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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항구도시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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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당, 따당, 따당- 멀리서 리듬감 있는 망치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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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나 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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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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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손질된 생선이 꾸러미에 담겨 내게 건네진다. 나는 붕대가 칭칭 감긴 왼손으로 그걸 받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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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장수는 꾸러미를 건네며 잠시만 기다려 보라더니, 매대 뒤편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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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이 항구도시 특유의 방식으로 가공된 반건조 새우가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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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별 건 아니고, 며칠 전에 팔다 남은 거 따로 손질해둔 거야. 가져가서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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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다며 거절하려 했지만, 생선장수는 반쯤 억지로 새우 주머니를 내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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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어야 그 손도 빨리 나을 거 아니야, 용사 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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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말하며 붕대에 감긴 내 손을 가리켰다. 흠, 호의를 너무 거절하는 것도 좀 예의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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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당히 고맙다고 말하고, 생선 꾸러미와 새우를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뒤 커뮤니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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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진혁#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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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거 어떻게 먹는게 맛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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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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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건조 새우라는데 그냥 구워먹으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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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우가 반건조가 있음? 그냥 말린새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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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좀 다름 저번에 보니까 껍질벗기면 새우살 쫀득하게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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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중국쪽에 비슷한 요리법 있던걸로 기억함 ㅇㅇ 대충 센불에 볶으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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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저거 써본적 있는데 튀긴담에 소스묻히면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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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올린 건, 오픈 커뮤니티의 여러 탭 중 가장 글리젠이 적은 ‘요리&생활’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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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안에 장기 체류 중인 도전자들을 위한 생활 팁을 공유하는 곳으로, 내가 최근 들어 많이 활동 중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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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층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게시판을 자주 들락날락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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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것도 에인 덕분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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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얼거리며 붕대로 감긴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싸움 이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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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위의 힘이 깃든 도끼에 맞은 재버워크는 그대로 깨끗이 소멸했고, 나는 무리하게 도끼를 휘두른 대가로 양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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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부근까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 탓에, 포션이나 [초재생] 스킬로도 회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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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다시피 지금은 양손 모두 제대로 붙어 있다. 여러 마탑의 협력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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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인과 함께 재버워크를 쓰러트린 뒤, 가까운 마탑을 통해 청색 마탑과 적색 마탑에 연락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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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것은 에인의 출생에 얽힌 비밀과, 재버워크의 실체에 관한 폭로였다. 마법계는 이 일로 완전히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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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증거도 없는 이야기라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원군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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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마탑주의 측근이었던 한 마법사가, 생전에 마탑주가 수집한 재버워크에 관한 자료를 가져와 공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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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버워크가 벌여온 온갖 끔찍한 생체실험이 세상에 드러나며, 추가 조사 끝에 마법계는 우리의 폭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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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뭐, 돌이켜 보면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많았지만- 결국 다른 마탑들의 협력을 얻고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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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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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에 올라온 새우 요리 레시피를 확인하며 걷던 중, 목적지에 도착해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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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길쭉한 탑 형태의 건물. 날림으로 지어진 이곳이 지금 나의 숙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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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앞에는 나무를 대충 잘라 만든 조그만 표지판이 박혀 있고,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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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회색 마탑, 외부인 출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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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의 영웅으로 불리게 된, 우리 회색 꼬맹이가 직접 쓴 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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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회색 마탑’이라 당당하게 적혀 있어도, 당연히 진짜 마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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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항구도시 복구를 위해 파견된 마법사들을 위한 임시 숙소일 뿐, 마법 연구와는 거의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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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에인이 좋아하니까 적당히 회색 마탑이라 이름 붙이고, 탑 모양으로 지어 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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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온 나는, 우선 백색 마탑에서 파견된 마법사에게 양손의 상태를 진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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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회복이 빠르네요, 이제 붕대는 풀어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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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 문자가 새겨진 붕대를 풀자, 겉보기엔 멀쩡한 양손이 드러났다. 손에 마력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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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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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이 방출되는 속도도 출력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하다.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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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손은 외형만은 멀쩡히 돌아왔지만, 팔에서 이어지는 마력 회로와 같은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소실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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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회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희석된 엘릭서 정도는 필요할 거라나, 하여튼 귀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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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야기로만 듣고 있는데, 재활은 계속하고 계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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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활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다. 그냥 손을 많이 쓰라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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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항구의 시장에서 생선을 사 온 이유도 바로 그 재활 때문이다. 