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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피를 먹는 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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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왜 그래요, 이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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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목소리로 해괴한 인사를 건넨 김진아가 싱긋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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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페스티벌에서 만나 잠시 파티를 이루었고, 거하게 뒤통수를 맞으며 헤어졌던 그 사람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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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저 ‘두 사람’과 함께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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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현과 최길훈 형제- 김진아는 두 사람을 꼭 죽여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해질 상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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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제 커뮤니티 말투 잘 알아요, 일부러 농담으로 해 본 건데……표정 좀 풀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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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내가 지금 표정을 풀게 생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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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만났는데 좀 화기애애해도 괜찮잖아요. 그래도 저희 꽤 친한 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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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진아의 변한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고, 피부는 창백하리만치 새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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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런 특징을 가진 종족이 상층에서 나온다는 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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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피를 빨아 생명을 갈취하는 귀종의 괴물, 흡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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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가 되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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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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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봐도 티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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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건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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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 평범한 마법사 도전자였던 김진아가, 왜 대뜸 흡혈귀가 되어서 나타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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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모든 키워드를 차단하고 헤어졌던, 그 3년 전의 페스티벌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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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동안 고생 좀 했거든요. 종족을 바꾼 건 별일도 아니었어요. 인간이길 포기한 게 몇 번이었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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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테리아의 종업원 NPC가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김진아는 자리를 옮겨 내 맞은편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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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대로 한 잔 시켰어요. 제가 사는 거니까 취향에 안 맞아도 불평하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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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빠진 미소를 지어 보인 김진아는 내게 차를 권했다. 나는 인상을 쓰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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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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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한 모금 마시니,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향이 입안에서 흘러넘쳤다. 아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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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지효성의 마비약을 섞어 넣었던, 그때 마셨던 것과 완벽히 똑같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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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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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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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김진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뭘 위해 통하지도 않을 같은 마비 차를 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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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마비약으로 감추고 다른 걸 탔나 싶어 마력으로 감지까지 해봤지만, 그런 낌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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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과거의 일을 비꼬고 싶었던 건가. 하지만 그 일이라면, 나도 할 말이 없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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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그 얘기를 안 드렸네요. 왜 이렇게 경계하시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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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김진아는 흡혈귀 특유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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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진혁 씨한텐 별로 원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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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개도 안 믿을 개소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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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가 하는 말에 특별히 틀려먹은 부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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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그땐 제가 먼저 잘못했던 거죠. 제 목숨 건지겠다고 진혁 씨를 죽이려 한 셈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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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기가 잔뜩 씌어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를 보고도,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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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싸울 생각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제가 겁이 많아서 호위로 데려온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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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 본선에 진출했던 도전자만 스무 명이 넘고, 거기에 랭커급 도전자 수십 명을 더한 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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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월드 레이드도 해봄직한 병력을 그냥 호위로 쓰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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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구성이면 어지간한 중견 길드 하나쯤은 간단하게 짓밟을 수 있겠구만, 말 같지도 않은 구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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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라니까요, 진혁 씨를 어떻게 할 생각이었다면 이보다 더 데려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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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소름 끼치는 속뜻이 손쉽게 읽힌다. 그래, 이보다 뭐가 더 있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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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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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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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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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김진아는 작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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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테이블에서 잡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고 있던 도전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김진아는 다시 손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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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이걸로 진혁 씨랑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완벽하게 감췄다고 생각했는데……대체 어떻게 아신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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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도전자는 자신의 왼뺨과 턱을 양손으로 붙잡았고, 그대로 힘을 주어 자신의 머리를 비틀어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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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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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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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을 오르며 온갖 기괴한 꼴을 다 본 나도 기겁할 광경이었다. 비틀린 목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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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나온 피는 물줄기가 되어 공중에서 흘렀고, 김진아의 창백한 손안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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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는 자신의 피를 이용해 이런저런 짓을 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이건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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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아귀라는 거예요, 제 스킬로 만든 사역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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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는 ‘원래는 좀 더 징그럽게 생겼다’며, 자신의 등 뒤에서 피로 이루어진 팔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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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된 여덟 개의 팔은 목이 비틀린 도전자의 몸을 목각인형처럼 비틀더니, 다시 목 안으로 피를 흘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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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혈아귀- 도전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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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렇게 갓 죽은 시체로 만든 건, 생전의 모습과 자아를 대부분 보존한 채로 조종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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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지금, 이 사람들이 다 한번 죽은 시체들이라고? 