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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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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적색의 마탑주
적색 마탑은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무척이나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여러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마법을 이용해 이런저런 물건을 급하게 옮기고 있었다.
군생활 시절, 사단장이 방문한다던 날의 우리 부대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따로 방문 예정을 잡고 오신 건 아니죠? 마탑주은 지금 한창 바쁘실 시기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응대하는 마법사는 바쁜 와중에도 그럭저럭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대뜸 찾아와 마탑주를 만나게 해 달라는 우리의 부탁도 그냥 흘려넘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문제다. 이 마법사는 분명 에인의 모습을 수정구를 통해 마탑주에게 전송해주었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고, 아무튼 얼굴을 보면 바로 알 거라는 내 말을 믿고 말이다.
혹시 최근에 마탑주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걸까? 에올피아가 만들어 준 자료가 최신화가 안 됐었다거나?
나는 곧바로 마법사에게 마탑주가 최근에 바뀌었느냐고 물었지만, 원하던 대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요, 현 마탑주님께서는 15년 전에 취임하신 이후로 지금까지 직책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한 5년이나 10년 정도면 모를까, 15년이라면 아예 다른 가능성이 없다.
에인의 나이는 에인 본인도 잘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15살 이상 먹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
그러면 단순히 얼굴을 못 알아볼 뿐인가? 납치당한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러서?
“꼬맹아, 너 혹시 엄마랑 떨어진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하고 있어?”
“몰라.”
“그렇겠지, 애초에 그렇게 오래 지났을 리도 없고……젠장, 뭔데.”
나는 혼란 속에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혹시 몰라 잘라왔던 마탑주의 사진을 꺼내어 마법사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이 지금 마탑주 맞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이번에도 ‘그렇다’ 는 것이었다. 그럼 에인이 착각한 걸까?
아니, 에인은 어휘와 상식이 부족할 뿐이지 기억력이 나쁜 건 절대 아니다.
척 보기에도 복잡한 고위 마법진을 완벽하게 똑같이 그려낼 수 있고, 주문 언어를 암기하는 것에도 능했다.
“진혁악마님, 나 엄마 못 만나는 거야……?”
에인이 눈을 크게 깜빡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거나, 울먹이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에인은 이제껏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꼬마였다.
그러나 이만큼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사소한 표정의 차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법이다.
저건 에인이 속상할 때 짓는 표정이다. 자주 본 표정은 아니다.
“아냐, 만날 수 있어.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봐.”
나는 에인의 머리를 토닥이며, 잠시 고민했다. 눈앞의 마법사에겐 아직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에올피아도 적색 마탑주에게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에인은 최소한 숨겨둔 자식이라는 의미, 대놓고 요 꼬마를 마탑주의 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저 실례지만, 혹시 마탑주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제가 다시 연락을 드려 볼 테니……”
“하아……그게, 참, 뭐라고 해야 하나, 가족, 가족입니다. 저 말고 이 꼬마요.”
“가족이시라고요? 마탑주님의 자제분은 아닐 테고…… 들어본 적은 없지만, 혹시 친척분이신가요?”
나는 적당히 그렇다고 대답하며, 에인의 이름도 알려주었다. 마법사는 다시 수정구를 만지작거렸다.
꼬마 에인의 표정이 이 이상 나빠지는 건 사양이다. 이래도 모른다고 한다면 그냥 자식이라고 밝혀 버리자.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알아봤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거라면, 최소한 언질 정도는 줄 거다.
“저기……죄송합니다.”
수정구를 이용해 뭔가 통신을 하던 마법사가, 대뜸 고개를 푹 숙였다.
“두 분은 저희 마탑에서 나가주셔야겠습니다.”
그렇게, 당혹스러운 축객령이 내려졌다.
**
쿵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혀 버린 적색 마탑의 문을 바라보았다.
몇 겹의 마법으로 보안 장치가 된 문은 건드리기만 해도 약한 불씨를 튀기며 우리의 접근을 거부했다.
단순한 축객령이 아니라 출입을 완전히 금지당했다. 이유도 전혀 모르는 채로.
“진혁악마님, 우리 엄마는?”
에인은 내 옷소매를 당기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황이 너무 당혹스러운 나머지, 그냥 맥없이 쫓겨난 상태. 에인에게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대답하지 않자, 에인은 혼자 도도도 문으로 달려가다가 불씨와 함께 튕겨 나왔다.
-우당탕!
“야!”
나는 넘어진 에인을 일으켜 세웠다. 조그맣고 하얀 손에 울긋불긋한 화상이 생겼다.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상처부위에 들이부었다. 심한 상처는 아니라 금방 나았다.
