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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너먼트 32강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도전자들이 신경에 거슬려, 일부러 감지의 수준을 많이 낮춰둔 탓인가.
돌이켜 보니, 몇몇 사람들의 기척이 유독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예 안 느껴졌던 건 또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하나- 흘러나오는 마력과 생명반응이 좀 오락가락하는 느낌?
필라멘트 수명이 다 되어서 깜빡이는 백열전구처럼, 기척이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조금씩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겪는 일이라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냥 몇몇 사람들의 기척이 이상했다.
“무슨 스킬 때문인가?”
잠시 이마를 짚고 고민해봤지만, 마땅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굳이 신경써야 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친목 모임에 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스펙이 낮거나 애매한 저레벨 도전자들, 내게 달라붙었던 아줌마도 마찬가지다.
뭔가 수상쩍은 일을 꾸미고 있다 할지라도, 그게 뭔들 나한테 통할 일은 없다. 잔재주 종류는 내게 특히 안 통하니까.
그보다는 내일 열릴 토너먼트 본선을 더 신경 쓰는 게 좋겠지.
본선은 예선과 다르게 도전자간의 1대1 매치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점으로, 특수 보호 효과가 제공된다.
HP가 0으로 떨어지거나, 빈사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발동하는 강력한 보호막+회복 효과. 즉, 사망 방지 장치다.
이 보호 효과 덕분에, 본선에 진출한 도전자들은 상대방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이 전력으로 싸울 수 있게 된다.
설령 즉사급 데미지를 입어도, 보호 효과를 받아 기력만 소진한 채 경기장 바깥으로 전송된다고 하니까.
한편, 커뮤니티에는 마침 그 보호 효과와 관련된 공지사항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필독)토너먼트 본선 참가자들에게 안내 드립니다.]
탑의 치안을 담당하는 거대 길드의 마스터가 직접 올린 범죄 예방 공지였다.
내용은 토너먼트 본선 탈락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과, 범죄행위에 대한 강력한 경고.
토너먼트에서 즉사급 데미지를 입고 탈락한 도전자는, 보호 효과가 발동되어 기력만 상실하고 경기장 바깥으로 전송된다.
그렇다면, 기력을 상실한 도전자가 누군가에게 습격당하기라도 하면 어떨까. 변변찮은 저항도 못 하고 살해당할 것이다.
물론 토너먼트 본선 진출자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개나 소나 쉽게 죽일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핀 길드에서 주최하는 스포츠 토토도 본선으로 가면 그 규모가 더욱 커진다. 예민해진 도전자도 당연히 많겠지.
시련의 탑은 초대장만 받으면 누구나 들어오는 장소, 당장은 잠잠하지만 범죄자나 질 나쁜 인간들도 얼마든지 섞여 있다.
고로- 큰돈을 걸었다가 잃고 탈락자에게 보복하려 드는 개인, 혹은 집단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다.
대형 길드의 보호조치에도 빈틈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이들이 약속할 수 있는 건, 범죄 행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PK라는 단어로 순화하고는 있지만, 결국 처형뿐이다. 대형 길드의 간부들이 모두 칼을 들고 나설 거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침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토너먼트 단체전, 파티를 이뤄 붙는 경기랬지.
유망한 신인 도전자들을 위한 자리인 개인전과는 다르게, 그쪽은 각 길드의 간부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한 장소다.
그랜드 페스티벌에서만 열린다는 길드전 콘텐츠보다 규모는 작지만, 진짜 강한 도전자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오늘은 그 예선이 진행되고 있다니까, 남는 시간은 그거나 보러 가도록 하자.
**
각 서버의 치안을 책임지는 대형 길드의 본질은, 잘 쳐줘도 자경단이고 나쁘게 말하면 군벌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의 법률과 처벌이 통용될 수 없는 이곳에서, 무력을 독점하고 본인들의 잣대로 타인을 심판하는 존재들.
그런 녀석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정당성과 무력을 주기적으로 어필해 줄 필요가 있다.
대형 길드의 간부 중에는 탑에서 10년 이상을 썩은 괴물들도 있으니, 그 이상 무슨 어필이 필요할까 싶지만.
원래 이런 건 눈으로 안 보면 꼭 이해하지 못하고 개기는 놈들이 한둘쯤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단체전은 그런 놈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무력 어필의 장, 비유하자면 대규모 열병식 같은 자리.
상층 랭커와 길드 간부들로 이뤄진 올스타 파티가, 아낌없이 그 힘을 드러내는 정상 결전이다.
-쾅! 콰광! 콰앙!
시간이 남는 차에 보러 온 단체전 예선은, 그런 평가에 걸맞게 상당히 수준 높은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개인전 예선에서 봤던 애매한 저층~중층 랭커가 아닌, 다수의 고층 도전자들이 맞붙고 있다.
스킬 한방한방이 엄청난 위력을 뿜어내며, 나조차도 얕볼 수 없는 충격량이 대기를 쩌렁쩌렁 울려 댄다.
“이야……세긴 세네.”
양쪽 파티 모두 75층 이상의 고층 도전자랬던가, 탑을 졸업하고 헌터가 되기 직전인 완성품들.
확실히 스펙이 높긴 높다. 저런 녀석들이 개인전에 우르르 나왔다면, 나도 우승은 장담할 수 없었으리라.
다만 스펙에 비해 기량이 영 아니다. 뭐, 고층 도전자라고 해도 성장방식은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초감각]
고층 도전자들의 수준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경기장까지 닿도록 넓은 범위에 마력을 퍼트려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실수했음을 깨닫고 마력을 거두었다. 여기서는 감지를 쓰면 안 됐다.
