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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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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파라노이아
그래, 한국인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은 그냥 인사치레긴 하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나도 그건 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상황이 다르지 않았나.
승패가 결정난 후, 나는 모처럼의 다른 경기 관람도 포기한 채 곧바로 바깥으로 나왔지만- 김민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려도 안 오고, 커뮤니티로 쪽지까지 넣어봤지만 씹힌 것 같고, 경기장 주변을 빙빙 돌아봐도 안 보이고.
아무래도 밥이고 뭐고 그냥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서 진짜.
살다살다 남자한테 바람을 다 맞아보네, 이거 진짜 이상한 기분인데.
32강 상대였던 박원호도 경기에 지고 나서 쪽팔렸는지 바로 잠수를 타 버렸는데, 김민준도 그런 건가.
[작성자 : 박지원#2411]
[제목 : 이번 토너먼트 최고 명경기 이거인듯]
(사진)
진혁게이 vs 민준이햄
스킬 싹 다 빼고 담백하게 육탄전으로 붙는거 ㅈㄴ 맛있었다 ㅇㅈ?
- 확실히 전붕이들 싸움이 보는맛이 있음
- ㅇㅈ 진짜 옛날 검투시합이 이런느낌이었을듯
- 이건 진혁이도 진혁인데 민준이햄이 접수 개찰지게 해준게 컸다
- ㄹㅇ 이정도로 수준높은 맞대결 오랜만인듯
- ㄴ 수준높은 맞대결 ㅋㅋ 걍 하루종일 샌드백되서 개처맞는게 뭐가수준높음?
- ㄴ 경기 수준은 모르겠는데 니 수준은 알만하다 ㅋㅋ
- ㄴ 도현이 애미 샌드백처럼 줘패는게 더 재밌긴하지 인정한다
- 이새끼들 어제까진 개듣보 취급해놓고 이제와서 민준이햄 이러고있네 ㅅㅂㅋㅋ
커뮤니티 여론은 이렇듯 김민준에게 아주 호의적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결국 그냥 명품 조연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내가 손을 뻗었을 때도 잠깐 이를 악무는 것 같았다. 나름 훈훈한 마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통 이럴 때는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라고들 하던데, 내가 김민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땠으려나.
나라면 좀 더 붙어보고 성장하고 싶었을 것 같지만, 남의 마음을 내가 알 리가 있나.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신경쓰지 말자.
**
김민준과의 파토난 약속을 대신해, 나는 강준호와 함께 밥을 먹으러 노점 거리로 나왔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은 그밖에도 많지만, 제일 대하기 편한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이 사람이다.
아줌마들처럼 과한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고고학자들처럼 설정을 더 풀어달라고 닦달하지도 않고.
그냥 담담하게 함께 던전을 클리어하고, 룬 문자와 주문 언어의 공부에 묵묵히 협력해준다.
“저도 진혁 씨가 제 파티원들 다음으로 편해요, 말도 잘 통하고, 이렇게 음식 취향도 맞고.”
강준호는 그렇게 말하며, 새빨간 매운 소갈비찜 한조각을 후후 불어 입안에 넣고 몸을 비틀어 댔다.
이 사람, 가만 보면 매운 걸 잘 먹는 것도 아니면서 꼭 매운 음식만 골라서 먹는단 말이지.
같은 서버의 파티원들은 매운 걸 못 먹는 편이라서,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같은데.
“전 그냥 뭐든 잘 먹는 거고요.”
나는 그렇게 답하며 똑같이 매운 소갈비찜 한조각을 입에 넣었다. 어우, 이건 확실히 내 입에도 맵네.
매운 감각은 혓바닥이 느끼는 통증, 그리고 탑의 시스템은 다른 건 몰라도 ‘고통’에 만큼은 내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간 별의 별 고통을 다 느껴본 덕분에, 이 정도로는 끄떡도 안 하긴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먹는거지?
괜히 궁금해져서 슬쩍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른 도전자들도 별다른 호들갑 없이 잘만 먹고 있었다.
뭐지, 나 사실 맵찔이었나. 아니면 여기가 진짜 매운맛 매니아들만 찾는 숨겨진 노점이었던 건가.
그게 아니면, 뭔가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비법이 있나. [포커페이스] 스킬이라던가.
“……응?”
이번에도 괜히 궁금해져서, 가볍게 마력을 일으켜 감지를 돌려 보았다.
그러자, 강렬한 위화감이 몸을 감쌌다. 이 사람들, 묘하게 기척들이 다 이상한 것 같은데?
매운 갈비찜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일텐데- 대체 뭐지.
“진혁 씨, 뭐 찾으세요? 화장실?”
“아뇨, 그게 아니라…그냥 뭔가.”
이런 기척을 내는 사람은 그 밖에도 많았지만, 이렇게 한 자리에만 모여 있으니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아무런 근거도 보증도 맥락도 없다. 내가 그간 쌓아온 수많은 경험으로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냥 이상하다. 그냥 불길하다. 보통 이런 느낌이 들 때는 대부분 뒈질 뻔했을 때인데.