“이거, 아파……진혁악마님, 나 왜 못 들어가? 엄마 못 만나는 거야?”
“아니야, 만날 수 있어. 아마 마탑이 많이 바빠서 그런가 봐.”
“하룻밤만 자면 엄마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소원이었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꼭 말빨이 딸리는 나는, 그저 ‘아니야, 만날 수 있어. 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화상을 입은 에인을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앉혔다. 아무렇게나 한 말이지만 적색 마탑이 바쁜 건 정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거기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주변의 행인 중 마법사처럼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엄마가 바빠서 그런 걸 거야. 어디, 자, 저 사람한테 한 번 물어보자. 무슨 일인지.”
나는 그대로 저벅저벅 걸어가, 로브를 입은 남성의 앞을 막아선 뒤 물었다.
“이봐요, 뭐 하나만 물읍시다.”
“아이 씨, 댁은 뭐요?”
“적색 마탑 말인데, 평소엔 저렇게 안 바쁘지요?”
로브 남자는 은근히 짜증을 내면서도, 평범하게 ‘그렇다’ 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이어서 물었다.
“그럼 오늘은 뭐 때문에 저리 바쁘답니까? 우리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 왜 저러는지 모르겠는데.”
“나도 잘은 모르고……듣자하니 외부에서 대단한 마법사가 오늘인가 내일인가 방문하기로 했다던가?”
사단장이 방문하는 날 부대 같다는 인상이었는데, 아무래도 진짜 그런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에인을 모르는 체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
그 후로, 나는 로브 남자에게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주로 적색 마탑에 대하여.
적색의 마탑주는 어떤 인물인지,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있는 대로 묻고 또 물었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마법적 재능을 바탕으로 출세한 불세출의 화염 마법사, 여러 여성 마법사들의 존경을 받는 존재.
마탑주가 되었을 때의 나이는 무려 스물하나, 당시 역대 최연소의 마탑주로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 밖에는 마법사답게 성격이 다소 괴팍한 면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젊은 나이에 성공한 원인인지 곁에 남자가 없었다는 이야기.
여성 마법사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연구는 포기하고 적당한 신분의 남자에게 들러붙는 일이 흔하다는 모양인데.
적색 마탑주는 그런 기미는커녕, 근처에 이성을 두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느낌이 좋지 않다.
그렇다면, 에인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얻은 자식인 걸까. 애초에 아이 아빠는 또 누구지?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 다리 뒤에 숨어있는 에인을 내려다보았다.
“진혁악마님, 나 정말로 엄마 볼 수 있어……?”
“그래, 그렇다니까. 이때쯤에 나온다잖아.”
“응, 나 착하게 기다릴게. 엄마 보고 싶으니까.”
로브 남자에게 들은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더, 바로 적색 마탑주는 매일 일정 시간마다 마탑의 설비를 점검한다는 것.
본인이 직접 만든 결계 장치의 유지 보수를 위해서라는데, 그때라면 아마 마탑주를 직접 볼 수 있을 거다.
어떻게든 본인을 직접 만나서, 사정을 듣건 어쩌건 할 테다. 이번에는 조금 억지를 써서라도.
그리 생각하며 가까운 벤치에 앉아 있을 때였다. 돌연 에인이 폴짝 뛰어내려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엄마다.”
마법까지 써서 달리고 있는 건지,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나는 곧바로 에인을 쫓아갔다.
저 멀리 적색 마탑의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낸 붉은 로브의 여성이 있었다.
거리가 멀지만,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받아온 사진이랑 거의 똑같이 생겼다. 적색 마탑주가 틀림없다.
“잠깐, 꼬맹아. 넘어지겠다.”
다만 마탑주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곁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여럿 자리 잡고 있었다.
잽싸게 달려간 에인은 작은 몸집을 살려 다른 마법사들을 뚫고, 대번에 마탑주에게 달라붙었다.
“엄마!”
그 순간, 적색 마탑주의 표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번을 연달아 바뀌었다.
얼굴을 스쳐 지나간 감정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에서 확실히 드러난 것은 두 가지. 당혹과 경악.
그조차도 일반적인 시야로는 포착하기 힘들었겠지만, 나는 남다른 반응 속도와 [사고 가속]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잠깐 일렁였던 감정은 금세 사라지고, 적색 마탑주의 얼굴은 다시 무표정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탑주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고, 곧 입술 끝에서 짧은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이, 더러운 것이……”
이어서, 로브 자락 사이로 갑작스레 튀어나온 다리가 에인을 거칠게 걷어찼다.
-퍼억!
회색 아이가 먼지와 함께 뒹굴었다.