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 노욕의 종점
상처가 회복되고 HP는 최대로 차올랐지만, 완전한 풀 컨디션이 된 건 아니다.
오러 서클을 장시간 사용하며 소모된 MP는 그대로, 반면 재버워크는 크게 일격을 먹었을 뿐이다.
치명상에 준하는 타격을 입히긴 했지만, 놈에게도 회복 수단 하나쯤은 있을 터.
고로, 지금 몰아쳐야 한다. 확실하게 숨통을 끊는다.
“흐읍!”
오러를 두른 검을 휘둘러, 휘청거리는 재버워크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놈이 펼쳐낸 방어막에 의해 검은 막히고 말았다. 역시 오러 서클 없이는 한 방에 뚫을 수는 없나.
마력은 바닥나기 직전, 쓸만한 치유 수단도 이미 써버렸다. 이 이상으로 오러 서클을 사용하는 건 너무 무모한 짓이다.
근데 뭐, 내가 언제는 안 무모한 짓만 했나. 망설임 없이 팔에 오러 서클을 두르고, 힘차게 검을 긋는다.
-카가각!
하지만 재버워크의 몸을 두르고 있는 방어막은 뚫릴 생각을 하질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
오러 서클의 출력이 떨어졌나? 그게 아니면 놈의 방어막이 더 단단해졌나?
의문을 품은 채 즉시 [사고 가속]을 발동시킨다. 느리게 비치는 시야로 천천히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곧 눈에 들어온 것은, 재버워크의 등 뒤에 떠 있는 오브의 숫자.
여섯.
씨발.
오브가 다섯 개라는 정보조차 틀렸던 건가. 두 개 이상을 다루는 것조차 비정상이랬으면서, 어이가 없네.
하지만 상황이 꼭 절망적인 건 아니다. 재버워크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건지- 회복 수단은 따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순간 시간은 내 편이다.
마법을 고속으로 캐스팅하는 것도, 오브를 조종하는 것도, 모두 상당한 연산 능력을 요구하는 일.
지금은 중상을 입고, 방어 마법이 깨지며 소량이나마 독을 흡입한 상태.
그런 꼴로 얼마나 오랫동안 제 실력을 낼 수 있을까, 그것도 전투 경험이 얼마 없는 책상물림 마법사가.
“흐, 흐흐… 상처를 입은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대단하네.”
한편, 곧바로 카운터가 날아올 줄 알았지만- 재버워크는 어쩐지 피를 뚝뚝 흘리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그런 수를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보통 각오론 할 수 없는 짓이지.”
놈은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나는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유지한 채, 잠시 놈의 지껄임을 들었다.
“헌데, 그렇게까지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군.”
“뭐?”
“자네에게, 그 아이가 대체 뭐라고?”
대꾸할 생각은 없었지만,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는 바람에 무심결에 입을 열고 말았다.
죽이고 싶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니, 에인의 기억을 훔쳐봤다면서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할 수 있지?
싸이코패스 마법사에게 뭘 기대하느냐마는, 이번 말만큼은 진심으로 불쾌했다.
“우연히 주워 온 아이에게 그렇게 정을 주는 겐가? 게다가 절반은 흉측한 마족의 피를 이은 존재인 것을.”
“알아, 새끼야.”
“그렇다면, 그 아이가 언젠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지 않나?”
다시 한 번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꼬마가 재앙의 씨앗이라니,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하, 그건 몰랐나 보군.”
그리고 이어진 재버워크의 말은,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었다.
**
재버워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다음 층인 19층이 18층의 아주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정확히 얼마나 미래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 19층의 배경은 18층의 무대인 대륙이 거대한 재앙을 겪고 몰락한 이후라는 것.
나는 그 재앙이 당연히 재버워크와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히 이 미친 마법사가 뭔가 벌인 것이라고.
“인간과 마족의 혼혈은, 성장하면서 결국 완전한 마족으로 변모하게 된다네.”
원인을 따지자면, 분명 이놈이 맞았다.
“그것도 단순한 마족이 아닌, 반드시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마족으로 말일세.”
“마족 혼혈은 어릴 적부터 발달장애와 자폐적 기질을 조금씩 보이는데, 어째서인지 아는가?”
“하나의 두뇌에 두 자아가 섞여서 혼재하기 때문이라네, 인간의 자아와 마족의 자아가 말이지.”
“아니, 자아라는 표현은 조금 어폐가 있군. 대립 의식, 그 정도 표현이 걸맞지 않을까?”
“혼합되어 있으면서도 끈질기게 반목하는 두 의식이, 서로를 죽이고 있는 걸세.”
“당장은 인간 쪽의 의식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잠시간 이어진 재버워크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끝내, 강렬한 파괴욕구와 위험한 힘을 가진 마족이 될 터- 아마 이런 이명이 붙지 않을까?”
48층에서 영혼의 형태로 등장하는 보스, 내가 14층에서 베어 넘긴 육신.
“회색 마왕.”
꼬마 에인은 회색 마왕이 될 것이다.
