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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변화는 성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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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감각을 키우고자 진입했던 23층이건만, 어쩐지 요리사 노릇이나 하고 있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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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꾸준히 전격장을 습득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기도 하고, 기어이 전자발경을 어느 정도 익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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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딱히 문제가 있거나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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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내 음식을 먹는 사신들의 리액션이 보통 재미있는 게 아니라서, 이것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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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하니, 사신들은 아예 식사라는 행위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기껏해야 칼로리 스틱을 좀 먹어봤을 뿐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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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사신들은 시험관에서 고속 배양된 몸이기에, 실질적인 나이는 대부분 거의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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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외견만큼의 연령을 가진 건, 고참에 속하는 1호 사신 정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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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린 사신은 만들어진지 2년 정도밖에 안 됐으니, 어떤 면에서는 에인보다 더 순수한 백지상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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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들이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는 귀하디귀한 자연 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맛봤으니, 리액션이 좋을 만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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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취미인 사람에겐 잘 먹는 사람만큼 반가운 상대도 없다고 하던가, 하여튼 보고 있으면 재밌는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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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런 사신들의 먹는 모습을 즐기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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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진혁#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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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풀토핑 떡볶이 코스 흡입하는 8호 사신보고가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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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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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일반, 로제, 까르보까지 해서 3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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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은 잘 기억안나는데 튀길만한건 다 튀겨서 대충 7종류 될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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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식하고나서 후식으로 샤베트까지 깔끔하게 조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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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의 추천조합은 로제 양념에 튀김빵 푹찍어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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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사신중에서 제일잘먹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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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걸 혼자 다만들었다고?? 이새끼 요리 왤케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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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진혁이 요리스킬도 따로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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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요리시작한지 얼마안됬다는데 벌써 10렙넘었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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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꼴 ㅅㅂ 이시간에 이런거올리지 말라고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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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오늘치 잡템팔고 떡볶이 2인분 즉시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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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우튀김개바삭해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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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튀김빵은 뭐임 고로케같은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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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비슷함 내용물은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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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통모짜핫도그같은건가보네 개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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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혁 내 아내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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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호사시니 개귀여워퓨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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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주간 내가 올린 사신들의 먹방씬은 모조리 인기글 탭에 올라가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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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효율 문제로 굉장히 많은 양을 먹으면서도, 다들 가지런하게 먹는 편이라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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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다. 다른 게 아니라, 사신들에게 요리를 해먹이기 위한 식재료가 바닥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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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식재료의 양 자체는 상당하지만, 사신들의 먹성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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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재료들이 다 동나기 전에 전격장을 습득할 수 있을까 싶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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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전격장 연습에 매진한 지 일주일이 더 지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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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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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격장을 습득하지 못한 채로, 가진 식재료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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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심스럽게 전한 소식에, 사신들은 말 그대로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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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파스타를 더 이상 해줄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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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도 못 만들어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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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도 이제 못 먹는다고? 무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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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차림에도 개성이 확실한 사신들이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의 반응은 다들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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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 식재료가 완전히 떨어진 건 아니다. 아직 여유 분량이 조금 남아 있지만, 거의 동나기 직전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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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떨어지고 나서 말하는 것보다는, 아직 여유 분량이 남아 있을 때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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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진짜예요……? 진짜로 우리 이제 맛있는 거 못 먹는 거예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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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 같은 성격의 17호 사신이 울먹이며 물었다. 나는 남은 식재료의 현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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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장치를 통해 습득한 지식 외에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사신들도, 숫자에 관한 계산은 무척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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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들은 남은 재료의 양을 듣자마자,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지를 바로 계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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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농담이지? 그럼 이제 돈까스는 앞으로 열 개밖에 못 만든다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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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거 진짜야? 내 피자는 아무리 많아도 세 개밖에 못 만드는데? 거짓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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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식사의 즐거움을 배워버린 사신들은 말 그대로 멘탈이 나가버렸다. 곧 사신들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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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뭔가 방법은 없는 거야? 나는 이제 핫도그 없이는 못 살아…제발, 방법이 있다고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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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야 당연히 더 해줄 수 있지. 근데, 그게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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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뭔가 대체 재료를 쓴다거나…아니면, 우리 나노슈트를 팔아서 재료를 사는 건 어때? 꽤 비쌀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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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하든 뭘 하든 입도 뻥끗 안 하겠다던 녀석들이, 자발적으로 극비 물품인 나노슈트를 팔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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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긴 하지만, 너희 진짜 원래 임무는 이제 안중도 없구나. 그래도 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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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였군……우릴 중독시킨 뒤, 값비싼 식재료를 대가로 성적인 착취를 하려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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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직도 그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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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시치미 떼봤자 소용없다. 나는 네 음란한 속셈 정도는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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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1호는 또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다. 얘는 진짜 학습 데이터에 야설이라도 들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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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상황을 전달하고 잠시 놔두었더니- 사신들은 저들끼리 쑥덕쑥덕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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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제 전격장을 위해 이 녀석들에게 일부러 음식을 챙겨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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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경의 기본 원리는 충분히 감을 잡았고, 공격을 더 맞아봤자 새롭게 깨달을 건 없다. 남은 건 연습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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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가 사신들과 계속 지내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이 녀석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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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나는 이 녀석들의 보스인 상원의원의 멱을 따러 가야 한다. 어차피 때가 되면 헤어질 사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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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퀘스트에 특별한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여기서 놓아달라고 하면 그냥 보내줄 생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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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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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시 후, 회의를 마친 사신들은 정말 상상도 못한 소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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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온 중추를 습격해서, 식재료를 약탈해 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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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내 요리가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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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에 쓰이는 재료들은 딱히 이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구할 수 없는 것까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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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합성 식품이나 칼로리 스틱 같은 가공품이 아닌 식재료는 매우 귀하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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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에 푹 빠져버린 사신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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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그리드를 거쳐 화이트 존으로 가자. 거기선 밀가루도 고기도 다 유통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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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존은 가장 안쪽의 ‘유토피아 시티’를 제외하면 가장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는, 이른바 ‘부자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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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신들의 보스인 상원의원이 거주하고 있는 구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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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을 습격해서 약탈하자니,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편하고 좋은 동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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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레이 캐슬이 화이트 존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만들어진 암살병기들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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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안 주고 일만 시키는 파파따위 알게 뭐야, 우리도 그냥 우리 마음대로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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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리한테는 파파가 내리는 명령만이 전부였어요……그치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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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상원의원은 클론 사신들에게 자신을 ‘파파’라고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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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명령만을 수행하는 꼭두각시였음에도, 사신들은 그 호칭 그대로 상원의원을 아버지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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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학습장치를 통해 어떤 부분에 조작을 가해서, 충성심을 가지도록 세뇌를 가한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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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보다 떡볶이가 더 좋아. 그냥 네가 새 파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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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세뇌가 고작 맛있는 식사 몇 번에 풀려버리다니, 높은 기술 수준에 걸맞지 않은 허술함에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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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욕망이야말로 사람의 의지를 가장 강하게 불태우는 불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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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엘레노어와의 내일이라는 단순한 욕망 하나를 붙잡고, 탑의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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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병기로 키워졌다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각자 확실한 개성을 확립했을 만큼 강한 자아를 지닌 이 녀석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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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식사라는 단순한 욕망과 쾌감을 계기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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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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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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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 이 사신들이 그런 것처럼, 세상의 그 누구도 다르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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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두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시련의 탑 세계에서는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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