이래저래 손을 쓸 겸, 요리를 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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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벤토리에 비축해 뒀던 식품이 거의 다 떨어진 김에, 에인한테도 먹여줄 겸 시작한 건데……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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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요리]스킬의 레벨도 부쩍 올라 벌써 11레벨, 며칠에 한 번꼴로 레벨이 오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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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력회로만 멀쩡했으면 오러를 더 연습하거나 마법을 배울 생각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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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가 만든 요리가 제일 맛있다며 기뻐하는 꼬맹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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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싱숭생숭한 감각이 가슴 언저리에서 피어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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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못 먹어봤지만, 다른 분들이 진혁님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 말씀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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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마탑에서 파견 나온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손뼉을 쳤다. 뭐, 그런 소리를 듣고 있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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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에인에게나 먹여 주었던 요리지만, 요즘에는 이 숙소의 다른 마법사들의 몫까지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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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삼아서 시작한 요리였는데, 이래서는 완전히 재미를 붙인 꼴이다. 이런 건 나도 엄마를 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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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도 내게 이런저런 요리를 해 주는 걸 무척 좋아했었지. 정작 본인은 끼니도 잘 챙기지 않았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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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인이 없었다면 굳이 요리에 손을 대지는 않았을 거다. 사놓은 음식이 떨어지면 화이트롤이나 먹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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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나는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퀘스트 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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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 : 회색 아이와 마법의 서 - 최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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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상황에 따라 랭크 및 보상을 결정합니다……평가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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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 :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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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층으로 이동하여 지정된 보상을 수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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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어져 온 에픽 퀘스트가 마침내 끝을 맞이했고, 남은 것은 보상을 받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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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에인과도 헤어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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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온 반건조 새우는 기름에 튀겨낸 다음, 진한 소스를 입혀서 접시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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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사 온 생선은 회를 떠서 가볍게 초밥을 쥐어 봤다. 에인은 이렇게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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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은 이번에 처음 만들어 보는 건데, 생각보다 잘 됐다. 생각해보면 내가 못 만들 수가 없는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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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뜨는 것도 결국은 칼질이라 잘 할 수밖에 없었고, 밥 쪽이야 들어가는 재료의 양만 잘 지키면 그만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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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분의 음식은 근무 중인 마법사들에게 나눠주고, 에인의 몫을 챙겨서 탑 꼭대기의 방으로 걸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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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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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된 문을 열어젖히자, 기척을 느낀 에인이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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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흘렸던 눈물이 무언가 기폭제가 된 것인지, 요즘 들어 에인은 표정이 무척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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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를 치우고, 내 손에 들린 접시를 받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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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진혁악마님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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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웃음기와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에인은 구석에 놓여 있던 식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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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을을 떠날 때 샀던 어린이용 스푼과 포크 세트,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몫의 식기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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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생각은 없었는데, 이러면 같이 먹어야겠네. 함께 식사하는 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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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요즘 어때, 잘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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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스를 입힌 새우튀김을 씹으며, 툭 던지듯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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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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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꼬마도 이런 부분에서는 여전히 한결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름 설명을 하려고 한다는 부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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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은 초밥을 입에 물고, 책상에 올려놨던 종이더미를 이리저리 뒤지더니, 이내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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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버워크의 마력회로를 강탈하는 마법진만큼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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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있는데 잘 안돼, 아직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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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에인이 자신에게 깃든 마족의 피를 희석하기 위해 만들고 있는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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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마왕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마족의 피로 발생하는 영향을 스스로 제거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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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타인의 고유마도마저 베껴낼 수 있는 천재인 에인에게도, 이것만큼은 무척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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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마법이며, 개발 단계에서 실험도 불가능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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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에인은 가진 마력량마저 희박하다 보니, 뭔가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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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건 거의 다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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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은 그렇게 말하며, 일전에 개조했던 ‘천뢰의 장갑’을 꺼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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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빌려 왔던 마도구들은 흑색 마탑의 것을 제외하면 모두 재버워크와의 결전에서 손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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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은 개조된 형태로나마 남아 있는 ‘천뢰의 장갑’을 반환하기 위해, 다시 원래의 기능대로 돌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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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자색 마탑의 마도구는 무사한 줄 알고 있었는데- 반납하러 갔더니 인벤토리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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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전투 중에 인벤토리로 돌려놓는 걸 까먹어서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자색 마탑주가 엉엉 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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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네, 역시 우리 현자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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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에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막상 헤어지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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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의 영혼은 아마도 SSS랭크 달성으로 인한 특례, 혹은 시련의 탑의 안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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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내가 떠나고 난 후- 여기에 남은 에인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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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에 의해 마법이 쇠퇴한 19층이라는 미래, 그리고 회색 마왕의 영혼이 나타나는 48층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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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층의 에인이 퀘스트 완료와 함께 깡통으로 변하고, 그 영혼과 기억이 이어지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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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비극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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