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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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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에 배신당한 날

털썩 소리와 함께, 발에 차여 내팽개쳐진 에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음으로는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적색 마탑주와 주변의 마법사들을.

마지막으로는 조금씩 웅성거리고 있는 다른 시민들까지- 주변 일대의 모습을 동시에 시야에 담았다.

마력으로.

“!”

광역으로 전개한 마력감지에 마법사들이 반응한다. 청색 마탑에서도 광역 탐지는 금지라고 했던가.

마탑주를 포함한 주변 마법사들의 보유한 마력을 통해 수준을 가늠해 보고, 뚜둑거리는 손을 가볍게 푼다.

마법사들은 내 스스럼없는 마법감지를 불쾌하게 받아들이고는, 차단 마법을 전개해 감지를 끊으려 시도했다.

근데, 니들 수준으로 내 마력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냐. 좆밥 새끼들이.

아직 마검이던 때의 칼레온을 찍어 눌렀던 것처럼, 마력의 출력을 앞세워 저급한 마법식을 짓뭉개 부순다.

몇 명이 전개한 마법을 그렇게 찍어누르니, 개중 나름의 수준 높은 마법사가 나서서 마법을 전개했다.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누르기 힘든 수준의 고위급 차단 마법, 곧 탐지는 끊겼지만 이미 견적은 나왔다.

이 놈들이 대충 어느 수준인지, 가진 마력의 양은 어떻고 마법사로서의 격은 또 어떠한지.

하지만 검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복장이 터질 것 같지만, 지금은 진정해야 할 때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자 조금 침착함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에인의 상태를 살폈다.

순간적으로 방어를 펼친 건지, 아니면 그냥 그리 세게 걷어차이지 않은 건지, 상처는 없어 보였다.

딱히 아파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잠시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다행이었다.

만약 꼬맹이가 피나 눈물 중 하나라도 흘리고 있었다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엄마 맞는데.”

에인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곤 다시 일어나 도도도 달려나갔다.

나도 에인을 따라 움직였다. 길을 막는 행인들이나 마법사들은 어깨로 쳐내고 밀치며 앞으로 나갔다.

에인은 자신을 발로 차버렸던 적색 마탑주의 앞을 가로막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야. 나 엄마 보고 싶었는데.”

적색 마탑주는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렸다. 으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한편 주변에는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마탑주가 발로 차버린 어린아이가 대뜸 ‘엄마’ 같은 말을 하고 있었으니.

독신으로 유명한 적색 마탑주에게 아이가 있었다- 그런 소문이 퍼지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엄마가 저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나 데려갔어. 나쁜 사람들이었는데 진혁악마님이 나 구해줬어.”

발을 멈춘 적색 마탑주 앞에서, 에인은 평소보다 빠른 목소리와 몸짓으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거 봐, 나도 이제 엄마처럼 마법 할 수 있어. 이거 진혁악마님이 만들어 준 건데, 여기 그림은 엄마 그림이야.”

에인은 자신의 완드에 새겨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법사의 문장 옆에 직접 그려넣은 알아보기 힘든 그림을.

“엄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적색 마탑주는 차가운 눈으로 에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지었던 것과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구나, 애야. 나는 네 엄마가 아니란다.”

어투는 상냥했지만,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분명한 경멸과 혐오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닌데, 엄마 맞는데……왜 아니라고 해?”

에인은 그렇게 말하며 마탑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탑주는 옷자락을 펄럭이며 그 손을 떼냈다.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지려고…나는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어, 별 거지 같은 것이 달라붙어서는.”

다음 순간, 마탑주의 손에서 작은 화염이 치솟았고, 뱀의 혀처럼 움직이는 화염은 에인을 향해 닥쳐 들었다.

내가 두고 볼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나는 곧바로 에인을 내 뒤로 잡아당기며 화염을 막아내었다.

-퍼엉!

머리에 열이 오른 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젠 상관하지 않겠다.

**

나의 [화염 내성] 레벨은 18층 수준에서는 가히 절대적이라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마탑주가 쏘아낸 화염을 막아낸 팔뚝이 화끈거린다. 마탑주급에게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위력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결코 어린아이에게 가볍게 쏘아내도 되는 화력이 아니다. 에인은 이 불꽃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만약 막지 못했다면 분명 전신이 불타고 말았겠지.

그리고 이 마탑주는 딱히 에인이 방어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죽일 심산이었던 거다.

나는 마탑주의 혐오에 찬 말을 들으면서도,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생각해 마지막까지 참고 있었다.

어쩌면 다소 과격한 방법을 써서라도, 에인과의 관계를 부정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명백히 살의가 느껴지는 불꽃을 쏘아낸 이상, 그따위 사정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적어도 그게 에인을 위한 사정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더 볼 것 없지.