그러다 문득 눈앞의 강준호가 실력 괜찮은 주문술사라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 사람들, 기척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 순간, 조용히 갈비찜을 먹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
위기를 감지한 순간, 몸은 언제나 그랬듯 판단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쾅!
나는 그 자리에서 의자를 걷어차 날려버리고, 강준호의 손목을 붙잡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노점 주인인 도전자가 ‘어어, 갑자기 왜 그러세요’ 하고 의문을 표했지만, 대답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인파가 많은 곳으로 향한다. 단순히 내 착각일수도 있지만,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혁 씨, 잠깐만요! 뭐가 어떻게 된……!”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강준호의 말을 흘려넘기며, 재빨리 마력을 퍼트리며 심신을 날카롭게 세웠다.
언제 어떻게 전투가 벌어져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끔, 하지만 마력을 퍼트린 순간 나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백열전구처럼 묘하게 점멸하는 생명반응, 그 이상한 기척을 내는 사람은 그 전에도 드물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퍼트린 마력에 감지되는 같은 기척이……이게 대체 뭐야, 왜 이렇게 많지?
인파가 밀집된 구역에 가야 하나쯤 느껴질까 싶었던 기척이,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불어나 여기저기 섞여 있다.
“씨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떤 더위에도 끄떡하지 않는 몸이 식은땀을 흘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에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
살기가 느껴지는 것도, 위협이 날아온 것도 아니지만, 주변 모든 사람이 암살자로 보인다.
아무런 근거도 보증도 없는, 생사를 넘어온 그간의 경험에서 비롯한 직관- [직감]이 내게 경고하는 것이다.
“진혁 씨, 무슨 상황이든 일단 길드로 가죠. 그리핀같은 대형 길드를 찾아가면 보호받을 수 있을 거에요.”
그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솔로 플레이가 너무 익숙해서 혼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신변의 위협이 느껴졌을 때는 대형 길드의 막사를 찾아라, 토너먼트 참가자들에게도 그런 공지가 가지 않았던가.
-타다닥!
나는 곧바로 그리핀 길드의 막사로 향했다. 토너먼트 관련된 수속을 처리하느라 한번 가본 적 있는 장소다.
웅성거리는 인파를 힘으로 뚫고, 재빨리 내달려 도착한 천막을 향해 무작정 뛰어들었다.
“우왁, 깜짝이야!”
이런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나는 천막에 뛰어든 직후 짧게 감탄했다.
역시 대형 길드의 간부급은 다르다는 걸까, ‘깜짝이야’ 같은 말을 하면서도 모두 재빨리 전투태세를 취한다.
갈무리하고 있던 마력이 뿜어져 나와 기세를 더하는 한편으로, 재빨리 뛰어들어온 나와 강준호의 얼굴을 살핀다.
“오, 누군가 했더니 솔플러 분이셨네요. 그렇게 급하게 뛰어들어와서는,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내 부족한 사회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설명할 방법이 없는 직관에서 비롯한 위기감, 나는 오직 그것만을 믿고 여기까지 뛰어왔을 뿐이다.
“하, 씨발……돌겠네, 이걸 뭐라고 해야 돼?”
“욕은 하지 마시고,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나는 떠듬떠듬 힘겹게 상황을 설명했다.
**
내 설명을 들은 그리핀 길드의 간부들은 모두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식사중에 갑자기 생명의 위기를 느껴서, 급하게 여기로 뛰어 오셨다…그런 말씀이신거죠?”
요약하고 나니 이렇게 어이없는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직관을 이들에게 전달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력감지를 써 보니까 기척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사람들이 동시에 진혁 씨를 노려봤다고요?”
“말하자면 그렇게 되는데……”
“같이 오신 분, 강준호 씨? 강준호 씨도 그 이상한 기척을 느끼셨나요? 사람들이 노려본 것까지요?”
강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무 빠르게 붙잡고 나온 바람에, 오히려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거다.
“사람들이 저희 쪽을 쳐다본 것 같기는 했는데, 자세히는 못 봤고…이상한 기척이라는 건 저도 잘……”
말끝에 ‘그래도 진혁씨가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다’ 라고 변호해 주긴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리핀 길드의 간부들은 약간이지만 언짢은 표정으로, ‘한번 조사해 볼게요’ 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내보냈다.
사실상 진상 민원인 내지는 피해망상 환자 취급을 당했다. 당연히 조사고 뭐고 할 리가 없겠지.
“젠장할……”
나는 터덜터덜 막사에서 걸어나왔다. 정말로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걸까- 그런 생각까지 하며.
하지만 그 때, 내 등을 살짝 두드리는 손길이 반대로 내 감각을 깨웠다. 등을 두드린 건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페스티벌 맵에 들어온 이후 몇 번 마주쳤던, 토너먼트를 응원한다고 말해줬던 바로 그 간부.
“토너먼트 때문에 예민해지신 것 같습니다. 응원하고 있으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죠.”
아, 이 새끼도 기척 이상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