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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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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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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종이호랑이
23층 세계는 프레임이나 모드의 등급을 숫자를 붙여서 나눈다.
정확한 기준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10등급 이상부터는 개인이 소유하는 게 완전히 금지된 수준이라던가.
그리고 이곳의 경비 시스템은 내가 방출한 [라이트닝 차지]의 위력을 15등급 수준이라고 칭했다.
그러면 마력강화를 통해 더 강한 에너지를 방출하면 몇 등급쯤 될까 싶어서, 한번 해 본 건데.
[18등급 고에너지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기용 가능한 전 병력을 동원하여, 적성 개체를 말살합니다.]
사신들이 사용하는 은폐장이 13등급의 장비라고 했으니까, 그것보다 다섯 단계는 높은 셈인가.
곧 벙커의 문이 열리며 온갖 거대한 병기와 로봇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숫자는 얼핏 봐도 백이 넘는다.
그러고보니, 일대다수의 싸움은 익숙하지만 백이 넘는 상대와 동시에 교전하는 건 오랜만이다.
“리펄스 에너지 사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대충 3m쯤 되어보이는 사이즈의 인간형 로봇, 놈의 어깨에서 대포 같은 것이 쏘아졌다.
-위이잉! 콰르릉!
공명음과 함께 쏘아진 것은 백색의 에너지, 나는 방패를 들어올렸지만- 그대로 쭉 밀려 나갔다.
리펄스 에너지라는 이름도 그렇고, 밀어내는 것에 특화된 무기인가. 근력이랑 상관없이 쭉쭉 밀리는군.
하지만 단순히 밀어낼 뿐이라면 나도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다. [천의 마술]의 힘을 빌려 마법진을 그린다.
“리플렉터.”
시전한 마법은 청색 마탑주가 내주었던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 마법 중 하나.
효과는 단순하게 약한 수준의 물리공격을 튕겨내는 것뿐. 하지만 일단 마력을 잔뜩 때려넣어 성능을 올린다.
-지익……!
끝도 없이 밀려나던 발이 멈춘다. 방패 위에 덧씌운 리플렉터 마법이 리펄스 에너지를 튕겨내기 시작한 거다.
물론 튕겨낸다고 해봤자,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또 아니다. 마력을 아무리 넣어봤자 근본은 기본 방어 마법.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주 약간만 튕겨낼 수 있으면, 나머지는 그냥 완력으로 밀어붙이면 그만.
“흡!”
백색의 에너지를 그대로 밀어내며 다시 앞으로 전진, 그대로 덩치 큰 로봇에게 접근해 방패를 휘둘렀다.
와그작, 로봇의 동체가 과자처럼 손쉽게 바스러졌다. 동시에 다른 로봇들이 나를 무기로 겨누었다.
바람 마법을 연상시키는 공기의 탄환, 이글거리는 화염 세례, 파직거리는 전격의 파동.
나는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고 달려들어, 로봇의 머리통에 차례차례 [대전]을 통해 전류를 밀어 넣었다.
-콰지직!
조금 기대했건만, 아무래도 전자발경 같은 걸 사용할 수 있는 사이보그는 이 자리에 없는 모양이다.
뭔가 장치가 되어 있는지, 내가 흘려 넣은 전류를 차단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반격할 줄은 모르는 것 같고.
백이 넘는 숫자의 로봇과 드론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격마다 몇 대의 로봇이 박살 나고 있는 형편이니.
[분당 아군 병력 손실이 기준치의 12.6배를 초과하였습니다.]
[완전 제압까지 필요한 자원 계산을 시행합니다. 완료.]
[전력의 272%를 투입할 시 제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순식간에 절반가량이 쓸려나가고 나니, 공중에 떠 있던 드론들이 윙윙거리며 뭔가 말하기 시작했다.
협상 시퀀스를 개시한다느니 어쩌느니 떠들던 드론들은 곧 ‘마스터’에게 통신을 연결한다고 말했다.
마스터라는 건 아마 상원의원이겠지, 물론 나는 딱히 놈이랑 대화하러 온 게 아니다.
[병력손실률이 52%라고? 이것들이 이런 미친 짓을……당장 그만두지 못하겠어!]
그렇기에, 연결된 통신을 거친 목소리는 무척 다급하게 들렸다.
**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에 사신들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무래도 꽤 깊숙한 곳까지 잘 침투한 모양이다. 병력 대부분이 내 쪽으로 몰렸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건방진 놈… 네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번에 그레이 캐슬의 갱단을 통합했다는 그 뮤턴트겠지?]
‘당장 멈추라’며 다급하게 외치던 상원의원의 목소리는, 공격을 멈춰준 잠깐 사이에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나저나- 나를 어떻게 알고 있나 싶었는데, 그렇게 사신을 잔뜩 보냈으니 모를 수가 없었겠군.
말투를 보아하니, 마치 내가 쳐들어올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들린다.
그냥 허세인지, 아니면 진짜로 예상하고 있었던 건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외부 카메라가 망가져 상황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지경이다. 겁도 없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대답해줘야 하나 싶어서. 애초에 대답하면 저쪽에서 제대로 들을 수는 있는 건가?