여기 있는 전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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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그렇죠, 그래도 겉보기에는 산 사람이랑 아무 차이 없잖아요? 진짜로 어떻게 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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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저지른 미친 짓거리와 내가 지은 표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김진아는 태연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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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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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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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을 바꾼 건 별일도 아니었다는 말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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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는 내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혈아귀의 위장을 어떻게 알아차렸느냐며 집요하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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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길드 간부 중에서도 눈치챈 사람은 없었어요. 일부러 위험한 사람들 근처는 피해 다니기도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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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중요할 때를 빼고는 명령도 안 내렸고, 흘러나오는 마력이나 기척도 완벽히 감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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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클래스 쪽 사람들은 대놓고 감시해도 전혀 모르더라고요. 진혁 씨만 이상하게 계속 눈치채던 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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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활한 목소리로 주절거리던 김진아는 매운 갈빗집에서 있었던 일도 직접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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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눈치채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미리 경계 명령을 입력해 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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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한다- 당장 이 수많은 혈아귀들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살인을 참 쉽게 입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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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이 이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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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상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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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주면 알기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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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대의 미친년 앞에서 더 이상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마력을 주변에 살포하며 [위압]스킬을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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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는 사방에서 가해지는 압력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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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압]스킬의 효과가 그렇게 강력한 건 아니지만, 마법사가 이걸 완전히 무시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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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대답해 주기 싫으시면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 어차피 진혁 씨 말고는 아무도 못 알아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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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전투태세를 갖춘 채, 반대로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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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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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친하게 지냈던 강준호와 친목회에서 만났던 여러 도전자가 모두 혈아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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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모인 전력은 절대 만만하지 않지만, 내가 언제는 상대가 만만해서 싸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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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여하에 따라 여기서 바로 목을 벤다. 아니, 뭐라고 하는지만 듣고 그냥 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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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위협하지 않으셔도 말씀드릴 생각이었어요. 진혁 씨라면… 이해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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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핏빛 혓바닥이 춤추듯 움직이며 문장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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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표는 3년 전부터 하나뿐이었어요.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였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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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언제든 제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목적이라면- 생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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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전부예요.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잖아요? 진혁 씨도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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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는 번들거리는 눈을 붉게 빛내며, 운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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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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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지난 3년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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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눈을 감으면 항상 같은 꿈을 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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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 제가 하는 일은 항상 정해져 있죠, 떨리는 손으로 향긋한 차에 독을 넣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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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을 마신 남자는 끄떡도 하지 않고, 다른 두 명의 남자를 잔인하게 베어요. 맞아요, 그날의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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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 씨가 그 형제를 아무렇지 않게 베는 모습을 보며, 저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채 마냥 울고만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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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끝이라고, 이제 나도 죽게 될 거라고, 생각을 잘못했다고, 그런 말만 머릿속에 맴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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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혁 씨는 결국 저를 죽이지 않았어요. 대신 잔인한 선택지를 제 눈앞에 두고 떠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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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개새끼…속였, 속였어…걸레 같은,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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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는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은 채,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며 제게 욕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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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알았죠, 이 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게 될 거라는 걸요. 진혁씨도 알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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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에요, 저는 이미 진혁 씨를 죽음으로 내몰려 했던 적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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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죄송해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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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울면서 쓰러져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어요. 진혁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과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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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직접 그들의 목을 찔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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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쓰면 금방 소란이 일어나, 사람들이 몰려왔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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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도 결심도 빨랐지만, 문제는 행동이었어요. 저는 분명 떨리는 손으로도 힘차게 단검을 잘 찔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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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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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진혁 씨의 차에 독을 타는 것과 다르게, 직접 사람을 죽이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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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저, 진짜 약해 빠졌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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