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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술사
시련의 탑 도전자와 한국의 헌터 지망생 중에서, 내 이름을 안 들어본 녀석은 아무도 없을 거다.
물론 정작 그 인지도를 내가 체감해 본 적은 없다. 커뮤니티에서의 인지도는 피부에 와닿지 않기도 하고.
“와……실존인물이었구나, 진짜 본인 맞아요? 그 서진혁?”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연예인 내지는 인플루언서를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니 괜히 낯간지러웠다.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자, 남자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종이뭉치를 들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러더니 왠 남녀 패거리 몇 명을 이끌고 나타났는데, 아무래도 같은 길드나 파티의 도전자들인 것 같았다.
“저 사람이야? 뭔가 생각한 거랑 다른데?”
“아니 뭐야, 완전 멀쩡하게 생겼잖아.”
패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내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다짜고짜 악수하자며 손을 잡는 녀석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이니 나도 좀 당황스럽다. 아니, 그보다 이 녀석들- 다른 놈들보다 훨씬 세 보이는데.
같은 마크를 달고 있는 걸 보니 똑같은 길드 소속인 것 같은데, 대형 길드의 간부나 뭐 그런 건가.
가지고 있는 마력량도 상당하고, 무게중심이나 걸음걸이도 괜찮다. 물론 이놈들도 힘이 좀 새긴 하는데.
“혹시 저 기억하세요? 그리핀 길드 소속 김준태라고 하는데, 예전에 쪽지로 몇 번 대화한 적 있었어요.”
누군가 했더니, 몇 년 전쯤에 엄마의 뼛가루를 장기간 안치해 둘 수 있는 납골당을 소개해 줬던 사람이었다.
“아, 그……납골당 알아봐 줬던 사람?”
“맞아요, 제가 알아봐 드린 건 아니고 그냥 소식만 전해드린 거지만요. 반갑습니다.”
어색하게나마 악수를 나누자, 붙잡은 손에서 제법 강한 근력이 느껴졌다. 보기보다 힘이 좋네.
간부가 아니라 행정 담당의 일반 길드원이랬던 것 같은데, 나름 공략파 출신이라 스펙을 꽤 올린 건가.
그런 한편, 커뮤니티를 통해 나와 교류한 적이 있는 사람은 김준태 말고도 제법 많이 있었다.
“야, 나 싸인 좀!”
“응?”
뿌리염색을 안 해서 푸딩 같은 꼴이 된 노란 머리의 남자가 내게 종이를 건넸다.
“나 1556서버 강태오야, 이번 페스티벌에서 보면 싸인받아간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빨리 싸인 좀.”
커뮤니티 댓글창에서 자주 봤던 커뮤 망령 중 하나다. 댓글 말투랑 엄청 안 어울리는 얼굴이네.
“그 솔플러가 진짜 왔다고? 비켜 봐, 나도 얼굴 좀 보자.”
그냥 페스티벌 맵이나 좀 둘러볼 셈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자꾸 꼬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해 볼 생각도 있었지만, 이렇게 들이대니까 엄청 부담스러운데.
인플루언서들이 피곤하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신기해하는 눈빛이 무슨 동물원 원숭이라도 보는 것 같네.
“야야, 사람이 구경거리도 아니고 모여서 뭣들 하는 거야. 불편하시겠다.”
내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덩치 좋은 길드원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눈치껏 사람들을 떼어내 주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몸만 봐도 꽤 강해 보인다. 길드마크의 형태가 살짝 다른 걸 보면 간부급인가- 스펙은 어느 정도려나.
“아이고, 길드원들이 실례가 많았습니다. 바쁘실 텐데 지나가시죠.”
딱히 바쁜 건 아니지만, 이 상황이 피곤한 건 맞았기에 적당히 감사 인사를 하고 다른 포탈을 향해 움직였다.
“토너먼트 조별예선 A조시죠? 첫날부터 대진이 꽤 빡세던데, 응원하고 있습니다.”
길드 간부로 보이는 남자는 그런 말을 하며 내 등을 떠밀어 주었는데- 대진이 빡세 보인다고?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오픈 커뮤니티에 올라온 조별예선 대진표를 확인해보았다.
[토너먼트 조별예선 1일차 대진표 (A조)]
이게 어디가 빡세다는 거지.
**
페스티벌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토너먼트는 조별예선부터 시작한다.
5명 정도의 참가자를 한 그룹으로 묶어 대진시키고, 탈락 순서대로 승점을 챙겨 다음 스테이지로 올라가는 방식.
떨어진 사람들도 그대로 끝나는 건 아니고, 패자 그룹에서 맞붙어 승리하면 또 올라올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그렇게 조별예선이 끝나면, 본선으로 올라온 인원들끼리 토너먼트식 1대1대결을 통해 승패를 가린다.
스포츠는 잘 몰라서 이걸 무슨 구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썩 합리적인 구조는 아니라는 말이 있다.
꼭 우승이 아니더라도 순위에 따라 상품을 받을 수 있기에, 본선 진출을 노리는 도전자들이 꽤 많은데.
예선부터 강한 도전자와 만나 패자조로 내려가고 나면, 승점을 챙기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구조라나.
