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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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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토너먼트 16강
내 16강 상대인 검투사 남자의 이름은 김민준.
같은 서버에 동명이인만 두 자릿수에 달할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심지어 생긴 것도 흔하게 생겼다.
특별히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이목구비, 평범한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존재감 없는 외모.
클래스도 흔해빠진 전사 클래스의 파생 직업, 사용하는 무기도 흔해빠진 검과 방패의 조합.
하지만 막상 본인과 대치하면 절대 흔하다느니, 평범하다느니, 지껄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에 입성해, 무장을 갖춘 김민준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역시 광전사와 비교했을 때 작을 뿐이지, 키도 굉장히 장신인데다가 팔다리가 쭉쭉 길게도 뻗어 있다.
저런 체형은 흑인 운동선수들한테서나 보던 것 같은데, 평범한 한국인 얼굴로 저런 몸을 가지고 있으니 위화감이 엄청나다.
그리고 장비도 평범한 듯 보이기에 오히려 평범하지 않다. 저런 건 평범하다기보다는 일부러 수수한 걸 고른 거겠지.
내가 아직도 [강철 직검]을 주 무기로 선호하듯, 저쪽도 장식이 거의 달리지 않은 심플한 디자인의 장비를 좋아한다.
실전지향적인 세팅을 했다는 뜻이다. 저번에 보니 대인전에도 익숙해 보이던데, 원래 바깥에서 뭐 하던 사람이었을까.
궁금하지만 아직은 물어볼 수 없다. 시합이 시작되면, 아니면 끝난 뒤에, 천천히 대화를 시도해 보자.
[경기가 시작됩니다.]
-저벅, 저벅.
카운트가 끝나고, 나와 김민준은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며 천천히 경기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역시, 움직이기 시작하니 확실히 남다른 점이 눈에 보인다.
근육의 움직임, 호흡, 걸음걸이, 적당한 긴장까지- 모두 놀라울만큼 안정적이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 정도로 깔끔한 움직임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적지 않은 실전 경험과 꾸준한 단련이 뒷받침되어야만 만들어지는 자세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상대다.
-스릉.
검을 뽑았다. 경직된 분위기가 일순간에 달아오른다. 내가 먼저 김민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신중한 타입이니 어지간해서는 먼저 공격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들어가 주는 게 맞을 거다.
-카각!
정직한 궤도로 내려친 [강철 직검]이 김민준의 외날검에 막혔다. 아니, 단순히 막힌 게 아니라 흘려진다.
김민준은 그대로 검로를 비틀어 외곽으로 빼낸 뒤, 외날검을 휘두르- 지 않고, 검신을 손으로 잡아 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서양 검술 용어로 하프 소딩이라 부르는 그 기술이다. 이걸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미 다른 도전자들과는 급이 다르다.
나는 그대로 검을 쥔 손목을 위로 비틀어 올려, [강철 직검]의 크로스 가드를 앞세움으로써 찔러 들어오는 외날검을 받아내었다.
이어서 부드럽게 어깨와 손목을 움직여, 근거리에서 김민준의 목을 향해 칼날을 들이댄다.
초근거리에서 벌어지는 소드 레슬링 상황, 이런 상황에서 기술과 기교로 대처하는 게 가능한 도전자는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김민준은 해냈다. 크로스가드에 막혔던 외날검을 물 흐르듯이 뒤로 빼서 던져버리고는, 순식간에 부무장으로 전환.
내가 애용하는 손도끼처럼, 손목에 수납해둔 짧은 단검을 꺼내어 목덜미로 향해오는 [강철 직검]의 날을 받아내었다.
김민준은 그대로 힘을 주어 직검의 날을 밀어내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로우킥을 날려 왔다.
무장의 전환도, 근거리에서의 체술 싸움으로의 전환도, 모두 빠르고 군더더기 없다.
“좋은데.”
-파박!
나는 한쪽 다리를 들어 로우킥을 방어하고, 그대로 김민준의 몸을 강하게 밀어 차냈다.
평소대로였으면 굳이 이런 방어자세를 취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철벽]으로 받아내고 강제로 턴을 잡았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수수하게 훌륭한 기량을 뽐내는 상대를, 스킬과 스펙으로 찍어누르는 건 못할 짓이지.
“더 해봐.”
모여든 관중과 커뮤니티의 익살꾸러기들에겐 미안하지만- 오늘은 화려한 맛은 좀 빼고 싸워보자.
**
김민준처럼 무난하게 강한 타입을 공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귀찮은 수 싸움과 기량 승부에 어울려주지 않고, 압도적인 힘과 체급으로 압살해 버리는 것.
[강철의 혼]이라는 사기적인 패시브를 갖고 있으며, 마력강화를 포함한 온갖 강화 수단을 가진 내겐 손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찍어누르는 싸움만 하다 보면, 무식하게 스펙만 높은 다른 도전자들과 다를 게 없어질 것이다.
