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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파라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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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국인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은 그냥 인사치레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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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도 그건 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상황이 다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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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가 결정난 후, 나는 모처럼의 다른 경기 관람도 포기한 채 곧바로 바깥으로 나왔지만- 김민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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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도 안 오고, 커뮤니티로 쪽지까지 넣어봤지만 씹힌 것 같고, 경기장 주변을 빙빙 돌아봐도 안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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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밥이고 뭐고 그냥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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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살다 남자한테 바람을 다 맞아보네, 이거 진짜 이상한 기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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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강 상대였던 박원호도 경기에 지고 나서 쪽팔렸는지 바로 잠수를 타 버렸는데, 김민준도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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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지원#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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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번 토너먼트 최고 명경기 이거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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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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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게이 vs 민준이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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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싹 다 빼고 담백하게 육탄전으로 붙는거 ㅈㄴ 맛있었다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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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전붕이들 싸움이 보는맛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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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ㅈ 진짜 옛날 검투시합이 이런느낌이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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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진혁이도 진혁인데 민준이햄이 접수 개찰지게 해준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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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ㅇ 이정도로 수준높은 맞대결 오랜만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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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수준높은 맞대결 ㅋㅋ 걍 하루종일 샌드백되서 개처맞는게 뭐가수준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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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경기 수준은 모르겠는데 니 수준은 알만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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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도현이 애미 샌드백처럼 줘패는게 더 재밌긴하지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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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새끼들 어제까진 개듣보 취급해놓고 이제와서 민준이햄 이러고있네 ㅅㅂ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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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여론은 이렇듯 김민준에게 아주 호의적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결국 그냥 명품 조연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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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내가 손을 뻗었을 때도 잠깐 이를 악무는 것 같았다. 나름 훈훈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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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럴 때는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라고들 하던데, 내가 김민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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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좀 더 붙어보고 성장하고 싶었을 것 같지만, 남의 마음을 내가 알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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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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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그냥 신경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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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준과의 파토난 약속을 대신해, 나는 강준호와 함께 밥을 먹으러 노점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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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은 그밖에도 많지만, 제일 대하기 편한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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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처럼 과한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고고학자들처럼 설정을 더 풀어달라고 닦달하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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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담담하게 함께 던전을 클리어하고, 룬 문자와 주문 언어의 공부에 묵묵히 협력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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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진혁 씨가 제 파티원들 다음으로 편해요, 말도 잘 통하고, 이렇게 음식 취향도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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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호는 그렇게 말하며, 새빨간 매운 소갈비찜 한조각을 후후 불어 입안에 넣고 몸을 비틀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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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가만 보면 매운 걸 잘 먹는 것도 아니면서 꼭 매운 음식만 골라서 먹는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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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서버의 파티원들은 매운 걸 못 먹는 편이라서,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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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냥 뭐든 잘 먹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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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답하며 똑같이 매운 소갈비찜 한조각을 입에 넣었다. 어우, 이건 확실히 내 입에도 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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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감각은 혓바닥이 느끼는 통증, 그리고 탑의 시스템은 다른 건 몰라도 ‘고통’에 만큼은 내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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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간 별의 별 고통을 다 느껴본 덕분에, 이 정도로는 끄떡도 안 하긴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먹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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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궁금해져서 슬쩍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른 도전자들도 별다른 호들갑 없이 잘만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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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나 사실 맵찔이었나. 아니면 여기가 진짜 매운맛 매니아들만 찾는 숨겨진 노점이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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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면, 뭔가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비법이 있나. [포커페이스] 스킬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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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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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괜히 궁금해져서, 가볍게 마력을 일으켜 감지를 돌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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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강렬한 위화감이 몸을 감쌌다. 이 사람들, 묘하게 기척들이 다 이상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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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갈비찜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일텐데-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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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 씨, 뭐 찾으세요?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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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게 아니라…그냥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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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척을 내는 사람은 그 밖에도 많았지만, 이렇게 한 자리에만 모여 있으니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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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근거도 보증도 맥락도 없다. 내가 그간 쌓아온 수많은 경험으로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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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냥 이상하다. 그냥 불길하다. 