하게 걸쳐 있다고 한다나.
“뭐, 나는 지금의 형태가 옳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통해 뜻을 물려주는 것은 의미가 깊지 않으냐.”
“그래?”
“물론이지, 너희 인간족이 그렇지 않느냐? 백 년도 못 살지만 끊임없이 번성하고 발전하지.”
그 발전과 성장은 유언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며, 에르웬은 말을 끝맺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가슴에 못질된 맹세가, 이 쓰레기 같은 인간을 움직이고 있으니.
**
세계수에 대해 이것저것 알게 되긴 했지만, 그렇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뿐인데, 만족했느냐?”
만족은 못 했다. 솔직히, 에르웬의 마지막 말 때문에 괜히 기분만 나빠진 것 같다.
하지만 그걸 티 낼 수는 없어서,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르웬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나는 조금 오래 살았을 뿐이라, 아는 것이 많지는 않구나. 이 이상을 알고 싶다면 여왕을 찾아가는 게 나을 거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여왕은 아무때나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에르웬을 먼저 찾아온 거다.
“지금의 여왕은 좀 상태가 안 좋지마는……너는 엘레노어의 정혼자 신분이니 어떻게든 될 테지.”
“정혼자 신분이 아직도 유효한 거야?”
“무얼, 고작 20년 정도 얼굴을 안 비춘 것 뿐 아니냐. 인간족에겐 긴 시간이겠지만 말이다.”
결혼을 약속해 놓고 20년 동안 얼굴 한번 안 비춰도, 취급이 바뀌지 않는다니.
그렇잖아도 엘프의 시간 감각은 쉽게 감이 오질 않는데, 긴 시간을 통째로 건너뛰고 나니 더 헷갈린다.
그리고 여왕을 쉽게 만날 수 없는 이유가 아직 하나 더 있다.
“근데, 여왕이 나한테 호의적이지 않을 것 같은데.”
여왕은 세계수에 미련이 남아, 엘레노어를 통한 정략혼으로 하이엘프와 평화 협정을 맺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그 협정은 7층에서의 내 행보로 박살이 나버렸고, 평화는커녕 전쟁 직전까지 온 상태.
그런 마당에, 여왕이 세계수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를 곱게 봐줄까? 절대 아닐 것 같은데?
“그건 그렇겠구나.”
에르웬도 그 생각은 못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손뼉을 치더니 좋은 생각이 났다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여왕의 병세를 고쳐줄 영약을 구해오는 건 어떻겠느냐?”
그리고, 눈앞에 푸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에픽 : 다크엘프의 서 - 비취의 영약]
설명 : 위대한 다크엘프의 여왕이 병석에 앓아누운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여왕 본인이 몸져누웠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중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를 오가고 있을 수도 있고, 사실 가벼운 감기에 들었을 뿐일 수도 있겠죠.
확실한 것은, 당신이 여왕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성의를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엘프의 제약 기술은 무척 훌륭하니, 평범한 약을 가져다주는 걸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죠?
소문으로 전해지는 비취의 영약 정도가 아니라면, 여왕은 당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입니다.
[퀘스트 목표]
1. 비취의 영약을 손에 넣기.
2. 비취의 영약을 능가하는 진상품을 준비하기(선택).
3. 여왕의 병을 치료하기(선택).
설마 이런 식으로 진영 퀘스트 라인에 다시 들어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거, 내가 아는 퀘스트다. 상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8층 진영 퀘스트의 핵심으로 꼽히는 퀘스트다.
8층 진영 퀘스트는 원래 자잘한 서브 퀘스트 여럿을 진행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지금 난데없이 서브 퀘스트 대부분을 생략하고, 가장 중요하고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에 진입한 거다.
그리고 이거, 내가 알기에는 무조건 파티 퀘스트로 진행해야 하는 기믹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젠장, 어떡하지.
**
비취의 영약 퀘스트는 사실 공략글을 읽으면 아주 쉽게 진행할 수 있는 퀘스트다.
영약을 얻는 건 둘째치고, 영약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정보를 습득하는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니까.
공략글을 따라가면 정보 습득이고 뭐고 다 생략하고, 바로 영약을 습득해서 빠르게 깰 수 있다.
문제는 그 영약을 습득하는 부분인데, 영약을 얻으려면 반드시 파티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다.
시스템적인 인원수 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는 절대 수행하지 못하는 기믹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공략이 그대로 먹힐지도 미지수다. 도전 환경이 다른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니까.
리즈멜이나 엘레노어를 데려가고 싶어도, 전쟁 직전의 분위기 때문에 전투요원은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당장 대장장이인 에르웬도 많이 바쁜 모양이고, 비전투 인원을 데려가는 건 애초에 논외다.
“그래, 구해볼게.”
일단은 짧게 대답해 퀘스트 수락 의사를 표시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에픽 퀘스트를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차라리 잘 됐다. 어려운 과제를 눈앞에 던져 놓으면 일단 잡생각은 사라지니까.
커뮤니티를 열어, 비취의 영약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
비취의 영약을 얻기 위해 찾아가야 하는 장소는 이번에도 던전, 다만 조금 특별한 던전이다.
던전 안에서 특정한 루트를 따라야만 진입할 수 있는 던전 안의 던전이자, 히든 던전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제단 - 3]
찾아온 것은 7층에서 감각 강화를 터득하기 위해 찾았던 저주받은 제단과 비슷하게 생긴 장소.
이런 제단이 8층에만 총 다섯 개가 있고, 그중에서 이 세 번째 제단을 통해서만 히든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커뮤니티의 공략글에 나온 대로 제단에 놓인 석상을 조작했다.
-끼리리리릭!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제단 중앙이 열리며, 보스가 튀어나왔다.
[BOSS - 봉인된 제단의 수호자]
보스는 여기저기 톱니바퀴가 박혀 있는 골렘으로, 스펙은 그냥 흔한 필드 보스 수준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골렘 타입의 적을 자주 만나는 기분이다.
“흡.”
-쾅!
인벤토리에서 둔기 하나를 꺼내 휘두르자, 골렘의 팔 하나가 박살 나서 떨어졌다.
이 골렘은 사지에 박힌 톱니바퀴를 전부 파괴하지 않으면 끝없이 재생하는 타입이다.
그 대신 기본 방어력은 골렘 타입의 보스치고 무척 낮은 편에 속한다. 이렇게 한 방에 박살 날 정도로.
-쾅! 쾅! 쾅! 쾅!
팔다리와 가슴 부분에 박힌 톱니바퀴 하나당 한 대씩, 정확히 다섯 대로 보스를 처치했다.
복잡한 패턴도 없는 이런 필드보스는, 이젠 그냥 좀 센 잡몹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앞으로 몇 층을 더 올라가야 내 스펙에 맞는 적이 나올까.
일부러 어려운 길을 가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보기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