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0 KiB
- 에인
나는 이미 한 번 마탑주급의 마법사와 싸워본 적이 있다.
액체금속의 자유로운 조작을 무기로 삼는 청색 마탑주, 쉽게 이기긴 했지만 마냥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때는 에인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공격을 맞아 준 거긴 했지만, 한 방 한 방이 무시 못할 위력을 품고 있었지.
그 청색 마탑주와 눈앞의 적색 마탑주를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강할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아마, 이 쪽이 훨씬 강하다.
마법사로서의 기량만 놓고 보자면 동등하다고 생각되지만, 보유한 마력량에서 차이가 크게 갈린다.
어림잡아 두 배 이상, 거기에 마탑의 설비가 공급해주는 양까지 포함하면 열 배는 될 거다.
뭐, 마탑주라는 자리를 마법 대결로 정하는 것도 아닐 테니까. 전투능력의 차이가 커도 이상하지는 않지.
“헛소리를……!”
딱 한 대만 맞으라는 내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마탑주는 수십 개의 마법진을 작동시켜 선제공격에 나섰다.
다음 순간, 눈앞을 가득 메우는 불꽃의 파도. 이건 못 피한다.
마탑주의 공격속도가 빠르고 어쩌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범위가 개지랄맞게 넓어서 못 피한다.
-화르륵!
그래서 그냥 안 피했다. 방패를 앞세우고 오히려 불길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불길은 벽처럼 물리적인 저항력을 가지고 내 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때려눕혔던 마법사 중 몇 명이 비슷한 마법을 사용했었다. 중량을 가진 단단한 불꽃.
이대로 나를 탑 바깥까지 밀어낼 셈인가 본데, 그러기에 이 정도로는 좀 부족하지.
[혼신]
-흐읍.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방패를 쥔 손에 힘을 넣으며 그대로 밀고 나갔다.
거대한 불꽃의 파도가 반대로 밀려 나간다. 하지만 마탑주는 당황하지 않고 이어서 다른 마법을 전개했다.
목 안쪽이 묘하게 따끔거렸다. 공기를 들이마시며 화염이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그리고, 뭔가 호흡하기가 어색한데……이것 봐라, 산소가 아예 없어졌잖아.
마법의 불꽃은 기본적으로 마나를 연소시켜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부러 산소를 태운 거겠군.
화염의 벽으로 나를 밀어내면서, 동시에 질식을 유도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확실히 이건 꽤 유효한 공격 방식이다.
범위가 넓어 피할 방법이 없으면서, 강력한 물리력으로 몸을 밀어내는 화염의 파도에 더해.
산소를 태워버려 호흡도 곤란하게 만들고, 목구멍으로 침투하는 불길로 몸 안쪽을 함께 태워버리는 트랩.
-콰광! 쾅!
거기에 이어서 날아오는 고밀도 화염의 탄환까지, 한 번에 수를 아낌없이 털어서 싸우는 타입이다.
이전에 청색 마탑주에게 마법사간의 전투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마탑주는 ‘마법사간의 전투는 체스와 같다’ 라고 비유하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다만 그냥 체스가 아니라, 눈과 귀를 모두 가리고 진행하는 블라인드 체스 같은 것이라 말했었지.
상대에게 어떤 기물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수를 뒀는지도 모르며.
누구의 차례인지도 모르고, 사소한 반칙을 잡아낼 방법도 없이, 더듬더듬 진행하는 체스.
듣는 입장에서는 그게 맞는 비유인가 싶었는데, 적색 마탑주의 전투방식을 보다 보니 이해가 된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수많은 마법은, 체스로 치면 주요 기물을 모조리 쏟아부어 펼치는 공세와 같다.
수많은 계산과 심리전을 엮어 펼치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예술적인 두뇌 싸움.
하지만 이건 마법사간의 싸움이 아니다. 마탑주는 체스를 두고 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마력강화.”
-쿠르릉!
내 몸에서 분출된 맹렬한 마력에 의해, 화염의 탄환은 튕겨 나가고 불꽃의 파도는 갈라진다.
마탑주가 퀸, 나이트, 비숍, 룩을 모두 동원해 포진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폰 10마리를 제물로 바쳐 체크메이트의 거신병을 소환해, 체스판을 둘로 쪼개는 게 가능하다.
번거롭게 머리를 굴리고 수 싸움을 펼칠 필요가 없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저벅, 저벅, 저벅.
화염의 파도를 뚫고 천천히 다가간다. 마탑주는 사색이 된 채로 나를 마냥 올려다보았다.
내가 전력으로 후려치면 마탑주는 분명히 죽겠지. 그러니까, 마력강화는 다시 풀고- 아이템도 장착을 해제한다.
[철벽]이나 [혼신] 같은 버프 스킬도 해제하고, [약점 간파] 등의 스킬도 발동하지 않게 제어하고.
마력도 오러도 두르지 않고, 그저 순수한 육체의 힘만을 주먹에 담아 휘두른다.