첫 번째 문제점은 경기를 구경하러 온 도전자가 너무 많았다는 것, 혼탁하게 섞인 다수의 마력에 현기증이 났다.
“엇, 방금, 무슨……?”
두 번째 문제점은, 무대 위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파티의 핵심- 마법사 한 명이 내 마력을 느끼고 움찔했다는 점.
아무리 스킬에 의존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고레벨 마법사답게[마력 감지]계열 스킬의 레벨이 높은 탓이리라.
팽팽하게 맞붙던 두 파티의 싸움은 한 쪽의 마법사가 한눈을 판 사이, 균형이 무너지며 그대로 승부가 갈렸다.
“아, 거 참, 집중 좀 하지.”
집중력도 나쁘면서 쓸데없이 예민한 게 독이 됐구나. 안타까워라.
**
다음 날, 토너먼트 본선 시작까지 30분이 남은 시점.
나는 바글거리는 인파를 뚫고 대기실에 입장했다. 생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토너먼트가 행사로서 인기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본선 시작이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인파가 몰릴 줄은 몰랐다.
단순히 인파가 몰린 것 외에도, 응원한다며 나를 둘러싸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던 탓에 시간이 좀 걸렸다.
떨쳐내려면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괜히 누가 다치면 안 되니까.
“오늘은 무기 쓰시는 겁니까?”
대기실에 들어가니, 일전에 나를 응원한다고 했던 그리핀 길드의 간부가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아마 경기 전후의 혼잡을 수습하기 위해 배치된 것 같다. 나는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본선이니까, 계속 맨주먹만으로 싸우는 건 상대방에게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툭툭.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대기했다. 곧 나는 경기장 안쪽으로 이동되었다.
수많은 객석에 채워진 사람들이 환호하며 손을 흔든다. 가볍게 마력감지를 펼쳐 보니, 조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요 며칠 함께 주문을 연구하며 던전을 돈 강준호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옆으로 저번에 만난 친목회 인원들까지도.
나한테 달라붙던 젊은 아줌마들이 꺅꺅거리며 내 이름을 소리치고 있다. 허, 참, 이걸 모여서 응원해주네.
“하핫, 그 차림은 뭐야? 이제 와서 전사라고 페이크라도 치려고?”
한편 내 맞은편의 32강 상대, 원소술사 박원호는 실실 웃으며 그런 말을 내뱉었다. 뭐라는 거지.
“페이크가 아니라 진짜 전사인데.”
“핫,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분석 끝났다고 했지?”
“뭘 어떻게 분석했는데 그런 말이 나오냐?”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받아치자, 놈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기다렸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도전자들이랑은 좀 다르거든, 네가 번개 속성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걸 바로 눈치챘지.”
놈의 마력이 스멀스멀 내 발밑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은근슬쩍 마력감지를 펼치고 있었나.
“예전에 공개했던 스킬 중 [라이트닝 차지]가 있었지만, 고작 차지 스킬로는 그렇게 자유롭게 마력을 다룰 수 없어.”
딱 여기까지 듣고, 나는 이 녀석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착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녀석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녀석도 어설픈 재주가 독이 된 케이스였다. 놈은 내 예선 경기를 보고 내 마력을 곧바로 분석해 냈다.
나는 마법 스킬을 얻은 전사치고는 너무 높은 수준으로 번개의 마력을 다루고 있었고, 그것이 착각으로 이어져서-
“네가 보여준 특징에 딱 맞는 하나의 클래스, 유니크 클래스인 청마도사……훗, 정곡을 찌른 모양이군.”
-나를 번개 속성 전문의 마법사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하필이면 그 착각에 딱 맞는 특징의 클래스가 있었고.
청마도사, 번개 마법을 주무기로 완드와 스태프에 의존하지 않는 하이브리드 타입의 마법사 클래스.
자신의 신체를 전기로 자극하는 것으로, 근력과 민첩 스탯을 증가시키는 고유 버프 스킬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해해, 청마도사 클래스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으니까……나한테 간파당하고 싶지 않았겠지.”
놈은 범인을 잡아낸 명탐정처럼 위풍당당하게 떠들었다. 동시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가 움직였고.
“네 모든 스킬은 번개 속성! 단일 속성 대책은 시간이 조금만 있으면 거뜬하지! 이제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천의 마술]이 놈이 장착한 장비에 걸린 마법을 읽어내었다. 여러 종류의 번개 속성 저항 마법이다.
“아, 그러셔.”
[경기가 시작됩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박원호는 곧바로 한 겹의 절연 마법을 더 둘렀다.
녀석이 잘못 판단한 점은 한둘이 아니지만, 다 제쳐놓고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을 꼽자면- 일단은 두 가지.
첫 번째, 번개 속성 대책은 했을지언정- 물리 공격 쪽에는 전혀 대책을 세워두지 않았다는 점.
-꽈앙!
“크학!”
경기 시작과 동시에 앞으로 질주한 나는 방패로 놈의 면상을 힘껏 후려쳐 주었다.
번개 속성만 막으면 이길 줄 알았냐. 설령 내 클래스가 정말 청마도사였다고 해도 피지컬은 어디 안 가잖아.
예선 때 다른 도전자들을 원펀치로 보낸 내 근력과 순발력에, 이 녀석 수준으로는 전혀 대응할 수 없다.
두 번째, [파동 제어]를 통해 상대의 내부로 침투하는 전자발경은, 이런 얄팍한 방어 마법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
“야, 머리에 콘돔 뒤집어쓰고 벼락 맞으면 살겠냐?”
“어, 어?”
-콰르릉!!
방패치기에 이어서, 머리를 잡고 쏟아낸 전격장. 박원호는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