보통 이런 느낌이 들 때는 대부분 뒈질 뻔했을 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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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눈앞의 강준호가 실력 괜찮은 주문술사라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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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기척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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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조용히 갈비찜을 먹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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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감지한 순간, 몸은 언제나 그랬듯 판단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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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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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자리에서 의자를 걷어차 날려버리고, 강준호의 손목을 붙잡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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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 주인인 도전자가 ‘어어, 갑자기 왜 그러세요’ 하고 의문을 표했지만, 대답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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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인파가 많은 곳으로 향한다. 단순히 내 착각일수도 있지만,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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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 씨, 잠깐만요! 뭐가 어떻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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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강준호의 말을 흘려넘기며, 재빨리 마력을 퍼트리며 심신을 날카롭게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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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떻게 전투가 벌어져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끔, 하지만 마력을 퍼트린 순간 나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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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백열전구처럼 묘하게 점멸하는 생명반응, 그 이상한 기척을 내는 사람은 그 전에도 드물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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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퍼트린 마력에 감지되는 같은 기척이……이게 대체 뭐야, 왜 이렇게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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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가 밀집된 구역에 가야 하나쯤 느껴질까 싶었던 기척이,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불어나 여기저기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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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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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더위에도 끄떡하지 않는 몸이 식은땀을 흘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에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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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가 느껴지는 것도, 위협이 날아온 것도 아니지만, 주변 모든 사람이 암살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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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근거도 보증도 없는, 생사를 넘어온 그간의 경험에서 비롯한 직관- [직감]이 내게 경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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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 씨, 무슨 상황이든 일단 길드로 가죠. 그리핀같은 대형 길드를 찾아가면 보호받을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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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솔로 플레이가 너무 익숙해서 혼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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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의 위협이 느껴졌을 때는 대형 길드의 막사를 찾아라, 토너먼트 참가자들에게도 그런 공지가 가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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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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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바로 그리핀 길드의 막사로 향했다. 토너먼트 관련된 수속을 처리하느라 한번 가본 적 있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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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는 인파를 힘으로 뚫고, 재빨리 내달려 도착한 천막을 향해 무작정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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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왁, 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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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나는 천막에 뛰어든 직후 짧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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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형 길드의 간부급은 다르다는 걸까, ‘깜짝이야’ 같은 말을 하면서도 모두 재빨리 전투태세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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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하고 있던 마력이 뿜어져 나와 기세를 더하는 한편으로, 재빨리 뛰어들어온 나와 강준호의 얼굴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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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누군가 했더니 솔플러 분이셨네요. 그렇게 급하게 뛰어들어와서는, 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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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내 부족한 사회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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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방법이 없는 직관에서 비롯한 위기감, 나는 오직 그것만을 믿고 여기까지 뛰어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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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씨발……돌겠네, 이걸 뭐라고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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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 하지 마시고,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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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나는 떠듬떠듬 힘겹게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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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설명을 들은 그리핀 길드의 간부들은 모두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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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식사중에 갑자기 생명의 위기를 느껴서, 급하게 여기로 뛰어 오셨다…그런 말씀이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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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고 나니 이렇게 어이없는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직관을 이들에게 전달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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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감지를 써 보니까 기척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사람들이 동시에 진혁 씨를 노려봤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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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그렇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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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오신 분, 강준호 씨? 강준호 씨도 그 이상한 기척을 느끼셨나요? 사람들이 노려본 것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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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무 빠르게 붙잡고 나온 바람에, 오히려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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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저희 쪽을 쳐다본 것 같기는 했는데, 자세히는 못 봤고…이상한 기척이라는 건 저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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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에 ‘그래도 진혁씨가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다’ 라고 변호해 주긴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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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 길드의 간부들은 약간이지만 언짢은 표정으로, ‘한번 조사해 볼게요’ 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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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진상 민원인 내지는 피해망상 환자 취급을 당했다. 당연히 조사고 뭐고 할 리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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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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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터덜터덜 막사에서 걸어나왔다. 정말로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걸까- 그런 생각까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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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때, 내 등을 살짝 두드리는 손길이 반대로 내 감각을 깨웠다. 등을 두드린 건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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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맵에 들어온 이후 몇 번 마주쳤던, 토너먼트를 응원한다고 말해줬던 바로 그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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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너먼트 때문에 예민해지신 것 같습니다. 응원하고 있으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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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새끼도 기척 이상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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