본질적인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때로는 이렇게 정직한 싸움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카앙!
김민준의 외날검을 쳐내고, 들고 있는 방패 밑으로 몸을 날려 양다리의 오금을 노렸다.
김민준은 태클을 방어하기 위해 재빨리 자세와 중심을 낮추었다.
그 순간 나는 한쪽 손으로만 다리를 잡고, 반대쪽 손으로는 김민준의 옷깃을 잡는 자세로 전환했다.
평범한 격투기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동작이지만, 시련의 탑 도전자의 강인한 육체가 있다면 가능한 변칙 그래플링.
발목 하나로만 전신을 지탱하고, 나머지 신체부위를 하체 근처로 밀어 넣어 비정상적인 무게중심을 형성한다.
그렇게 극한까지 낮춘 자세에서 등을 이용해 상대를 들어 올려,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아 처박는다.
-쾅!
설원 트롤의 지도자급 개체가 사용하던 기술과, 리자드맨의 근접 레슬링 기술을 결합한 동작이다.
초인끼리의 검술과 격투에 익숙한 검령은 방어해 냈었지만, 김민준은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당했다.
지면에 꽂힌 김민준은 재빨리 자세를 다잡았다. 나는 김민준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눈앞으로 방패가 날아왔다.
-휘잉.
뻔한 시간벌이용 투척을 피해내고, 검을 뽑아든 김민준의 손목을 비틀며 빼앗았던 단검을 휘둘렀다.
김민준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단번에 자세를 크게 낮추었다. 그리고 전신을 채찍처럼 휘둘러 발차기를 날렸다.
가볍게 뛰어 피해내자, 이번에는 전신의 탄력을 이용해 공중으로 도약. 힘차게 외날검을 휘둘렀다.
나름 머리를 쓴 공격이었겠지만, 전체 동작이 너무 커서 빈틈이 뻔히 보인다.
-빠악!
외날검의 간격 안쪽으로 파고들어, 반 박자 빠르게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경기는 조금 전부터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김민준의 기술에는 큰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모든 기술이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점. 일반적인 격투의 상식을 깨는 초인적인 동작에는 좀처럼 대응하지 못한다.
임기응변 능력은 괜찮아서 나름대로 수를 강구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결국은 금방 한계를 노출한다.
이번 경기도 내가 이긴다.
**
그로부터 몇 분 후, 이제 승패는 누가 봐도 명확한 수준까지 왔다.
“헉, 헉, 허억……”
몇 번이고 나와 칼을 부딪쳤던 김민준은 헉헉거리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초재생]의 효과로 무한에 가까운 내 지구력을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수비적으로 대응해서 체력을 아꼈지만 슬슬 한계겠지.
일부러 기술과 기술의 싸움으로 상대해줬지만, 나는 결국 끝까지 피는커녕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 이상 시간을 줘도 무의미하겠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뻗은 상대에게 결정타를 넣기는 좀 그렇지.
“잘하시네, 어디서 배우셨어요?”
나는 뻗어있는 김민준을 향해 다가가 손을 뻗으며 물었다. 김민준은 잠시 불타는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어차피 졌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금방 표정을 풀고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헌터 아카데미 교육생……시설에서는 수석이었습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지. 헌터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일종의 실용전문학교 같은 것.
현역 헌터들과 온갖 트레이닝 전문가들의 지도를 바탕으로, 신체를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평범한 도전자들이 생활체육 아마추어들이라면, 이 사람은 태릉 출신 엘리트 체육인쯤 된다고 생각하면 될까.
“근접 전투 부문에서는 항상 만점이었는데, 이렇게 질 줄 몰랐습니다. 세상은 넓군요.”
세상이 넓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하고 싶다. 설마 도전자 중에서 나랑 이만큼이나 겨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아마 검술과 체술 모두 최소 중급에 10레벨 이상이겠지. 어쩌면 상급 직전까지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
“뭘요,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빈말이 아니다. 차이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비등한 수준의 상대와 대련해 본 경험은 분명 내게도 도움이 될 거다.
검령 녀석은 스펙이 딸릴 뿐이지, 여전히 순수 검술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강하니까. 이런 거랑은 조금 느낌이 다르거든.
음……가능하면 페스티벌이 끝나기 전에 몇 번 더 붙어보고 싶은데, 이걸 기회 삼아 친구추가라도 해 볼까.
“어디, 경기 끝나고 같이 식사라도 하실래요? 이겼으니까 제가 사죠.”
“하하, 유명인한테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다면 저야 환영이죠.”
어색한 말투로 건넨 식사 제의, 김민준은 웃음과 함께 그것을 흔쾌히 수락하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민준은 경기가 끝난 후, 식사는 커녕 그대로 잠수를 타 버렸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