“나는 결국 사라져야 마땅한 재앙의 싹을 유효하게 활용했을 뿐인……쿨럭, 이런.”
재버워크가 돌연 입에서 피를 토했다. 잠깐 흡입했을 뿐임에도 남색 마탑의 독은 잘 듣고 있는 모양이다.
에인이 마족이 되어 날뛰게 될 것이라는 재버워크의 예측은 분명 옳을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나중에 마왕이 되건 뭐가 되건, 지금의 꼬마는 그냥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좋아하는 가엾은 아이일 뿐이다.
“나불대는 건 끝이냐, 숨 돌릴 시간 줘서 고맙다. 덕분에 마력이 꽤 찼어.”
어쩐지, 에인의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마 에인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겠지.
너는 언젠가 사악한 마족이 되어 세상을 파괴할 거라고, 너는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마왕을 무찌르는 정의로운 현자가 되고 싶어하던 그 꼬마에겐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꼬맹이가 웃으면서 지내기를 바랐고, 그걸 방해하는 놈들은 죄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거든.”
다시금 검에 오러를 두르고 선언한다, 네가 나한테 뒈지는 이유는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쿨럭, 쿡,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우선 사과부터 하지, 내가 자네를 너무 얕본 모양이야.”
재버워크는 토해낸 피를 닦아내며,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스태프를 처음으로 휘둘렀다.
“이제 어설픈 수는 쓰지 않겠네, 자네를 쓰러트려야 할 적수로 보고……전력을 다하도록 하지.”
그 순간, 내 [초감각]스킬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렬한 경고를 발했다.
재버워크의 등 뒤로 새로운 일곱 번째의 오브가 떠올랐다.
그리고 한 번 더, 새로운 여덟 번째의 오브가 떠올랐다.
다시 한 번 더, 또 새로운 아홉 번째의 오브가 떠올랐다.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 오브의 숫자는 순식간에 백 개에 달했다.
**
어지간히 재능 있는 마법사라도 두 개 이상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오브.
눈앞의 재버워크는 그것을 다섯 개나 동시에 다루는 초월적인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라고 들었다.
하지만 저 개수는 대체 뭐란 말인가, 백 개라니- 인간의 뇌로 저만한 오브를 동시에 다루는 게 가능한 건가?
마법에 완전히 문외한이던 시절의 나라면 ‘또 양심 없는 지랄을 하네’ 라 말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쌩초짜 수준이라고는 해도 마법에 입문한 지금의 내 시선으로 보기에는- 저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재능이나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만한 오브를 동시에 다루는 건 ‘그냥’ 불가능하다.
혹시 나도 저항할 수 없는 환각 마법 같은 것으로 눈을 속이고 있는 걸까?
“놀랐나 보군, 하지만 이건 환영도 속임수도 아니라네. 자, 직접 보게나.”
재버워크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에 쥔 스태프를 흔들었다.
그러자, 스태프 윗부분에 달린 네모난 큐브가 흔들거리더니- 이내 반으로 갈라져 그 내용물을 노출했다.
미약하게 발광하는 선이 오밀조밀 엉켜 있는, 붉은 고깃덩어리- 겉보기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마력감지를 통해 확인한 그 정체는, 이제까지 본 그 어떤 것보다 끔찍했다.
“이런, 미친……새끼.”
놈이 지닌 비현실적인 양의 마력, 백 개의 오브를 동시에 다루는 연산 능력, 그 모든 비밀이 풀렸다.
큐브 속 고깃덩이의 정체는, 수많은 인간에게서 추출했음이 분명한 조직- 극한까지 압축된 뇌신경과 마력회로였다.
놈은 백 명이 넘는 인간에게서 ‘마법’을 담당하는 부분을 모조리 추출해, 자신의 스태프에 집어넣은 것이다.
저 길쭉한 스태프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필요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나도 이만한 숫자를 동원하는 건 처음이라네, 하지만 자네가 어디 적당히 강해야 말이지.”
놈의 스태프에 달린 큐브는 다시 흉측한 내용물을 감추고,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떠오른 백 개의 오브 역시 함께 발광하며, 숨이 막힐 것 같은 마력으로 일대를 잠식해 나갔다.
“또 무슨 수단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 단순한 방법으로 가겠네. 받아 볼 텐가?”
가진 마력을 모두 쏟아부어 날리는 최강의 일격- 한 방 싸움으로 결판을 짓자 이건가.
하지만 노멀 클래스 전붕이인 내게는 마땅히 강력한 공격 기술이 없다.
“해야지 뭐, 씨팔.”
없다면, 이 자리에서 만들어야겠지. 머리를 쥐어짜내 방법을 생각한다.
오러 서클을 실전에서 바로 시전했던 것처럼, 이 자리에서 이론상으로만 있던 기술을 짜낸다.
검령이 말해준 오러 운용의 종결점, 전사에게 있어서 고유마도와 같은 것.
나만의 의념기를, 이 자리에서 만들어 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