[토너먼트 조별예선 1일 차 대진표 (A조)]
내가 배정된 A조의 대전 상대를 한번 눈으로 훑어 보았다. 빡센 대진이라고 들었는데……잘 모르겠다.
무난하게 1위로 3연승을 하면 본선 진출 확정, 그리고 A조에서 만날만한 다른 강한 도전자는-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중간마다 주목받는 루키인 25층의 저층 랭커나, 나름 인지도가 높은 50층의 중층 랭커도 있긴 하지만.
글쎄, 다른 조의 대진을 안 봐서 그런지- 특별히 빡센 대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도전자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내가 모르는 이름 중 강한 도전자가 있을 수도 있다만.
“모르겠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예선이 빡셀 것 같지는 않은데, 역시 내 스펙이 과소평가되고 있을 뿐인가.
뭐, 이건 이따가 생각하기로 하고- 슬슬 내가 기다리고 있는 다른 서버의 도전자들이 도착할 때가 됐다.
여러 도전자들이 페스티벌에 일정을 맞춰 다른 서버의 도전자들을 만나서 교류하고는 한다.
이번에는 나도 약속을 몇 개 잡아두었다. 오늘은 몇 명의 도전자와 함께 이벤트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다.
당연히 평범한 도전자들은 아니고- 던전 공략도 딱히 평범한 방식으로 공략하려는 게 아니다.
[제1회 주문술사 정모 개최합니다!]
룬 문자등의 정통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도전자들과 함께, 오직 정통 마법만으로 던전을 공략한다.
[천의 마술]을 통해 온갖 마법을 관찰하고, 룬 문자와 주문 언어까지 배워갈 기회다.
**
주문 언어와 룬 문자를 공부해, NPC들처럼 제대로 된 마법을 쓰고자 하는 도전자- 통칭 주문술사들.
소위 말하는 ‘효율적인 스펙업’을 포기하고 낭만을 쫒는 괴짜들이, 이만큼이나 함께 모일 기회는 좀처럼 없다.
약속 장소에 모인 주문술사들의 숫자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 딱 파티 하나를 구성할 수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이 인원으로 제대로 파티를 구성하는 건, 원래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어흠, 안녕하세요, 아이스메이지 강준호입니다…오늘은 잘 부탁합니다.”
이 모임을 연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기서 떠듬떠듬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한 얼음법사, 강준호 씨.
무려 주문언어와 룬 문자 양쪽을 모두 제법 익혀서, 정통식 마법을 사용해 실전 전투까지 가능한 사람이라고 한다.
바깥 세상에서는 대학원생이었다는데, 마법 쪽으로도 학구열을 불태운 결과인지- 아무튼 이 사람에게선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강준호 이외의 다른 세 명도 모두 마찬가지로 마법사 계열 클래스, 사실 원래는 이보다 더 많이 모였어야 하지만.
“다른 분들은 안 오시는 모양이네요.”
“어쩔 수 없죠, 근데 진짜 던전 갈 겁니까?”
“글쎄요, 이대로는 좀 힘들 것 같은데.”
자리에 나온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애매하듯이, 말로만 나온다고 하고 출석하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다.
뭐 그렇겠지, 다들 각자 소속된 파티가 있을 테고- 무엇보다 주문술사들끼리 함께 던전을 돈다는 건 말도 안 되니까.
다들 레벨과 스펙도 제각각이고, 클래스는 모두 마법 계열, 파티 밸런스가 전혀 안 맞는다.
거기에 정통 주문과 마법만으로 던전을 깨려 한다고까지 했으니, 무슨 농담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냥 쫑내죠? 어차피 이 멤버로 깰 수 있는 던전도 없을 텐데.”
온 몸으로 ‘그냥 구경할 겸 나와봤다’는 티가 풀풀 나는 남자 마법사가 그렇게 말했다.
“그 누구냐, 솔플한다는 사람도 안 오는것 같고……하긴, 전붕이가 뭔 주문을 배우겠어요, 그쵸?”
나는 아직 내가 서진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런 의욕 없는 사람은 일찌감치 떨어져 주는 게 나으니까.
어차피 나는 원래 솔플러다. 굳이 인원을 채워서 갈 필요도 없고, 마법을 배울만한 상대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조금 전부터 여기 자칭 주문술사들의 마력을 읽어 보니……한 명을 빼고는 죄다 엉터리로밖에 안 보인다.
“정 아쉬우면 이대로 같이 식사나 하고 헤어지죠. 사실 저도 파티원들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저기서 나불거리는 남자 마법사와, 그 마법사가 힐끗 쳐다보는 여자, 별말 없이 커뮤니티를 보고 있는 다른 한 명도.
죄다 등신처럼 마력을 질질 흘리고 있다. 저 따위 마력제어 능력으로 무슨 주문을 다루겠다는 건지 원.
“아, 그렇죠, 일정이 있으시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여기, 혼자서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얼음 마법사 강준호는 다르다.
날카롭게 잘 정련된 마력의 질, 체내에 축적하고 있는 마력의 양, 모두 훌륭하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또 봐요.”
나는 의욕 없는 세 사람이 떠나도록 내버려두고, 혼자 남은 강준호에게 말했다.
“이제 던전 갑시다.”
내가 당신한테 궁금한 게 아주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