“너는……”

마탑주는 맨 팔뚝으로 불꽃을 막아낸 나를 보며, 작게 인상을 썼다.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조금 전에도 대놓고 광역 탐지를 전개했었고- 애초에 수정구로 연락을 받았었을 테니까.

적색 마탑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은 품 안에서 완드를 만지작거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꼬마의 보호자인가, 타죽기 싫으면 그 더러운 것 데리고 눈앞에서 사라져라.”

마탑주의 방대한 마력이 내 주변을 압박해왔다. 보통이라면 숨쉬기도 버거워할 강력한 압박이다.

하지만 내겐 가소로울 뿐이다.

타 죽기 싫으면 꺼지라고? 나를 태워 죽이는 게 과연 가능할 것 같은가?

나는 조용히 검과 방패를 꺼냈다. 마탑주도 전투태세를 갖추는 나를 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내 마력감지에 무언가 걸렸다. 두 사람 간에 주고받은 마법적 통신, 전음이었다.

  • 확실히 처리했다며, 이것들은 다 뭐야?

  • 죄송합니다, 곧장 조치하겠습니다.

  • 됐어, 이렇게 된 김에 내가 직접 손쓸 테니.

엿듣는 것은 가능했지만,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것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짐작은 간다.

분명 마탑주와 그 부하 마법사중 하나겠지. 청색 마탑주처럼 전속 비서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건 천천히 물어보면 된다.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들어서.

그러나, 내가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기 직전- 조그만 그림자가 나를 막아 세웠다.

“진혁악마님, 안 돼.”

회색 머리의 꼬마, 에인이었다.

**

적색 마탑주를 그냥 돌려보내고, 가까운 벤치에 앉아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에인은 내가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을 보자마자, 재빨리 나를 막아세웠다.

엄마랑 싸우지 말라고, 소원이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이 꼬마에겐 당연한 일이었겠지.

이건 내 잘못이다. 에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내 독단으로 ‘엄마’를 베어버리려 했으니.

옳고 그름을 떠나, 아이 앞에서 해도 되는 행동은 분명 아니었다. 머리에 너무 열이 오른 탓이다.

에인은 벤치에 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짧은 다리를 파닥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

나이트 엘프의 비술을 이럴 때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혁악마님.”

잠시 후, 에인이 마침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엄마는 내가 싫은가 봐, 안 보고 싶었나 봐……나는 엄마가 제일 좋은데.”

질문이 아니었다. 한참을 혼자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드문 일이다.

사실, 나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마탑주의 자식이 혈사교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납치됐다는 사실부터 이상했다.

에인이 상식이라곤 전혀 모른다는 점도, 내가 끓인 잡탕죽 따위를 맛있다고 좋아했던 것도 그렇다.

자신의 성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엄마가 ‘에인’이라고 부르는 게 편하다고 했던 말도.

‘여기서 기다려’라는 말에 순순히 기다리다가 그대로 납치를 당한 것도- 돌이켜 보면, 하나같이 수상했다.

하지만 그 상상이 너무 불쾌하고 기분 나빠서, 나도 모르게 외면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 나는 에인에게 나 자신을 겹쳐보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마음. 어쩌면 결말마저도 나와 비슷할지도 모른다며.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일만은 제발 아니었으면 해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겨우 삼키며, 에인의 머리 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아니야.”

말을 고른다. 조심스럽게.하지만 내 서툰 말재주로는 에인을 위로할 수 없다. 말뿐이라면.

“꼬맹이 네가 잘 몰라서 그래, 어른들은 항상 바쁘고 사정이 많거든. 그냥 조금 오해가 있는 것뿐이야.”

회색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트리며, 벤치에서 일어나 인벤토리를 열었다.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조금만 기다려봐. 금방 가서 오해를 풀고 올게.”

칼레온을 꺼내 상급 마법석을 끼우고, 검령을 불러냈다.

“자, 네 스승님이랑 같이 숙소에 가 있어. 어디인지 기억하지?”

“응……”

“그래, 현자가 되겠다는 녀석이 이런 걸로 기죽으면 안 되지.”

나는 검령에게 꼬마를 잘 지키라고 단단히 신신당부했다. 검령은 보기보다 에인을 꽤 아끼는 편이다.

상급 마법석까지 끼워줬으니, 18층의 평균 수준을 생각해보면 차고 넘칠 만큼 강력한 경호원이 되어 줄 거다.

그렇게 에인을 숙소로 돌려보내고,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홀로 적색 마탑을 찾았다.

“오해를 풀어야지.”

아주 심각한 오해를 한 모양이니, 오해를 푸는 과정도 좀 심각할 수 있겠어.

뭐, 악마가 소원을 이뤄주는 방법으로는 딱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