존나, 쎄게.
-꽈직!
뭔가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
딱 한 대만 맞자고 했지만, 정말로 한 대만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사방으로 흩날린 불꽃, 부서진 벽과 금이 간 바닥, 그리고 이따금 튀어 있는 핏자국들.
진득하게 ‘오해’를 푼 흔적이었다. 그 참혹한 한가운데에서, 마탑주는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세상은, 역시… 불공평해.”
마탑주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로 텅 비어 있었고, 목소리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흘러나왔다.
“왜… 왜 나만… 왜 나한테만… 이런 괴물들이 몰려오는 건데. 대체… 왜…”
마탑주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뭘 그렇게까지 억울해하는 걸까.
-우득!
“아악!”
나는 마탑주의 어깨를 짓밟았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목 안쪽에 걸려 있던 질문들이 하나씩 터져 나왔다.
“너, 에인의 부모가 맞지? 그 애랑 무슨 관계야. 그리고 왜 그 애를 모르는 척한 거지- 당장 말해.”
마탑주는 내 물음에 실로 격하게 반응했다. 돌연 미친 듯이 웃고, 울다가, 불길을 토해 내듯 말을 뱉었다.
“……그래, 내가 낳았어. 내가 낳았지만……왜 내가 그 더러운 것의 부모여야 하는데?”
“뭐?”
“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니고, 배고 싶어서 밴 것도 아니야, 내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바뀌어 가던 마탑주의 표정은 이내 조소로 끝맺어졌다.
“미치광이 노인네가 내 뱃속에 쑤셔 넣은 악마의 잡종……그걸 왜 내 자식이라 불러야 하는 거지?”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로브 자락을 풀어헤치고, 그 밑의 셔츠를 뜯어냈다.
훤히 드러난 아랫배에 새겨진 칼자국과, 옅은 마력이 느껴지는 검은 자국.
검은 자국에서는 호문쿨루스와 [심연의 파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불길한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 자국 밑에는 칼로 새긴 듯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마탑주는 그것을 소리내어 읽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번역 기능이 멋대로 의역한 탓에, 알아들을 수 없었던 단어.
“에인(Ain).”
새겨진 숫자는 ‘1’ 이었다.
“그 더러운 잡종을 부르는 호칭은 이거면 되잖아……?”
붉은 마녀는 담담한 조소와 함께, 자신에게 있었던 비극을 읊기 시작했다.
“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
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나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어린 마법사였어.
역사에 이름을 남길 대마법사가 되겠다는 포부는 있었지만, 그만한 능력은 없었던 멍청하고 우둔한 마녀였지.
하지만 사실 능력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어.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 마법사는 늘 편견의 대상이었거든.
‘마법을 배우는 여자는, 적당히 출세해서 좋은 집안에 시집가려는 생각밖에 안 한다.’
마탑에서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마법사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언제나 그런 말과 시선을 받고 사는 처지.
하물며 능력도 부족하고 멍청하기까지 한 촌뜨기 마녀에겐 어땠을까. 받아주는 마탑이 있을 리 없잖아?
커다란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에게- 그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
‘얘야, 내 밑에서 마법을 배워 보지 않겠니?’
나이는 많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매력적인 남자 마법사였지. 지성이 가득 담긴 짙은 회색 눈이, 어쩜 그렇게 멋져 보였을까.
남자는 겉모습만 매력적인 게 아니었어. 그는 전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실력의 마법사이기도 했지.
‘나는 이런 사람이란다.’
그가 눈앞에서 펼쳐 보인 마법에, 나는 단숨에 시선을 빼앗겼어. 그토록 아름답고 압도적인 마법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
어쩌면 그때 나는- 시골 아이들이 나를 보고 ‘마법사’라며 외치던 때의 반짝이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몰라.
나는 곧바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어. 마법의 길을 걷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니까.
수백개의 마법을 개발하고, 수십 개의 일화를 남기고, 몇 개의 전설을 써낸 남자.
워낙에 두문불출하는 탓에 실존 여부마저 의심받고는 하던 신비의 마법사가, 내 눈앞에 나타나서는.
촌뜨기에 불과하던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먼저 제자로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했지.
마법에 대한 욕심만큼은 누구보다 컸던 어린 마녀가, 그 제안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어.
악마의 유혹이었던 거지, 말 그대로.
‘그래, 잘 생각했다.’
나는 우물쭈물하면서도 건네진 손을 잡았고, 그렇게 나는 그 사람의 제자가 되었어.
남색 마탑, 백색 마탑, 갈색 마탑의 마탑주를 모두 겸하고 있는 마법 학회의 최고 원로.
궁정마법사 대부분의 스승이자, 주문 언어학자이자, 아케인 칼리지의 명예교수.
동시에 전 대륙을 떠도는 방랑 마법사라고도 알려진 살아 있는 신비.
“재버워크.”
나는 그의 실험체가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