[화이트 존까지 침입해 엘리시온의 상원의원을 공격하다니, 네놈은 지금 엘리시온에 전쟁을 선포한 거다!]
“전쟁?”
[드디어 입을 여는군. 그레이 캐슬의 쓰레기라도, 엘리시온과 전쟁을 벌인다는 의미쯤은 아는 모양이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새끼는 도대체 뭔 자신감으로 지껄이는 거야?
[나는 네놈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은 네놈이 어떤 연구실에서 만들어졌는지만 조사하고 있었지.]
뭔가 인식이 심하게 어긋나 있는 것 같지만, 일단은 들어보기로 했다. 상원의원은 곧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왜인지 아나? 아무런 모드도, 프레임도 착용하지 않은 뮤턴트가 그런 힘을 보인 전례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무력이라면 유사한 개체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이성을 잃은 괴물에 불과했지.]
[하지만 네놈은 뮤턴트로서 그만한 힘을 가졌음에도 온전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 연구 가치는 실로 대단해.]
나는 금방 상원의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배경 설정이 있었지.
돈 많은 갑부들은 몸에 모드와 프레임을 이식하는 것을 저급하게 여긴다고 했던가.
기계를 이식하지 않고 가능한 한 내추럴의 상태를 유지한 채, 시술을 통해 수명을 늘리는 것을 선호한다고.
[그래서, 가능한 한 온건한 방법으로 포획하고 싶었던 건데……]
이어서, 상원의원은 전형적인 말 많은 악당처럼 주절주절 자신이 세웠던 계획을 떠들기 시작했다.
내용은 딱히 들을 가치도 없었다. 당분간 나를 그레이 캐슬에 잘 박아두고, 잘 관찰할 생각이었다나 뭐라나.
지성 있는 강력한 뮤턴트인 나를 베이스로 천천히 연구해, 영생을 이루는 것을 꿈꿨다는 것 같다.
[그걸, 네놈의 멍청한 행동으로 모두 그르치게 된 거다.]
하지만, 이 녀석은 대체 뭘 근거로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
상원의원은 암살을 위해 내보낸 사신들이 하나둘씩 당한 것을 계기로, 나를 연구하고자 마음먹었다고 한다.
당분간은 천천히 관찰과 감시만 하다가, 연구시설이 완성되면 나를 포획해 써먹을 생각이었다는데.
소유하고 있는 벙커의 대규모 병력도 이렇게 쓸려나가는 마당에, 무슨 수단으로 나를 포획하려고 했던 걸까.
그 의문은 이어진 상원의원의 말을 통해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착각을 했을 뿐이라고.
[인형 녀석들의 나노슈트를 빼앗아 써먹은 거겠지, 거기에 그레이 캐슬의 버러지들을 죄다 끌고 왔을 테고.]
상원의원은 내가 사신에게서 빼앗은 장비와 갱단원들을 이끌고 총공세에 나선 것으로 생각한 거다.
[하지만 엘리시온의 시스템은 결코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설치게 두지 않는다. 네게 다음은 없어.]
[당장은 숫자로 밀어붙여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화이트 존의 진짜 군대는 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미 위험을 감지한 AI가 군을 호출했다. SIFT의 15레벨 전투병력 3,000기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지.]
[네 패거리는 깨끗이 청소되고, 고등급 뮤턴트인 네놈은 규정에 따라 DNA 한 조각 남기지 못하고 소각될 거다.]
카메라가 망가져 상황을 직접 못 보고 있었기에, 내가 갱단원들을 내세워 숫자로 밀어붙인 거라고 착각한 거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가. 나는 이 세계의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 있는 존재니까.
시련의 탑 도전자들이 내 강함을 제대로 추측하지 못하듯이, 상원의원 역시 궤를 벗어난 적을 상상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종이호랑이나 다름없는 시스템 하나만을 믿고, 혼자서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결론을 내린 거다.
[차라리 소수로 난동을 부렸을 뿐이라면, 적당한 병력으로 덤벼온 거라면, 무마해 줄 수 있었겠지만……너희는 선을 넘었다.]
심지어 말하는 꼴을 보니, 사신들의 배신은 아예 상상도 못 하고 있는 것 같고.
아마 그 허접한 세뇌를 믿고 있는 거겠지, 설마 사신들이 음식에 낚여 반역을 저지를 줄 예상이나 했겠어?
[패거리 중 15레벨 급의 병력은 얼마나 있지? 끌고 온 패거리는 몇이나 있나? 기껏해야 떨거지들 오백 정도겠지?]
오백도 많이 쳐줬다는 듯 말하는 상원의원의 목소리를 재생하고 있는 드론을 향해, 나는 대답해 주었다.
“아니, 나 혼자다.”
그로부터 40분 후, 나는 출동한 15레벨 전투병력 3,000기를 완파하고 상원의원의 벙커에 침입했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개인 앞에서, 숫자만 거창할 뿐인 집단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